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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86화 (386/408)

386화. 성장의 증거 (3)

대막리는 주변이 소멸하여간다는 것도 잊어버렸단 듯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 당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그가 균열 속으로 사라진 지 50년.

5년이라면 어떻게든 이해해 볼 수 있겠지만, 50년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규선에 오른 사형이나, 스승님이라 해도 불가능할 기간이었으니까.

그런 대막리의 반응과 상관없이 준혁은 잔혹하게 웃으며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커억!”

“그런 것이 중요합니까? 지금 수사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어지는 준혁의 말에 대막리는 아차 하며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의 힘을 버텨낸 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손에 잡힌 순간부터 전신의 영력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기에 반항도 불가능했다.

“무, 무엇 때문, 큭, 이러시는 겁니까? 우선 밖으로 나가 대화를….”

대막리는 준혁도 두려웠지만, 무너지고 있는 공간 균열이 더 위험해 보였다.

준혁은 그런 그를 향해 피식 웃어준 후, 다른 손으로 허공을 가볍게 저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꽃잎 한 장이 펄럭이며 날아와 그의 손위에 안착했다.

너무나 작고 하찮아서 일부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꽃잎.

“제가 아무 준비 없이 균열 속에 들어갔을 거라 여겼던 겁니까? 긴 시간 동안 두 분께서 나누시는 사담, 잘 들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은 좌무란과 대막리.

사담이란 두 사람이 준혁을 처리하기 위해 나누던 은밀한 대화.

준혁의 손바닥 위에 놓인 꽃잎이 무엇을 의미한지 깨달은 대막리가 사색이 되었다.

“서, 선사. 오, 오해십니다.”

그는 치부를 들킨 듯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입은 살기 위해 쉬지 않았다.

“무, 무슨 대화를 들으신 건지는 모르나 저, 절대 아닙니다. 스, 스승님의 명으로 수사를 잠시 제압하려 하긴 했지만, 정말 그것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게 다른 의도가 아니면 심장에 칼이라도 쑤셔 박아야 다른 의도일까요?”

“그, 그런 것이 아니라. 혹시나 선사께서 공천귀의 보물을…. 할까 봐 대비한 것뿐. 정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도둑질’이란 단어를 간신히 삼킨 대막리.

그는 준혁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노심초사하며 의지를 일으키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의지는커녕 점점 손끝까지 무뎌져 가며 신체활동이 급격히 죽어가고 있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절망에 잠길 때쯤.

퐈직-콰자작-

준혁의 등 뒤에서 커지던 균열이 이상 반응을 보이며 급속도로 사방을 잠식.

순식간에 주변을 덮쳤고, 당연히 그 범위에 준혁도 포함되었다.

급기야 균열은 모든 걸 찢어발길 듯 뻗어나가다 준혁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푸학-

대막리는 준혁이 균열에 관통당하는 순간, 이때다 싶어 젖 먹던 힘까지 끌어와 몸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시도했다.

“어, 어째서…. 당신은 멀쩡한 겁니까….”

움직이려 시도했던 대막리는 균열에 정통으로 관통당한 준혁이 봄바람이라도 맞은 것처럼 여유롭게,

여전히 자신의 목줄을 쥐어 잡은 채 굳건히 서 있자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그가 이미 죽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균열 속에서 50년을 버티고, 주변이 소멸하여가는 데도 영향이 없나? 하고 허튼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준혁과 다르게 균열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하기 전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괴, 괴물….”

***

“괴물은 무슨.”

균열 자체가 중력의 힘과 왜곡의 힘이 공명하며 나타난 현상.

오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력의 힘을 완벽히 체화시키고, 왜곡의 힘마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된 준혁에겐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순 없었다.

그는 손에 잡혀 축 늘어진 대막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나머지 손을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대막리의 공간팔찌부터 시작해, 그가 품속에 담고 있던 호리병과 마선 법기들이 빨려들 듯 준혁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흐음. 어쩐다….”

좌무란은 공천귀의 공간이라는 분리된 곳에서 처리했기에 상관없었지만, 대막리는 달랐다.

혹시나 천휴림주가 알게 된다면, 그와 연계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될 터.

‘호오. 벌써?’

그때, 고민하는 준혁의 기감에 주변 기운이 출렁이는 게 느껴졌고, 그걸 느낀 준혁은 곧장 의지를 일으켰다.

그러자 준혁의 머리 위로 대기가 뭉치더니 삼 미터가량의 얼음송곳이 만들어졌고, 대막리를 꿰뚫어버릴 듯 회전하며 떨어졌다.

“감히!”

그 순간 출렁이던 대기에 흐릿한 안개가 만들어지더니 그 안에서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준혁에게 쇄도했다.

슈애액-

준혁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대막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닥에서 주먹만 한 흙 인형들이 무수히 튀어나와 갑자기 나타난 물컹거리는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근처에 있으셨나 봅니다. 이리도 빨리 오신 걸 보면.”

“감히! 내 제자를! 그러고도 살길 바라느냐!”

수십이 넘는 흙 인형들을 간단히 분쇄한 물컹거리는 자는 서서히 사람 형태를 갖추더니, 금세 천휴림주의 외형으로 변했다.

온전한 사람 형태로 변한 림주가 화가 난 얼굴로 양손을 움켜쥐자, 준혁 주위 대기가 칼날로 변하며 그에게 몰아쳤다.

스가각-

그 순간, 준혁의 몸이 번쩍 빛나더니 번개처럼 변해 칼날을 가볍게 통과.

칼날이 허공에 혼자남은 대막리를 뚫어버리기 직전 소멸하자, 다시 번쩍하며 나타나 대막리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콰직-

림주는 준혁의 손에 목줄이 잡힌 채, 시들시들해져 가는 대막리를 흘겨보며 준혁을 노려보았다.

주변의 대기를 완벽히 장악해, 의지로 만들어낸 절대 피할 수 없는 칼날.

그런 자신의 한 수를 막아낸 것도 아닌. 뇌둔술로 가볍게 피해버리는 모습에 살짝 당황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살길 바라느냐고 하셨습니까? 어차피 절 죽이려고 제자들을 시켜 봉인절진을 만든 것 아니었습니까?”

“......”

준혁이 마선 봉인석을 이용한 절진에 대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림주는 거듭 놀라며 잠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명성답게 그는 신색을 금방 회복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서로 오해가 있나 보군. 어떤 경위로 봉인절진에 대해 알게 된 건지는 모르나 그건 사실과 다르네.”

“무엇이 다르단 말이십니까?”

“생각해보게. 옥천으로 방비했다 한들, 그대의 소문은 오래전부터 선계에 이름 높은 것을. 어찌 그냥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적마에 대해 얘길 꺼내는 천휴림주.

“나로서는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했을 뿐이네.”

“참으로 편한 논리군요. 불리하면 그저 적마의 이름을 팔면 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이네. 그러니 이제 그만 그 아이를 놓아주게.”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대막리는 생기를 잃고 빼쩍 마른 나뭇가지처럼 변했다.

중괴가 가진 압축 능력을 사용한 준혁이 굳이 혈단법에 의지하지 않고도 그의 영력을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영력을 빼앗을 의도는 없었으나, 필요한 연출을 위해서였다.

준혁은 림주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대막리의 생명이 끝을 다해갈 때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이자를 풀어주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니? 자네…. 정말 나에게서 살아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훗, 그거야 해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가볍게 손속을 나누는 과정에서 준혁이 생각보다 수행이 높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천휴림주.

그는 두 눈에 의심을 가득 담고는 숙고의 시간을 거치다, 더욱더 말라가는 제자의 모습에 할 수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좋네. 말해보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지.”

“마선을 이용해 봉인석을 만드는 비술. 그것을 알려주시지요.”

“......그걸... 알겠네.”

림주는 준혁의 요구가 이해 가능했기에 빠르게 대답했다.

마선인 준혁이 자신을 억제할 방법을 알고, 파훼법을 연구하려 한다고 여기고 말이다.

하지만 준혁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천신라를 상대하기 위해 한 가지라도 더 비장의 수를 만들기 위함이었으니까.

잠시 후, 천휴림주가 옥간 하나를 꺼내 입김을 불어 이마를 스치게 한 후, 준혁에게 던졌다.

준혁은 날아오는 옥간을 허공에 멈춰 세운 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분신을 소환해 옥간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분신을 격해 옥간 속 내용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림주는 대놓고 인상을 구겼다.

“설마 내가 하위수사를 상대로 수작질이라도 한다 여기는가? 어찌!”

“아, 림주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제가 원래 조심성이 많아서 말입니다.”

옥간을 공간팔찌에 수납한 준혁은 대막리를 림주에게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의지를 세웠다.

하지만, 림주는 대막리는 받아 든 후, 그의 심장에 손을 올리고는 영력을 불어넣을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준혁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서로 오해도 풀렸으니,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림주가 무슨 질문을 할지 뻔했기에, 준혁이 여유롭게, 하지만 당장이라도 출수할 수 있게 준비하며 대답했다.

“자네…. 도대체 옥천을 어떻게 속인 것이지?”

천영보 옥천.

상호 간의 허락이 있다면 대화는 물론 심상 공유까지 가능하며, 허락이 없다 하더라도 좌표 공유는 절대 끌 수 없는 천영보.

신선인 천휴림주 역시 법기를 사용한 시전자가 아니라면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새 품에서 팔찌를 꺼낸 림주는 옥천에서 읽히는 준혁의 좌표를 읽으며 짧은 신음을 냈다.

“자네가 균열 속으로 들어간 뒤 좌표가 사라졌기에…. 분명 죽은 줄 알고 옥천을 해지했는데.”

림주의 말에 준혁도 품에서 똑같이 생긴 팔찌를 꺼내 손에 들었다.

“아! 이것 말입니까? 사실 처음부터 좌표를 공유하는 건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준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처음부터 공간 좌표를 다룰 수 있었거든요.”

우우웅-

잠시 후, 준혁의 손에 빛이 모여들자, 림주의 팔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림주는 팔찌에 새겨진 준혁의 좌표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걸 보며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준혁의 말은 절반만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공간 좌표를 다룰 수 있었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천영보 옥천을 속일 능력까진 없었다.

그랬기에 전송석을 만들며 좌표를 새길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혹시나 림주가 자신을 독촉할까 봐 서둘러 균열로 향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균열 속에서 공천귀의 능력을 완벽히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옥천의 좌표마저 변경시킬 수 있게 되었고,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왔을 때 그것이 통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랬기에 균열에 재진입하고 얼마 후 좌표를 완벽히 지워버렸고, 그 후엔 사용자가 죽었다고 인식한 옥천을 해제해 버린 것이었다.

혹시 숨은 기능이 있을지 모르니 공천귀의 공능으로 꽁꽁 싸매버린 후에 말이다.

“궁금한 점이 풀리셨습니까?”

준혁은 옥천을 돌려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품에 넣으며 말했다.

림주는 그 모습에 끄응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가능할 줄 정말 생각지도 못했군. 처음부터 내가…. 아니네.”

말을 이으려던 림주는 쓰게 혀를 차고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주변이 균열로 인해 완전히 잠식당해 압력이 가해지자, 대막리를 보호막으로 감싸며 말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나?”

“말씀하시지요.”

“그럼 무슨 방법으로 저 안에서 50년을 버틴 것이지? 설마 공천귀의 장소를 찾아낸 것인가?”

림주의 질문에 준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한 손을 가볍게 젓자, 그의 손위로 조각배 하나가 나타났다.

“그! 그것은!”

준혁은 놀라는 림주에게 조각배의 기운을 은근하게 흘려보내며 입을 열었다.

“이것 때문이었지요. 용각족의 최고의 걸작.”

전함을 바라보는 림주의 눈에 욕심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선계에 존재하는 모든 용각족의 전함을 수집했다고 알고 있던 그.

그는 자신이 가진 전부보다 뛰어나 보이는 전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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