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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95화 (395/408)

395화. 결전의 시작 (1)

이제는 경계가 희미해졌지만, 오래전엔 대한민국이라 불렸던 지역.

그곳에서도 수사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섬.

그 섬엔 가장 높은 봉우리를 지닌 성인봉이 있었고, 그곳엔 한 여인이 실망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 나는 안 되는 걸까.”

그녀의 이름은 최나연.

한때 지구 최강 수사라 불렸던, 최준혁 수사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한숨 쉬며 본인의 능력을 한탄하고 있지만, 그녀는 엄연히 지구에 세 명뿐인 완영기 수사였다.

다만 이제는 성장을 멈춘,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수사였지만 말이다.

“역시 내 재능의 한계는 여기였어.”

남들은 그녀가 특출나기에 폭발적인 성장으로 ‘최강 삼인’중 한 명이 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최준혁 수사가 선계로 비승하기 전 주었던 막대한 단약을 이용해 수행을 올린 것뿐.

그녀의 재능은 평범보다 살짝 앞서있을 뿐이었다.

“왜 그리 한숨을 쉬어?”

그때, 천상에서 내려온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주는 미모의 여인이 최나연 곁으로 내려섰다.

“언니.”

“왜? 고민 있어?”

내려선 이는, 또 다른 완영기 수사인 사쿠라.

현 지구 최강이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사쿠라의 등장에 최나연은 더욱더 어두워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더는 수행이 늘지 않아요.”

최나연의 어두운 표정에 사쿠라는 피식 웃고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당연한 거야. 완영기까지 오른 것도 대단한데. 욕심이 지나친 거 아닐까?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가면 돼.”

“하지만 오빠는 혼자 힘으로 연형기까지 올랐는걸요?”

그녀의 의기소침한 목소리엔 ‘나는 오빠 도움으로 수행을 올린 거잖아요’란 말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런 최나연의 심리를 파악한 건지 사쿠라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 사람은 특별하잖아. 우리랑 비교하면 안 되지. 안 그래?”

“...그건 그래요.”

잠시 최나연을 위로해주던 사쿠라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그리고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바닥을 퉁- 치며 상공으로 치솟았다.

“어디 가요?”

“응. 청명이…. 이제 귀천할 것 같아. 마지막 가는 길. 함께 있어 주자.”

“아…. 문주께서.”

마선문 문주인 청명은 수백 년 전 깜짝 방문한 준혁에게 막대한 영단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이 너무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돕지 않은 것인지 수행을 올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무리하게 수행을 올리려다 오히려 반서를 맞고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삼선에 오르지 않는 이상, 수사라면 언젠가는 맞이하는 일이기에 안타까우면서도 씁쓸한 상황이었다.

“가자. 아마 오늘을 넘기지 못할 테니까. 이화도 그곳에 미리 가 있어.”

“네. 알겠어요.”

사쿠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감지한 최나연은 자신의 걱정이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눈에 눈물이 살짝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쿠르르릉-

그때, 하늘 한쪽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기파가 주변을 잠식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황금빛 기둥이 나타나 지면을 강타.

쿠웅-

“서, 설마!”

그 모습에 사쿠라가 급격하게 몸을 돌리며 기감을 퍼트렸다.

오래전 최준혁 수사가 방문했을 때와는 달랐지만, 눈앞의 황금 기둥은 분명 지구의 수사가 펼칠 만한 수준의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예감을 증명하듯.

황금빛 기둥은 잠시간 자리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안에는 분홍새 한 마리를 들고 있는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수백 년 전 보았던 준혁의 분신. 그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

성인봉에서 조금 떨어진 봉우리.

그곳에 자리한 조그마한 석실.

“청명 문주, 들립니까? 그분께서 오셨어요.”

준혁과 함께 청명을 찾아온 사쿠라는 목소리에 영력을 담아 상대를 불렀다.

그러자, 시체처럼 바짝 마른 채 눈을 감고 있던 쭈그렁 노인이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겨우 쉰 목소리를 내었다.

“어, 어르신?”

준혁은 그런 청명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그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우웅-

그러자 미세한 파동과 함께 은빛 광채가 심장으로 스며들었고, 고목처럼 말라가던 청명의 피부가 눈에 띄게 부풀며 생기를 찾았다.

“세상에!”

사쿠라를 비롯한 마선문의 인사들은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죽어가던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다니?

준혁은 놀라는 이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잘 지냈느냐?”

“정말…. 어르신입니까요?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조금 전보단 사람 목소리 같은 청명의 음성.

“무엇이 다행이란 말이냐? 꼴을 보아하니 다 죽어가고 있거늘?”

“그러니 다행이지요. 죽기 전에 어르신을 뵐 수 있게 되다니…. 하늘이 저의 소원을 들어준 것 아니겠습니까요.”

“소원이라니?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 청명은 조금 더 활력을 찾았다. 마치 회광반조가 오는 것처럼.

푸흣-

청명은 어울리지 않게 쭈글쭈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평생 도적질이나 하다 죽을 팔자였던 저를 이렇게 살게 해주시지 않았습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가는 길…. 감사하단 말씀도 못 드렸으니. 어찌나 죄송하던지….”

“......”

“정말 고마웠습니다요. 정말로, 어르신이 계셨기에…. 저라는 놈이 이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요. 정말로 고맙습니다요.”

청명의 말에 사쿠라를 비롯해 그와 오래 했던 인물들이 하나둘 눈시울을 붉혔다.

청명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도 그의 감정을 느꼈는지 숙연해졌다.

잠시 후, 준혁이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석실 안은 지독한 적막이 찾아왔고, 그 적막을 깨듯 청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르신…. 주제넘은 줄은 아오나.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요?”

“말해 보거라.”

“살아있는 것이 아니면, 떠나실 때 가져갈 수 있다 들었습니다요…. 그때 제 유골도 가져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죽어서도 어르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요….”

말을 마치고 정말 끝이라는 듯 애써 활짝 웃는 청명.

준혁은 그런 청명을 말없이 바라보다 붉어진 눈가를 빠르게 회복했다. 그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툭- 말을 내뱉었다.

“아직 할 일이 태산처럼 남았거늘. 누가 곱게 죽는 걸 허락할 줄 알았더냐? 버르장머리 없게.”

투웅-

말이 끝난 순간, 은빛 섬광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봉우리 정상에서 시작한 금빛 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금빛 실이 닿는 족족 나무를 비롯한 모든 식물이 바짝 말라갔다.

마치 누군가에게 모든 걸 뺏겨버린 것처럼.

***

쿠우웅- 파앗-

황금빛 기둥이 사라지자, 서봉산맥 위로 남녀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하계면에서 올라온 준혁 일행.

원래는 통로를 만들어 마선문 전체를 데려와야 했지만, 우선은 몇몇 인원만 함께하고 나머지는 조만간 다시 길을 열겠다고 알렸다.

그래서 최나연과 사쿠라를 포함한 수행이 높은 주요 인사만 함께한 터였다. 혹은 강제로 수행을 높여야만 하는.

“이곳이 선계입니까요?! 와.”

새 생명을 얻은 청명이 대표로 놀라움을 표출하는 사이 사쿠라를 비롯한 여인들은 주변 풍경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그때,

“이분이 주군의 동생분이시군요.”

다수의 수사와 제무무가 조용히 다가와 준혁 일행을 살폈다.

준혁의 자아가 깃든 분신은 가까이 있던 본체로 복귀하며 명령을 내렸다.

“제무무.”

“옙!”

준혁의 부름에 번개처럼 달려와 부동자세를 취하는 제무무.

“이들과 함께 대화성으로 갈 테니 미리 준비하거라.”

족자를 이용하면 당장 새로운 거처로 모두를 옮길 수 있었지만, 준혁 본인은 전송진을 이용해 이동해야 했다.

그랬기에 차라리 천천히 이동하며 선계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는 게 좋다고 여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안내 역할은 입담이 좋은 제무무 담당이었다.

“명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

잠시 후, 눈에 띄는 꽃마차 같은 비행 법기를 준비한 제무무를 보며 준혁은 질색을 표하다 조각배 법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일행을 전부 태운 후, 대화성으로 이동했다.

몇 주 후.

짧지만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소우자를 찾았다.

“소우자, 이들이 비승 전 하계에 있던 내 가족들이다. 수행이 모자라니 당분간 수련에만 매진해야 할 터, 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물심양면 돕도록 하게나.”

“예.”

그때, 기다리고 있었단 듯 조호랑과 소화여가 나타나 준혁 옆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새로 나타난 이들을 반기다가 준혁과 눈매가 살짝 닮은 여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준혁이 ‘가족’이란 단어로 표현했기에 하계에서 데려온 인연 전부 소중하다는 건 기정사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진짜 혈연이 누군지는 소우자를 포함한 대화성의 주요 인사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 어떤 이득을 바라지 않더라도, 누구와 가깝게 지내야 좋을지 뻔하단 뜻이었다.

벌써부터 준혁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물밑작업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모든 일을 마무리한 준혁은 다시 폐관에 돌입, 시간을 잊고 내면을 갈고 닦았다.

현재 마선들의 능력을 섞어서 사용은 가능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융합은 성공하지 못했다.

왠지 그것만 성공한다면, 규선에 오른 자신의 수행으로도 천신라를 제압 가능할 거라 예측됐다.

아니, 예측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확신이었다.

“닿을 것 같으면서 닿지 않는구나.”

지구의 인연을 데려오기 전부터 수백 년간 연구한 한 가지 깨달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적지주.”

어느새 준혁의 손위로 붉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 금빛 실을 내뿜었다.

금빛 실은 거미줄처럼 끈적하게 사방으로 퍼지다가 일정 공간을 뛰어넘어 멀리서 나타났다.

파스르르-

하지만 공간을 넘어 모습을 보이기가 무섭게 먼지처럼 흩날리며 소멸해버렸다.

동시에 공간을 뛰어넘기 전의 거미줄도 그 영향을 받는지 소리 없이 소멸했고, 준혁은 급하게 거미를 역소환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두 가지 힘은 하나였으니.”

마선기라는 하나의 원류를 가지고 있는 마선들의 권능.

적지주와 적마의 능력을 융합시켜 사용하려 했던 준혁은 조금 전 현상을 되뇌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중요한 건 유지인데. 흐음….’

하지만, 생각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잠시 후. 방해하지 말라는 자신의 명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파동이 느껴졌고. 준혁은 손을 저어 공간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그러자 소우자가 나타나 주먹만 한 옥석을 내밀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듯했다.

“주군! 급히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준혁은 소우자의 심각한 표정에 급히 옥석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기감으로 옥석을 검사하고는 이마에 가져갔다.

“이런.”

그 순간 준혁의 시야로 예전과 다르게 초췌한 중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말을 시작했다.

-무사히 갔을지 모르겠군. 규선에 올랐다는 소문은 잘 들었다. 뭔가 준비하는 것 같긴 하던데, 네 성정이면 천신라의 뒤통수를 확실히 후려갈길 만한 것을 준비 중이겠지.

중괴는 살짝 초조해 보였다.

-헌데 아쉽게도 시간은 네 편이 아닌 것 같구나. 잘 들어라. 조만간, 늦어도 다음 해가 오기 전 천신라가 그 아이에게 비술을 펼칠 것이다.

비술이라는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

-마선경을 구슬려 알아보니 차기 계약자로 키우는 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 아이의 재능을 빼앗아 오려는 것 같다.

처음부터 천신라가 주서령을 데려간 건, 천신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체 때문.

재능을 빼앗는다는 말은 곧 그녀의 죽음과 같은 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전에 그 아이를 구해야 한다. 아니라면 최소한 비술이 성공하지 못하게 훼방이라도 놓든가. 알아먹었을 테니 이곳에 오는 길을 알려주마. 이곳은 선마궁이 자, 이런…ㅆ.

가벼운 욕설로 마무리된 중괴의 전언.

준혁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옥석을 이마에서 뗐다.

“주, 주군….”

그런 준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소우자.

소우자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준혁이 유령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그리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 소우자의 곁을 가볍게 지나치며 입을 열었다.

“소우자, 전쟁을 준비하라.”

파앗-

그리고는 기척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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