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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70화 (370/408)
  • 370화. 전승자 (1)

    타오르던 의식 공간은 화염을 내뿜기 무섭게 칼날을 쏟아냈다.

    샤아악-

    준혁은 이곳에서 무리하게 자신의 의지를 사용한다면 산들바람이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단 걸 인지했다.

    그랬기에 맞수를 놓기보다는 오히려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의식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썼다.

    촤르륵-

    그 즉시, 준혁의 발끝에서 시작된 금빛 실이 적지주의 거미줄을 흉내 내며 그의 권능과 함께 의식 공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준혁의 심장에서 얇디얇은 실이 흘러나와 품에 안겨있던 작은 여우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 곧 저것을 처리하마.”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산들바람의 의식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진 못할 테지만, 준혁은 음성에 온기를 담았다.

    두근-

    그러자 작은 여우의 존재감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게 보였다.

    그 이유가 금빛 실을 통해 도움을 주어서인지, 자신의 따뜻한 말 때문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준혁은 만족하고는 곧바로 양손을 지휘하듯 휘저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쇄도하던 화염 칼날이 힘을 잃고 소멸해 버렸다.

    “말도 안 돼. 내가 만든 공간인데.”

    적지주의 인연 권능으로 의식 공간을 뒤덮은 건 보호차원에서 행동한 것이긴 했지만, 그것 하나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적지주의 능력은 종속의 인으로 연결된 끈을 더욱더 강화할 수 있었고, 의식 공간 자체를 준혁의 주도하에 놓이게 만들었다.

    “어? 어떻게?”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의식 공간의 한쪽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염화족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로 놀라면 되겠습니까?”

    그녀의 반응에 준혁은 차갑게 웃고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우웅-

    그러자 공간이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다가 여인의 전신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공격을 피하고자 다시 몸을 숨기려는 걸 부여잡으며 구속해버렸다.

    곧이어 뾰족한 송곳처럼 변하며 그녀의 전신을 관통했다.

    푹 푸욱-

    애초에 준혁은 의식 세계에서 누군가를 상대하는 것에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남들은 평생 한 알도 구하기 어려운 명혼단을 백 알 가까이 복용한 상태였고, 그로 인해 자신의 혼백이 이미 다른 수사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수행이 부족해 도망치는 일이 있긴 했어도, 정신력과 의지력이 누군가에게 뒤처진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랬으니 적지주의 권능을 이용해 산들바람의 의식 공간을 보호할 수 있었고, 이곳을 자신의 의식처럼 주도할 생각도 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 침입자에 가까운 이를 압도할 수 있는 건 당연하였고.

    ‘이곳을 나에게 허용한 순간 당신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진선에 오른 이후, 의식만을 논하는 거라면 선계의 이름 높은 이들에게 절대 부족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다만 적지주의 권능과 종속의 인을 이용한 이 방법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공간 자체에 너무 큰 충격이 가해지면 사달이 날 상황.

    그렇게 된다면 산들바람과의 교감이 깨져나가고, 그로 말미암아 그녀 의식 공간이 무방비로 훼손될 위험이 다분했다.

    물론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준혁이 전심전력으로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잠시 후, 송곳처럼 변한 공간의 힘에 관통당한 여인이 좀 전보다 살짝 흐려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자, 준혁은 주저 없이 또 그녀를 갈라버렸다.

    촤악-

    “있…. 을 수 없어….”

    그리고 그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결국 그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파악하고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너. 이곳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신이 한 것과 같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염화족 여인이 산들바람의 의식에 침투해 장난질을 쳐놓았듯, 준혁도 비슷한 방법으로 상대할 뿐이었다.

    단지 그녀보다 더 깊은 유대감을 이용해 더 많은 권한을 얻은 것뿐.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거 같아? 이미 시작한 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그 아이는 우리의 근원을 가져갔어. 그것이 꽃피워 완벽한 염화족으로 태어나게 될 건 기정사실이라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그리 초조해 보이십니까?”

    준혁은 피식 웃으며 의식 공간 어딘가에 숨어있는 여인을 찾기 위해 기운을 움직였다.

    하지만 얼마나 교묘히 숨었는지, 여인의 기운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도무지 보이질 않는구나. 어딘가 정(精)이 심어져 있을 텐데.’

    겉으로 태연자약했지만 사실 준혁도 초조하긴 마찬가지.

    염화족 여인의 의식을 약화하는 것까진 큰 무리 없이 뜻대로 흘러갔지만, 문제는 그녀의 말대로 시간은 자신의 편이 아닌 상황이었다.

    그때, 산들바람의 의식 공간 전체를 샅샅이 뒤지던 준혁은 순간적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혹시?’

    염화신족의 근본은 주작을 비롯한 봉황족에 이어져 있었고, 산들바람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만들어서 산들바람의 주 공법으로 사용하게 했던 그것.

    주작의 화기를 다룰 수 있는 사신결.

    ‘어쩌면 그곳에!’

    생각이 미치자 준혁은 곧장 사신결을 운용하며 산들바람에게 심겨 있던 기운을 자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사신결의 기운 속에 교묘히 섞여 단(丹) 일부가 되어있는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알고 찾은 게 아니라면 절대 찾을 수 없을 만큼 산들바람의 원래 기운과 비슷했고, 동화되기 시작하고 있던 기운을.

    “거기 숨어있으셨습니까!”

    그 즉시 준혁은 종속의 인을 통해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것은 산들바람과 확연히 다른 색깔을 띠며 분리되기 시작했고.

    “소멸하라!”

    준혁이 일으킨 의식의 힘에 의해 급속도로 쪼그라들더니 순식간에 외부로 튕겨 나가 버렸다.

    그렇게 치열할 거라 생각했던 의식 사투는 싱겁게 마무리돼버렸다.

    물론 의식 사투에 쓰인 방법의 깊이를 생각하자면 싱겁다는 말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

    -쓰레기 같은 놈. 결국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어? 과거에도, 지금에 와서도. 우리를 멸족시켜야 분이 풀려?

    의식 일부가 산들바람의 의식 공간에서 그녀를 치료하는 사이.

    준혁은 새끼손톱 절반도 되지 않는, 냉기에 감싸인 구슬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산들바람 속에 스며들어 있던 그녀를 온전하게 분리한 후, 월광지력의 한기로 완벽히 봉인시켜버린 후였다.

    다만 조사할 것이 남았기에 의식 일부를 열어주었고, 염화족 여인은 쉴 새 없이 준혁과 거인족을 탓하고 원망하는 중이었다.

    ‘이런 걸 운이 좋다고 하는 건가?’

    준혁은 그녀를 온전히 구속하고 나서야,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본인의 말대로 중요한 대부분의 것은 이미 산들바람에게 넘겨주고,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관찰하며 조율하고 있었던 것.

    만약, 산들바람으로 인해 깨어난 직후 상대했다면. 자신의 태양지력이 상대의 초고열을 견뎌낼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물론 월광지력 때문에 그녀를 압도할 수 있는 건 당연했지만, 가지고 있는 기운의 총량의 차이 때문에 꽤 고생했었을지도 몰랐다.

    “저는 거인족이 아니고, 그들과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우릴 멸족시킨 달의 힘을 사용하면서? 너희 거인족 놈들은 저주받은 놈들보다 더 나빠.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어?

    대화가 이어지던 가운데, 염화족 여인의 의식을 속속들이 파악하면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염화족 중요 인사의 잔혼이나 계승자일 거라 생각했던 여인은 여러 기억을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 자아였다.

    게다가 그녀가 산들바람에게 하고 있던 일은 그녀의 말대로 완벽한 염화족을 만드는 일이었다. 몸을 빼앗는 과정이 아닌.

    다만 그녀는 자신이 산들바람에게 이로운 일을 한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녀의 자아를 지우고 인공 자아가 새로운 자아를 심기 위해 준비돼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산들바람의 기억을 그대로 가져오기에 둘이 동일한 사람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준혁 입장에서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기억이 같다고 같은 사람일 수는 없는 법이지.’

    인공 자아는 만들어질 당시 주입받은 모든 것이 자신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고를 하진 못했다.

    그때.

    부르르-

    상념을 이어가던 준혁은 성광지력으로 회복되어가던 산들바람이 이상 반응을 보이자 급히 그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지? 결국 그 아이는 염화족이 될 거라고. 하지만 너 때문에 다 망쳤어. 옳은 길로 인도해줄 이가 없으니 그녀는 화기에 잡아먹히고 말 거야.

    준혁이 산들바람을 살피는 사이, 비아냥거리는 구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더는 그런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던 준혁.

    파각-

    그는 알아낼 건 전부 알아냈기에, 망설임 없이 구슬을 깨트렸다.

    그리고는 월광지력으로 남은 찌꺼기를 깔끔히 소멸시켜 버린 후 산들바람에게 집중했다.

    ***

    염화족 인공 자아가 산들바람의 몸속에 남겨 놓은 건, 염화족의 근본이자, 불의 근원.

    세상에 만연하게 존재하는 화기를 대량으로 불러온 후 흡수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공법의 일종이었다.

    “큰둥이야? 한동안 수련에 집중하라더니…. 나 보러 온 거야? 나 무서운 꿈을 꿨어.”

    어느새 정신을 차린 산들바람은 고열로 몸이 펄펄 끓고 있었다.

    준혁이 성광지력을 이용해 치료를 속행하고 있음에도 몸은 녹았다 재생됐다를 반복했다.

    인공 자아의 말대로 진행되던 일은 멈출 수 없어 보였다.

    “불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어. 그래서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꼼작도 할 수 없었어. 근데 이제 안 무서워. 큰둥이 네가 와줘서. 설마 알고 온 거야?”

    산들바람은 의식 공간에서 겪은 일뿐 아니라, 용암 호수에서 화기에 침식당한 순간부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는지 고열로 온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지는 느낌일 텐데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강한 척을 했다.

    준혁은 그런 산들바람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다 안색을 바꿨다.

    “지금 네 몸속의 자리한 화기가 느껴지느냐?”

    “응. 평소보다 뜨겁네. 헤헤.”

    “산들. 내 말 잘 듣거라. 현재, 네 몸에 평소와 다른 응축된 화기가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저곳에 뭉친 영기를 강제로 불러오려는 중이고.”

    준혁이 손끝으로 위를 가리키자 어느 정도 신체를 회복해 몸을 움직일 수 있던 산들바람이 고개를 들었다.

    금지 밖에서 느껴지는 살 떨리는 영기파동에 움찔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네가 뭘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됐을 뿐이다.”

    산들바람은 준혁의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을 깜빡거렸다.

    “내 수행이 오르는 거야?”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준혁의 심각한 표정 때문인지 산들바람도 장난치지 않았다.

    “그래. 다만 저 기운은 나로서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다. 하물며 약하디약한 네 신체는 절대 버티지 못할 테지.”

    운이 좋아 수행을 올리는 데 성공하면 스스로 가진 영력을 이용해 신체를 자가 복구할지 몰랐다.

    하지만 준혁의 예상에 그건 불가능했다.

    한 단계도 아니고 몇 단계나, 그것도 규선까지 강제로 수행이 올라가는 것.

    자신과 달리 의지력이 약한 산들바람은 필히 무너지고 말리라.

    “그럼 나 어떡해?”

    겁먹은 듯 안절부절못하는 산들바람의 눈빛에 준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있지 않으냐. 감당하기 벅차다 했지, 불가능하다 말하진 않았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걱정 말거라. 너 대신 내가 받겠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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