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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78화 (378/408)
  • 378화. 균열을 향해 (2)

    대막리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자 익숙한 성이 나왔다.

    엄청난 규모는 아니었지만, 오래전 몸을 의탁하며 수행을 회복했던 곳이라 그런지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조호랑을 평생 반려로 맞이하게 되었고 이곳이 그 시작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대막리 수사께서 비승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저를 돌봐주셨지요.”

    뼈가 숨어있는 옛이야기에 대막리는 난감해하면서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

    “과거지사 꺼내 뭘 하겠습니까? 그 덕에 선사와 저, 그리고 조호랑 수사도 인연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준혁이 자꾸 과거 얘기를 꺼내자 대막리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윽고 성 지하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던 공동을 지나자 대규모의 공동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은 ‘거대한’이란 표현으론 부족했는데, 천장과 바닥이 수백 미터는 돼 보였고, 좌우로도 수 킬로는 이어져 있는 지하 동굴처럼 보였다.

    ‘균열로 인해 주변이 소멸한 것이구나.’

    공동에 도착한 준혁은 그곳이 왜 그리 넓은지 대번에 파악하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보호했다.

    “도착했습니다. 저것이 저희가 공천귀의 균열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동굴을 조금 걸어 들어가자 결계로 보호 중인 공간이 나왔고, 대막리의 손은 그곳을 향해 있었다.

    주위에 있던 수사들이 대막리를 발견하고 허릴 숙이는 사이, 준혁은 결계 앞에 도착해 그것을 살폈다.

    ‘균열이 계속 커지고 있다.’

    오래 관찰하지 않았음에도 균열은 조금씩 주변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결계가 균열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 여기고 있던 준혁은, 그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혹, 이 결계의 용도는 이곳을 보호하기 위함입니까?”

    “단번에 알아보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처음 균열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크기였습니다. 헌데 보십시오. 지금은….”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균열의 크기는 대략 십여 미터를 넘어가고 있었다. 만약 천휴림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이미 균열은 주변을 완벽히 집어삼켰을지도 몰랐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 준혁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균열 내부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나, 균열이 계속 커진다는 건 내부의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단 뜻.

    아마 천휴림주는 그것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균열 내부를 수색하길 원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때가 되면 다른 이들의 눈을 속일 수 없다 여긴 것이겠지.’

    쓰윽-

    잠시 후, 준혁은 균열에 대해 더 자세히 느끼기 위해 결계를 통과했고.

    “헙!”

    “말도 안 돼!”

    결계를 지키고 있던 수사들이 깜짝 놀라 뒷걸음치게 했다.

    당연하게도 균열을 지키고 있던 결계는 규선에 오른 좌무란의 작품이었고, 대막리조차 그의 허락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적마….”

    유일하게 준혁의 정체를 알고 있던 대막리만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결계 안으로 들어온 준혁은 기감으로 균열이 난 곳을 꼼꼼히 살폈다.

    좌무란을 비롯한 림주까지, 몇몇 수사들이 몇 번이고 안을 탐색했기 때문에 위험할 가능성은 작았지만, 준비 없이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구나. 이건 공간의 균열이라 하기보다는….’

    허공에 십여 미터 넘게 난 균열은 적마의 힘으로 공간을 지나칠 때와 달랐고, 천혈로 공간을 통째로 찢어버리는 것과도 달랐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건 마치.

    ‘공간팔찌….’

    공간팔찌에 손을 스쳤을 때 느껴지는 기운과 흡사했다.

    그랬기에 아무 표식이 없는 공간 균열을 보고 림주를 비롯한 고위 수사들이 공천귀의 균열이라 의심한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공간팔찌의 시초는 공천귀였고, 그가 만든 최초의 것을 따라 한 것뿐이었으니까.

    한동안 균열을 자세히 살피던 준혁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선 더 이상 얻을 정보가 없다는 걸 깨닫고 결계 밖으로 이동했다.

    “어떠십니까? 무언가 알게 되신 거라도….”

    “림주께서도 정체를 밝히지 못했는데. 제가 무얼 알겠습니까.”

    준혁은 눈치를 살피는 대막리에게 핀잔을 준 후 한쪽에 마련된 장소로 이동했다.

    “헌데 림주께서 말씀하시길 이곳에서 자세한 내용을 전달받으라 하던데…. 흠.”

    “아! 여기 있습니다!”

    준혁이 좌무란을 위해 마련한 휴식공간에 자리하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던 대막리가 깜짝 놀라 옥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곳엔 그동안 균열을 조사하며 겪었던 일들이 시기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준혁은 대막리의 일 처리에 짧게 혀를 차며 옥간을 건네받았다.

    투웅-

    그때, 결계가 잘게 진동하며 은은한 영기파동이 퍼졌다.

    “사, 사형!”

    파동이 사라지기도 전 결계의 한쪽에 틈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눈썹이 역팔자를 그리고 있는 날카롭게 생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휴림주의 두 번째 제자인 좌무란의 등장이었다.

    ***

    결계를 빠져나온 좌무란은 온몸이 울긋불긋 달아올라 있었다.

    규선 정도면 계면 간 공간의 틈에서도 자유로울 정도일 텐데, 외부로 드러날 정도로 몸 상태가 나쁘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균열 내부의 압력이 심한가 보군.’

    “그대가 적마인가?”

    좌무란은 준혁이 앉아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실시간으로 몸을 회복했다.

    준혁 앞에 다다랐을 땐, 울긋불긋했던 신체가 정상으로 바뀌었고, 옷차림도 새것처럼 변해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가 준혁이라 합니다.”

    “나는 좌무란일세. 얘긴 많이 들었네. 일전의 요마족 일부터 진마정에 관한 것까지.”

    “진마정이라니? 그게 무슨?”

    “여기 내 사제가 그러더군, 그대가 흑마지에 들어서기 전엔 겨우 연형기 수사일 뿐이었다고, 그곳에서 진마정을 얻어 단숨에 수행을 올렸다고 말이야.”

    “사형! 그건 예상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좌무란이 아무렇지 않게 사제 간의 대화에 대해 말해주자, 대막리가 깜짝 놀라 말렸다.

    예상대로 준혁이 진짜 진마정을 이용했든 아니든, 상대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기엔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나도 네 예상에 동의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빨리 수행을 올릴 수는 없지. 그래서 우리도 진마정에 담긴 중화의 힘을 얻기 위해 그토록 노력한 것이 아니더냐.”

    하지만 좌무란은 성정이 그런 것인지, 준혁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인지, 서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준혁은 그런 좌무란의 태도에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막리 수사의 일 처리가 미흡하다고 여겼는데, 의외로 눈치는 빠른가 보군요. 그의 예상이 맞습니다. 그의 부탁으로 진마정을 가져오려 했으나, 제 능력으론 역부족이더군요. 오히려 진마정의 기운에 휩쓸려 죽을 위기에 처했었지요. 살아보려 발버둥 치다 보니 이 자리에 도달했고 말입니다.”

    잠시 후 준혁의 말이 끝나자 좌무란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변하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재밌군.”

    그리고는 짧은 감상평을 내뱉은 후 품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 휙 하고 던졌다.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더 얘길 나누지. 왠지 그대와 대화하는 게 즐거울 거 같으니.”

    ***

    좌무란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준혁은 그가 건넨 옥간과 대막리가 넘겨준 옥간을 두루 살폈다.

    두 옥간 모두 균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대막리 것이 균열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라면 좌무란의 것은 균열의 기운이 수사의 기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열거해 놓은 실험일지 같은 것이었다.

    ‘공허의 공간이라….’

    두 정보를 요약하자면, 공천귀의 균열이라 의심하고 있는 곳 내부는 공간의 틈과 비슷했다.

    아무것도 없이 균열의 압력만이 존재했다. 넓이도 얼마나 넓은지 추측조차 불가능했다.

    대신 두드러진 점이 있었는데, 입구와 출구가 정해져 있고, 미묘한 파장이 길처럼 얽혀있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실수로라도 출발지점을 놓치게 된다면 영원히 그 안에 갇히게 되고,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바스러져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균열 내부에서 가장 오래 머문 이가 좌무란이었는데, 그도 3년이 최고였다.

    그랬기에 그 기간을 넘긴 자들은 잠정적으로 입구 위치를 잃어버리고 귀천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입출구가 정해졌다라…. 정말 공간팔찌라도 된단 말인가….’

    일반적인 공간의 틈은 수사가 힘을 방출해 또 다른 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랬기에 준혁도 없는 길을 만들어 비승에 성공했고 말이다.

    ‘일단은 겪어봐야 제대로 알겠구나.’

    잠시 후, 옥간 속 내용을 완벽히 암기한 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써 움직이시려는 겁니까?”

    기대감이 서린 대막리의 목소리에 준혁이 고갤 끄덕였다.

    림주가 적마의 힘을 원한 건 다름 아닌 공허의 공간이라 여겨지는 균열 내부가 일정한 길로 얽혀있었기 때문.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감각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길.

    그 길에 구애받지 않고 내부를 탐색 가능한지 아닌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을 듯했다.

    “우선은 어떤 곳인지 알아보려 하는 것이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준비가 끝난 준혁은 대막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계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머뭇거림 없이 균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스으윽-

    허공에 녹아들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끝없이 펼쳐진 초원.

    초원 위 그림같이 지어진 오두막 하나.

    오두막 바로 옆엔 세상을 덮어버릴 듯이 솟아있는 거대한 버드나무.

    휘이잉-

    어디에서도 바람이 불지 않았고, 바람이 불 수도 없는 세상이었지만 버드나무는 무언가의 흐름에 조금씩 흔들리며 방문자를 반겨주었다.

    “세상에.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균열을 통과한 직후 준혁을 기다린 것은 공허의 어둠뿐인 공간이 아니었다.

    몸을 짓누르는 압력도 없었고, 방향을 상실하게 만드는 착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마치 고향에 온 듯 따듯한 훈풍이 맴도는 고요한 초원이었다.

    지이잉-

    산처럼 솟아오른 버드나무와 그 아래 그림 같은 오두막을 보며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준혁은 팔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손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의 손목엔 푸른 팔찌가 나타나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고 있었다.

    각성한 식아에게 완벽하게 잡아먹힌 후, 자신이 의지를 일으키는 게 아닌 이상 반응을 보이면 안 되는 공천령이 균열에 들어선 순간 살아났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정말 이곳이 공천귀의 내부란 말인가.”

    공천귀가 본인의 내부에 공간을 창조해 천신라의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부가 이런 형태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한 일.

    한동안 준혁은 넋을 놓고 있다가 기감을 퍼트렸다.

    “허, 이렇게 넓다니….”

    그리고는 한 번 더 놀랐는데, 푸른 초원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그 넓이가 수십 킬로에 달했다.

    그동안 마선들의 능력이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여겼던 그로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규모였다.

    왜 아니겠는가?

    예상이 맞다면, 지금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은 외부로 연결된 비경이나 신비경 따위가 아닌. 공천귀 내부의 공간인 것을.

    그때, 준혁의 방문을 알아차린 것인지 오두막 내부에서 작은 반응이 일었다.

    마치 영기파동처럼 퉁- 하고 퍼진 그것은 강력한 중력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 순간 준혁의 한쪽 눈이 황금빛으로 변했고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동을 퍼트리며 내부 공간 전체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런.”

    준혁은 즉각 의지로 자신의 한쪽 눈에 담긴 중력의 힘을 억제하며 내부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가 찾아왔고, 파동에 맞춰 춤을 추던 버드나무잎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저곳에 있구나. 어르신의 눈이.”

    잠시 후 준혁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오두막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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