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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58화 (358/408)
  • 358화. 천휴림으로 (2)

    “가신 일은 잘되셨나요?”

    분신이 복귀한 뒤에도 꽤 오랜 시간 외부와의 단절을 유지하던 준혁이 사색을 깨고 나오자 조호랑과 소화여가 냉큼 그에게 다가갔다.

    준혁은 걱정과 기대가 가득한 두 여인에게 하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히 전해주었다.

    그리고는 작은 불씨 하나를 서봉산맥 정상에 날려 보내고는 비행 법기를 꺼내 올라탔다.

    두 여인이 비행 법기에 오르자 분신을 소환해 동쪽으로 날아가게 조종을 맡기고, 두 여인에게 양해를 구하며 착화방의 권능을 다시금 하나씩 되새기기 시작했다.

    모든 걸 파악했다고 여긴 것들도 천천히 되짚어보면 깨달을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착화방의 권능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선천적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마선들의 권능은 분명 제한된 범위 안에서 특정된 힘이었지만, 여러 마선들의 힘을 조합시킬수록 그 권능이 미치는 영향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특히 착화방의 권능이 그랬는데, 혈단법에 이어 적지주의 권능과 조금씩 융합해보며 재미를 보는 중이었다.

    조합의 재미에 빠진 준혁은 그 어느 때보다 수련이 즐거운 상태였다.

    그 시각, 구름을 뚫고 나온 뾰족한 첨탑처럼 생긴 산 중턱에선 마선경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듯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아리송한 표정을 했다.

    “또 사라졌다.”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그는 결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인지 자리를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대전에 들어섰다.

    “한동안 뜸하더니. 무슨 일이지?”

    대전에 들어선 마선경은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에 절로 위축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바닥에 대며 입을 열었다.

    “또 삭제된 듯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이들이 늘었습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지만, 대전의 상석에 앉아있던 사내는 별스럽지 않게 입을 열었다.

    “몇이지?”

    “셋입니다.”

    “셋이라…. 그놈을 인정할 수밖에 없군.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도 꼭꼭 숨은 채 연락을 끊어 버린 놈들을 절대 찾을 수 없었는데, 이토록 빠르게….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군.”

    “…죄송합니다.”

    무미건조한 사내의 말에 마선경은 움찔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번엔 누구지?”

    “착화방, 적매, 장구수입니다.”

    마선경의 말에 이번엔 사내가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착화방? 허어…. 그토록 찾던 것을. 이쯤 되니 그놈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을 거란 생각도 드는구나.”

    “그게 무슨.”

    “보아라, 얼마나 성과가 좋더냐? 이런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법문으로 도망친 놈들을 제외하곤 전부 모을 것 같지 않으냐?”

    사내의 말이 진심이 아닌 질책에 가까운 뜻이란 걸 파악한 마선경은 더욱 고개를 바닥에 가져갔다.

    “죄송합니다….”

    잠시 후,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사내는 혀를 찬 후 축객령을 내렸다.

    “가서 중력괴나 돕도록 하여라. 그게 그놈을 잡을 수단이니.”

    사내의 축객령에 마선경은 몸을 일으키다가 자신도 모르게 발끈해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자 때문에 요즘 골치가 아픕니다. 원하는 대로 해주었더니 천방지축처럼 저희 궁 수사들을 부리고 있습니다. 마치 제 수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대로 두고 보실 작정이십니까?”

    중력괴가 기진 중력의 힘은 마선들의 권능중에게서도 최상위권에 속했다. 그랬기에 그를 귀하게 여기는 것도 이해했지만, 마선경은 중력괴의 태도 자체가 못마땅했다.

    중력괴는 안하무인 했고, 마치 상관이라도 되는 듯 제멋대로였다.

    “내가 그냥 이유 없이 그러라 한지 아느냐?”

    “예? 그럼…?”

    마선경의 반문에 사내가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게 이를 갈던 놈이 나를 따라올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아마 뜻하는 것이 있으니 고개를 숙인 것일 테지.”

    “…그럴 겁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아마 복수를 하기 위함일 테고, 그 복수의 칼날로 최가라는 그놈을 단련하려는 게 아니겠느냐?”

    즉, 중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선마궁의 힘을 이용해 최준혁이란 식아의 주인을 돕고 있다는 말.

    “그걸 알면서도 그냥 두고 보신단 말씀이십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마선경이 되묻자, 사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에게 수단이 생겨야 나를 찾아올 것 아니냐? 자신감이 붙을수록 나를 찾는 시일이 가까워지는 것이지.”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쥐새끼 같은 적마를 가졌으니, 그놈이 직접 오지 않는 한 잡을 방도가 없지 않겠느냐?”

    ***

    흑회색으로 뒤덮인 흑석대륙의 끝자락.

    대륙을 횡단해 뇌명숲에 도착한 준혁은 숲을 경계에 두고 잠시 비행 법기를 멈췄다.

    ‘여기까지가 한계군.’

    대륙의 반대 끝인 서봉산맥에 심어둔 적매의 불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 말인즉 권능을 최대치로 발휘한다면 지금 자리에서 그곳까지 단번에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뇌명숲을 넘어가면 적매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쉬움보다는 기쁨이 먼저였다. 흑석대륙이 다른 대륙에 비해 작다고는 하나 대륙은 대륙.

    수년을 쉬지 않고 날아가야 할 거리를 단숨에 건너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준혁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말없이 서 있자, 소화여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니요. 이제 뇌명숲을 건너 태왕문으로 갑시다.”

    질문을 일축한 준혁은 뇌공지신으로 비행 법기를 보호했고, 일행을 이끌고 뇌명숲 안으로 향했다.

    그렇게 평탄한 이동을 지속해, 태왕문에 당도한 준혁은 태식을 만나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전송진을 만들고 있는 제무무를 방문했다.

    그리고는 진척 상황을 보고받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묘립성과 대화성을 거쳐 단숨에 천운대륙의 고문성까지 이동했다.

    중간에 소우자가 잠시 쉬고 갈 것을 권유했지만, 준혁 일행은 도망치듯 빠져나와 버렸다.

    ‘역시, 빨리 전송진을 완성해야겠어.’

    앞으로도 대황대륙에 방문할 일이 잦을 듯했고, 지구와의 통로를 만든 후엔 더더욱 필요성이 느껴졌다.

    태왕문에서 만난 제무무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공간석의 부재로 크게 진척되는 건 없어 보였기에 빠르게 재료를 공수해야 함을 다시금 느꼈다.

    “정말 천휴림으로 가실 건가요?”

    고문성에 도착 후, 준혁은 바로 천운성으로 이동하지 않고 성내 수사들이 기거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두 여인에게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전했다.

    “위험할지 몰라 저희만 따로 이곳에 머물라는 거죠?”

    걱정 가득한 소화여의 눈빛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천휴림주가 어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으니 미리 준비할 뿐이오. 나야 적마 덕에 운신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대들은 아니니.”

    운신이라 표현했지만, 정확히는 도망.

    최강자 계열인 천휴림주가 자신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대막리의 초청을 보자면 선의가 느껴지긴 했지만, 림주의 첫 번째 제자인 천운성주가 자신의 앞길을 강제로 막으려고 했던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으니 말이다.

    만약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면 애초에 상위 수사인 천휴림주를 만날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을 그였다.

    “그럼 다녀올 테니 염려 마시오.”

    잠시 후, 두 여인을 안심시킨 준혁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전송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차례를 기다리다 전송진 위에 올라섰고, 이내 빛이 되어 아스러지듯 흩어져 버렸다.

    사실 두 여인에겐 적마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준혁에겐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그랬기에 천휴림주가 아니라 천신라를 만난다 해도, 이제 자신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미리 준비만 해둔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막아설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준혁이 전송진에 올라탄 그 시각, 두 여인이 머무는 거처 지하에선 작은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

    천운성, 전송실.

    사방이 막힌 전송실에 빛이 터져 나오다 사그라들었고, 석실 중심에 새겨진 진법 위엔 어느새 사내 한 명이 나타나 있었다.

    사내는 소화여 등을 떠나온 준혁이었다.

    “오랜만이군.”

    천운성에 도착한 준혁은 짤막한 감상을 내뱉고는 전송진에서 내려와 전송실 한쪽에 자리했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말없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가 찾아왔다.

    우우웅-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무형의 기운이 전송실을 뒤덮자, 전송실 담당자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당황했다.

    “어? 어? 갑자기 이게 무슨?”

    준혁은 그 모습에 예전 담당자가 생각나 피식 웃고는 자신 역시 기세를 살짝 흘리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했다.

    잠시 후, 예전과 다르게 전음부가 아닌 영역분신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무형의 힘에 갇힌 전송실 안으로 이동해 왔다.

    스앗-

    상대는 전송실 안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누군갈 찾았고, 준혁과 눈이 마주치자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더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대기하기만 했다.

    “손님을 기다리게 할 셈입니까?”

    분신의 행동이 무얼 뜻하는지 예상한 준혁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전송실 한쪽의 허공이 물컹하게 변하더니 그곳에서 호화로운 장식으로 뒤덮인 듬직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선인치고는 살짝 통통한 느낌이었는데, 후덕해 보이는 게 사람이 좋아 보였다.

    다만 손가락, 손목 할 것 없이 각종 보물로 치장하고 있어서, 욕심이 많은 상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내는 모습을 드러낸 후, 준혁을 슬쩍 쳐다보더니 사람 좋은 미소로 반겼다.

    “이제야 이렇게 만납니다. 참으로 바쁘신 분입니다.”

    인사인지 평가인지 모를 말에 준혁은 살짝 눈인사하며 답했다.

    “예전 일로 마음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때는 워낙 바쁜 일이 있다 보니 급하게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데 무슨 일이셨길래 그리도 저를 애타게 붙잡으려 하신 건지요?”

    준혁이 사과인 듯 예전 일을 따지자, 사내는 대답 없이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손을 가볍게 저었고, 전송실을 감싸고 있던 무형의 기운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기엔 예가 아닌 것 같은데, 제 거처로 가시지요.”

    이번엔 준혁이 도망이 아닌 손님 자격으로 온 것으로 판단한 듯, 상대는 도망을 저지하기 위해 주변을 막고 있던 힘을 수거한 후 말했다.

    그리고는 당연히 준혁이 따라올 거라 여긴 듯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허공 한쪽을 물컹하게 만든 후 사라져버렸다.

    “흥. 알아서 찾아오라 이건가?”

    준혁은 상대의 태도에 코웃음을 치고는 즉각 기감을 퍼트렸다. 어설픈 장난이 가소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대의 영역이 성 전체를 덮고 있어서인지 그의 존재를 전혀 감지해낼 수 없었다.

    “재밌군.”

    손님으로 온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듯한 상대의 태도에 준혁은 기감 안에 적지주의 권능을 더했다.

    그러길 잠시. 씨익 웃으며 한 걸음을 옮겼고, 그 순간 적마의 권능이 발동되며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스앗-

    한편. 각종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

    특유의 이동 수단으로 거처에 도착한 천운 성주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비죽이고 있었다.

    “어디 동급 수사들을 간단히 처리한 능력 좀 확인해볼까?”

    예전에 자신이 그를 놓친 건 수련 중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일.

    이번엔 그때의 앙갚음을 대신해 고생을 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비웃음을 머금은 채 푹신한 의자로 걸어가려는 그때.

    스앗-

    허공이 갈라지며 준혁이 태연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준혁은 마치 친구 집에 집들이라도 온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상평을 내뱉었다.

    “오호,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화폭에 담긴 기운이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순간, 흠칫한 천운성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그렇지요. 제 유일한 취미가 그림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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