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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80화 (380/408)
  • 380화. 천신라의 심장

    오두막의 족자를 통해 버드나무 안으로 이동한 준혁.

    그는 가볍게 허공을 박차며 원통형 내부의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중괴의 눈이 상층부에 있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위로 갈수록 중요한 물건들이 진열돼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하지만 그런 예측과 달리, 최상부에 진열된 물건 하나를 집어 든 준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무튀튀한 색의 극소량의 영기를 품은 단약.

    중괴의 눈이 있던 옆자리엔 결단기 수준에서나 복용하는 단약 열두 알이 목함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중괴의 눈이 최상층에 있었던 것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

    “할 수 없나.”

    잠시 후, 지면에 내려선 준혁은 정신을 집중하며 수결을 짚었다.

    일일이 하나씩 확인하려 한다면 정말 끝을 알 수 없었기에 편법을 이용할 생각.

    편법이란 것은 자신이 가진 혈단법을 응용하는 것으로, 수많은 가지를 퍼트려 식아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천신라의 심장 역시 마선의 일종.

    금빛 실을 통해 마선기가 느껴진다면 그 즉시 식아가 움직이려 할 테니 말이다.

    “퍼져라!”

    직후, 준혁을 중심으로 강렬한 기세가 일어나더니 그의 발끝에서 수백 가닥의 금빛 실이 선반이 마련된 벽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금빛 실은 선반 하나하나에 놓인 물건들을 살짝 스치고는 바로 다음 물건들로 향했고,

    그런 실 수백 가닥이 어지럽게 교차하자 버드나무 내부는 마치 거미줄이 쳐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기구나!”

    항아리처럼 생긴 법기에 금빛 실이 닿자, 단(丹)속의 식아가 깜짝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준혁은 즉시 무영기로 식아를 감싸버렸다.

    그리고는 손을 살짝 저어 항아리를 불러오면서 나머지 금빛 실을 회수했다.

    솨르르륵-

    한순간에 수백 가닥의 금빛 실이 뱀처럼 준혁의 발끝으로 모여들다 사라지는 모습은 언뜻 보기에 소름 끼칠 만큼 괴이해 보였다.

    “성광지력?”

    잠시 후, 금빛 실이 전부 사라지고 항아리 법기를 손에든 준혁은 그것이 성광지력이 깃든 물건인 걸 알아보고 의아함을 나타냈다.

    천신라의 심장이라 불리는 최상위급 마선인 심주.

    그것을 마치 봉인하듯 성광지력으로 만든 법기에 숨겨 두다니?

    준혁은 혹시 모를 위험에 항아리가 가진 것보다 월등히 많은 성광지력을 양손 가득 모아 조심스럽게 심주를 꺼냈다.

    심주는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주먹만 한 돌이었는데, 얼핏 본다면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선기를 다룰 수 있는 준혁에건 달랐다.

    그는 한동안 심주를 살피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대단하구나!”

    항아리에서 나온 주먹만 한 돌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마선기를 함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이 감탄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심주는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자신의 능력을 은연중 퍼트렸다.

    그로 인해 주변 대기가 상하좌우로 교차하듯 흔들리더니, 급기야 시야가 조각난 듯 비틀리기 시작했다.

    만약 준혁이 자신의 손을 성광지력으로 감싸지 않았다면, 그의 손도 비틀리며 깨져 나갔을지도 몰랐다.

    “이것이 모든 걸 어그러트리는 힘인가?”

    어그러트린다.

    다른 의미로는 왜곡을 불러오는 힘.

    천신라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물건을 어째서 봉인상태로 공천귀의 창고에 보관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심주의 권능은 그만큼 위험하고 조종하기 힘들기 때문.

    자신처럼 성광지력이 없다면 함부로 다루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천휴림주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도 알아차렸다.

    그 역시 편법이지만 성광지력을 다룰 수 있었으니, 만약 이것을 손에 넣는다면 천신라에게 맞설 수 있다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오묘하구나…. 왜곡과 증폭을 동시에 가진 힘이라니….”

    심주를 손에 쥔 채 한참 동안 살피던 준혁은 그것이 가진 기능을 어느 정도 파악해 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기본적으로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 외에도 심주는 마선의 능력에 변형을 가져왔다.

    그것을 권능의 왜곡이라 표현하자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권능의 증폭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준혁에게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져나오더니 분광소의 형태를 갖췄다.

    “나를 공격해 보거라.”

    분광소는 텅 빈 눈으로 준혁을 바라보다가 명령에 몸을 움직였다.

    쇄액-

    주인이든 뭐든 단번에 두 조각 내버릴 정도로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쇄도하는 분광소.

    준혁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 심주를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우웅-

    그리고는 심주 안에 심어진 권능을 자극해 그 힘을 강하게 표출시켰다.

    스르륵-

    그러자 자신을 관통할 듯 날아오던 분광소가 왜곡된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잘게 조각나며 흩어져버렸다.

    “역시.”

    언뜻 보기엔 방어에 특화된 권능 같았지만, 준혁은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분광소가 공격 도중 흩어져 버린 건, 심주가 만들어낸 왜곡의 벽에 의해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왜곡된 공간을 통과하며 원래 가진 기운으로 분쇄돼 버린 것.

    “다시.”

    한 가지 기능을 파악한 준혁이 재차 입을 열자, 분쇄되었던 분광소가 다시 나타나 그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좀 전과 마찬가지로 심주의 범위에 들어섰고.

    화르르륵-

    이번엔 그전과는 달리 분쇄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눈 부신 빛을 머금으며 그전보다 더 빠르고 강력해지며 준혁을 파고들 듯 다가왔다.

    “멈춰.”

    뚝-

    그러다 준혁의 가슴을 관통하기 직전, 명령 한마디에 먼지처럼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준혁은 분광소가 사라진 뒤, 말없이 심주를 내려다보았다.

    “위험할 수도 있다.”

    원래의 약속대로라면 이것을 천휴림주에게 가져다주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게 옳은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체화시키지도, 그렇다고 식아로 흡수해 능력을 온전히 뽑아내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최선을 다한 분신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고, 심지어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그 말인즉, 천신라나 천휴림주, 누구든 이걸 손에 넣는 순간 준혁이 그들을 넘어서기란 요원해진다는 뜻과 같았다.

    천신라는 당연히 스스로가 마선이며 수많은 마선들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말해봐야 입이 아플 일이었고,

    천휴림주 역시 마선을 다루고 있는 걸 보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마선 사냥에 열중한다는 소문을 생각해보면, 천신라보다 천휴림주가 심주를 손에 넣는 게 더 위험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엔 약속을 어길 수밖에.”

    천신라의 심장이라 불리는 심주에 대해 궁금하긴 했지만, 자신이 적마도 아니고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욕심낼 생각이 없던 준혁.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심주를 식아로 흡수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균열 밖, 천휴림주가 마선의 눈을 들고 자신을 기다릴 수도 있었으나, 그건 차후에 해결해야겠다 여기면서.

    ***

    팅-

    “허어…. 이건 또 무슨.”

    심주를 흡수하기 위해 식아를 불러낸 준혁은 벌어진 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식욕에 눈이 돌아 나타난 식아는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며 심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다른 마선들을 육포 찢어먹듯이 뜯어먹던 식아는 심주를 몇 번 씹다가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결국 화난 표정으로 심주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삐진 얼굴로 체내로 돌아가 버렸다.

    겉으로 보기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지만, 알고 보니 그림의 떡이란 걸 알았다는 듯이.

    식아가 그렇게 사라진 후.

    준혁은 심주를 손으로 끌고 와 좀 전보다 더 자세히 살폈다.

    “분명…. 마선이 맞다. 헌데 왜?”

    마선기록방이나 착화방처럼 자아가 없는 마선 중 하나임은 틀림없었다. 중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식아가 소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전.

    한참 동안 심주를 살피던 준혁은 심주의 능력으로 인해 버드나무 내부의 공간에 왜곡이 발생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로 인해 비틀림 현상이 생겨나 창고가 붕괴할 조짐이 보였다.

    “계속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심주를 살피는 것뿐 아니라 이것저것 실험을 하다 보니 그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게 이유였다.

    잠시 후, 준혁은 심주를 다시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한 번 더 성광지력으로 감싸고는 공간팔찌 안에 수납했다.

    식아가 심주를 흡수하지 못한 이유를 비롯해 알아볼 것이 넘쳤지만, 우선은 외부로 심주의 힘이 드러나지 않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

    혹시나 심주의 사용으로 인해 균열 내부에 변화가 찾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버드나무 밖으로 나온 준혁.

    그는 균열 내부 전체를 기감으로 살피다가 혀를 차고 말았다.

    “균열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 이것 때문이구나.”

    봉인 법기 안에 안치돼있었고, 외부로 드러나는 힘이 전혀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운에 관한 것일 뿐.

    수사가 느낄 수 없는 파장이 공간을 왜곡시키고 있었기에 공천귀가 만들어놓은 내부가 극도로 미세하게 붕괴하고 있었다.

    거기다 조금 전 자신의 실험으로 균열 내부가 종전보다 훨씬 불안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공천귀가 살아있었다면 붕괴하는 만큼 다시 복구됐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이 장소는 완전히 밖으로 드러날 게 분명했다.

    물론 준혁이 심주를 가지고 허튼짓만 하지 않는다면, 그 기간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단위보다는 훨씬 길 테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안에서는 연구할 수 없겠어.”

    밖으로 나가기 전 심주를 완벽히 흡수할 생각이었던 준혁은 쓰게 웃음 지었다.

    만약 심주를 흡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내부를 다스려 천휴림주의 눈을 완벽히 피할 자신이 있었다.

    그가 마선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한들, 준혁 역시 규선에 오르며 무영기가 한층 더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공간팔찌 안에 숨겨나간다면 그건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성광지력으로 감쌌다고는 하나, 분명 나침반의 표적을 피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의 고민은 깊어졌다.

    “할 수 없구나, 우선은 돌아온 후 생각하는 수밖에.”

    대막리에게 잠깐만 살핀다 했던 게 떠오른 준혁은 우선 밖으로 향한 후, 다시 돌아오려 마음먹었다.

    그 후엔 1년 혹은 2년 단위로 밖을 오가며, 심주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내는 게 가장 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탐색을 핑계로 안과 밖을 오가는 동안 버드나무 창고 안에 가득한 법기와 단약을 이용해, 규선에 오르며 부족한 천지영기를 채우고 말이다.

    잠시 후, 계획을 정리한 준혁은 공간팔찌 안에 넣어두었던 항아리를 버드나무로 옮기고는 오두막에서 족자를 챙겼다.

    그리고는 팔목에서 신호를 보내는 공천령의 기운을 차단했다.

    슈욱-

    그러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통과하듯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

    “음?”

    준혁은 균열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자 주변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음을 느꼈다.

    그랬기에 빠르게 기감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딱히 걸리는 게 없었다.

    ‘내가 민감한 건가?’

    말없이 방문한 천휴림주가 직전에 떠났다는 걸 알 리 없으니, 변화한 공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밖에서 대기 중일 거라 여겼던 대막리가 공동 입구에서 허겁지겁 나타나 준혁을 맞이했다.

    두 눈빛엔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마치 눈빛으로 ‘뭐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벌써 나오신 겁니까?”

    ‘벌써?’

    좌무란이나 다른 수사들에 비한다면 일찍 나오긴 했지만, 벌써라고 표현하기엔 대략 1주일가량이 흐른 시간.

    자신이 분명 균열 내부가 어떤 곳인지 경험만 한다고 했으니 뭔가 이상하게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막리의 말에 준혁도 순간적으로 평정심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며칠은 조사해보실 거라 여겼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나오시다니…. 설마…. 버티기 힘든 건 아니시겠지요? 그럼 곤란한데….”

    대막리의 말엔 살짝 무시하는 어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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