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42화 (342/408)
  • 342화. 사막 유적으로 (2)

    ‘내 결정으로 모든 게 좌우된다고?’

    중괴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건진 모르지만, 준혁은 그 의미를 곰곰이 되뇌었다.

    ‘어르신도 식검이 만들어진 의도를 알아차린 건가?’

    다른 마선들을 회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검에 대해 본능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는 듯했다.

    중괴나 천신라나 결국 마선에 불과했고, 천혈족의 안배에 의하면 식아에게 흡수돼 원래의 마선기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가까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식검의 능력을 접하면서, 중괴는 자신의 미래를 점친 것인지도 몰랐다.

    준혁은 중괴와 말을 섞다 보면 자신이 가진 비밀들을 결국은 털어놔야 할 것 같단 생각에 말을 아꼈다.

    중괴 역시 준혁에게 대답을 필요로 해 한 말이 아닌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일순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뇌명숲을 건너는 긴 시간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뇌명숲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무식하게 달려드는 뇌공조 무리를 보이는 대로 주살해 버리면서 일직선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끼엑-

    “거참, 더럽게 귀찮구나.”

    스악-

    그렇게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 불타는 사막에 도착했고, 준혁의 인도에 따라 면교만이 발굴하려 했던 두 번째 유적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자 중괴가 바로 준혁에게 딴지를 걸었다.

    “응? 이곳이 아닌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선기록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의 유적을 열기 위해선 이곳을 포함해 한곳을 더 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얻은 열쇠를 이용해야만 어르신이 원하는 유적에 입장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이곳의 존재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냐?”

    그동안 마선기록방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뼈 빠지게 노력했던 중괴가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바라보았다.

    “예전에 면교만을 처리하고 어르신께서 제게 주신 물건 있지 않습니까?”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것이 이곳 유적에 관한 정보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다만 마선기록방이 아닌 천영보가 잠든 유적이란 게 원래 정보였지만 말입니다.”

    준혁은 천영보가 잠들어있는, 마선기록방이 함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열기 위한 방법과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중괴가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정말 의뭉스러운 놈이구나.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껏 모른 척 시침을 떼다니.”

    “오해십니다. 어르신이 마선기록방의 위치를 알아내기 전까지만 해도, 전 이곳이 천영보가 잠든 유적으로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중괴는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준혁의 태도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 거짓은 아니라 믿어주지. 그럼 미리 알고 있었으니 유적을 발동하고 그 안에서 물건을 가져올 방법도 다 알겠구나?”

    그리고는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물었고, 준혁은 그의 태도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토록 종용하길래 따라오긴 왔는데, 중괴는 유적을 탐사할 어떤 준비도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어르신께서 준비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무슨 소리냐? 난 적마만 믿고 있었지.”

    “......”

    결국 준혁은 깊은 한숨과 함께 그에게 멀찌감치 떨어져 달라고 요구했다.

    “한 번 해보긴 하겠으나 너무 기대하진 마십시오.”

    잠시 후, 중괴가 자리를 비켜주자 준혁은 삼지행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후, 그것을 태양지력으로 치환했다.

    ‘면교만이 유적을 열기 위해 화기를 이용했으니…. 분명 통할 테지.’

    중괴에겐 방법을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말했고, 실제로도 준비하진 않았지만.

    준혁은 몇 번이나 이와 같은 상황을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떠올린 방법은 화기보다 상위호환인 태양지력을 이용하는 것.

    순수한 화정의 기운만큼이나 강렬한 태양지력이라면 분명 통할 거라 여겼다.

    화아악-

    모든 준비를 마친 준혁은 기나긴 수결을 맺다가 양손을 활짝 펼쳤고, 손짓에 따라 어마무시한 태양지력의 열기가 사방으로 뻗치다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쿠우웅-

    그 순간 대지가 요동을 치는가 싶더니, 면교만과 방문했던 곳과 똑같이 생긴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역시.”

    그러자 중괴가 호들갑을 떨며 유적에 가까이 가려 했고, 준혁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

    “왜 그러느냐?”

    “들어가실 필요 없습니다.”

    “응? 아!”

    준혁에게 제지당해 기분 나빠하던 중괴는 준혁의 손에 들린 붉은 장검을 보더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 최고의 도적놈이 눈앞에 있다는 걸 깜박하고 말았다는 걸.

    ***

    “그곳과 비슷하군.”

    두 번째 유적에 들어선 준혁의 첫 감상이었다.

    두 번째 유적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각종 함정과 진법 결계로 촘촘히 보호되어 있었다.

    다만 그러한 함정과 결계는 적마의 능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기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무능함만 확인해야만 했다.

    “역시 여기도 이곳이군.”

    유적에 들어선 준혁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각종 결계를 전부 무시한 채 곳곳을 뒤엎고 다녔고, 유적 심층부에서 영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방어형 영보인가?”

    처음 보는 동물의 모습이 음각된 비녀 형태의 법기였는데, 장식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해 보여 여성들이 사용하면 좋을 듯했다.

    영보를 획득한 준혁은 유적 안의 물건들을 전부 챙겼고, 이번에도 발동된 함정들을 놔둔 채 조용히 빠져나왔다.

    대부분이 예전에 경험했던 일과 비슷했기에 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예전엔 마지막 관문에서 소환된 괴수들을 피해 달아나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번엔 그것조차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유적을 집 뒷동산에 나들이 다녀오듯 털어온 준혁은 곧장 세 번째 유적으로 직행했고, 그곳에서도 영보 하나와 막대한 재물들을 털어 나와, 중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네놈…. 은 아무리 봐도 적마의 계약자가 분명하다. 소싯적 적마보다 일 처리가 더 깔끔한 것 같아.”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중괴의 말에 준혁은 별다른 대꾸 없이 마선기록방과 천영보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마지막 유적을 향해 움직였다.

    “쉰소리 그만하시고. 가시지요.”

    ***

    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황금빛 모래만이 가득한 사막.

    사막을 횡단하다시피 이동해, 세 유적이 가리키는 지역에 도달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인가 봅니다.”

    준혁의 확신에 중괴도 자신이 알아낸 위치와 같은지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이내 수긍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곳이구나.”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특이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지만, 준혁과 중괴 모두 일정 경지를 넘어섰기에,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만 이곳에 유적이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분별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컸다.

    잠시 후, 준혁의 신호에 중괴가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럼 유적을 발동시켜 보겠습니다.”

    준혁이 앞으로 나서자 중괴가 수긍했다.

    중괴의 허락에 준혁은 세 가지 영보를 꺼내 허공에 띄우고는 붉은 문양이 새겨진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상자에 영력을 불어넣으며 수결과 함께 의지를 움직였다.

    부르르-

    그러자 상자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 땅으로 천천히 내려섰고, 반으로 갈라지며 눈 부신 빛을 뿜기 시작했다.

    준혁은 상자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고 즉각 수결을 연달아 맺더니 상자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화아악-

    그 순간, 상자에서 무언가 솟구쳐 오르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 뒤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원영?’

    몇 번이고 상자를 확인했었던 준혁은, 자신이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기운이 상자 안에서 튀어나오자 잠시지만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상자에서 나온 무언가가 상자 안이 아닌, 상자 자체에 스며들어 있던 것이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판별해내지 못했다.

    ‘유적을 여는 특수한 장치인가?’

    쿠우웅-

    상자에서 나온 무언가가 사막의 땅속으로 사라진 직후.

    허공에 떠 있던 세 영보들도 서로의 자리를 찾듯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빠르게 잔상을 남기며 날아가 상자를 두고 삼각형을 이루며 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그 순간 엄청난 열기와 함께 상자가 놓여있던 땅이 들썩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십여 미터쯤 돼 보이는 원기둥이 나타났다.

    “전송진이로구나!”

    멀리 떨어져 있던 중괴는 원기둥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리고는 준혁의 기다려달란 신호에도 불구하고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기감으로 원기둥의 틈을 발견하더니 그 안으로 잽싸게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기 전 준혁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무언지 알고 이리 성급히 행동하십니까?”

    “뭐긴? 전송진 아니냐?”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이리 서두르시냐 그 말입니다.”

    이럴 때보면 중괴도 산들바람과 다르지 않게 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중괴의 말에 준혁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럼 시간을 들이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 수 있단 말이냐?”

    “......”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전송진이 나타난 이상 사용하지 않고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데, 그렇다면 재고 말고 할 게 무어란 말이냐?”

    “......”

    “무조건 오래 사고한다고 해서 현명한 답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버리거라.”

    행동이 방정맞아 생각이 짧아 보였던 중괴였지만, 그의 사고는 단순하지 않았다.

    중괴의 말은 현 상황을 꾸짖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준혁의 전반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

    슈욱-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인 석실.

    전송진을 발동해 이동해 온 준혁과 중괴가 처음 접한 장소였다.

    다행히 전송진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시동할 수 있는 종류여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오게 되는 일은 없었다.

    “흐음…. 이 기운. 익숙한데?

    전송진에 의해 이동되자마자 코를 킁킁거리던 중괴의 말에 준혁도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예전 거인족의 유적과 비슷하군요.”

    “너도 느낀 것이냐? 그래 그때 거신체가 나타나기 전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호란대륙에 위치한 거인족의 유적에서 낭패를 당한 적 있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의지를 퍼트리며 주변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한 기운을 제외하곤 어떤 것도 그들에게 감지되지 않았다.

    “우선 나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결국 준혁은 조금 전 중괴의 말을 상기하며 먼저 움직였다.

    그 모습에 중괴가 피식 웃고는 그 뒤를 여유롭게 뒤따랐다.

    다만 여유롭다고 해서 기세가 느슨해진 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상태였다.

    스르륵-

    앞장선 준혁이 석실의 문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다가가자, 문이 생명체의 행동에 반응해 스스로 열렸다.

    직후, 문을 통해 바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준혁은 한 발 앞으로 나섰고,

    화악-

    눈부신 빛과 동시에 또 다른 곳으로 이동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송진이 하나가 아니었구나.’

    그리고 이동된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중년 미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미남자는 준혁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줘서 고맙군. 문까지 열어주고 말이야. 하지만 이 안까진 따라오지 말았어야지. 남의 거처에 허락 없이 들어오는 건 실례 아니겠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