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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79화 (379/408)

379화. 중력을 얻다

준혁을 기다렸다는 듯, 그가 오두막에 다가가자 삐그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들어서기엔 조금 작은 오두막.

준혁은 기감으로 내부를 살피고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몸을 숙이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설마 공천귀가 머물렀던 곳인가?”

오두막 내부는 매우 단출한 모습이었다.

작은 탁상 하나와 벽에 걸린 족자 하나.

그것을 제외하곤 푹신한 소재로 만들어진 이불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준혁은 자신의 생각이 허무맹랑했다고 여기며 피식 웃고 말았다.

예상대로라면 이곳은 공천귀의 내부인데, 자신의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가 있을 순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군….”

잠시 후,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닐 거라고 여긴 준혁은 좁은 오두막 내부를 샅샅이 살폈고, 결론을 내렸다.

그곳은 정말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휴식처일 뿐이라고.

오두막 내부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자, 준혁은 밖으로 나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기감으로 작은 풀 한 포기도 놓치지 않고 모든 걸 감각 안에 담았다.

“설마…. 텅 빈 곳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을 반복하며 균열 내부를 확인한 준혁은 결국 빈손으로 지상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찝찝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준혁.

“도대체 그럼 그건 뭐였지?”

처음 균열 내부로 들어왔을 때 오두막에서부터 전해졌던 중괴의 중력의 힘.

분명 무언가가 있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인가?”

한동안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던 준혁은 다시 한번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번엔 기감이 아닌 손으로 탁상부터 시작해 벽면과 이불 속,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잠시 후 손이 족자에 닿자,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이것이었구나. 눈에 두고도 몰랐다니.”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영력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족자.

그것이 준혁의 손에 닿자 팔찌와 공명하더니 은은한 푸른빛을 띠었다.

몇 번 실험해보니 직접 피부가 닿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써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모르고 지나쳤다면 절대 알 수 없을 법한 것이었다.

잠시 후, 족자를 양손을 펼친 채 가만히 주시하고 있던 준혁은 팔찌에서 전해지는 기운을 분석하다가 씨익 웃었다.

드디어 족자의 쓰임새를 알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준혁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족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

거대한 원통형의 공간.

사람이 개미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그곳은 좌우 폭이 수백 미터는 넘어 보였다.

위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천장으로 의심되는 곳에 작은 빛이 반짝이는 것으로 한정된 공간임을 유추할 뿐이었다.

원통형 공간은 벽면 곳곳에 나무뿌리가 자라나 있었고, 그것들이 얽히고설켜 선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허어. 이것이 공천귀의 창고였는가….”

준혁은 원통형 공간이 균열 내부에 있던 버드나무임을 알아보고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겉으로 보기에도 거대했지만, 내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족자를 통해 내부로 이동하며 자신의 크기가 줄어들었기 때문임을 알아챘다.

한동안 내부를 눈에 담던 준혁은 천천히 걸어 벽면의 선반으로 다가갔다.

벽면에 자란 나무뿌리가 서로 엉키어 만들어진 선반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시작해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있었고,

선반 위엔 각종 법기나 목함부터 시작해 평생 본 적 없는 물건들이 즐비해 있었다.

하나씩 확인하는 데만 수년은 걸릴 정도로 그 양이 방대했다.

“이 많은 것들은 전부 줄 테니 천신라의 심장만을 가져오라?”

준혁은 천휴림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가장 가까운 선반 위, 목함 하나를 가져와 별생각 없이 열어보았다.

“멸진단?”

목함 안에는 자신이 흑마지에 들어가기 전 대막리에게 받아 복용했던 멸진단 다섯 알이 들어있었다.

대천경 수사의 수행을 올려주기에 쉽게 구할 수 없는 그것.

준혁은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다가 목함을 제자리에 두고, 목함 옆에 있던 옥비녀를 확인했다.

“허. 영보급인가….”

옥비녀는 방어형 법기였다. 지닌 영력만 놓고 보자면 최상급 법기 수준이었지만, 보유한 능력만 보자면 영보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멸진단과 옥비녀에 이어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한참 동안 확인해 보던 준혁은 결국 질린다는 표정으로 학을 뗐다.

“이 정도라니.”

많은 수사들이 ‘천신라, 천신라.’ 하면서 그를 두려워할 때, 준혁은 전혀 와닿는 게 없었다.

천신라가 마선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컸지만, 천휴림주를 만나고 와선 더더욱 그러한 평가를 내렸다.

신선이라고 하나 결국 생명을 가진 존재인 건 변하지 않았기에, 딱히 우러러보거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준혁은 살짝 그의 대단함을 느끼고 있었다.

버드나무 창고 내부의 물건들만 가지고있어도 하나의 대륙 정도는 가뿐히 지배할 재력이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천휴림주가 몰랐을 리 없으니 그 역시 이에 비등할 게 분명했다.

“수사들이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건 누군가의 독식 때문이었는가.”

준혁은 연기기 시절부터 만났던 대부분의 수사가 영석 한두 개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았기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자신이 규선에 올라 최강자 반열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기운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원통형 창고의 저 높은 곳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존재감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짝을 찾는 게 꼭 연인을 부르는 거 같구나.”

준혁은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살짝 손을 저었고,

쉬리리릭-

천장에 가까운 최상단 선반에서 수십 겹의 결계에 싸인 고급 자단목함이 힘차게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부르르-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준혁은 만반의 준비를 하며 조심스럽게 결계를 해제했다.

화아악-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목함 안쪽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황금 눈을.

중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의 모든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진정한 중력의 힘을.

***

중괴의 나머지 눈은 준혁을 보자마자 부모를 만난 아이처럼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버드나무 내부 공간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여긴 그는 우선 밖으로 나갔다.

안으로 이동할 때 족자를 이용했던 것과 달리 나가는 것은 그저 의지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밖으로 나온 준혁은 오두막에서 한참 떨어진 공터로 이동한 후, 중괴가 전해준 중력의 힘을 일으켰다.

우우웅-

그러자 그의 한쪽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세상이 격자로 나눈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목함 안의 황금색 눈을 바라본 순간.

슈악-

황금 눈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준혁의 나머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준혁은 이미 중괴를 통해 어떤 식으로 힘을 다뤄야 하는지 들었기에, 재빨리 기운을 움직여 두 황금 눈을 연계시켰다.

그리고는 그것들이 가진 기운에 식아가 반응하지 못하게 막으며 원영으로 기운을 다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준혁의 원영이 몸 밖으로 나오더니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조막만 한 입을 계속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

부르르-

준혁이 번쩍 눈을 뜨며 원영과 마찬가지로 양손으로 하늘과 땅을 동시에 가리켰다.

그리고는.

“반전하라!”

쿠우웅-

입을 통해 명령이 떨어지자 공천귀 내부의 공간이 하늘과 땅이 교차하며 세상이 뒤집혀 버렸다.

준혁은 뒤집힌 공간에서 한참 동안 집중을 유지하다 결국 깊은숨을 토해냈고.

“후우….”

그 순간 뒤집혔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왔다.

“이게 진정한 중력의 힘. 대단하구나.”

중괴가 그토록 자랑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중력의 힘은 다른 마선의 힘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지금껏 한쪽 눈에 담긴 중력의 힘을 사용하며 ‘인력(引力)’을 강제로 발생시키는 게 중력의 전부라 여겼던 준혁은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중괴가 가진 진정한 중력의 힘은 인력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수사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예컨대, 얼마 전 지왕을 상대했을 때 인력을 강제로 발생시켜 그녀의 행동을 역방향으로 적용되게 한 적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이 그저 상체와 하체의 인력을 반대로 조종함으로써 몸을 찢어버리는 게 가능했다.

물론 여기엔 한가지 맹점이 존재했는데, 중력의 힘을 사용하는 수사의 의지가 상대를 압도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그럼에도 이 힘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특히나 인족에 한해서 ‘절대명령’을 사용할 수 있는 준혁에게는 더욱더….

“그럼 그는 얼마나 강하단 것인가?”

다만 중괴의 힘을 온전히 얻고 난 준혁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중괴.

그가 자신의 힘 일부를 빼앗기고 굴욕적으로 도망쳐야 했던 천신라는 얼마나 강한 것인지 감히 짐작되질 않았다.

“지배자의 권능….”

중괴는 천신라의 권능을 지배자의 권능이라 불렀다.

다만 그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발동하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어떤 기능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중괴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유추하기를, 천신라는 모든 마선들의 권능을 흉내 내는 것처럼 느껴졌었다고 했었다.

“흉내라….”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쉽게 그를 상대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준혁은 돌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오두막으로 향했다.

중괴의 나머지 눈을 얻었으니, 이젠 천휴림주가 그토록 오매불망 찾던 천신라의 심장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할 때였다.

“심주.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확인은 해봐야지.”

다만 중괴의 눈과 달리 존재감을 표출하진 않았기에, 창고 내부의 물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게 먼저일 것 같았지만 말이다.

***

대막리의 성채, 균열이 위치한 지하.

강력한 결계가 보호 중인 균열 앞엔 위대한 존재 중 한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균열을 지키던 자들은 그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들을 지휘하던 대막리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공동의 입구 쪽의 공간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사내는 결계 앞에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자를 향해 몸을 바짝 숙였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이리 오실 거면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규선인 좌무란이 허리를 숙인 인물.

천휴림주가 가볍게 손을 저어 좌무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자가 안으로 들어갔다고?”

“그렇습니다. 며칠 되지 않았으니, 어떤 소식이든 전해오려면 꽤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진선은 균열 내부에서 1년 정도 머무는 게 한계였다.

상대가 진심으로 안을 탐색하고자 한다면 그 기간을 버티다 나올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막내의 말을 들어보니 본격적인 탐사에 앞서 잠시 살펴보겠다고 했다더군.”

“그럼 조만간 모습을 드러내겠군요.”

천휴림주는 깊은 생각에 빠진 건지, 결계속 균열을 예의주시하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좌무란에게 벽돌 모양의 사각형 물건 네 개를 건네주었다.

“이, 이것은!”

“지금은 사용하지 말고, 그가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하면 설치하거라.”

“그를 죽이란 말씀이십니까?”

성광지력을 다룰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그를 포섭하려 했던 천휴림주.

좌무란은 스승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겠느냐? 다 쓰임이 있는 것이거늘. 그가 천신라의 심장을 발견한다면…. 욕심을 억누르지 못할 터. 강제로 빼앗아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때도 마찬가지. 우선 완벽히 제압한 후 우리의 수족이 될 수 있게 머릿속을 뜯어 고쳐나야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균열 속에서 버틴다는 건 육체만 압력을 받는다는 게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부하가 걸렸다.

규선에 오른 좌무란이 휴식을 취하겠다고 준혁과의 만남을 짧게 끝낸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즉, 오랜 시간 균열 속에 머물다 나왔을 때가 최악의 상태란 말.

좌무란과 대막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천휴림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들에 담긴 마선기라면 적마도 바로 도망칠 수는 없을 터. 빠르게 제압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준혁이 떠나간 공동 안.

그가 들었다면 별로 유쾌하지 않았을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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