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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53화 (353/408)
  • 353화. 재회 (2)

    준혁이 흑석대륙 서봉산맥에 도착했을 시기.

    그가 가려고 했던 하계면 지구에선 천지가 뒤집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르릉-

    끝도 없이 이어지던 영기구름이 회오리치듯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파도와 물보라가 섬을 집어삼킬 듯 요동쳤다.

    시간은 흘러 이윽고 영기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하늘 곳곳에 조그만 영기가 뭉치며 뇌전을 만들어 냈고, 그것들이 한 점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번쩍- 콰쾅!

    “드디어 계면의 압박이!!”

    섬 상공에서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무리의 사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한눈에 보아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완영기 초기 수사였는데, 먼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스승님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여인의 말에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사내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사쿠라 수사가 연형기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요? 이건 경사입니다요.”

    “경사인 줄 누가 모르나요? 다만 오빠가 알려준 방법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방법이 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문제죠. 걱정되지도 않으세요?”

    걱정하는 여인 옆에서 한마디 거들던 사내는, 단발머리 여인이 톡 쏘는 말을 내뱉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마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여인에게만은 절대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나연아, 청명 문주께서도 당연히 걱정하시지. 왜 그렇게 말을 해?”

    잠시 후 아름다운 여인이 단발머리 여인을 나무라자, 좌중은 분위기가 서먹해졌다.

    “아, 언니 말이 맞아요. 스승님이 너무 걱정돼서. 죄송해요. 문주님.”

    사적으론 언니였지만, 실질적으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지도해준 유일한 스승.

    단발머리 여인에겐 먼바다에서 수행을 올리는 사람이 너무 소중했다. 그랬기에 평소 하지 않던 실수가 나왔던 것이다.

    단발머리 여인은 사내에게 사과한 후, 입술을 내밀고 눈을 흘겼다.

    “아, 아닙니다요. 아가씨. 아가씨 말이 맞습죠.”

    모여있던 이들 중 선두에 서 있는 자들은 익숙하게 보던 이들이었다.

    사내는 마선문의 문주인 청명이었고, 그 옆엔 준혁의 동생인 최나연. 다른 한 명은 준혁의 제자인 천이화였다.

    그리고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먼바다에선, 준혁이 떠난 후 실질적인 마선문의 주인으로서 모두의 기둥 역할을 한 사람.

    현 시간까지 지구 최강이라 평가받는 사쿠라가 수행을 올리는 중이었다.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계면의 압박은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어요. 믿고 기다려야 해요.”

    사쿠라의 의자매이자 제자인 사유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자, 천이화는 단호하게 말하며 좌중을 다스렸다.

    그녀의 말대로 연형기에 오른 후 생기는 계면의 압박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 보물이 기연이라 여겼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천이화의 만류에 사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뇌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준혁이 남겨주고 간 단약 덕분에 마선문의 주요 인물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 원영기 끝자락이나 완영기 초기에 머물고 있던 상황.

    사쿠라만이 우연히 얻은 유적의 보물로 인해 완영기를 뚫고 연형기에 올라버린 것이었다.

    “이럴 때 오빠가 있었다면 쉽게 해결해줬을 텐데….”

    잠시 후, 쉬지 않고 떨어지는 뇌전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상황.

    최나연은 사쿠라가 어떻게 될지 몰라 초조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준혁을 찾았다.

    당연히 그가 나타날 거란 기대는 하나도 없었고, 그저 기댈 곳을 찾아 절로 부르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아앙-

    마치 그녀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천이화를 비롯한 주변 마선문 인물들이 동시에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먼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는 관심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격렬한 영기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화아악-

    직후, 허공에 균열이 일어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빛무리에 감싸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오, 오빠?”

    그 모습에 최나연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렸고, 하늘의 균열에서 나타난 누군가는 그 목소리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자는 이내 시선을 돌려 먼바다를 바라보더니, 그곳으로 급히 몸을 날렸다.

    “어, 언니. 바, 방금 오빠 맞죠?”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뻐끔거리는 최나연의 말에 천이화가 아닌 청명이 대신 대답했다.

    “맞습니다요! 맞아요! 어르신이 분명합니다요!!”

    대답하는 청명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

    “쉽지 않네.”

    콰쾅-

    상공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소규모 영기 뭉치.

    그곳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뇌전은 생각보다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뇌전이 품고 있는 힘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 막 수행이 올라 안정을 취해야 할 상황에서 계속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몸 안에 뭉쳐놓았던 막대한 영력이 흩어져 버릴 테고, 그럼 다시 완영기로 떨어져 버릴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수행이 퇴행하고 난다면, 다시 연형기에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거였다.

    “젠장! 이래서 준비되기 전엔 미루려고 했었는데! 욕심이 과했어.”

    아름다운 외모에 신경질적인 힘줄이 몸 곳곳에 돋아나 있는 여인.

    한 떨기 백합처럼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입은 누구보다 거친 여인.

    그녀는 사쿠라였다.

    사쿠라는 연속으로 떨어지는 뇌전을 간신히 막아내며, 준혁이 전해준 무영기를 다루는 방법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하지만 준비가 너무 부족했는지, 무영기를 만들어 낸다는 건 가당치도 않아 보였다.

    “최 수사는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수행을 안정시킨 거지?”

    그러는 사이 계면의 압박은 점점 강해져 갔고, 사쿠라는 결국 무영기를 다뤄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전신의 영력을 뽑아내 뇌전에 맞섰다.

    “빌어먹을, 그래. 어디까지 강해지나 한번 해보자! 이 빌어먹을 하늘아!”

    그녀는 자신의 끝이 별로 좋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아등바등 버텨내는 것보단 차라리 모든 걸 쏟아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전신의 영력을 모아 방어태세를 취함과 동시에 곳곳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영기 뭉치를 박살 내버릴 각오로 힘을 발산하고 있었기에,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 드릴까요? 사쿠라 수사.”

    덕분에 조금 떨어진 곳에 또렷하게 들리는 무미건조한 음성에 전신이 바짝 얼고 말았다.

    이토록 가까이 다가왔음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에 소름이 돋은 것이었다.

    사쿠라는 계면의 압박을 막기 위해 준비하던 보호막을 소리가 난 방향으로 전환하며 급히 몸을 틀었다.

    “수행을 올리는데 감히 누가! 방해를 한단 말이!!!”

    몸을 돌려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히며 휘청거리고 말았다.

    슈악-

    그 순간, 허공에 떠 있던 사내가 번쩍하고 움직이더니 사쿠라의 코앞까지 다가왔고, 허둥대던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비행을 유지하지도 못하다니. 수련이 부족해 보입니다만?”

    사내는 분명 반가운 듯 말하고 있었지만, 표정과 목소리는 너무 차가워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최, 최 수사예요?”

    어느새 사쿠라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리 다시 다소곳하게 돌아와 있었다.

    허공에 떠 있던 사내, 준혁은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눈을 맞췄다.

    콰쾅!

    하지만 눈빛 교환이 오가기도 전, 상공에 만들어진 영기 뭉치에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뇌전은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태워버릴 것처럼 위력적이었는데, 이미 피하기도 늦어 보였다.

    허나, 준혁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고, 좀 전까지만 해도 수행이 떨어질 걸 걱정하던 사쿠라 역시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뇌전이 두 사람을 덮치기 직전.

    “사라져라.”

    준혁은 사쿠라의 손을 놓아주며 가볍게 하늘을 향해 손을 저었고,

    그 순간 영기 뭉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준혁 때문에 당황하고 있던 사쿠라는 그가 무영기를 이용해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영기 뭉치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자 놀라움에 입을 닫지 못했다.

    “별거 아닙니다.”

    사실 지금 준혁은 분광소 안에 여러 마선의 힘과 자신의 혼백 일부만을 담은 원영기 수준의 나약한 상태였다.

    영기가 부족한 하계 면에 진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랬기에 분신의 몸으로 무영기를 다룰 수 없었고, 혼백이 지닌 의지로 영기 자체를 흩어버린 것이었다.

    “잠시뿐입니다. 제 의지로 영기가 뭉치지 못하게 막고 있긴 하지만, 계면은 계속해서 수사를 막으려 할 겁니다.”

    “의지요?”

    의지로 영기를 다루는 건 지금의 사쿠라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얘기는 나중에 하고.”

    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쿠라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반항하지 않자 손가락을 이마에 가져갔다.

    “아…!”

    그 순간 사쿠라는 지금껏 이해하지 못했던 무영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깨달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생을 수련하고 이해해야 할 심득을 억지로 주입받으니 몸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떠는 것이었다.

    잠시 후. 준혁이 손가락을 때고 지켜보고 있자, 사쿠라는 좌정한 채 쉬지 않고 수결을 짚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야 몸을 바로 했고, 그 순간 그녀의 피부 위로 얇은 보호막 같은 것이 나타났다가 조용히 몸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때서야 준혁은 사방으로 퍼트렸던 의지를 거둬들였다.

    ‘영역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대천경에 오른 후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상시적 영역을 사용하던 준혁은 마치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전부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동시에 영역과 의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던 사소한 깨달음을 얻고는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

    와락-

    무영기로 안전을 보장받은 사쿠라는 전신의 영력을 해제한 후 준혁을 한껏 껴안았다.

    예전처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소극적으로 마음을 내비치던 것과 달리, 준혁이 으스러져라. 꽉 껴안은 채 몸을 밀착했다.

    선계로 향하기 전부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던 준혁은 바로 그녀를 떼어놓지 않고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크흠.”

    한참 후 헛기침과 함께 그녀를 떼어낸 준혁은 멀리서 하나둘 다가오는 기운을 느끼면 사쿠라에게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제가 제때 온 것 같습니다.”

    “맞아요. 마치 저를 살리기 위해, 운명처럼 말이죠.”

    수행이 떨어질지언정 죽을 위험은 아니었기에 준혁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헌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현재, 식검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아 마선을 판별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계면 간 통신이 가능한 삼청조의 능력 덕분에 선계에서 지켜보고 있는 본체의 감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식아가 전해주는 식욕까지 전달되었다.

    그리고 식아가 식욕을 드러냈다면 그건 단 한 가지 이유뿐.

    “아. 이게 제 수행을 올려준 법기예요.”

    사쿠라는 숨길 게 없다는 듯, 손목을 앞으로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는 마선이었다.

    정확히는 마선기록방처럼 생명체가 아닌 법기로만 존재하는 마선.

    사쿠라는 아무렇지 않게 팔찌를 벗어 준혁에게 넘겨주었다. 한번 확인해 보란 듯이.

    “그걸 차고 있으면 주변 영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몸 안에 쌓을 수 있고요.”

    사쿠라의 설명을 듣고 난 준혁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넘겨준 팔찌.

    그건 상위 서열에 올라있는 마선 중 하나.

    바로 수행 속도를 수십 배 올려준다는 착화방(着和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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