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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60화 (360/408)
  • 360화. 마선들 (2)

    ‘공천귀?’

    천휴림주의 말에 준혁은 만통방에서 만난 공천귀가 찾으라 했던 봉인지를 떠올렸다.

    동시에 중괴가 그토록 바라던 나머지 한쪽 눈에 대해서도.

    “공천귀라니? 설마 천신라의 수족이라 알려진 그 창고지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준혁이 시치미를 뚝 떼며 말하자, 천휴림주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자다. 하지만 수족이란 말엔 어폐가 있군. 그자는 이미 천신라 곁을 떠나 사라진 지 오래다. 오래전에도 어쩔 수 없이 그놈 곁에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렇군요. 헌데 그자의 이공간이라면 선마궁의 보물이 전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런 곳을 제게 맡긴단 말씀이십니까?”

    ‘내가 누구의 계약자인지 알면서?’라는 듯 준혁이 눈을 빛냈다. 천휴림주는 그런 준혁의 태도를 읽은 것인지 피식 웃었다.

    “보물이라. 그래, 만약 그곳이 정말 그자와 관련된 곳이라면…. 감히 계산할 수 없을 재화가 잠들어 있겠지….”

    잠시 말을 끊은 천휴림주는 제자를 향해 눈길을 보내고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대도 선도에 발을 올렸으니 알 텐데? 신외지물이나 보물 따위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조금 전 제자를 바라보았던 것이 질책의 의미였는지, 천운성주는 치렁치렁 걸치고 있는 각종 장신구를 등 뒤로 감췄다.

    천휴림주는 그런 제자의 행동에 혀를 차고는 준혁의 눈을 직시했다.

    “만약 나를 대신해 그곳을 그대가 확인해 준다면,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약속해주지.”

    “......”

    “그 안에서 얻은 모든 것. 그대가 가져도 상관없네.”

    “스승님!! 그!”

    천휴림주의 발언에 무슨 의도가 담겼는지 준혁이 생각하려는 찰나, 천운성주가 목소리를 높이다가 천휴림주의 시선에 입을 닫았다.

    성주의 입을 다물게 만든 림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단, 한 가지만 내게 가져오면 되네.”

    ‘한 가지? 그게 무엇이길래.’

    정말 천휴림주가 말한 균열이 공천귀의 봉인지라면 그 안의 것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을 터.

    그런 곳에서 한 가지 물건만을 욕심낸다면, 그것의 의미는 분명했다.

    그 한 가지가 전체의 보물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천신라의 심장. 그것만 내게 가져오게.”

    이어지는 천휴림주의 발언에 준혁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천신라의 심장이라니. 그건 심주(心主)를 말하는 게 아닌가? 설마 그걸 공천귀가 보관하고 있었다고?’

    중괴가 알고 있던 지식을 전해 받을 당시, 들었던 내용 중 심주에 관한 것도 있었다.

    심주란 착화방이나 마선기록방처럼 생명체가 아닌 마선 중 하나였는데, 무려 마선기로부터 태어난 순서로 치면 네 번째에 해당하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중괴보다 빨리 태어난 마선이었기에 권능을 제외한, 보유한 마선기만으로도 대단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태어난 순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진 권능이었다.

    ‘모든 걸 어그러트리는 힘이라 했던가?’

    그 능력에 대해선 중괴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진 못했지만, 왜곡을 다룰 수 있는 권능이라고만 전해 들었다.

    생각이 그것에 미치자, 공천귀의 말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허, 설마? 그럼 공천귀가 자신의 봉인지를 찾으라 했던 게 그 안의 보물을 이용해 수행을 올리란 뜻이 아니었단 말인가?’

    정말로 심주가 그 안에 있다면 그 어떤 보물보다 가치 있음은 당연했으니, 공천귀의 뜻은 그걸 향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심주가 왜 천신라의 심장이라 불리겠는가?

    그건 모든 마선들의 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천신라의 권능을 곱절 이상은 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심주였기 때문이었다.

    준혁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자 천휴림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생각할 여유를 주듯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어떤가? 나와 거래를 하겠나?”

    준혁은 상념을 날려버리며 신색을 바로 했다.

    “림주의 제안이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헌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군요.”

    “말해보게.”

    “정말 그곳이 공천귀와 관련이 있고, 그 안에 천신라의 심장이 있다면. 림주께선 어찌 저를 믿고 일을 맡기려 한단 말입니까? 특히, 제가 다루는 능력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께서?”

    너무 직설적인 질문이었을까?

    준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휴림주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러다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탁’ 소리 나게 부딪치자, 허공에 금색 팔찌 한 쌍이 나타나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

    “하하, 정말 오랜만에 웃어보는군. 이리 대놓고 말하는 이는 내 오랜 삶에서 자네가 처음이네. 정말 처음이야.”

    림주는 팔찌 한 쌍 중 하나는 자신의 팔목에 차며 나머지 하나는 준혁에게 날려 보냈다.

    “천영보 옥천(獄釧). 그것의 이름이지. 확인해 보게나.”

    ‘옥천?’

    준혁은 날아오는 팔찌를 허공에 멈춰 세운 후, 기감을 흘려보내 법기가 가진 기능을 파악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천휴림주가 건넨 팔찌는 삼청조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물건이었다. 팔찌를 나눠 찬 상호 간의 대화는 물론 심상까지 공유가 가능한.

    하지만 쌍방의 허락이 있어야 했기에, 원하지 않는다면 모든 대화나 공유를 멈추는 게 가능한 법기였다.

    다만 한 가지 기능만은 절대 끌 수 없었는데, 그건 서로의 좌표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즉, 천휴림주의 의도는 준혁이 천신라의 심장을 가져다줄 때까지 팔찌를 이용해 준혁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내가 가진 전함과 동류의 재질인가?’

    그리고 그런 팔찌가 천영보급인 가장 큰 이유는, 신선에 오른 천휴림주라도 파괴가 불가능한 절대적 방어기능을 갖추고 있었고,

    또 한 가지, 한 쌍이 한곳에 있지 않은 한 절대 착용 해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꼼꼼하게 법기를 살핀 후,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약속한 바는 반드시 지킵니다. 제 말은 이런 구속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만약 그곳이 공천귀와 관련이 없을 경우. 림주께선 제 말을 어떻게 믿겠냐 그 뜻입니다.”

    “아, 그런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네.”

    준혁의 발언에 천휴림주가 이해한단 듯 고개를 끄덕였고, 품에서 작은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나침반은 그의 품에서 나온 순간 핑그르르 돌더니 바늘이 정확히 준혁을 가리키며 멈추었다.

    “이것이 자네가 거짓을 말하는지 아닌지 알려줄 테니 말일세.”

    ‘저건?’

    “알아보겠지? 내가 아주 오래전에 얻은 마선의 눈이라 불리는 물건일세.”

    준혁이 흡수한 마선기록방이 마선경과 괴조의 하위호환이었다면, 천휴림주가 들고 있는 나침반은 마선기록방의 하위호환이었다.

    “보게나. 자네가 무슨 수로 외부로 드러날 기운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천휴림주가 나침반을 허공에 띄우자, 그것은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준혁에게로 천천히 움직였다.

    “자네 안에 깃든 마선기는 절대 이것을 피해갈 수 없지. 그리고 지금 자네가 가진 마선기를 확인했으니. 다음번에 만날 땐 변화를 측정할 수 있고 말이네.”

    ‘천휴림주가 마선들을 보유하고 있다더니…. 그게 사실이었구나.’

    선마궁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천휴림주는 마선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몇 명 마선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기에,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조호랑도 대막리의 거처에서 반투명한 봉인구에 구속된 채 잠들어 있는 마선들을 본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대막리의 제자인 교휴가 그곳을 항상 지키고 있었기에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준혁은 조호랑이 전해준 얘기를 떠올리며, 단(丹) 안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식검의 욕망을 눌렀다.

    ‘가만히 있거라. 지금은 아니 된다.’

    마선의 눈이라 불리는 나침반, 그것 역시 마선 중 하나였기에 식검이 식욕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식검을 진정시킨 준혁은 나침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마선을 계약도 하지 않고 법기처럼 다루다니…. 무슨 수를 쓴 거지?’

    신선이란 경지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까마득하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

    “다시 묻지. 어떤가? 나와 거래를 할 텐가?”

    준혁의 상념이 길어지자, 천휴림주가 입을 열었다.

    그는 당연히 준혁이 수락할 거라 여기는지 조금도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 준혁 역시 이미 긍정의 대답을 하려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천신라의 심장은 어쩔 수 없다지만, 공천귀가 보관 중이던 선마궁의 보물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괴의 나머지 눈도 구할 수 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유일한 걱정은 일이 끝나고 난 뒤 천휴림주의 태도 변화였는데, 그가 옥천이라는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걸 보고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그냥 수락하고 끝내기엔 아쉬운 감이 있었기에, 바로 즉답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왜? 꺼려지는가?”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천휴림주가 재차 대답을 요구하자, 준혁은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림주께서 이리 청하시는데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부탁하시는 바를 행해야지요.”

    거래가 아닌 부탁이란 단어로 포문을 연 준혁.

    그는 바로 거래의 조건에 대해 입을 열려다가, 상대의 행동에 입을 닫았다.

    “잘 생각했네. 자세한 위치는 이 안에 담았으니 확인해 보면 되네. 그리고 셋째가 전해준 신분패가 그곳에서도 통용되니 잘 간직하고 말일세.”

    혹시라도 준혁이 말을 바꿀 거라 생각했는지, 천휴림주는 확답이 나오자마자 옥간을 꺼내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몇 가지 당부와 함께 균열 근처에 상주하며 지키고 있는 이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허, 대막리가 그곳에 머무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리고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나자, 준혁은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막리가 흑석대륙에서 머물고 있던 이유가, 암흑기를 통해 수련하면서 흑마지에서 진마정을 구하기 위함이라 여겼는데,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

    그 핑계는 대외적으로 균열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고, 진실은 둘째 제자와 함께 균열을 지키는 중이었던 것이다.

    천휴림주가 전한 옥간에서 확인한 위치. 그곳은 정확하게 대막리가 머물던 곳.

    바로 준혁이 처음 비승한 후, 잠시 몸을 의탁했던 곳이었다.

    ‘하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선마궁에서도 금세 알아차렸겠지.’

    이제야 진마정에 대한 소문이 왜 외부로 흘러나갔는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된 그였다.

    아마 소문이 나도 진마정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곳에 오래도록 자리한 당위성을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이었다.

    다른 대륙에 자리한 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말이다.

    잠시 후, 천휴림주가 전해준 내용을 완벽히 숙지한 준혁은 거래의 성립에 만족하는 그의 반응에 입을 열었다.

    아까 하려다 멈춘 말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으니까.

    “대신 저도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내 가능한 것이라면 고려해보지.”

    준혁이 거리낌 없이 팔찌를 한쪽 손목에 차자, 천휴림주가 만족의 미소를 띠었다.

    “이번에 대량의 공간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림주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군요.”

    “공간석? 얼마나 말인가?”

    “대륙을 횡단할 전송진을 만들려고 하니, 그에 준하는 양이 필요합니다.”

    준혁이 날강도처럼 어마어마한 양을 말하자, 천휴림주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준혁은 상대에게서 부정의 말이 나오기 전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새로운 정보를 얻었기에 그 내용까지 포함하면서.

    “다름이 아니라 묘립성에서 뇌명숲으로. 그리고 흑석대륙을 횡단하는 전송진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게 완성된다면 림주께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새 경로가 늘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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