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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96화 (396/408)
  • 396화. 결전의 시작 (2)

    소우자에게 전쟁 준비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준혁은 곧장 천운대륙으로 넘어갔다.

    천운대륙의 주인이자, 삼대 세력의 수장인 림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일이 진행되어 버리는구나.’

    왜곡의 500년과 그 후로 쌓은 수련의 시간.

    준혁은 규선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한다면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정도의 수행 상승을 이뤄냈다.

    당장 천신라와 승부를 겨룬다고 해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쉽게 지지 않는다는 것.

    그 말을 달리하면 이길 수 없다는 뜻.

    신선에 오른, 그것도 동급 수행을 가진 천휴림주가 두려워할 정도인 천신라를 제압할, 혹은 맞수를 이뤄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혼자라면 말이지.’

    다만 준혁은 일을 진행함에 두려움 따윈 없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본인의 능력뿐 아니라, 팔왕과 림주를 끌어들여 동맹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천운성에 도착한 준혁은 자신의 기운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쿠웅- 화아악-

    “어쩐 일로 이곳을 찾으신 건지요?”

    림주의 첫 번째 제자이자 규선인 천운성주의 방문을 받았다.

    준혁은 여전히 금은보화로 치장한 천운성주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장 림주를 봐야겠으니 안내하시지요.”

    ***

    천운대륙의 서쪽 끝.

    초태해를 마주하고 있는 산맥.

    오래전엔 천대산맥(天戴山脈)이라 불렸지만, 언젠가부터 천휴산맥(天休山脈)이라 불리는 곳.

    준혁은 천휴산맥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천휴림으로 이동했다.

    ‘저게 그것이로군.’

    이동하는 준혁의 시야에 수많은 돌탑이 들어왔다.

    천휴림의 ‘림’은 나무를 뜻하는 것이 아닌, 수사들이 쌓아놓은 탑을 의미했다.

    천휴림 소속은 원영기에 오른 뒤 돌과 영석을 이용해 탑을 쌓았고, 수행을 올릴 때마다 그 탑을 조금씩 높여갔다.

    그렇게 모인 탑들이 잔뜩 모인 곳. 그곳이 천휴림의 본거지였고, 현재 준혁의 발아래 풍경이었다.

    “재밌군요.”

    “느끼셨습니까?”

    준혁은 발아래를 가득 메운 탑이 그저 수행을 올렸다는 증거가 아님을 느꼈다.

    탑들이 미묘한 배치를 이뤄 영기 상승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지목족 혈맥을 이용한 것처럼.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마치 수백 명의 수사가 한 명의 수행을 돕기 위해 진을 펼친 듯하군요.”

    “하하, 단번에 알아보셨군요. 그렇습니다. 보통 스승님께서 수련하실 때 이용하지만, 림에 공헌한 자들도 이용할 수 있지요. 한번 아래로 내려가 체험해 보시겠습니까?”

    준혁은 천운성주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이런 식으로 고위수사를 영입하나 보군.’

    “아닙니다. 한시가 바쁘니, 곧장 림주께 가도록 하지요.”

    “아, 예, 뭐…. 그러시다면야.”

    준혁이 단번에 거절하자, 천운성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비행을 서둘렀다.

    그렇게 얼마 이동하지 않아, 천휴림이 자리한 산맥을 넘어 깊은 골짜기로 안내했다.

    골짜기엔 공천귀의 공간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초라한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준혁의 방문을 알고 있다는 듯, 천휴림주가 나와 뒷짐을 진 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최 선사. 오랜만입니다.”

    “무탈하셨습니까?”

    두 사람은 오래전 공천귀의 균열에서 있었던 일을 잊기라도 한 듯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헌데 무슨 일로? 혹 제 부탁을 들어주시려는 겁니까?”

    “아닙니다. 오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로 방문했지요.”

    준혁에게 합류하면 수행 상승을 겪을 수 있다는 말에 천휴림주가 혈족을 들이민 적이 있었다.

    ‘본인이 만든 비술과 비교해보려 한 거였군.’

    준혁은 지난 일을 떠올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림주.”

    “??”

    “선마궁과 전쟁을 시작하려 합니다. 림주께서도 한 손 거들어주시지요.”

    “그게 정말입니까? 아, 죄, 죄송합니다.”

    림주 대신 반응을 보인 천운성주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물러섰다.

    준혁이 본인과 동급수사라고는 하나, 현재 스승과 대화를 하는 상황. 자신이 끼어드는 건 예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천운성주가 사과와 함께 물러나는 사이, 림주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그러길 한참. 지루하다 여겨질 때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 선사. 제 얘기 고깝게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씀하시지요.”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천휴림의 전력으로도 천신라 그자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할 텐데. 최 선사 한 명이 추가된다 한들…. 흐음. 게다가 천신라를 제외하고도 쉽게 생각할 만한 이들이 아닙니다.”

    애초에 준혁의 세력에서 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있으나 마나.

    그러니 전쟁이란 소린 집어치우란 소리였다.

    준혁은 당연한 반응을 보았다는 듯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겠지요. 림주의 말씀이 맞다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만?”

    “??”

    “림주와 저뿐이 아닙니다. 이번 전쟁에 팔왕이 나설 겁니다.”

    준혁의 말과 동시에 동공이 확장되는 천휴림주.

    준혁은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수많은 역사 속에 항상 방어적인 자세만 취했던 팔왕.

    그들이 전부 동참할 거란 얘기에 천휴림주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바야흐로 새로운 질서가 잡힐지도 몰랐으니까.

    ***

    천휴림주에게 확답을 얻어낸 준혁은 곧장 대황대륙으로 직행했다.

    소우자에게 전쟁을 준비하라 했지만, 실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선마궁에 맞서는 게 아닌, 선마궁의 하부세력을 상대하는 일.

    천휴림주의 말대로 삼선급 수사가 아니라면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신선에 오른 천신라가 숨만 쉬어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수사들은 애초에 대동하지 않는 게 유리했다.

    중요한 건 삼선의 수.

    특히나 규선급 강자를 모으는 일이었다.

    그리고 준혁은 이미, 오래전 거래를 통해 7명의 규선을 확보해 놓았고 말이다.

    슈욱-

    사휘족의 전송진에 나타난 준혁은 그들에게도 전쟁을 준비하란 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곧장 백랑족으로 이동.

    태백랑을 통해 팔왕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혁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다들 반가운 기색은 없었다.

    전송진을 설치하는 일로 가진 재화 중 일부를 내놓아야 했었기에, 그것에 아직도 꿍해 있었다.

    “무슨 일로 우릴 찾은 겁니까?”

    모두 자리에 앉자, 조왕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준혁은 팔왕 한 명씩 눈을 맞추며 한껏 무게를 잡고 말했다.

    “천휴림주와 함께 천신라를 치기로 하였습니다. 해서 여기 계신 분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싶군요. 모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도움이란 말을 유난히 강조하자 몇몇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무리한 요구임에도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 약속과 의리를 쉽게 잊는다며 인족을 욕하던 영수족의 수장들. 그들은 끄응- 앓는 소리를 하다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천휴림주가 함께한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군.”

    “그 겁쟁이가? 믿을 수 없는데.”

    “정말이오? 천휴림주가 천신라와 대적하기로 했다는 게?

    팔왕은 제각각 한마디씩 내뱉었고, 준혁은 그들의 질문에 상세히 답변했다.

    잠시 후, 팔왕이 승낙을 내비치며 동참할 것을 밝혔고, 준혁은 수월하게 진행되는 상황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팔왕이 말을 바꾼다면, 그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기에 살짝 초조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그때, 조왕이 대표로 물었다.

    “언제 말입니까?”

    “팔왕께서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준혁의 대답에 전원이 침묵했다.

    이렇게 빠를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

    팔왕과의 만남을 끝마치고 대화성으로 돌아오자, 소우자를 비롯한 인원들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미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는 듯, 결연함보다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혼자 가시렵니까?”

    대화성에 도착한 준혁이 서둘러 다시 떠나려고 하자 소우자가 물었고.

    “그래야겠지. 이곳이 외부에 드러날 일은 없을 테지만, 대화성과 묘립성은 그렇지 않을 터. 방비 단단히 하게. 선마궁이 직접 움직일 리는 없지만, 그들 밑에 누가 있는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으니.”

    “명심하겠습니다.”

    준혁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준 후 전송진 위로 올라갔다.

    그때, 조호랑과 소화여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저도 함께할게요.”

    “저도요.”

    두 여인은 독사처럼 기세를 바짝 세운 채 함께하길 원했다.

    하지만 두 사람과 동행하는 건 이득보다 실이 많을 터. 준혁은 천신라로부터 그녀들을 지켜줄 여유가 없었다.

    “안 되오. 둘 다 여기 남아 소우자를 돕도록 하시오.”

    준혁이 단박에 거절하자, 조호랑은 실망한 얼굴로 물러났다. 스스로 생각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았기에 더욱 의기소침해하며.

    하지만 조호랑과 달리 소화여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저는 데려가 주세요. 마선봉인진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게다가.”

    파르륵-

    말을 하던 소화여가 파뢰를 꺼내 들자 주위로 성광지력이 그림처럼 번져갔다.

    “천신라를 상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의 수하들이라면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어요.”

    긴 수련의 시간 동안 준혁만 수행을 견고히 한 건 아니었다.

    소화여는 가만히 있어도 성광지력이 생성되는 씨앗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영향으로 진선에 오른 지 꽤 시간이 지나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대라멸진 연구도 함께했으니, 도움이 될 테고요.”

    그녀가 기세를 돋구자, 준혁은 말없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길 한참.

    “함께 갑시다.”

    결국 그녀의 말대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기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신이 보호하지 않아도 제 한 몸 건사할 거란 믿음도 생겼고 말이다.

    파앗-

    잠시 후, 준혁과 소화여가 전송진을 이용해 사라지자, 수사들은 각자 맡은 일을 위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사쿠라와 최나연만이 복잡 미묘한 눈길로 비어버린 전송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나연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이 무사히 구출되길 빌었고.

    사쿠라는 본인의 수행이 너무 초라해 가슴이 아팠다.

    ***

    천운성에 모습을 드러낸 준혁은 곧장 대륙 동남쪽으로 향했다.

    천운성을 중심으로 천휴림과 반대 방향에 자리한 선마궁.

    근처에 미리 도착한 후, 팔왕과 약속한 때를 기다리며 수행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휘리릭-

    천휴림주에게 전언을 보낸 준혁은 곧장 비행 법기를 이용해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나 이동했을까?

    어두운 하늘 위.

    적막 속에서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있던 준혁,

    ‘응?’

    그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서 빠른 심장박동이 느껴지자, 의아해하며 몸을 돌렸다.

    왜냐하면 현재 비행 법기 위엔 소화여와 둘뿐이었고, 긴장하거나 흥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을 돌린 준혁은 철렁한 마음에 다음 행동을 쉽게 이어가지 못했다.

    “흐음…. 소 소저. 이게.”

    준혁의 눈앞.

    그곳엔 매미의 날개처럼 얇은 내의만 입은 소화여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화여는 준혁의 눈길에 부끄러움을 느낀 듯 두 볼을 붉혔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참아낸 듯, 두 손을 꽉 쥐며 준혁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를 안았다.

    그리고 행동보다 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이런 행동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를 조금만 이해해주실래요? 앞으로 있을 일이 좋은 결과로 끝맺음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음….”

    “어쩌면 수사와 함께하는 이 길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제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살짝 달뜬 목소리가 준혁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오늘 밤…. 저를 안아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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