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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54화 (354/408)

354화. 재회 (3)

‘이게 그 착화방이구나. 이것 또한 이곳에 있었다니.’

드넓은 선계에서도 마선을 보기란 어렵고 드문 일이었는데, 또다시 지구에서 마선을 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구지대륙이 하계로 떨어져 나가기 전, 그곳에 이토록 많은 마선들이 왜 모여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준혁은 한참 동안 착화방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쿠라의 시선에 결국 그것을 다시 내밀었다.

“욕심이 없으신 분인데, 유달리 동요가 느껴지네요.”

그 모습에 사쿠라는 거절 의사를 밝히며 손을 저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가지셔도 돼요. 어차피 수행이 너무 올라 다른 이에게 주려고 했었거든요.”

계면의 압박은 연형기에 오른 시점부터 시작해, 수행에 비례해 점점 강력해졌다.

그녀 입장에선 그렇지 않아도 몸에서 떼어놓으려고 했던걸, 준혁에게 줄 수 있어서 기뻤다.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최 수사도 저희에게 아낌없이 베풀었잖아요? 특히 명혼단이란 단약을 체화시키고 나서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 대단한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 가시다니.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비승하기 전,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명혼단을 하나씩 주었고, 다른 단약들도 아낌없이 풀었던 준혁. 그가 베푼 선행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착화방이 수도자라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길 만큼 대단한 보물이었지만. 사쿠라가 어떤 마음으로 주려는지 알 수 있었기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손끝에서 금빛 실을 뿜어내 착화방을 꼼꼼하게 감싸고는 작게 축소해 삼켜버렸다.

잠시 후, 사쿠라와 두런두런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 사람들이 다가왔고, 준혁은 오랜만에 보는 이들을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

다만 마음으로만 웃음뿐, 분광소로 현신한 분신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

“정말 오빠 맞지?”

“잘 지냈느냐? 수행을 보아하니 그동안 게을리하진 않은 것 같구나.”

“늙은이 같은 말투를 보니 딱 우리 오빠네. 근데, 뭔가 차가워. 오빠가 아닌 거 같아.”

마선문으로 자리를 옮긴 후,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최나연이 의심을 시작하자, 준혁은 현재 지구로 내려온 신체가 본인의 몸이 아닌 분신으로 만들어낸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는 선계로 비승한 후 겪었던 크고 작은 얘기를 가볍게 들려준 후, 동생을 비롯한 여러 인물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럼 오빤 지금 화신기야?”

“최 수사. 아까 그 얘긴 뭔가요? 의지라니? 다음 경지를 위해선 꼭 필요한 얘기 같은데 자세히 좀 들려주세요.”

서로 간에 안부 인사가 끝나갈 무렵,

준혁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지 최나연과 사쿠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천이화도 간간이 말을 덧붙였는데, 청명만이 다른 이들과 함께 한쪽에서 조용히 시립할 뿐이었다.

“화신기라…. 그래, 그렇게 생각하려무나.”

삼경에 이어 삼선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얼마나 많은 질문이 쏟아질지 몰랐기에 준혁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쿠라에게도 말을 아끼며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알려드리는 건 어렵지 않으나, 아직 그대에겐 이릅니다. 의지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우선은 가진 공법을 더 포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노력하십시오.”

“포괄적이라 하심은?”

“이런 걸 말합니다.”

사쿠라의 질문에 준혁이 한 손을 내밀자 그의 손끝에서 하얀 꽃송이가 피어났다.

영기로 만든 환영이었다.

준혁이 만든 꽃송이는 영기파동과 함께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를 띠다, 갑작스레 검게 변하며 마기를 퍼트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화기를 내뿜다가 다시 냉기로 변하며 얼음꽃이 되었다.

그는 얼떨떨해하는 사쿠라에게 얼음꽃을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

“연형기에서 수행을 더 올리기 위해선 오행을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수사께선 목기를 다룰 텐데, 이젠 다른 기운들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화기나 수기를 다루는 공법을 익히란 건가요?”

“그것도 방법이지만, 오히려 더 수행이 높아졌을 땐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지금 익힌 공법을 다른 기운으로 대체하는 연습을 하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준혁도 사신들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얼떨결에 오행을 다루게 되었고, 그랬기에 쉽게 소천경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흑마지에서 수행을 올리는 데 실패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을지 몰랐다.

그는 사쿠라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덧붙이며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술법들과 이론을 따로 모아 건넸다.

“청명, 우두커니 서서 뭣 하는 것이냐. 가까이 오거라.”

잠시 후, 사쿠라가 건네받은 이론과 심득을 소화하기 위해 생각에 잠기는 듯 보이자, 준혁은 청명에게 손짓했다.

청명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총알처럼 튀어와 넙죽 엎드렸다.

“아랫사람들도 보고 있는데 일어나거라.”

실질적인 마선문의 주인인 사쿠라가 있다지만, 어쨌든 표면상으론 청명이 문주였고, 사쿠라 역시도 그를 문주로 대했다.

그랬기에 준혁은 청명에게 명령했고,

“어? 어?”

엎드려 있던 청명은 꼭두각시 인형이라도 되는 듯 삐걱대며 몸을 일으켰다.

엎드리고픈 청명의 의지를 무시하고 왕의 힘이 발현된 것이었다.

몸을 일으킨 청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다가, 신색을 바로 하며 허리만 깊이 숙였다.

“어, 어르신. 죽기 전에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정말 여한이 없습니다.”

청명은 눈물을 보이고 있었는데, 만남에 대한 반가움 같기도 했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처럼 보이기도 했다.

준혁은 그런 청명에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참 후.

“허어, 대부분 귀천하였구나.”

이어지는 청명의 보고 아닌 보고에 준혁은 깊은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자신이 선계로 떠나기 전, 명혼단과 단약을 준 가까운 이들만 수행이 올라 살아있었고, 대부분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괜스레 마음이 헛헛했다.

그리고 조금 전 청명이 보인 눈물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었다.

청명은 명혼단과 수많은 단약을 받았음에도 결국 완영기의 벽을 뚫지 못한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원영기 중기에 겨우 발을 걸친 수준.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준혁에 대한 반가운 감정이 폭발한 것이었다.

“너는 여전히 제 몸을 챙기지 않는구나.”

그런 청명이 안쓰러워 비승 전에도 강제로 그의 수행을 올린 적 있던 준혁은 왠지 모를 씁쓸함이 더해졌다.

수행을 올리지 못한 이유가 재능 탓도 있겠지만, 더 주요한 건 마선문을 꾸리며 실무에 집중했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헤에, 그래도 이렇게 뵈니 너무 좋습니다요. 오래 머물다 가실 거지요?”

어느새 눈물 자국을 말려버린 청명이 두 손을 비비며 말을 꺼냈다.

준혁은 피식 웃었다.

“그럴 순 없을 것이다. 모두 잘 지내는 걸 확인했으니 돌아가야지.”

“오빠!”

“최 수사!”

청명의 질문에 답한 순간, 고막이 터져나갈 듯 소릴 지르는 두 여인 때문에 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당장은 아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걱정 말거라. 그러고 보니 나 수사와 도천이 안 보이는구나.”

통유대문의 나설헌과 무위각을 맡고 있던 도천.

도천 역시 준혁에게 개인적인 단약을 받은 인물이었고, 그의 재능이라면 분명 살아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나설헌은 여서령이 죽기 직전 그녀를 지켜줬던 인물이었기에, 기억을 되찾은 주서령이 몇 번 언급한 적도 있어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다.

“아! 도 각주는 몇 해 전 폐관에 들어가겠다며 섬을 떠났고, 나설헌 수사는 약학원으로 갔습니다요.”

“약학원?”

“예, 그곳의 원장을 맡게 되어…. 대신 마선문을 완전히 떠난 건 아니고, 저희와 밀접히 교류하고 있습니다요.”

‘약학원이라…. 잘 어울리는군.’

마선문에서도 단약을 제조하는걸 도맡아 하고 있었으니 언뜻 이해 가는 향방이기도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던 준혁은 다행히 둘 다 좋은 소식이었기에 절로 고개를 끄떡였다.

“좋구나. 좋아.”

잠시 후, 청명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준혁은 조용히 섬을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졸라대는 동생에겐 시간이 많으니, 일을 마치고 함께하자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

여느 날처럼 우중충한 습기를 머금은 영국 상공.

그곳에 번쩍하는 빛무리가 생겨났고, 미약한 파동과 함께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반듯한 얼굴에 무표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인들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지구에 존재하는 마선들을 회수하러 온 준혁이었다.

“아직 남아있으려나.”

우선 제이엘을 만나 그녀가 계약한 장구수를 우지의 힘으로 분리해낼 계획이었다.

당연하게 강제로 행할 생각은 없었고, 지구에서는 감히 구할 수 없는 물건들로 대신해 그녀를 설득할 계획이었다.

“응?”

하지만 그런 그의 계획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영국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준혁은 곧장 의지를 퍼트렸고, 자신이 그녀에게 남겨놓은 표식을 찾았다.

하지만 찾게 된 건 그녀가 아닌 텅 빈 석실에 말없이 앉아있는 혼백이 사라져버린 빈 몸뚱이였다.

‘그녀도 결국….’

청명에게 전해 듣기로 비경에서 상처를 입은 후, 그 후로 치료에만 힘쓰고 있다고 했는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생을 마감한 듯싶었다.

“지구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 수사치고는 허망하게 갔구나.”

어느새 제이엘의 시체를 마주 보고 선 준혁은 잠시 명복을 빌어준 후, 그녀에게 말했다.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걸 보니, 그녀가 귀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봅니다?”

준혁이 죽은 자에게 말을 걸었다고 하기엔,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고, 잠시 후 그의 말에 허공에서 거대한 장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파지직-

장어는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전기를 내뿜으며 의외란 듯 준혁을 향해 알은체를 했다.

“그때 봤던 인족이군, 비승했으면 거기서 잘 먹고 잘살 것이지,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내려온 거지?”

장어는 준혁의 모습을 살피다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도대체 네놈은 뭐 하는 놈이지? 그땐 분명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이 혼잡한 기운들은 뭐란 말이야. 분명 익숙한 향기도 나는데….”

예전에 만났을 때 준혁이 가진 심영근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분광소의 몸이기에 그가 가진 기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분광소뿐 아니라 삼청조와 귀원패, 거기다 우지와 준혁이 가진 혼백의 힘까지.

다만 수많은 힘이 준혁의 능력으로 혼합되어 있었기에, ‘이거다!’라고 특징지을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의 기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장구수 수사. 아니 마선이라고 불러드릴까요?”

“흥. 다 알면서 능청스럽기는. 말 돌리지 말고 말해보아라. 도대체 네놈은 뭐지?”

장어의 거듭된 질문에 준혁은 잠시 턱을 괴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다음 계약자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제이엘이 사라진 이상, 굳이 어렵게 돌아갈 필요 없었기에 준혁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와 함께 선계로 가시지요.”

‘내 분신 중 하나가 되어.’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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