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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44화 (344/408)

344화. 마선기록방 (2)

준혁은 경고를 날리며 동시에 의지를 집중해 식아의 행동을 방해했다.

슈악-

그랬기 때문일까?

칼날처럼 변했던 식아의 손이 중괴를 스치고 지나갔고, 중괴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이윽고 식아에게 당한 자신의 상처를 매만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게…. 그 아이의 능력이었단 말이냐?”

중괴는 아주 작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자신의 혼백 일부가 뜯겨 나간 것 같은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준혁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식아가 아직 식욕을 억제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슈아악-

준혁의 제지에 공격을 멈춘 것 같았던 식아가 검은 식검으로 변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고, 방심하고 있던 중괴의 심장 어림까지 이르렀다.

“안 된다!!”

그 순간 준혁이 양손을 잡아끄는 행동을 취하며 영력을 폭발시키자, 날아가던 식검이 궤도를 바꾸며 바닥을 파고들었다.

“토율서!”

그리고 준혁의 부름에 의해 땅속에서 수많은 인형이 일어나더니, 바닥에 박힌 후 다시 꼬마 형태로 변한 식아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굳어라!”

식아의 팔다리를 비롯해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선 흙 인형들은 그대로 굳더니 바위처럼 변했다.

토율서의 힘에 석두의 석화 능력까지 가미한 것이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괜찮겠느냐? 그나저나 어찌 된 일이냐? 갑자기 왜?”

중괴의 물음은 준혁 역시 궁금한 것이었다.

수행이 낮을 땐 지금처럼 식아를 제어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삼경을 넘어선 후부턴 완벽히 조종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중괴보다 더 놀란 상태였다.

“마선기록방이 식아를 자극한 것 같습니다. 정확한 연유는 저도 살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토율서에게 매몰된 식아는 지금도 강렬한 식욕을 드러내며 반항하는 중이었다.

“우선 어르신의 상처부….”

다만 식아를 제어하진 못했지만, 구속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안심하려는 찰나.

파앗-

식아의 눈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고, 그 순간 그 아이를 덮고 있던 토율서와 석두의 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식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마치 눈이 녹듯 그 안으로 흡수돼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선들의 힘이 통하질 않는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준혁이 최종적인 권능의 주인이라고는 하나, 그 역시 식아를 매개체로 마선들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식아가 중간에서 방해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껏 식아가 자아를 가진 마선이라는 인식을 못 했기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뿐, 아주 가끔 마선과 계약자 간에는 동화율이 떨어질 때 그렇게 마찰이 생기는 예도 있었다.

준혁은 급하게 적지주의 거미줄로 식아의 발을 묶었다.

중괴는 일련의 돌아가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는 즉각 자신의 권능으로 방비를 갖췄다.

허나 그가 마선인 이상 그 어떤 방법도 결국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일.

마음 같아서는 조금 전 얻은 흑룡을 사용해 중괴를 보호해주고 싶은 준혁이었으나, 아직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법기로 과연 식아를 막아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기에 결국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어르신! 제 의지로 완전히 억누를 수 없습니다! 먼저 이곳을 나가십시오!”

“나 혼자 말이냐?!”

“저는 식아를 안정시킨 후 따라가겠습니다! 먼저 돌아가 기다려 주십시오!”

준혁의 외침 속에 조만간 식아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을 읽은 중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해야만 했다.

식아를 이용해 천신라를 상대하려 했던 중괴였던 만큼, 그는 자신이 식아를 감당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들어올 때야 문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이 전이되며 유적으로 왔지만, 나가는 문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그사이 토율서와 석두의 힘을 전부 해제한 식아가 입술을 날름거리더니, 조막만 한 손으로 거미줄을 뜯어내며 또다시 중괴를 향해 식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시점이 오자 준혁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저를 믿고 몸을 맡기십시오!”

푸욱-

준혁의 외침이 끝난 직후.

어느새 중괴 앞에 나타난 붉은 장검이 그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던 중괴는 적마가 발동하려 하자,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몸조심해야 하….”

파앗-

그리고는 이를 드러내며 쏜살같이 날아오는 식아가 근접하기 직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

‘다행히 적마의 힘이 통했구나.’

혹시나 유적이 자리한 곳이 공간이 왜곡된 곳이면 어쩌나 걱정했던 준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전송진을 이용해 넘어온 유적은 외부와 연결돼 있었고, 중괴는 안전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적마도로 인해 작은 상처는 입었겠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중괴가 사라지자, 유적 안엔 평화가 찾아왔다.

식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거리는 얼굴로 다가와 준혁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육포 조각, 아니 마선기록방을 다시금 천천히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허어, 도대체 이게 뭐길래.”

마선기록방이 무엇이길래 자신의 통제마저 벗어난 채 중괴를 공격했는지. 준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선기록방과 그걸 씹고 있는 식아를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 중괴가 식아에게 잡아먹혀 흡수당했다면, 심적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었기에 준혁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탈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말 그대로 식겁했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그때, 마선기록방을 전부 먹어 치운 식아가 먹을 걸 더 달라는 눈빛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부르르르-

준혁은 몸속에서 강렬한 진동과 함께 알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바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화아악-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직후, 준혁은 볼 수 있었다.

자신 안에 거대하게 뭉쳐 존재감을 발휘하는 기운을.

‘마선기?’

그것은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힘이었고, 식아에게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걸 중괴만이 알아본 힘이었다.

여태껏 준혁 스스로 마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마선의 권능은 사용할지언정 한 번도 마선기라는 기운을 체감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운이 이제 막 영기파동을 일으키는 영력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혁은 갑자기 마선기가 모습을 드러낸 연유가 마선기록방 때문이란 걸 유추해내고, 힘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살폈다.

‘계속 커진다?’

그리고는 존재감을 처음 드러낸 마선기가 다른 기운들을 밀어내며 점점 더 거세어져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마선기록방으로 인해 이제야 연결된 것이란 말인가?’

마선기록방은 마선경이나 괴조처럼 마선들을 잇는 하나의 수단.

그것을 흡수한 식아는 지금까지처럼 마선의 권능 일부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마선이 가진 전부를 흡수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처럼 가짜로 연결된 것이 아닌, 진짜 계약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선기뿐이 아니다! 이건!’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껏 다루지 못했던 마선기가 흡수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의 계약자들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영력이 한꺼번에 흡수되려 하고 있었다.

여태껏 수많은 마선들을 흡수하면서 다른 수사들과 달리 그들의 기운을 흡수할 수 없었던 준혁은 그들의 기운이 식아의 몸속에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으로 식아와 연결된 기운들에 대해 파악하자, 그 힘들 역시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으윽.”

준혁은 몸 한구석에 자리 잡은 채 엄청나게 커져가는 마선기와 식아에게서 흘러들어오는 마선들이 생전에 가졌던 수행을 동시에 받아들이며 고통에 찬 소리를 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적마나 삼청조처럼 생전에 봉인된 상태로 있던 마선들은 가진 힘이 겨우 원영기 수준에 불과했기에 크게 상관없었지만, 석두 같은 경우는 준혁의 수행보다 높았던 상황.

진선급 원영을 중괴의 도움으로 흡수했을 땐, 흡수하는 속도와 양을 조절하며 차곡차곡 쌓아갔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나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터진 것이라 그 어떤 상황보다 위험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내부의 폭풍을 다스리기 위해 정신을 집중한 준혁은 보지 못했지만, 먹을 걸 달라고 조르던 식아는 어느새 다른 마선을 꺼내 씹어먹기 시작했다.

밥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밥상을 차리겠다는 듯이, 마선들을 하나씩 소환하면서 말이다.

***

뜨거운 열기뿐 아니라, 수행을 방해하는 기운 때문에 누구도 오길 꺼리는 불타는 사막.

하지만 그런 곳이라도 누군가는 살아가기 마련이었다.

모래뿐인 허허벌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오늘 수확은 어떤가? 자넨 재미 좀 봤나?”

“재미? 개뿔. 오늘은 무슨 날인지 영 꽝이네. 요료초는커녕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던 독갈도 못 봤다네.”

“자네도 그런가? 나도 마찬가지네. 무슨 일인지 참….”

여러 등급의 수도자들이 고루 사용하기에 언제나 수요가 마르지 않는 요료초와 독갈의 침.

사막에서만 구할 수 있는 두 물건은 습득 난도가 매우 낮아, 하위 수사들의 돈벌이에 자주 이용되는 것이었다.

전왕문이 사라진 뒤 공급이 말랐기 때문인지, 태왕문이라는 새로운 문파가 뇌명숲 운송사업에 뛰어들자 너도나도 사막에 진입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명도 그런 부류였다.

“그나저나 오늘 공쳐서 어찌나? 이러다간 상납금도 맞추지 못하겠는데.”

하위 수사들은 뇌명숲을 건너는 데 지급할 재물을 보유하지 못했기에 태왕문과 계약을 한 상태였다.

일정량의 요료초와 독갈의 침을 주기적으로 공급하고, 일정 시기마다 운송 수단을 이용하기로 말이다.

“그러게 말일세. 그래도 태왕문이 자리한 뒤로는 먹고살 만하지 않은가? 예전 전왕문이 있었을 땐 어휴…. 생각만 해도.”

“도둑놈들이었지.”

두 사람은 지친 마음을 뒷담화로 달래며 대화를 이어나갔고, 그런 상태는 한동안 지속됐다.

쿠우우우-

“응? 이게 뭔 일인가?”

그러던 것이 외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력에 뒷담화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압력은 마치 고위 수사가 내뿜는 기운과도 흡사했는데, 가만히 있어도 몸을 저리는 것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자의 출현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사막에선 고위 수사를 본다는 게 힘든 일이었기에, 두 사람은 급히 판잣집을 나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했다.

“저, 저게 뭐란 말인가?”

“설마…. 서, 설마 저게 다 영기구름이란 말인가?”

판잣집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아득히 먼 상공을 가득 메운 검은 먹구름과 그 안에서 요동치는 오색 빛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평생 본 적 없는 규모의 것이었다.

“저렇게 먼 곳인데…. 여기까지 기운이. 설마 진선이나 규선, 그런 분이 저곳에 기거하는 건가?”

“예끼 이 사람아 말이 되는 소릴 하게. 어떤 미친놈이 사막에서 수련한단 말인가? 저건 분명. 보물이 나타날 징조일세!”

보물이란 소리에 두 사람의 눈에 탐욕이 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수행으론 보물은커녕, 근처에 가다가 죽어 나갈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욕심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사막의 규모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규모를 넘어섰고, 그런 만큼 곳곳에 고대 유적의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그런 곳을 조사하던 이들 역시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분수를 알고 보물을 단념한 두 사람과 다르게, 영기구름의 근원지를 향해 불나방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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