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48화 (348/408)

348화. 변고 (2)

사실 준혁이 급하게 대화성으로 돌아가는 것만 아니었다면 전왕문주 역시 살려줬을지 몰랐다.

진선에 오른 이상 금제만으로 충분히 그를 제어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혹시나 왕의 힘을 극복해버릴 위험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었기에 후환을 없앨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전왕문주는 운이 없었다고 할 만했다.

그렇게 전왕문주를 처리한 후 모습을 감추었던 준혁은 묘립성에 도착했고, 지체 없이 대화성으로 향하는 전송진에 올랐다.

“어엇! 최, 최 선사님!”

“수고가 많네.”

대화성에 도착한 준혁은 깜짝 놀라 인사하는 전송실 담당자를 가볍게 지나친 후, 소우자의 기운을 판별해 내고는 즉시 그에게 이동했다.

가까운 곳, 결계로 보호된 밀실에서 수련 중이던 소우자는 준혁의 등장으로 순간 기겁하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주군! 드디어 오셨군요!”

“어찌 된 일인지 상세히 말해주시게.”

소우자를 만난 준혁은 가타부타 안부 인사 따윈 뒤로한 채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소우자도 그런 준혁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빠르게 설명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찌 된 일인고 하니….”

준혁이 진선에 올라서는 의식을 마치고 수행을 안정시키는 과정에 돌입하자, 중괴는 주변을 한 번 더 정리하고 대화성으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소우자를 비롯한 중요 인물들에게만 준혁의 소식을 은밀히 전하고, 자신도 준비할 게 있다면서 폐관 수련에 돌입했다.

“문제가 터진 건 그 후 백여 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중괴가 돌아오고 1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선마궁의 궁주인 천신라가 마선경을 비롯한 몇몇 마선들과 함께 찾아왔고, 성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그들은 오자마자 성을 보호하는 결계를 가볍게 파괴하더니 성곽 일부분을 무너트렸다.

그 후에야 대화 의지를 보였고, 그들은 중괴와 준혁의 행방에 관해 물었다.

“주군에 대해 콕 집어 말한 건 아니었지만, 식아의 계약자를 대령하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자가 찾는 이가 주군이란 건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뿐이었기에 결국 중괴가 폐관을 깨고 나타났다.

그리고 모두의 우려와 달리 중괴는 천신라를 상대로 무력도발은커녕, 아무 반항 없이 그를 따라갔다.

‘어찌 식아의 존재를 알았단 말인가? 적마 때문일 거라 생각했더니….’

준혁은 의문을 묻은 채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어르신이 자처해서 그자를 따라갔다고? 그리고 그냥 물러나고?”

“예. 처음엔 그분과 주군을 함께 찾던 마선들이,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는 어찌 된 일인지 그냥 떠나더군요.”

소우자의 설명이 끝나자, 준혁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았다.

‘식아를 찾으러 왔으면서 그냥 돌아갔다고? 어르신이 그들에게 무언갈 제안한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상황은 중과가 적당히 거짓말로 상황을 유도했을 가능성이었다.

그들이 식아를 찾으러 사막이 아닌 대화성으로 왔다면,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뜻과 같았으니,

만약 중괴가 자신의 수련 장소를 대황대륙 어딘가로 거짓말했다면 그들도 순순히 물러갈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어르신께서 순순히 따라간 것도 그렇고 말이야.’

천신라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중괴가 아무 저항도 반항도 없이 그를 따라갔다면, 가능성은 세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절대 이길 수 없기에 몸을 수그리는 척한 것이거나.

다른 하나는, 어울리지 않게 준혁의 사람들과 대화성 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선마궁 세력에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평소 중괴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커 보였다.

다만, 중괴의 꿍꿍이가 무엇이든 간에, 대화성 일부가 무너지고 피해를 본 건 온전히 자신 때문이었기에 준혁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 준혁의 표정을 읽은 것인가? 소우자가 몇몇 보고를 통해 그를 위로했다.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없습니다.”

“피해가 없다고?”

“성곽 일부가 무너지긴 했고, 부상자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잃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범인들도?”

준혁이 의외란 듯 되묻자, 소우자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들은 일터가 아니면 대부분 성 밖, 집성촌에 거주하기에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자랑스러워하는 소우자의 모습에 준혁은 그가 자신을 꽤 위한다는 걸 느꼈다.

처음 성주 자리를 제안했을 때, 지나가는 말로 범인들의 처우도 신경 써주라 했었던 걸 기억하는 듯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아무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고위수사들은 범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기에 분명 집계되지 않은 죽음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의미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건, 분명 큰 피해는 없었다는 말이었다.

‘결국 그자와 승부를 내야 하겠구나.’

다시 한번 중괴의 경고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만나본 적도 없는 천신라의 대한 반감이 피어나고 있었다.

***

모든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준혁은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았기에, 많은 것들을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럼 주 소저는 어찌 된 것이오?”

준혁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소우자 역시 덩달아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중력괴 선사가 합류하고 난 뒤에 바로 돌아가려 움직이던 천신라가 갑작스레 그녀를 잡아갔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예,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대응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 무력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소우자가 고개를 숙이자 준혁이 손을 살짝 저어 그의 자세를 바로 했다.

깜짝 놀라는 소우자를 보며 말했다.

“그게 어찌 그대 잘못이겠는가? 나라 해도 별수 없었을 것이네. 하지만 이유 없이 그녀를 데려갈 일은 없었을 터. 그건 따로 알아봐야겠지.”

필요한 대화를 마친 준혁은 소우자를 격려해주고는 자리에서 물러나려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떠나려는 준혁에게 소우자는 급하게 옥간 하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이건 주군께서 떠나계시는 동안 주변 정세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하고 적루의 루주에 대한 것들도….”

“적루라, 그들을 잊고 있었군. 알겠네.”

“아! 그리고.”

몸을 돌린 준혁을 향해 소우자가 바닥에 부복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늦게나마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신 걸 감축드리옵니다.”

“고맙네.”

소우자를 향해 웃어 보인 준혁은 바로 표정을 바꾸며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

거처로 돌아온 준혁은 외부 인사의 방문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대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곤 중괴의 행동과 식아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여인의 방문으로 인해 고민은 풀어지고 말았다.

“오셨군요.”

평소 같았다면 와락 안겼을 조호랑이 조신하게 다가와 옆자리에 배석했다. 조호랑을 따라 소화여도 살그머니 다가와 자리했다.

준혁이 그런 그녀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망설이던 사이.

조호랑의 눈짓을 받은 소화여가 품에서 작은 옥돌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상공이 지금 궁금해하고 있을 것들입니다.”

준혁의 물음에 조호랑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그는 재빨리 옥돌을 이마에 대며 안의 내용을 파악했다.

그 순간, 중괴의 목소리가 서서히 밀려 들어왔다.

-이곳은 지금 난장판이 되어가는 중인데, 네놈은 수련 삼매경일 테지?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로 시작한 중괴의 전언.

-잘 듣거라. 네놈이 나에게 뭘 숨기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네놈이 천겁을 맞이하는 걸 똑똑히 보았다. 네놈 말대로라면 분명 네 번으로 끝났어야 할 천겁이…. 무려 열여섯 번이나 진행됐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아무것도 모르고 가까이 가다 천겁에 맞아 죽을 뻔했다 이놈아.

실제로 천겁은 수행을 올리는 수도자에겐 시련일 뿐이었지만, 그 외 인물이 천겁을 방해하려 하면 그자는 소멸을 각오해야 했다.

방해자는 수행을 올리는 수도자보다 수십 배의 저항을 받았기에 누구도 천겁을 해결해줄 수가 없었다.

중괴는 생각 없이 준혁에게 다가가다 천겁에게 방해자로 인식 받은 걸 투덜대는 것이었다.

-이유야 언젠간 네놈이 말해줄 거로 생각해 굳이 캐묻지 않겠지만,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바로 내 나머지 한쪽 눈을 네놈에게 주기로 말이다.

스르륵-

그 순간, 옥돌을 이마에 대고 있던 준혁은 화끈한 무언가가 이마를 통해 스며든다는 걸 느꼈다.

‘아차!’

소화여와 조호랑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기에, 게다가 마음이 급했기에 평소와 다르게 성급했고, 중괴가 옥간이 아닌 옥돌로 전언을 전한 이유를 간과하고 만 것이다.

중괴가 해로운 일을 행한 게 아니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실수한 준혁은 자신이 평정심을 잃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잠시 이마에서 옥돌을 떼어냈다.

“후우….”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한참이 지난 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두 여인에게 안심하란 듯 눈으로 말하고, 다시 옥돌을 이마에 댔다.

-느껴지느냐? 방금 네놈이 흡수한 그것이, 내 진정한 힘인 중력거인을 다룰 수 있는 권능이다.

의기양양하던 중괴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침울해졌다.

-허나, 당장 사용할 수 없는 힘이기도 하지. 예전에 말했던 공천귀의 무덤을 찾아내, 그곳에서 나머지 눈을 찾아야 비로소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력거인이란 거인족의 거인이 아니었다.

중력을 만들고 찢어버리고, 소멸시킬 수 있는 실체화된 힘. 그것이 중력거인이었다.

-나는 네놈이 내 힘을 온전히 이어받아 천신라를 상대할 날을 기다리며, 그놈 곁에서 비장의 수를 준비하겠다. 설마 영원히 나를 방치하진 않겠지?

어느새 장난스러운 말투로 돌아온 중괴의 말이 끝나자 준혁은 옥돌을 서서히 떼어냈다.

‘역시…. 꿍꿍이를 가지고 합류한 것이었구나.’

그리고 중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천신라에게도 중괴의 힘은 소유하고 싶은 힘이었기에,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해도, 영원불멸하는 마선이기에, 준혁을 믿고 기다리면 그만이란 인식인듯했다.

다만 약육강식인 수도계에서 자신의 근원과도 같은 힘을 남기고 간 중괴가 과연 핍박받지 않고 잘 지낼지 걱정이었다.

수행이야 그대로라고 해도, 중력을 다루는 힘의 근본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그때, 조호랑이 또 다른 옥돌을 하나 더 건넸다.

“이건 그자를 따라 떠나신 뒤, 다른 이를 통해 전달해 주신 거예요.”

준혁은 기대감을 가지고 조호랑의 손에든 옥돌을 건네받았다.

‘떠난 뒤라면…. 어쩌면 그녀에 관한 얘기가 담겨있겠구나.’

천신라가 어째서 주서령을 데려갔는지 궁금해하고 있던 준혁은 그곳에 합류한 중괴가 이유를 알아내 소식을 전한 거라 예상하고 바로 이마에 옥돌을 가져갔다.

물론 이번엔 기감으로 확인을 거친 후에.

-세상에 놀랄 일이 많다지만, 내가 가까이 두고도 몰랐다니. 정말 멍청했구만.

이어지는 중괴의 전언엔 준혁의 기대감대로 주서령이 잡혀간 이유가 담겨있었다.

-주가 꼬마가 삼백 년도 되지 않아 소천경에 오른 천재라 했지?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그 아이가 천신체(天神體)였다.

천신체. 수만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할 정도로 극소수의 인물만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신체.

특별히 무언갈 하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하늘의 천기와 교감할 수 있다고 알려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신체였다.

-천신라 그놈이 다음 계약자로 점찍은 듯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