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73화 (373/408)
  • 373화. 규선(窺仙) (1)

    봉황족 영토의 끝자락.

    그곳은 전운이 감도는 듯. 긴장감이 팽배했다.

    천겁을 피해 한차례 이동했던 이들이 또다시 밀려드는 영기구름으로 또 한 번 이동한 뒤였다.

    봉황족 하급 수사들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있었고, 팔왕이 자리한 근처에도 바글바글하니 모여 있었다.

    “십이채화(十二債華)입니다! 연이어 수행을 올리려나 봅니다!”

    “그게 가능한 것이오?!”

    바글바글 모여 있는 봉황족의 머리 위.

    팔짱을 낀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팔왕 중 조왕이 놀라서 외쳤다.

    그의 외침에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하늘을 주시했다.

    가능하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그들도 눈이 달렸기에 조왕의 외침이 아니라도 열두 색의 무지개를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십이채화라니….”

    십이채화.

    그것은 규선에 오를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열두 색을 가진 무지개와 그곳에 이르는 꽃길이 나타나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규선에 오르는 것에 성공하면, 그의 영혼이 무지개 꽃길을 걸어 올라가 하늘에 닿는다고 전해졌다.

    실제로 규선에 오를 땐 하늘과 하나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어떤 규선이 되는가가 정해진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렇게 진한 십이채화라면…….”

    일반적으로 열두 색 무지개는 각각 색이 흐릿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정상.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건 각각의 색이 너무 뚜렷해 선으로 경계를 그어놓은 것만 같았다.

    그 말인즉.

    수행을 올리는 이의 의지력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하단 뜻이었다.

    “왜 사라지지 않는 거지?”

    십이채화를 바라보던 중 명왕의 한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일반적으로 십이채화가 나타나는 시간은 극히 짧았고, 지속 시간을 따지는 것도 ‘초’를 다루었다.

    하지만 현재 금지 위에 나타난 십이채화는 도무지 사라질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선명해지는 것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십이채화가 모습을 드러낸 지 ‘분’ 단위가 넘어가고 ‘시’에 접어들자 변화가 찾아왔다.

    석양빛 영기구름의 뒤를 이어 모여들던 먹색 영기구름이 오색을 띠며 환하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구름 곳곳에서 빛이 떨어지며 온 세상을 환히 밝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지상에 있던 하위 수사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하나둘 무릎을 꿇었고, 머리를 조아렸다.

    숲에서 뛰놀던 동물들도 달리기를 멈췄고, 공포인지 환희인지 모를 떨림을 보였다.

    그나마 대황대륙엔 범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없어서 볼 수 없었지만, 만약 범인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기도를 드렸을지도 몰랐다.

    “세상에나!!”

    그 현상에 팔왕 모두가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들짝 놀라 입을 벌렸다.

    “삼청의 좌가 움직이려 하다니!! 말이 안 되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허어. 세상에. 도대체 저 안에 존재하는 게 무엇이란 말이오.”

    명왕, 조왕. 암왕을 제외하고도 모두가 넋을 잃은 듯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떨어지는 오색찬란한 빛을 쳐다보고 있었다.

    십이채화가 규선에 오를 때 겪는 현상이라면, 현재 구름 사이로 비치는 오색찬란한 빛은 삼청의 좌를 획득할 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삼청이 무엇인가?

    신선에 오른 이가 대라에 이르기 전, 하늘의 허락을 맡아 오르는 자리였다.

    어떤 시험을 치르는지, 어떤 자격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고, 전해오는 이야기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저 수행이 오를 때와 비슷한 천지 현상과 함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오색찬란한 빛이 온 세상을 물들인다고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현시대의 최강자라 불리는 천신라도 그에게 필적한다고 알려진 천휴림주도….

    그들도 아직 발을 들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란 것이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비치던 빛이 급속도로 줄어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먹구름의 색이 오색으로 변하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던 오색구름으로 변했다.

    삼청의 좌를 얻기 위한 현상이라 하기엔 너무나 짧았기에 착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었나 봅니다.”

    “아니긴! 분명 삼청의 좌를 얻으려던 게 분명하오!”

    “내 생각엔 삼청의 좌를 얻으려다 실패한 것으로 보이네.”

    팔왕은 그 모습에 제각각 생각을 내뱉었고, 곧이어 심각해진 얼굴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지 현상은 이어졌다.

    “또다시 천겁이 시작되려 하오!”

    오색찬란한 빛이 사라진 오색구름이 무언가에 밀려나듯 점차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갈라진 하늘 사이로 세상을 짓눌러버릴 것만 같은 무거운 기운이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 그 순간.

    콰콰쾅!!

    하늘 끝에서 수백 미터는 넘을 듯한 뇌전이 만들어지며 지상을 향해 내리쳤다.

    “헛! 저것이 무엇이오?!”

    그 순간, 금지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지상으로 튀어나왔고. 순식간에 백여 미터 가까운 크기로 부풀었다.

    “말도 안 돼! 거신체라니!”

    백여 미터 가까운 크기로 커진 거인은 몸의 절반은 얼음으로 나머지 절반은 불덩이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눈은 별을 담아놓은 것처럼 은회색으로 번들거렸는데,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거인족의 최종 실력행사라는 거신체가 분명했다.

    거신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뇌전 기둥이 두렵지도 않은지 거대한 손을 천천히 하늘로 치켜들었고, 어느새 그 손엔 전함이 들려 있었다.

    콰쾅!!!

    그 순간 뇌전 기둥이 전함을 직격했다.

    ***

    첫 번째 천겁을 가볍게 막아낸 거신체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두 번째 천겁마저 이겨냈다.

    그리고 네 번, 다섯 번을 넘어 여덟, 아홉 번을 반복하는 사이. 팔왕의 얼굴은 사색으로 물들어갔다.

    “도대체 몇 번입니까? 이게.”

    금지에 숨어있던 무언가.

    그자가 진선에 오른 후, 연이어 규선에 오르는 것이라 여겼던 그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규선에 오르는 것이라면 여덟 번으로 끝났어야 할 천겁이 벌써 열세 번째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신선….”

    누군가의 입에서 결국 믿지 못할 단어가 흘러나왔고.

    모두 침묵을 일관하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천겁은 열다섯 번을 넘어 열여섯 번째로 이어졌다.

    콰쾅!

    “결국 마지막 천겁까지 이겨내다니…. 이제 우리도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저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없으니 미리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묵하며 방관하던 팔왕은 현명한 조왕의 언사에 고개를 끄덕였고. 제각각 머릿속에 담고 있던 의견을 제시했다.

    아니. 하려 했다.

    팔왕이 의견 조율을 시작하려는 그때.

    콰콰쾅!!

    끝이라고 생각했던 천겁이 이어지며 거신체에 내리꽂혔다.

    “말도 안 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천겁을 맞이하기 직전.

    준혁은 사고를 거듭하며 최적의 상황을 유추했고, 그것은 영기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그랬기에 시작부터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능력을 깨워 천겁에 대항했다.

    예전이었다면 대황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팔왕의 눈치를 보았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었기에 마음껏 힘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거신체가 가진 막강한 권능은 천겁을 수월하게 버텨냈고, 전함의 보호력까지 더해지자 손실되는 영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열여섯 번째까지였다.

    “엄청나구나.”

    열일곱 번째 천겁부터는 그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저 뇌전 기둥 안에 담긴 파괴력만 단계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수사의 힘을 흩트려버리는 기운이 함께했다.

    더군다나 산들바람의 마지막 천겁 때처럼 대기가 요동치며 공격해왔고, 공간 압력이 증가하는 식으로 추가적인 방해도 잇달았다.

    “거신만으론 안 된다.”

    열여덟 번째 천겁을 이겨내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던 준혁은 곧장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손가락을 통해 핏빛으로 변한 무언가가 쑤욱 빠져나갔고, 그것은 곧장 거신체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잠시 후. 열아홉 번째 뇌전이 떨어지려는 순간.

    지이잉-

    거신체의 머리 위에 있던 인형의 몸에서 붉은 광선이 하늘을 향해 쏘아졌고, 지상에서 하늘까지의 공간이 통째로 갈라졌다.

    그러자 뇌전 기둥은 급속도로 약화되더니, 거신체에 이를 때쯤엔 열여섯 번째 수준의 천겁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랬다. 준혁은 그동안 타인의 눈치를 보며 외부로 드러내지 않던 천혈의 권능을 사용한 것이었다.

    “되는구나!”

    천혈의 힘을 이용한 방어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준혁은 즉시 입을 벌려 수십 방울의 피를 토해냈다.

    정혈을 소모해야 진정한 공능을 발휘하는 천혈이었기에, 즉시 가진 정혈 중 일부를 천혈에게 날려 보냈다.

    “흥!”

    그때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규선에 오르며 동시에 엄청난 영력을 다루다 보니 이미 일대의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읽히고 있던 상황.

    봉황족 영토 끝자락에서 수군거리는 팔왕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저건 천혈족의 권능이 아닙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시오! 거신체를 소환한 자가 어찌 천혈족의 힘을 사용한단 말이오! 저건 필히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힘이외다!

    -지금 그런 소리나 할 땝니까?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들은 준혁이 겪는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금지를 중심으로 봉황족 영토 전역에 결계를 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천혈의 힘을 목도하고는 그것이 천혈족의 힘인지, 거인족의 숨겨진 공능인지를 두고 소란스러워진 상황이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평생 경험하기 힘든 두 힘이 한 사람에게서 펼쳐지자 보이는 대로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리석기는….”

    준혁은 현재 기운이 빵빵해진 천혈의 힘을 이용해 주변에 완성되어가는 결계를 파괴해버릴까 생각하다가 무시하기로 했다.

    천겁을 맞이하는 지금 다른 곳에 힘을 낭비하기 싫기도 했고, 그들이 무엇을 준비하든 상관없기도 했다.

    아마 그들도 준혁이 상황을 인식하긴 하겠지만 천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관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에 지금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이었을 테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콰과쾅!

    “으윽.”

    게다가 연달아 이어지던 천겁이 스물네 번째에 접어들자, 준혁은 더 이상 외부의 소란에 신경 쓸 수 없기도 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구나.”

    거인족과 천혈족의 힘을 적절히 섞어가며 생각보다 수월하게 막아내고 있던 천겁이 스물네 번째부터는 위력이 곱절로 변했고.

    더는 버틸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가라!”

    그 즉시 준혁 곁으로 열여섯 분신이 만들어졌고, 그들은 하나같이 눈에 익은 법기를 손에 쥔 채 상공으로 치솟아 올라갔다.

    그리고는 각자 가진 마선의 권능을 최고치로 발휘하며 천혈 인형과 함께 거신체를 돕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한편으론 괴기하다고 여겨질 만도 했는데, 세상을 양분하고 싸우던 두 종족이 처음으로 합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웃기지도 않은 상념은 날려버리고 쉬지 않고 연달아 수결을 짚었다.

    그러자 각각 수, 화, 지, 풍의 기운을 가진 사신이 준혁의 몸에서 스르륵 흘러나오더니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각자 가진 사신결을 운용하여 기운을 하나로 융합했다. 그것은 하나 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폭발력과 함께 막대한 기운을 생성해 준혁에게 옮겨졌다.

    하계에 있을 당시 오행을 다루며 경험했던 사신의 융합을 응용한 것이었다.

    잠시 후, 연이어 이어지는 천겁과 각종 권능을 다스리며 지쳐가던 준혁은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했다.

    그렇게 스물여덟과 스물아홉 번째 천겁이 세상을 멸망시켜버릴 것처럼 지상을 휩쓸고 지나간 사이.

    준혁의 정수리에서 황금빛을 가진 인형이 쑤욱 올라오더니 비장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며 공간을 이동해 거신체 속으로 쏙 들어갔다.

    단계적으로 강해지는 천겁은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고, 준혁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이자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원영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가장 강력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가장 위험한 상황을 동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준혁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스물아홉 번째 천겁을 이겨낸 후의 준혁.

    그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

    이젠 진실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도래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