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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67화 (367/408)
  • 367화. 염화신족(炎火神族) (1)

    산들바람이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단 신호에 준혁은 필사적으로 하늘을 갈랐다.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이동했고, 금세 고문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뒤론 일사천리였다.

    고문성에서 명규성으로, 명규성에서 대화성으로. 그리고 대화성을 넘어 묘립성까지.

    전송진을 이용해 반대편에 도착하면 가지고 있는 영석으로 전송실 담당자를 후드려 팼고, 며칠씩 걸리는 기다림을 몇 시간으로 단축하며 대륙을 건너뛰었다.

    그렇게 묘립성에 도착한 준혁이 자신을 발견하고 몸을 숙이는 이들을 무시한 채 황급히 성 밖으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

    “혹여 태왕문을 가시려는 것인지요….”

    묘립성 전송실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고, 준혁은 발동하기 직전의 적마의 권능을 내리눌렀다.

    웬만해선 까마득하게 수행 차이가 나는 이들이 자신을 불러세우지 않았기에, 의문을 가지고 반문했다.

    “그래. 내가 알아야 할 게 있느냐?”

    “그렇다면 며칠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태왕문을 방문하는 것과 며칠의 기다림.

    준혁은 단번에 그것의 의미를 파악했다.

    “설마. 벌써 전송진이 완성됐느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담당자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직 시험 운행 중이긴 하나…. 천휴림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거의 완성 직전입니다요. 이틀 후, 태왕문에서 시험 전송을 시작하기로 했으니. 그 결과를 확인해 보시고 가셔도 늦지 않을는지….”

    주운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묘립성에서 태왕문까지는 일반적인 원영기 수사의 속도로 2년 가까이 걸렸다.

    준혁이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갈 수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몇 달은 소요되는 상황.

    어쩌면 이틀을 낭비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담당자의 말대로 결과를 확인하는 게 적절한 상황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갑작스러운 준혁의 물음에 담당자가 덥석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소, 소인. 청풍가의 셋째로, 아비는 화신기에 오르신 청….”

    “누가 그런 것을 물었더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느냐.”

    자신이 실수한 게 있는지 몇 차례 되뇐 담당자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은 청소소(靑小笑)라 하옵니다.”

    “소소라. 그래. 나를 멈춰 세운 건 잘했다. 네 공을 잊지 않으마.”

    준혁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공간팔찌에서 상급 법기 하나를 꺼내 날려 보냈다.

    담당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두 눈을 껌뻑거리고 있을 뿐이었고, 준혁은 그런 그에게 전음부 한 장을 추가로 건네고 전송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때가 되면 그걸 찢거라.”

    조호랑만이 상황을 이해하고 살짝 웃음 지을 뿐이었다.

    ***

    이틀의 기다림은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다.

    삼청조를 통해 신호를 받은 순간부터 쉼 없이 움직였기에, 너무 조급해하게 된 경향이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지금부턴 혼자 움직이겠소.”

    “네? 갑자기 왜?”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게 된 준혁은 조호랑과 함께 움직인다면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다 여겼다.

    지금까지는 전송진을 통해 이동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가 없을 테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 내겐 대륙 일부를 도약할 수 있는 비술이 있소. 다만 누군가와 함께하긴 힘들지.”

    “그 말은….”

    “먼저 봉황족으로 갈 테니, 무리하지 말고 따라오면 되오.”

    준혁의 말이 부탁이 아닌 명령이란 걸 깨달은 조호랑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돌덩이로 누른 것처럼 무거웠는데, 그녀도 소화여처럼 준혁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작은 파동이 준혁과 조호랑이 쉬고 있던 건물을 파고들었다.

    투웅-

    그것이 전음부를 통한 것임을 파악한 준혁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고, 즉시 전송실을 향해 이동했다.

    잠시 후. 전송실에 도착한 그는 묘립성의 수사들이 참관한 가운데 전송진 앞으로 이동했다.

    “주군. 그렇지 않아도 전송진에 대해 전해드리지 못해 마음이 쓰였는데…. 이곳에 계셨군요.”

    대화성에 있어야 할 소우자가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이지. 탓할 생각 없으니 마음에 두지 마시게.”

    준혁은 그런 소우자를 달래주고는 그 뒤에 시립 해 있던 수사들과 하나씩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들 고생이 많고 수고하고 있다는 준혁만의 감정표현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인사가 오고 간 후.

    우우웅-

    전방의 전송진이 미동과 함께 파동을 퍼트렸고 기이한 빛무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전송진법의 문양들이 밝게 빛나며 정상적으로 발동되었다.

    파앗-

    그리고 빛무리가 진해진다 싶은 순간, 번쩍하는 광채와 함께 영기파동을 퍼드렸고, 파동이 잠잠해지자 전송진 위에 사람이 나타났다.

    전송진을 통해 나타난 이는 혼자였는데, 그는 전송진을 만들겠다고 준혁과 약속했던 무명이라 불렸던 제무무였다.

    ***

    “헛, 선사께서 이곳엔 어인 일로. 설마 벌써 소문을 들으신 겁니까?”

    전송진을 완성해 준혁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 했던 제무무는 실험 전송 중 그를 만나게 되자 되레 놀라 했다.

    준혁은 그런 그의 반응은 무시한 채 곧장 전송진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장 태왕문으로 가야겠으니 길을 열게.”

    하지만 준혁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제무무가 곤란하단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것이….”

    “뭐 하는 겐가? 당장 길을 열라 하지 않나.”

    “그것이…. 현재 전송진이 불안정하여 곧바로 재시동 한다면 진법이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제무무의 설명에 준혁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단기간에 전송진을 완성했는데, 그것이 파괴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상관없으니 발동하라.”

    하지만 전송진은 다시 만들면 그뿐. 재료도 다시 얻어오면 그뿐이었다.

    결국 준혁의 강권 때문에 제무무는 어쩔 수 없이 전송진을 발동해야 했다.

    파앗-

    직후, 준혁은 빛무리에 감싸이며 모습을 감추었고, 제무무를 비롯한 몇몇 수사들의 한숨 소리만이 전송실을 맴돌았다.

    한숨 쉰 이들은 전부 제무무를 도와 전송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들.

    하지만 그들도 한숨과 함께 소우자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야만 했다.

    한편, 전송진을 이용해 태왕문에 도착한 준혁은 깜짝 놀라는 이들을 무시한 채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적마의 권능이 발동되며 태왕문을 벗어났고, 곧바로 뇌명숲에 진입했다.

    다만 뇌명숲을 빛살처럼 가로지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자신의 팔목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얼마 정도일지.”

    그가 조호랑에게 말했던 대륙을 도약할 수 있는 비술.

    그건 다름 아닌 공천귀의 비술이었다.

    다만 그 비술은 함부로 사용하기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생각이 깊어지는 중이었다.

    당장 얼마만큼의 거리를 도약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더 큰 문제는 거리에 비례해 자신의 생명력의 원천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

    진선에 오른 후 영원불멸해진 준혁 입장에선 생명력의 원천이라 함은 수행의 근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자칫 잘못하면 수행이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를 상황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그동안은 전송진을 이용했기에 몇 개의 대륙을 건너뛰는 동안 며칠만이 소요된 상황.

    하지만 뇌명숲과 흑석대륙을 건너 대황대륙 깊숙한 곳의 봉황족까지 비행으로 이동한다면 몇 년을 허비해야 할지 몰랐다.

    그 말인즉 당장 위험에 빠져있을지도 모르는 산들바람에게 도움을 주기란 요원하단 뜻이기도 했고 말이다.

    결국 고민을 거듭한 준혁은 작은 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몸속에 저장 중이던 화신체 비술의 수정을 꺼냈다.

    “우선 이걸 이용해 보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그땐….”

    빈 마정으로 만든 화신체 수정은 하나하나가 진선에 육박할 만한 영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총 세 개였으니 못해도 뇌명숲을 건너 흑석대륙까진 이동이 가능할 거란 계산이 섰다.

    부족하다면 그땐 위험을 감수할 생각까지 계산을 마쳤다.

    “후우…. 부디 무사하기를.”

    누군가는 고작 영수를 위해 그런 손해와 위험을 감수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었지만, 준혁에게 산들바람이나 청호는 더 이상 영수가 아닌 가족이었다.

    준혁은 가족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두고 볼 사람이 절대 아니었고 말이다.

    잠시 후, 결심을 마친 준혁이 연기기 시절 공천귀의 비술을 처음 사용했을 때를 떠올리며 화신체 수정 하나를 통째로 발화시켰다.

    파앙-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비술에 몸을 맡기며 외쳤다.

    “기다려라! 곧 가마!”

    파앗-

    그 순간 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근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적마의 이동과 달리,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

    대황대륙, 봉황족의 영토 상공.

    그곳은 지금 기이한 천지조화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마치 수사가 수행을 올릴 때나 볼 수 있을법한 천지 현상과 함께, 물결처럼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영기구름 일반적으로 영기가 응축해 검은 먹구름 색을 띠는 것과 달리, 봉황족 영토에 드리운 구름은 석양빛을 하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아름다운 석양빛이었고, 다르게 본다면 불타는 화마와도 같은 색이었다.

    구름 빛 덕분에 숲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듯 착각을 불러왔고, 한편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했다.

    “허어. 이게 무슨 일인지.”

    석양빛 영기구름은 일반적인 영기구름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영력을 함유하고 있었기에 명왕을 비롯한 봉황족은 현재 자신들의 영토를 일부 벗어나 한쪽에 모여있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도 정녕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근처에 있던 태백랑이 핀잔을 주자 명왕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릴 질렀다.

    “위치로 보면 분명 봉황족의 금지 아닌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족장이 모른다?”

    태백랑은 명왕의 말을 믿지 않는지, 눈을 흘기며 입술을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모른다고 하지 않나. 자꾸 왜 그런 도발을 하는 겐가.”

    그때 아이 같은 외모에 몸이 우락부락한 사내가 태백랑을 타박하며 끼어들었다.

    “이게 누구야. 땅속에 틀어박혀 안 본 지 수백 년은 넘은 것 같은데. 흑언족의 수장께서 세상일에 관심을 다 가지다니?”

    흑언족은 대황대륙의 영수족 중에서도 가장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땅속 종족.

    검은 두더지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허허, 저런 걸 느끼고도 어찌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나. 고대의 신비 중 하나인 것을.”

    “고대의 신비는 무슨. 그저 옛것들이 수행을 올리는 현상일 뿐이지.”

    흑언족 사내의 말에 태백랑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사실 태백랑도 겉으로는 툴툴거리고 있었으나 속으론 누구보다 호기심이 짙은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명왕을 타박하며 일련의 사태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려 힘쓰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건 그렇지. 허나 이렇게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너무 오래된 기록이라 고문에도 남아있지 않은 현상인 것을…. 헌데 나도 정말 궁금하군. 도대체 어떻게 저것이 현세에 나타날 수가 있지?”

    흑언족 사내 역시 태백랑을 말리는 듯 말했지만, 그의 말끝은 화살표가 되어 명왕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화를 내려던 명왕이 흠칫하며 허공을 쳐다보았고, 동시에 나머지 종족의 수장들도 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파앗-

    규선에 올라 천하를 호령할 만한 여덟 종족의 수장인 팔왕.

    그들 중 다섯이 모인 자리 상공에 균열이 일어나며 허공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 다섯 규선의 의지를 동시에 무시한 채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투웅-

    잠시 후. 안색이 하얗게 탈색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명왕과 태백랑을 확인하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두 분을 이렇게 뵙습니다. 금지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는 순식간에 뇌명숲과 흑석대륙, 거기다 대황대륙까지 건너뛰고 나타난 준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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