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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65화 (365/408)
  • 365화. 성광봉인진(星光封印陳) (2)

    기대감에 찬 소화여의 눈빛.

    그녀의 생각은 분명했다.

    이미 준혁의 사정은 대화성의 중추인물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었고, 그런 현실에서 그녀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고 있던 상황.

    성광지력을 다룰 수 있는 이가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봉인진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준혁과 자신이 전부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이번엔 자신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떠신가요? 그래도 될까요?”

    준혁은 두 눈에 굳센 의지를 담은 소화여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이오. 그대가 도와준다면 내게 큰 힘이 될 터. 허나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기에…. 흠.”

    긍정의 대답 후 말끝을 흐리는 준혁의 말에 소화여는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그대도 비석에 담긴 내용을 보았으니 예상하겠지만, 우리가 봉인진을 완성하기란 요원할 일이오. 해서 나는 다른 곳에 그것을 맡길 작정이오.”

    “제가 가겠어요.”

    준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소화여.

    “연구를 맡긴다 해도 이론만으론 한계에 부딪힐 거예요. 결국 성광지력을 사용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그렇다면 제가 함께하며 봉인진을 완성할게요.”

    “정말이오? 그래 줄 수 있겠소?”

    결심을 굳힌 듯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준혁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지금껏 함께한 시간이 길었지만, 조호랑과 달리 자신의 의견을 거의 내세우지 않던 그녀였기에 새삼스러웠다.

    그러다 그것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임을 깨닫고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그랬기에 준혁은 이득이나 기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그녀의 마음에 기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일에 관한 모든 걸 그대에게 맡기겠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고맙소.”

    그리고 준혁의 진심을 느낀 것인지, 소화여는 두 볼에 홍조를 띠며 밝게 웃었다.

    잠시 후, 준혁은 법기에 담긴 봉인진의 사본을 만들어 자신이 간직하고는, 법기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기다란 침같이 생긴 물건을 꺼내 함께 주었다.

    “어? 그건 심천군주의….”

    “그렇소. 그녀의 본명기인 파뢰. 그대에게 도움이 될 테니 간직하고 있으시오. 만약 가능하다면 체화시켜 그대의 본명기로 만들어도 좋고.”

    요마족 수장인 심천군주의 본명기 파뢰.

    파뢰에 담긴 성광지력은 마선들을 억제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껏 알려진 파뢰의 기능.

    하지만 준혁이 사용해본 바에 의하면 성광지력을 보유한 자가 파뢰를 사용할 경우, 다룰 수 있는 영력은 물론 성광지력의 기운도 크게 강화할 수 있었다.

    이미 각인이 끝난 물건이라 새로운 사용자를 인식시키는 게 쉽진 않을 테지만, 체화에 성공만 한다면 위력 역시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질 게 분명했다.

    그런 보물을 아무렇지 않게 건넨 이유는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소화여가 최소한 제 한 몸은 건사하길 바라는 준혁의 마음이었다.

    사용 가능한 성광지력의 폭이 넓어져 연구가 빨리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했고 말이다.

    잠시 후, 마선이 봉인되어 있던 공동이 완전히 소멸하였음을 느낀 준혁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혈수림을 떠나 중림을 벗어났고, 바다 같은 강을 건너 천운대륙으로 이동했다.

    ***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동굴.

    그곳엔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골몰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여자아이는 악동처럼 꿍꿍이가 가득해 보였는데, 그녀는 강제로 감금된 채 수련 중인 산들바람이었다.

    “안 되겠어. 도망쳐야지.”

    그녀가 갇힌 봉황족의 금지는 준혁의 말대로 수행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거기다 더해 화정이라 불리는 거대한 수정체를 통해 화기를 야금야금 뽑아먹을 수 있었기에 단약을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행 속도를 엄청나게 당겨주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금지 안은 그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고, 재밌는 놀이나 먹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명왕을 통해 우지라는 자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전해 들었지만, 말동무가 필요한 그녀가 모든 장소를 샅샅이 뒤졌음에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심심해!”

    산들바람에게 있어 심심함은 죄악이나 마찬가지였다. 즐겁게 수련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이런 곳에서 수십 혹은 수백 년을 보내야 한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랬기에 그녀는 탈출을 결심했다.

    “틈이 없어. 나도 적마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벌써 몇 년째 수련을 내팽개치고 금지 곳곳을 수색했지만, 바깥으로 이어진 통로는커녕 작은 틈새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안 되겠어. 거길 다시 찾아봐야지.”

    결국 그녀는 머리를 굴려, 바깥으로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을 향해 움직였다.

    잠시 후, 금지 중에서도 가장 강한 열기를 내뿜는, 화정을 제외하고 수련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에 도착한 산들바람은 바닥에 출렁거리는 시뻘건 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녀가 생각했을 때, 유일하게 외부로 연결돼있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

    그곳은 바로 용암이 흐르는 호수였다.

    호수가 무엇인가?

    결국 물이라는 건 어딘가로 흘러가기 마련.

    산들바람이 생각했을 때 용암 역시 물이었기에, 물줄기를 따라 이동하면 결국 외부로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첨벙.

    생각에 빠져있던 산들바람은 용암에 발을 잠깐 담갔다가, 질색한 표정으로 발을 뺐다.

    “근데 너무 뜨거워.”

    의지를 일으켜 신체를 영역으로 보호하면 용암 안에서도 몸이 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뜨거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예전에도 의심만 하고 용암 호수 안을 수색하는 건 포기했었다.

    “아니야! 나가야 해! 더는 이곳에 있을 순 없어!”

    용암 호수 깊숙이 들어가 버티면 얼마나 뜨거울까? 라고 고민하던 산들바람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결심을 굳혔다.

    ‘고통은 순간이고 자유는 영원하다’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명언을 떠올리며.

    쿠르릉-

    그때 지면이 무언가에 강타당하듯 거세게 흔들거리며 용암 호수가 출렁거렸다.

    깜짝 놀란 산들바람은 급하게 허공으로 솟구쳤고, 진동이 가끔 일어나는 지진의 일종임을 파악하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첨벙-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시.

    무언가 용암 호수에 빠지는 소리에 의문을 드러내던 그녀는 자신의 목 주변을 더듬거리다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안 돼!! 내 목걸이!”

    하계에 있을 때, 큰둥이가 주었던 보호용 법기.

    원영기 수준에서나 사용할 만큼 보잘것없는 물건이었지만, 큰둥이에게 처음으로 선물 받은 것이기에 보물처럼 간직했던 그것.

    숱한 부침을 경험하며 반쯤 파손된 지 오래였고, 목걸이로서의 수명도 끝나가던 물건이 조금 전 이동에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만 것이었다.

    “그게 어떤 건데! 영역 선포!”

    그 순간, 산들바람은 전신을 영역으로 보호하더니,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용암 호수로 뛰어 들어갔다.

    첨벙-

    동시에 기감으로 법기가 어디 있는지 빠르게 찾았다.

    하지만, 용암 호수 안은 화기가 너무나 짙어 단번에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바닥일 거야.”

    한참 동안 목걸이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결국 모든 물건은 물에서 가라앉는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고, 즉시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용암의 열기에 대한 걱정 같은 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얼마나 오래 이동했을까.

    시뻘겋다 못해 빨간 진흙 같은 질감으로 변해버린 용암 밑바닥에 도착한 그녀는 빠르게 주변을 수색했고,

    “찾았다!”

    보호 기능이 완전히 파괴된 채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던 법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목걸이를 회수해 영력을 주입했다.

    비록 예전보다 더 볼품없게 변해버려 이제 범인들도 거들떠보지 않을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큰둥이의 첫 선물을 되찾았던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는 온몸을 압박하는 기운과 열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인상이 한껏 구겨지고 말았다.

    “으…. 이곳을 통해 나가는 건 포기해야겠다. 너무 괴로워.”

    하지만, 용암 호수의 바닥을 벗어나려던 그녀는 몸을 빼내려던 순간 기이한 물건을 발견하고 멈춰 서고 말았다.

    “응? 이런 곳에 왜 저런 게….”

    목걸이를 찾았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곳에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석상이 온화한 표정을 지은 채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했기에 산들바람은 결국 고통을 무시하고 그곳으로 움직였다.

    “누가 만들고서 버린 건가?”

    석상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석상의 모습에 잠시 감탄을 내뱉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손을 가져갔다.

    “가지고 나가야지.”

    그리고는 석상을 작게 축소한 후, 품에 넣기 위해 손끝으로 영력을 흘려보냈다.

    번쩍-

    그 순간. 온화하게 웃고 있던 석상의 눈이 삽시간에 떠지며 엄청난 영기 파동을 발출했다.

    파앙-

    순간적인 파동이 얼마나 강했던지, 삼경에 이른 산들바람조차 잠시간 몸이 바짝 얼어붙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가 석상의 눈빛을 피하지 못한 사이.

    석상의 눈빛에서 쏘아져 나온 빛무리가 마치 무언가로 연결된 듯 천천히 흘러 산들바람의 눈 안으로 스며들었고,

    콰아아앙!

    그 순간 용암 호수 전체가 들끓기 시작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 이, 이게 뭐야…. 무, 무서워 큰둥아….’

    그리고 그런 반응에 그녀가 겁에 질려하는 사이. 들끓기 시작한 용암의 화기가 석상으로 급격히 모여들며 응축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산들바람의 품속에 고이 자리하고 있던 작은 분홍 새가 영력에 반응하듯 부리를 달싹거렸다.

    ***

    천운대륙 동북쪽.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

    조각배 형태의 비행 법기 위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은 일단의 무리가 출연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렇게 찾아주시다니, 설마 벌써 찾으신 겝니까?”

    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온 무리 중, 선두에 서 있던 노인이 기쁨에 겨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준혁이 날려 보낸 신호에 모습을 드러낸 이로, 오래전 고문성 근처에서 적마를 핍박하기 위해 모였던 7인 중 한 명이었다.

    학신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준혁과 동맹을 맺은 청교장, 교호홍과 마찬가지로 진선에 오른 자였다.

    학신도의 등장에, 그가 오해하지 않도록 준혁은 바로 앞으로 나서며 손을 저었다.

    “오랜만입니다. 선사. 아쉽게도 이번엔 적마의 일 때문에 뵙자고 한 게 아닙니다.”

    “그럼 무슨 용건으로?”

    중림을 벗어난 준혁은 곧장 진산문이 자리한 곳 근처로 이동했고, 그 이유는 성광봉인진 때문.

    대라멸진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진법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그들이었기에, 성광봉인진의 연구에 그들만큼 적합한 이들은 없다고 판단했다.

    준혁은 학신도의 반문에 그의 뒤에 자리하고 있던 수사들을 한차례 훑어보고는 품속에서 성광봉인진의 사본을 꺼내 들었다.

    “우선 이걸 보시겠습니까?”

    그리고는 봉인진의 사본을 받아 내용을 확인하는 학신도를 기다렸다가 설명을 이었다.

    “우연히 얻게 된 것인데,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봉인진이라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제 능력으론 힘에 부쳐서 그러는데…. 진산문에서 그것을 완성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준혁을 통해 설명과 함께 사본의 내용을 확인한 학신도는 감탄과 더불어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이게 완성된다면. 마선들은 이제 수사를 사신보다 두려워하겠구려. 허나. 이걸 완성하기엔 품이 너무 많이 들겠습니다. 적마가 훔쳐 간 저희 물건을 가져와 주셨다면 모를까. 그저 인연으로 도와드리기엔….”

    말끝을 흐리며 요청을 거부하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학신도.

    그의 말에 담긴 속뜻은 도움이 필요하면 대가를 내라는 뜻이었다.

    준혁은 그런 학신도의 태도에 피식 웃고는 품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까딱까딱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러십니까? 이거 원 참. 36방 대라멸진을 찾았기에, 진산문에 돌려드릴까 고민하던 참인데…. 정 그러시다면?”

    “서, 선사!!”

    준혁의 발언에 좌중의 시선이 옥간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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