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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66화 (366/408)
  • 366화. 성광봉인진(星光封印陳) (3)

    “방금 36방 대라멸진이라 하셨습니까?”

    학신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귀하신 분들을 모셔놓고 실없는 소리나 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진산문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 대라멸진.

    준혁은 완벽한 갑의 입장에서 그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맞추고는 손을 살짝 흔들어 옥간을 공간팔찌 안에 수납해 버렸다.

    “어, 어? 왜 그러십니까? 그게 정말 대라멸진이라면 저희에게….”

    학신도가 당황하며 급하게 말리려는 사이, 준혁은 그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학 선사의 말을 듣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선사의 말대로 작은 인연으로 부탁을 드리려던 제 행동을 돌아보게 되는군요.”

    “아, 아니….”

    “생각해보니 봉인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대라멸진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인데….”

    은근히 대가를 바라는듯한 학신도의 태도에 대놓고 성광봉인진의 연구와 36방 대라멸진을 저울질하는 준혁.

    그는 손을 살짝 저었고, 그 순간 학신도가 들고 있던 봉인진 사본이 빨려 들어가듯 그의 손으로 옮겨졌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계산에 착오가 있었으니 대라멸진을 가져가고 싶다면 이번엔 너희가 더 가치 있는 걸 제시하라는 행동이었다.

    “아무래도 봉인진은 제 사람들과 연구를 진행해야 할 듯합니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훗날 적마의 물건을 찾고 나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 치듯 귓가에 들렸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훤히 보이는 상태라 준혁은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도적으로 돌변하려나? 아니면 고개를 숙이려나?’

    보통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대부분 사람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기 마련. 준혁은 학신도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은은한 웃음을 띤 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고민에 휩싸여 망설이는 상대의 모습에 준혁이 금방이라도 떠날 듯한 행동을 취했다.

    그러자 학신도가 급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 잠시만!”

    그리고는 짧은 시간 동안 문파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었는지,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는 못 가시오!”

    “못 간다라…. 설마 저를 강제하기라도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준혁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다가 은연중에 기세를 퍼트렸고, 그의 앞을 막았던 학신도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 아닙니다. 어찌 그런 흉흉한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학신도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절대 대적할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주듯이.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최 선사. 늙으면 욕심이 많아진다고. 최 선사에 대한 소문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가난한 문파 살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오호. 이렇게 나온다고?’

    진선에 오른 이가 이토록 자신을 낮추기란 거의 보기 드문 일이었다.

    준혁이 상위 수사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혹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연기를 할 때나 나올법한 자세였다.

    사실, 애초에 준혁이 생각하는 사태는 벌어질 일이 없었다.

    일곱 종문의 진선이 도모했음에도 어쩌지 못했던 준혁.

    그런 그를 학신도가 혼자서 어찌해보려 움직일 리는 없는 일.

    그가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절대 준혁과 척지거나 맞서려는 행동을 할 리는 없었다.

    학신도는 앓은 소리를 한참이나 내뱉다가 급히 눈길을 보냈고, 그의 눈짓에 뽀얀 피부를 가진 노인이 급하게 다가왔다.

    ‘이자가?’

    처음 학신도 무리가 나타났을 때부터 그에게 관심이 있던 준혁은 이제야 본론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뽀얀 피부의 노인. 그는 학신도와 마찬가지로 진선에 오른 수사였고, 진산문의 두 명뿐인 진선, 바로 진산문의 문주였다.

    “인사 올립니다. 저는 부족하게나마 진산문을 책임지고 있는 진월동(陳月動)이라 합니다.”

    진월동은 같은 진선이 아닌, 상위 수사에게 보일법한 예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대라멸진이 소실된 후, 문파의 가세가 하루하루 기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기 학 장로께서 혼자 기울어가는 문파를 위해 살신성인하시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나온듯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학신도와 달리 진산문의 문주는 얼마 전까지 대천경에 머물다가 최근에야 진선에 오른 수사.

    준혁은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겉으로는 냉랭한 자세를 유지했다.

    “용서라 말할 게 있습니까? 이대로 헤어지면 그만인 것을.”

    “어찌 그리 매정하게 말씀하십니까. 헤어지다니요. 대화성에서 이곳이 가까운 거리가 아닌 것을. 오신 김에 문 내 전경을 둘러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진산문의 청명차도 유명하니, 자리를 옮기셔서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확실히 학신도와 다르게 진산문 문주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준혁이 거슬려 하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진법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보여주신 봉인진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이름있는 것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어떠십니까? 관심이 가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설득이 계속됐고, 준혁의 표정이 풀려가는 듯하여지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헌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것을 확인해봐도 될는지요?”

    주어가 없음에도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상황.

    준혁은 기분 나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제가 거짓을 말한다는 겁니까?”

    준혁의 냉랭한 언사에 진월동의 이 당황한 듯 손사래 쳤다.

    ‘연기가 일품이구나. 눈빛은 전혀 동요가 없거늘.’

    “어이쿠. 아무렴 그런 뜻으로 말했겠습니까. 다만 그것이 진정 36방 대라멸진이라면 그 가치는 저희 진산문 전체와 비견될 만한 것인데…. 선사께서 그것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알고 계셔야 하기에 제가 확인을 해드리려는 것뿐이지요. 혹여나 가품이기라도 한다면 익히는 과정에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미 준혁이 대라멸진을 완벽히 터득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문주의 발언.

    준혁은 가당치도 않은 그의 소리에 피식 웃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이런 대치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으니,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됐기도 했고 말이다.

    “일리가 있군요.”

    그리고는 부적 한 장을 꺼내 입술을 달싹이자, 부적이 문주에게 날아갔고, 잠시 후엔 홀라당 타버리며 사라졌다.

    그사이 부적에 담겨있던 내용을 읽은 문주가 환희에 찬 표정을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연기가 아닌, 진심을 담아.

    “아! 진정! 이것이 나타나다니! 아아!”

    잠시 후.

    준혁이 보유한 것이 진짜 36방 대라멸진이라는 게 확인되자,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변했다.

    ‘갑’이라는 준혁과 ‘을’을 차지한 진산문의 형태로.

    결국 준혁이 요구하는 모든 걸 수용한다는 조건 하에 대라멸진을 넘겨준다는 약속이 오가게 되었다.

    모든 이들의 눈이 준혁의 입을 향했다.

    “먼저 여기 있는 소화여 수사가 전권을 가진 상태로 그대들과 함께 봉인진을 연구했으면 합니다.”

    봉인진을 발동하기 위해선 성광지력이 필요했고, 그녀가 성광지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모든 이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산문의 연구 기간에 타인이 들어서는 건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하려던 학신도도 달리 반대할 명분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준혁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학 선사께 한시적으로 금제를 가했으면 합니다.”

    “금제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금제라는 말에 모든 대화를 온화하게 받아치던 문주가 발끈해 입을 열었다.

    준혁은 그런 그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여기 소화여 수사는 봉인진을 책임질 사람이기 전에 제 내자입니다. 그런 이를 이곳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제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해서 봉인진이 완성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금제를 가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정말?’이란 표정으로 준혁과 소화여를 번갈아 쳐다보는 사이.

    준혁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물러가도록 하지요.”

    ***

    “정말 이대로 떠나도 괜찮을까요?”

    거래를 끝마친 준혁은 조호랑만을 대동한 채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그녀가 하겠다고 했으니 믿어야지.”

    금제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사코 거부하던 그들은 결국 준혁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준혁은 학신도에게 삼지행을 주입해 금제를 걸고는 봉인진의 사본과 대라멸진이 담긴 옥간을 전부 넘겨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에 더해 기문학이 설치해놓았던 서른여섯 개의 기둥들도 넘겨주고 싶었으나, 마음만 간절할 뿐 참아야 했다.

    사실, 준혁이 그들에게 준 건 오래전 완성된 36방 대라멸진. 기문학이 만든 진 대라멸진은 여전히 준혁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 대라멸진의 핵심인 36개의 기둥.

    만약 그것을 넘겨준다면, 진법에 정통한 진산문 수사들이 진 대라멸진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건 오직 준혁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었다.

    서른여섯 개의 기둥에 담겨있는 서른여섯 가지의 기운.

    그걸 어떤 형태로든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땐 진정한 대라멸진이 준혁의 손에서 펼쳐질 수 있는 것이었다.

    준혁이 진 대라멸진에 대해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오해한 조호랑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가 소화여를 걱정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그럼, 이제 흑석대륙으로 가실 건가요?”

    대막리가 머물던 곳이 공천귀의 균열이 위치한 곳이란 걸 알게 된 조호랑도 준혁만큼이나 놀라 했었다.

    왜 아니겠는가? 그녀는 그곳에 준혁보다 오래 머물렀거늘.

    “그래야 할 것이오. 천운성의 전송진을 이용할 때 누구도 간섭하진 않았지만, 은연중 압박이 들어왔으니.”

    진산문에 향하는 도중 지나온 천운성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준혁은 쓰게 웃고 말았다.

    림주가 직접적으로 표현한 건 아니었지만, 기세를 일으켜 신호를 주었기에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았을 뿐 그는 분명히 의사를 전했다. 균열로 향하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그가 직접 관여하기 전에 해결하는 게 좋겠지.’

    자신에게 예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신선은 신선.

    선계 최강자 반열에든 수사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었다.

    그때, 상념에 젖은 채 하늘을 가르던 준혁을 멈춰 서게 하는 진동이 심장에서부터 전해졌다.

    ‘이건, 산들?’

    갇힌 환경에서 힘들어할 수도 있기에 산들바람에게 주었던 삼청조.

    그것이 전해오는 신호에 준혁은 손위로 삼청조를 소환하며 권능을 일으켰다.

    -…….

    하지만 수다스럽게 입을 놀릴 거라고 생각했던 삼청조는 침묵을 유지했다.

    “?”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신호를 보냈던 삼청조는 소리 대신 공포라는 감정을 전해주었다.

    그 순간 준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종속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산들바람의 감정이 삼청조를 통해 전해진 것이란 걸.

    그리고 그건. 그녀가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둘러야겠소!”

    그 즉시 준혁은 조호랑의 손을 낚아채며 그녀를 귀원패의 권능으로 보호했다.

    콰앙!

    그리고는 대기를 찢으며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산들바람이 머물고 있는 봉황족의 금지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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