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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47화 (347/408)
  • 347화. 변고 (1)

    유적 밖으로 나온 준혁은 뇌명숲을 향해 움직였다.

    수행을 올리기 시작할 무렵 느껴지던 중괴의 기운도 더는 찾을 수 없었기에, 굳이 사막에 더 머물 필요는 없었다.

    빠르게 사막을 건넌 준혁은 곧장 뇌명숲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자는 누구였을까?’

    유적에서 천영보 흑룡과 마선기록방을 얻을 당시에는 유적을 조사하다 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던 의문.

    기영이 변한 인형의 기억에 의하면 누군가 유적을 방문했고, 천영보를 비롯한 보물은 전혀 손대지 않고 기영을 도와 그와 밖으로 나온 인물이 있었다.

    그자는 보물을 손대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듯 마선기록방마저 유적에 안치한 후 사라졌다.

    그 목적과 의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준혁의 의문은 풀릴 수가 없었다.

    “하긴, 상관없으려나.”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준혁은 이미 유적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은 마당에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는 사이, 태식이 세운 태왕문 가까이 당도했고, 인연이 있다면 유적을 방문한 그자의 정체를 언젠가는 알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함께 상념을 날려버렸다.

    ***

    태왕문에 도착한 준혁은 기감을 퍼트릴 필요도 없이 가장 익숙한 기운을 찾아냈고, 바로 그에게 날아갔다.

    잠시 후, 어엿한 문주의 위엄을 풍기며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태식을 볼 수 있었다.

    준혁은 그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며 바라보다, 모든 이들이 물러나자 소리 없이 그 앞에 나타났다.

    “잘 지냈는가?”

    “허억! 최! 최 선사님!”

    태식이 반가워할 거라고는 예상했으나 반응이 사뭇 과했기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성장을 했군. 문파도 생각보다 잘 꾸리고 있는 것 같고 말이야.”

    뇌명숲을 건너는 사이, 태왕문에서 운영하는 이동 수단을 여럿 목격한 준혁은 태식을 칭찬했다.

    하지만 칭찬을 들은 태식의 표정은 생각과 달리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처음 준혁을 보았을 때처럼 놀람을 감추지 못한 상태였다.

    “서, 선사님! 어디 계시다 이제야 나타나신 겁니까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던 준혁은 태식의 반응에 불길함을 느껴야만 했다.

    “무슨 일인데 표정이 그러나?”

    “선사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큰일이 있었습니다요. 얼마 전 대화성에 변고가 일어났는데…. 선마궁의 궁주가 들이닥쳐 중력괴 어르신과 그….”

    선마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준혁은 태식이 말을 끊자 답답함에 그를 닦달했다.

    “중괴 어르신이 어찌 되었다고?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어서 말해 보게.”

    태식은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것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그, 중력괴 어르신과 함께 주서령 수사를 데려갔다 합니다요.”

    “누가? 선마궁주가 말인가?”

    “그렇습니다요….”

    ‘천신라 그자가 왜?’

    태식의 설명에 의문을 떠올리던 준혁은 예전에 중괴가 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나 때문인가?’

    마선인 이상 천신라의 손을 피해 갈 수는 없다는 말. 거기다 식검이 가진 권능 때문에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 천신라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얘기.

    하지만 따져보니 그것 때문은 아닐 거란 판단이 들었다.

    현재 식검의 정체는 중괴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상황.

    천신라가 그것을 회수하러 온 것은 절대 아닐 터였다.

    ‘그럼 적마 때문인가?’

    생각은 적마가 예전에 훔쳤다던 ‘선마궁의 보물’로 모였다.

    ‘헌데 서령 소저는 왜?’

    다만 준혁으로서는 상상도 못 하는 사실 한가지.

    식아가 마선기록방을 흡수하며 마선들에 대한 영향력과 교감을 증폭시킨 그때,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식아의 기운과 시선이 마선경에게 포착되었고, 식아의 시선으로 중괴를 발견한 마선경이 그걸 천신라에게 알려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짧고 옅었기에, 식아를 소유한 준혁이 자리한 위치까진 파악하지 못하고, 식아와의 감응이 사라진 후 중괴를 수소문하다 어렵지 않게 대화성을 찾은 것이었다.

    그걸 전혀 알 수 없던 준혁은 식아 때문일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급하게 대화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주서령의 일도 중괴의 일도 결국은 돌아가 봐야 답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나기 직전 발걸음을 멈추었고.

    “내가 이곳을 방문한 지 얼마나 지났는가?”

    “예? 아마 120년쯤 되었을 겁니다요.”

    자신이 수행을 안정시키는 데 소요된 기간을 확인하고는 그 즉시 하늘을 갈랐다.

    ‘120년이라…. 몇십 년만 빨리 끝낼 것을….’

    물론 준혁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테지만, 최소한 자기 사람들이 잡혀가게 두진 않았을 터였다.

    영력을 완벽하게 안정시켜 수행을 공고히 했다는 기쁨도 잠시뿐, 대화성에 남은 이들과 잡혀간 이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힌 준혁이었다.

    준혁이 사라진 뒤.

    혼자남은 태식은 그때서야 아차 하더니, 혼잣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명왕께서 약속은 언제 지킬 거냐고 물어보라 하셨는데. 그 말을 전해드리지 못했구나.”

    ***

    태왕문엔 전송진이 없는 관계로 준혁은 묘립성을 향해 빛의 속도로 하늘을 갈랐다.

    진선에 오른 후 처음으로 전력을 다한 것이라 초음속을 돌파한 지는 오래였고, 마치 빛무리가 쏘아져 나가는 착각이 들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묘립성과의 거리를 좁혀가던 준혁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멈춰 서야만 했다.

    “저자는?”

    상시적으로 발동되고 있는 영역의 범위 안이라면 기감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가 들어오는 상태였고, 그런 준혁의 감각에 오래전 보았던 인물이 걸려들었다.

    당장 대화성으로 돌아가는 게 급한 일이긴 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라 준혁은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으로 이뤄진 무리의 수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만나다니.’

    그들은 준혁이 나타난 줄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장밋빛 인생을 그리는 중이었다.

    “문주님, 소문이 사실이겠지요?”

    “그래, 몇 번이나 재차 확인했다. 예전에 면교만 아래 있던 제자 두 녀석이 태왕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더구나.”

    “깜찍한 것들이네요. 저희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겠는걸요?”

    양손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는 사내를 향해.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사내가 혀를 찼다.

    “너무 쉽게 생각하진 말아라. 듣지 못했느냐? 무슨 수를 쓴 건지 명왕이 그 아이들을 지지한다 발표했다. 그러니 우선은 직접 보고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파악이 우선이다.”

    “에이. 그래 봐야 대황대륙이 얼마나 먼데 그러십니까? 게다가 아무렴 명왕이나 되시는 분이 그런 조무래기들을 위해 그런 거겠습니까? 우리 전왕문이 사라지니 영수족도 발이 묶여서 그런 걸 테지요.”

    수하의 말이 일리가 있었는지, 무리의 대표로 보이는 사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그 얘길 전부 들은 준혁은 대화에 수긍해줄 수가 없어서 딴지를 걸었다.

    허공을 가르며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전왕문주.”

    “자, 자네는!”

    두런두런 얘길 나누며 빠르게 상공을 가르고 있던 무리는 준혁의 등장에 급하게 멈춰서야 했다.

    선두에 서 있던 전왕문주는 준혁의 얼굴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라 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오래전 제가 한 충고는 잊으신 겁니까?”

    준혁의 말투가 상냥하지 않았음에도, 전왕문주는 준혁의 등장을 반기며 성큼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보고 싶었네. 자네 덕분에 우리 전왕문이 건재할 수 있었어!”

    준혁이 해준 경고 덕분에 미리 준비하고 도망갈 수 있었던 전왕문주는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헌데 제 충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뇌명숲으로 돌아가시려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자넨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구만. 태백랑은 이미 화풀이하고 떠난 지 오래고, 그곳에 우리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네. 때마침 명왕도 그 아이들을 지지해준다고 하여 이렇게 다 같이 돌아가는 길이네.”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태식이란 수사가 태왕문을 세웠다는 걸요.”

    “그렇네! 태왕문. 전왕문의 후신이나 마찬가지지. 이름이야 아무렴 어떤가?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전왕문주의 들뜬 대답에 준혁은 피식 웃고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허면 돌아가 다시 문주 자리를 뺏으려는 겁니까?”

    말속에 가시를 느낀 것일까?

    반가운 이를 만나 화색을 띠고 있던 전왕문주의 낯빛이 확 바뀌었다.

    “자네, 어째 말이 좀 심하네. 빼앗다니? 원래 내 자리네. 나는 내 것을 가지러 가는 것이야. 게다가 그 아이들이 익힌 공법이 누구에게서 왔는가? 내가 본류일세.”

    “결국 도적질하러 가는 걸 당당하게 말씀하시는군요.”

    “뭐이! 지금 뭐라 했는가?! 도적질?!”

    낯빛이 바뀌어 가던 전왕문주는 준혁의 비아냥에 전신의 영력을 풀었다.

    화아악-

    그 순간 대천경 수사의 위엄이 드러나며 주변 공기의 질이 바뀌었다.

    “내 도움을 준 이라 정녕 반가웠거늘! 사과하게! 아니, 무릎 꿇고 빌면 내 용서해주겠네!”

    준혁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훈풍을 쐬듯 가볍게 흘려주고는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허공을 부여잡듯 손을 가볍게 움켜쥐자.

    파아악-

    전왕문주 주변의 영기가 춤을 추듯 움직이더니 그를 압박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으윽! 이, 이게 무슨!”

    직후, 준혁의 머리 위에 왕관이 떠 올랐고. 그 순간 전왕문주 뒤에 따르고 있던 수백의 수사들이 비행 능력을 상실하고는 전원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벅- 퍼버벅-

    다행히, 그들 중 수행이 결단기보다 낮은 이들은 없었기 때문에 죽은 이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무방비 상태로 영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인지 부상을 피할 순 없었다.

    “으….”

    누구 하나 빠짐없이 당혹감 가득한 얼굴로 준혁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그때, 준혁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전왕문도가 아닌 태왕문도로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부로 전왕문은 사라진다.”

    태백랑에게 전해 듣기로, 그가 전왕문의 터에 도착했을 때 전왕문주를 비롯한 고위수사는 하나같이 발을 뺀 뒤라 했다.

    그 덕에 그곳에 머물던 하위수사들도 전부 몸을 피한 상태였고 말이다.

    하지만, 전왕문주가 신경 쓰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범인들.

    아무런 힘도 도움도 되지 않을 범인들은 누구 하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선인들의 싸움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행이라면 태백랑이 아무리 분노에 차 있었다고는 하나 힘없는 범인들을 건들 정도는 아니었기에, 건물만 파괴하고 끝이 났지만 말이다.

    그랬기에 준혁은 전왕문주를 곱게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범인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세력 안에 있던 이들이라면 챙겼어야 했으니까.

    그게 준혁이 생각하는 수장의 덕목이었으니까.

    그리고 태식은 그런 전왕문주보다 훨씬 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누, 누구 마음대로! 이익!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는 모르나 내가 이따위!”

    겨우 소천경 수사였던 준혁이 자신을 뛰어넘어 진선이 되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전왕문주는 사력을 다해 준혁의 구속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아쉽게 그는 태백랑을 피해 숨어 살면서 진선 수사들을 압살한 인족 수사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매우 컸다.

    “문주, 그대 역시 마찬가집니다.”

    “무, 무엇이 말이냐!”

    “저들은 그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지만, 그댄 책임을 지셔야지요.”

    그제야 두려움을 느낀 것인지 전왕문주가 사색이 되었다.

    “서, 설마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내가 당하고만 있을 줄!”

    그 순간 허공에서 전왕문주를 부여잡고 있던 영기 일부분이 칼날 같은 모습의 형상을 내비쳤고.

    스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목을 그어버렸다.

    툭-

    잠시 후, 전왕문주의 목이 떨어지자, 그의 몸에서 병아리색의 원영이 탈출하기 위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채 십여 미터도 도망가지 못하고 금빛 실에 잡히더니 준혁에게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사, 살려주시오!”

    그리곤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금빛 실에 칭칭 감기더니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준혁은 가볍게 손을 저어 전왕문주의 시체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는 지상에서 벌벌 떨고 있는 수사들을 한 차례 훑고는 그중 가장 수행이 높아 보이는 이를 향해 말했다.

    “그댄 무리를 이끌고 태왕문으로 가시게나. 그리고 태왕문 문주에게 이걸 전해주면 되네.”

    전왕문 사람들의 처우에 대해 몇 마디 남긴 옥간을 건네준 준혁은 그들이 딴마음을 먹지 못할 거란 걸 알았기에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진선에 오른 뒤 강화된 왕의 정수는 이제 대천경 이하 인족 수사들에겐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절대명령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명령이 입력된 순간부터 그들의 의지력이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 영원한 굴레나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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