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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52화 (352/408)
  • 352화. 재회 (1)

    뇌명숲을 건넌 준혁 일행은 봉황족에 이르는 길까지 순탄한 여행을 했다.

    비행 법기 위에 모여 앉아 많은 얘기도 나누고, 수련도 하면서.

    다만 대륙 하나를 건널 때마다 몇 년씩 허비해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준혁은 제무무가 하루빨리 전송진을 완성해주길 기대했다.

    “저기 보여요.”

    그렇게 몇 년을 날아 대황대륙에 도착한 일행은 먼저 백랑족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조호랑이 부족 사람들과 해후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소화여마저 남겨두고 준혁 홀로 봉황족으로 움직였다.

    ***

    “드디어 온 겐가? 약속은?”

    봉황족 수장 명왕은 준혁을 보자마자 인사가 아닌 약속 이행의 여부를 확인했다.

    “제가 설마 잊었다 여기셨습니까?”

    “한동안 소식이 끊겼지 않은가? 그러니 초조해질 수밖에.”

    준혁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대화성이 침공당했다는 건 명왕의 귀에까지 들어간 상황.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중괴의 안 좋은 소식과 준혁의 무소식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준혁은 기대감 가득한 그에게 미소로 화답한 후, 명왕지보를 꺼내 날려 보냈다.

    “아아!”

    명왕은 다짜고짜 말없이 명왕지보를 받아 가더니 두 눈을 감고 진품 여부를 검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준혁을 향해 한 손을 어깨에 올리며 넙죽 허리를 숙였다.

    어깨에 손을 올리는 행위는 영수족이 고마움을 표할 때 하는 행동이었고, 허리를 숙이는 건 인족의 인사였다.

    “고맙네, 고마워. 정말 고마우이. 평생 다시는 이것을 볼 수 없을 줄만 알았건만. 앞으로 자네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게나.”

    “모든 물건은 주인이 따로 있는 법. 이제야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갔으니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준혁은 상대의 인사를 예의 바르게 받아넘겼다.

    “아니네, 우리 봉황족의 미래가 걸린 물건이었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나 명왕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앞으로 우리 봉황족은 자네의 맹우일세.”

    하지만 명왕은 몇 번이고 준혁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길 원했고, 준혁은 적당히 사양하다가 속마음을 꺼냈다.

    “그럼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긴 한데….”

    “뭔가? 말해보게?”

    부탁이란 말에 화색을 드러내는 명왕.

    그 모습에 살포시 웃어 보인 준혁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씩씩대는 산들바람과 청호를 영수대에서 꺼냈다.

    “이 아이들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응? 이 아이들은 누…. 어? 잠깐? 이 기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명왕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산들바람의 기운을 느끼고 더 혼란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산들바람의 몸속에 내재된 주작의 기운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아이가 이곳에서 수련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말입니다. 봉황족 수사들이 화기를 다루는 데 뛰어나다 했으니, 분명 도움이 되는 장소가 있겠지요?”

    명왕에게 금지에 대해 대충 설명을 듣긴 했지만, 화정에 대한 얘긴 꺼내면 안 됐기에 은근슬쩍 돌려 말했다.

    “예를 들면, 우지란 분이 수련에 도움을 받는 곳 같은….”

    준혁의 예상대로, 어떻게든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 하던 명왕은 단번에 금지에 대한 얘길 꺼냈다.

    “물론이네! 좋아! 내 특별히 이 아이를 그곳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더불어 내 직접 가르침을 내리겠네.”

    “감사합니다.”

    명왕이 의도대로 움직이자, 이번엔 준혁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챈 산들바람이 크게 노했다.

    “싫어!! 어딘지는 몰라도 안 갈 거야!”

    준혁은 그런 산들바람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몸을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었지. 자유를 줄 테니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수련했다고! 했어! 했어! 큰둥이 네가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니깐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나랑 흰둥이랑 나름 열심히 했다고! 우리가 괜히 초태해로 들어가 괴수 사냥을 한 건 줄 알아? 그건 우리 나름대로 수련 방법이었다고!”

    ‘아…. 좀이 쑤셔서 가만히 있질 못하니 실전으로 수련을 대신한 건가?’

    왠지 산들바람답다는 생각에 준혁은 실소가 나오려 했지만, 꾹 눌러 참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건 잘했다. 다만 내 마음도 이해해 주려무나.”

    “무슨 마음!!”

    웃는 준혁에게 산들바람이 톡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은 수그러들어야 했다.

    “내가 너와 청호에게 수련을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너희 두 녀석이 삼경에 올랐다고는 하나, 결국 유한한 삶이 아니더냐? 반대로 나는 무한의 삶을 살아야 하고 말이다.”

    “......”

    “나는 영원히 너희들과 함께하고 싶다.”

    “큰둥아….”

    씩씩거리던 산들바람이 감동한 듯 눈시울을 붉히자 준혁은 이때다 싶어 그들에게 최종 목적을 선정해주었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진선에만 오르거라. 그 후엔 너희 둘에게 걸린 모든 제약을 풀어주고 넓은 세상을 맘껏 돌아다니게 해줄 테니.”

    지금도 두 영수가 마음먹고 여행을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수백 년 논다고 해서 진선으로 가는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준혁에게 두 영수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기에, 계속해서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잠깐, 헌데 최 선사. 이 아이는 금지 안으로 보내면 크게 성장할 게 분명하네만. 저 아이는….”

    두 영수가 준혁의 말에 수긍하는 듯 보이자, 이번엔 명왕이 끼어들었다.

    화기로 가득한 명왕의 금지는 산들바람에겐 수련하기 최적의 장소였지만, 청호에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아 이 아이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청호 저 녀석은 태백랑께 맡기려고 합니다.”

    태백랑이란 말에 명왕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준혁은 그 모습이 무얼 뜻하는지 알기에 은근슬쩍 자존심을 건드는 발언을 덧붙였다.

    “지금은 두 녀석이 비슷한 수준이지만 아마 봉황족의 도움을 받는 이 녀석이 더 크게 성장하겠지요?”

    “아무렴. 그걸 말이라고 하나? 크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산들바람에게 삼청조를 건넨 준혁은, 금지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혼자 있는 게 힘들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겨두고 봉황족의 영토를 벗어났다.

    ***

    청호를 데리고 백랑족으로 돌아온 준혁은 태백랑에게도 똑같은 도발을 건넸다.

    “흥! 두고 보아라. 이 꼬맹이를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시킬 테니.”

    자신이 명왕보다 뛰어나다고 항상 말하던 태백랑은 준혁의 도발에 쉽게 넘어왔다.

    준혁은 그런 그에게 청호가 익힌 백호의 사신결을 전해주고 몇 가지 조언도 덧붙였다.

    “호오, 네 말대로 일부분은 우리 백랑족과 비슷한 것이 있구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말거라. 수사 구실 할 수 있게 제대로 굴려줄 테니.”

    조말랑이 왜 세상 구경을 하겠다고 부족을 도망쳐왔는지 들었었기에, 준혁은 잠시 안타까운 눈으로 청호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왜 그런 눈으로….”

    “아니다. 산들만 수행이 오르고 네 녀석은 제자리라면…. 그땐 같이 놀고 싶어도 못 놀겠지? 그러니 열심히 하거라.”

    “네!”

    주도적으로 놀려는 산들바람과 다르게 청호는 주위에 쉽게 물드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태백랑과 함께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컸다.

    다만 자신이 명왕과 태백랑을 끌어들여 두 영수의 수행을 돕는다고는 하나, 진선에 오를 수 있냐 마냐는 하늘에 달린 일.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수련에만 매달려도 닿지 못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누군가가 아닌 대부분의 수사가.

    ‘부디 진선에 오르거라.’

    화정을 이용해 수련할 산들바람과 태백랑의 무식한 강체공을 익히며 성장할 청호.

    준혁은 두 영수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

    명왕지보를 돌려주고, 영수 문제를 해결한 준혁은 아마르곤에게 방해가 될까 봐 그와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호랑과 소화여를 대동한 채 왔던 길을 거슬러 움직였다.

    “이제 천휴림으로 가시나요?”

    소화여의 질문에 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 잠시 해야 할 일이 있소.”

    “그게 무엇인가요?”

    천운대륙으로 넘어가기 전 다시 대화성에 들르는 건가 했던 소화여의 생각과 달리, 대황대륙을 벗어난 준혁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쪽으로 가봐야 계속되는 검회색 땅만 이어졌기에, 소화여는 물론이고 조호랑도 의문을 드러냈다.

    그렇게 별것 아니란 듯 비행 법기를 조종한 준혁은 흑석대륙 동쪽 경계에 도착했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봉우리로 이동했다.

    “이곳은 서봉산맥….”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조호랑이 무언가를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

    “서봉산맥이면…. 상공께서 비승한 장소 아닌가요?”

    “비승한 장소요?”

    얘기로만 들었던 일에 대해 언급되자 소화여도 관심을 보였다.

    준혁은 두 여인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이 내가 비승해 도착한 곳이오. 내가 있던 하계면과 이어진 유일한 곳이지.”

    “허면, 상공께선….”

    조호랑이 말끝을 흐리자, 준혁이 산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원래는 준비를 갖춘 후, 내가 왔던 곳으로 통로를 열 생각이었지만…. 어르신과 주 소저에게 일이 생긴 마당에 그럴 틈이 없을 것 같아, 이리 움직였소.”

    “아!”

    “일이 생겼다 하여 내 가족과 지인들을 모른 척 외면할 수도 없는 일. 통로는 무리지만 분신을 보내 그들에게 소식을 전할까 하오.”

    준혁이 비승하기 전 건네준 단약과 재료들이면, 분명 다들 수행을 올렸을 테고 아직까진 변고 없이 잘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지구는 선계와 달리 목숨이 위험할 만한 일이 벌어질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들에 대한 소식이라도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특히, 가까운 이들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납치되고 나자, 그러한 마음이 더더욱 강해진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긴 하지.’

    물론 실리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그건 두 여인에겐 밝힐 수 없는 문제였다.

    두 사람이 아무리 가깝다고는 하나, 식아가 다른 마선들을 잡아먹으며 강해진다는 건 말할 수 없었으니까.

    크게 욕심낸 적은 없었지만, 천신라를 상대하기 위해선 수행뿐만 아니라, 그의 근원인 마선기를 더 많이 보유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중괴가 전한 천신라의 진정한 권능에 대해 들은 뒤론 더더욱.

    그랬기에 흑석대륙에 왔으니 겸사겸사 일을 진행하려 한 것이었다.

    “잠시 물러나, 나를 지켜 주겠소?”

    잠시 후, 두 사람의 보호 아래 준혁은 서봉산맥 가장 높은 봉우리로 이동했다.

    처음 선계로 비승할 때 이후로 처음 오는 곳이었기에 감회가 남다르기도 했다.

    봉우리 정상에 내려선 준혁은 발끝으로 기운을 흘려보내며 지구의 천제단과 이어진 끈을 찾았다.

    통로를 만들 게 아니라면, 작은 끈만 찾아내도 자신의 분신을 내려보내긴 충분한 일.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준혁의 수행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집중해야 한다.’

    다만, 남들과 달리 그저 분신하나 딸랑 보내고 끝낼 일이 아니었기에, 준혁은 그 어느 때보다 초집중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계 면에 보낼 분신은 분광소를 이용해 원영기 수준으로만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삼청조와 우지의 권능을 집어넣어야 했고, 귀원패의 힘으로 몸을 보호하기까지 해야 했다.

    ‘됐다!’

    잠시 후, 마선들의 권능을 한데 모으는 데 성공한 준혁은 지구의 천제단과 이어진 끈을 찾아냈고,

    그 순간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외쳤다.

    “갈라져라!!”

    지잉-

    외침이 터져 나오자, 그의 손끝에서 붉은 광선이 뻗어나가더니 공간을 통째를 찢어버렸다.

    슈욱-

    그리고 찰나의 순간.

    달무리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분광소가 준혁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찢어진 공간으로 빨려들 듯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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