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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85화 (385/408)
  • 385화. 성장의 증거 (2)

    삼청조를 좌무란의 원영에 침투시킨 준혁.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일그러지고, 두 눈이 붉게 충혈됐다.

    좌무란이 정신을 잃기 전 예상한 대로, 지금 준혁은 그동안 연구해온 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심상을 공유하는 삼청조를 이용해, 정신부 따위가 통하지 않는 고위 수사의 의식을 완벽히 엿보는 비술을.

    “으음….”

    그걸 용이하게 하기 위해 좌무란에게 절망을 심어주려 잠깐 구속을 풀게 만든 것이었다.

    다만 아직 완벽한 비술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을 진행한 이유.

    좌무란은 상관없었으나, 천휴림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규선의 경지를 완벽히 안정시켰다고는 하나, 신선은 또 다른 세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다음 행보를 정할 수 있겠지.”

    중괴나 주서령 때문이라도, 필수적으로 천신라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천휴림주는 매우 중요한 ‘패’였다.

    그가 자신에게 손을 더해준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고, 만일 척을 지게 된다면 그건 고려해야 할 상황이 너무 많아질 테니까.

    “그러니 무슨 생각인지 확실히 알아봐야겠지.”

    이제는 붉다 못해 핏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새빨개진 준혁의 눈.

    그는 그런 눈으로 손 위에 축 늘어진 좌무란의 원영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

    일반적인 미혼술이나 정신술과 달리 삼청조를 이용해 상대의 기억을 강탈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의 기억뿐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 행복과 괴로움, 모든 감정을 공유받았기에 의식 수준이 상대보다 떨어진다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되고 말 테니까.

    상대의 감정에 매몰되는 순간, 본인의 자아가 파괴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행이라면 명혼단으로 압도적인 의식을 가지게 된 준혁이 이딴 일로 무너질 리는 없단 것이었다.

    “으으….”

    삼청조의 공능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작용이었기에 준혁은 묵묵히 버텨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좌무란의 기억을 염탐하던 준혁은.

    “이거였구나!”

    원하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좌무란의 원영을 갈라버렸다.

    스가아악-

    그리고는 삼청조를 빼내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쉽지 않구나.”

    규선인 좌무란의 감정 소용돌이 속에 들어간다는 건 동급수사 수십 명을 상대하는 것만큼 지치는 일이었다.

    아마 이번 일로 받은 정신적 충격을 회복시키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또다시 하라면 거부하고 싶군.”

    잠시 후, 삼청조를 갈무리한 준혁은 혼백이 날아가 버린 듯 멍한 눈빛으로 너덜너덜해진 좌무란의 원영을 금빛 실로 감쌌다.

    그리고는 완벽하게 봉인한 후 화신체를 만들 듯 빈 마정 안에 그를 안치했다.

    “적당하겠군.”

    당장 중괴의 힘을 이용해 그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미 준혁은 영력 과잉 상태였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선에, 그리고 진선을 넘어 규선에까지 오르며 이미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수행 상승은 오히려 독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좌무란의 원영은 나중을 위해 소중히 보관했다.

    시간의 왜곡으로 인한 압력과 공간을 미리 지배하고 기다렸기에, 좌무란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규선의 원영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니, 중요한 곳에 쓸 작정이었다.

    그저 영력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기엔 너무나 아깝기도 했고 말이다.

    잠시 후, 삼청조의 심상 공유를 통해 얻어낸 좌무란의 기억을 되짚어 보던 준혁은 그들이 준비 중이던 게 무엇인지 알아낸 것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니.”

    그들은 사냥해온 마선을 특수한 방법을 통해 봉인석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이용해 마선기를 막아내는 특수한 파장을 생성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파장을 이용해 준혁이 적마의 권능으로 단시간에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계획이었다.

    “마선들을 이용해 봉인절진을 만든다라.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군.”

    마선을 이용해 마선을 막는다.

    생각지도 못한 계획에 이런 비술을 만들어낸 천휴림주를 인정해야 했다.

    한편으론 과연 천휴림에 잡힌 마선들이 정상일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자신이 좌무란의 의식을 강제로 여는 것만으로 그의 상태는 최악으로 변했다.

    하물며 마선이라고 다를까?

    아마 그들은 이미 자아가 망가진 채 마선이라 불릴 수 없는 다른 무엇이 돼버렸을 게 분명했다.

    마선기를 보유한 법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로 말이다.

    “허나, 정작 중요한 게 빠졌구나.”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좌무란의 기억을 통해 그들이 준비 중이던 게 무엇인지는 알아냈으나. 그 비술 자체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

    “분명 도움이 될 텐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좌무란이 준비한 봉인절진이 적마의 권능을 완전히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선기를 충돌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 적마의 마선기를 흩트려버리는 건 가능했다.

    그리고 그 말인즉.

    천신라를 비롯한 선마궁의 마선들을 상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비술이란 뜻이기도 했다.

    “아마 원래의 용도는 그것이었겠지.”

    하지만 그걸 알아내기 위해 좌무란의 의식에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면, 분명 부작용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흠, 할 수 없지.”

    그럼에도 준혁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알만한 이가 있으니 그에게 물어봐야겠군.”

    좌무란이 떠난 뒤 홀로 균열을 지키고 있을 그.

    대막리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준혁이었다.

    ***

    좌무란이 균열로 사라진 지 5년.

    균열은 점점 심해져 갔고, 결국 결계를 깨고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한 번에 터트리기라도 하려는 듯, 균열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며 미칠듯한 속도로 주변을 먹어 치웠다.

    결계를 보완할 좌무란이 없으니,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땐 주변 일대가 옛 구지대륙처럼 소멸, 붕괴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설마, 사형께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한번 균열에 입장하면 3년 주기로 모습을 드러냈던 좌무란이 너무 오래 모습을 보이지 않자 대막리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아니야. 사형이 어떤 분이신데. 스승님에 이어 신선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큰 분인데. 절대 이따위 균열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실 리 없지.”

    그때, 균열의 초입을 지키고 있던 사내, 독고진이 빠르게 다가와 대막리 앞에 부복했다.

    “소림주께 전해드립니다. 림주께서 전언을 보내셨습니다.”

    “뭐라 하시더냐?”

    독고진은 대막리가 역정을 낼 것을 예측이라도 한 건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주변을 전부 폐쇄하고 균열이 어디까지 진행되는지 지켜보라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냐?! 사형에 대해선?!”

    “…어떤 말씀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승의 냉정함에 치를 떤 대막리는 손가락이 부러져라 주먹을 꽉 쥐었다.

    현재 균열의 상태를 보면 스승의 말대로 물러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고 끌어주던 좌무란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주변을 폐쇄하란 뜻은 그저 몸을 빼라는 뜻이 아닌, 균열로부터 수사를 보호할 모든 수단을 제거하란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균열 속에 있을 좌무란에겐 더 악영향을 미칠 게 뻔했고 말이다.

    “하아…. 알겠다. 한 달만…. 아니 보름만 더 지켜보고 이행하겠다고 전해드리거라.”

    “그, 그것이….”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야.”

    자신의 말에 토를 달려는 독고진의 태도에 대막리는 화를 내려다가 표정을 굳혔다.

    어느새 그의 앞에 하늘 같은 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즉시 대막리의 몸이 독고진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향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

    대막리 앞에 나타난 이는 천휴림주의 환영이었다.

    대막리와 좌무란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그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걸 알고 환영의 모습으로 헌신한 것이었다.

    “돌아오거라.”

    “허나!”

    “둘째라면 걱정하지 말아라. 그의 본명패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안전하게 어딘가에 있다는 뜻, 균열 내부에서 무언가를 찾아낸 게 분명하다.”

    “정말이십니까?!”

    “그러니 너는 이곳을 폐쇄하고 거주지를 옮기도록 하거라.”

    이어지는 림주의 말에 대막리가 힘차게 대답했다.

    “예! 스승니…. 헉!”

    하지만 대답이 끝나기도 전.

    쿠우우웅-

    지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거대한 진동이 지하 공간을 울리고 지나갔다.

    동시에 균열에서 엄청난 파동과 함께 하위 수사들 따위는 순식간에 압사해버릴 만한 압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균열 내부에서 겪는 압력이라는 걸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압력은 순식간에 공동을 가득 채웠고.

    파삭-

    대막리에게 훈수를 두던 천휴림주의 환영이 입을 열려다가 너무나 쉽게 터져나갔다.

    “스, 스승님!”

    비록 환영이라 할지라도 환영을 만든 자의 의지가 어느 수준이냐에 따라 환영의 강도가 달랐다.

    대막리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즉시 독고진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전원 성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독고진이 움직이는 걸 보며 품속에서 빛이 나는 호리병 같은 걸 꺼내 허공에 띄우며 수결을 짚었다.

    후우웅-

    그러자 대기가 진동하며 균열을 가로막고 있던 결계의 사방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오래전 천휴림주가 좌무란에게 주었던 마선으로 만든 법기.

    준혁을 잡기 위해 설치했던 봉인절진을 위한 봉인석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가져가야지!”

    그 물건들을 방치하고 그냥 피신한다면 스승으로부터 질책이 떨어질 건 분명했기에 회수해야 할 첫 번째 물건이었다.

    네 개의 법기를 회수한 대막리는 균열이 미친 속도로 커지며 주변 공간을 소멸시키는 모습을 보며 바로 손을 내저었다.

    어느새 지반이 무너지며 곳곳에서 붉은 용암이 솟구치고 있었고, 한쪽에선 공간 자체가 소멸하며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스승이나 사형처럼 삼선에 이른 수사들이 아니면, 그 누구도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잠시 후, 그의 손짓에 따라 전면에 공간이 갈라지며 외부로 통하는 길이 생겨났다.

    “사형! 무사하다니 기다리겠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납시다!”

    길이 생겨난 즉시, 듣지 못할 좌무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대막리는 갈라진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컥!”

    갈라진 통로로 들어서기 직전.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멈춰 선 대막리.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멈춰 세운 이를 바라보았고,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너, 다, 당신은!”

    상대를 바라보는 대막리의 심장이 미칠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곳엔 50년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떡하니 서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대막리 수사. 헌데 그 물건은 놓고 가셔야지요. 제가 고생해서 일을 벌였는데 말입니다.”

    최가 준혁.

    미친 속도로 성장해 주변을 놀라게 했던 그가 자신을 보고 씨익 웃고 있었다.

    주변의 균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여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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