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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41화 (341/408)

341화. 사막 유적으로 (1)

호란대륙을 벗어나 주운대륙에 도착한 준혁은 뇌명숲을 건너기 전 태식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명왕과의 일화를 꺼냈고.

“어쩐지! 그렇지 않아도 봉황족 수사들이 자리해 계십니다. 자세한 얘길 해주지 않아 몰랐는데, 전부 최 선사께서 힘을 써주신 거군요.”

준혁이 명왕을 끌어들인 덕분에 태식은 부족한 수행임에도 사람들을 안심하고 이끌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허나 명심하십시오. 본인의 능력이 우선입니다. 명왕도 원하는 것이 있으니 수사를 지지한다 한 것이고, 묘립성도 소우자 때문일 뿐, 실제 수사의 힘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입죠. 명심하고 명심하겠습니다요.”

가지고 있는 재산 중 필요 없는 법기 몇 개를 태식과 그의 사제에게 전해준 준혁은 황송해하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뇌명숲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뇌명숲을 건너고 흑석대륙을 가로지르는 동안, 준혁은 마선들의 능력을 분신 하나에 발현할 수 있는지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중괴는 그런 준혁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시간은 흘러갔다.

***

끝없는 숲이 펼쳐진 대황대륙의 초입.

준혁은 조호랑을 따라 이동했던 길을 기억해, 다른 영수족과 만날 일 없는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긴 이동시간을 또 한 번 경험하고서야 태백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는군요. 여긴….”

태백랑을 마주한 준혁은 자연스럽게 중괴를 소개하려 했는데, 그가 소개하기 전 중괴와 태백랑이 손을 가볍게 잡으며 친분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군. 괴짜.”

“반갑네. 영수의 왕.”

두 사람이 원래 알던 사이인 걸 몰랐던 준혁이 깜짝 놀라자, 중괴가 별것 아니라며 설명했다.

“내가 천신라에게 패했을 때 어디로 피신했겠느냐?”

“아….”

‘우지가 이곳으로 숨은 게 그저 우연이 아니었구나.’

중괴의 설명에 따르면 천신라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대황대륙까지 손을 뻗는 건 조심스러워했기에, 자유를 갈망했던 많은 마선들이 이곳에 숨었었다고 했다.

대부분 특정 종족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보호를 받았는데, 중괴가 선택한 이가 태백랑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대단했지요. 안 그렇습니까?”

“어디 선사만 합니까? 저는 그때 정말 죽다 살아났습니다.”

‘어르신도 예를 차리는구나.’

평소 틱틱대고 막말하던 중괴가 태백랑과 대화하며 정상적인 수사처럼 행동하자 준혁은 조금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뭐가 웃기다고 갑자기 웃지?”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우선 제 친우를 만나러 가시지요.”

둘 사이에 얽힌 비사를 대충 흘려듣던 준혁은 마침 둘 사이의 대화가 끊기자 바로 아마르곤에 대해 언급했다.

“쩝, 그럴까?”

“중력괴 선사. 시간은 많으니 우선 다녀오십시오. 그동안 근사한 술상이라도 마련해 놓을 테니.”

“오, 역시 교천묘 선사는 말이 통합니다. 팔황 중 으뜸이 괜한 것이 아닙니다.”

“예? 하하.”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아서 떨어질 줄 모르자, 준혁이 끼어들어 중괴를 이끌었다.

“제게도 귀한 선주가 있으니, 일이 끝나고 나면 두 분을 위해 양보하겠습니다.”

“정말이냐?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얘기했어야지! 참나.”

잠시 후, 보상에 눈이 멀어 뒤를 따르는 중괴를 보며 준혁은 빠르게 아마르곤이 수련 중인 백랑족의 심처로 이동했다.

***

3년 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숲속.

하지만 신기하게도 햇빛은 나무 잎사귀를 통과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숲 안은 몽환적이면서도 안락함이 느껴졌는데, 지상낙원이란 게 있다면 이곳일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안타까운 건 빽빽이 들어서 있던 나무 수천 그루가 고목처럼 변해버렸단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운을 모조리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수행을 올리는 데만 전념하시면 될 겁니다.”

준혁은 어느새 혼백을 단단히 만들어 예전 상태를 되찾은 아마르곤에게 보진단을 비롯한 각종 단약을 한 아름 건네주었다.

본인은 더 이상 단약의 힘을 빌려 수행을 쌓을 단계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넘긴 것이었다.

“이 귀한 것들을….”

아마르곤의 감동한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버린 준혁은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아마르곤 수사.”

“예.”

“수사께서도 아시겠지만, 자타와 오랫동안 동화되면서 수사의 수행은 너무 큰 괴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은 상태로.”

“......”

“만약 그 독만 채울 수 있다면…. 아마 남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단번에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기연이라 할 수도 있지요.”

“기연이라….”

기연이라 표현했지만, 어쩌면 불가능한 도전이란 말이 준혁의 목 끝까지 차올랐다.

아마르곤은 규선인 자타와 동화된 경험 때문인지 수사들이 깨달음과 수련으로 돌파해야 하는 장벽이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말 그대로 막대한 영기만 쏟아부으면 수행은 당연하게 올라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수행이 상승할 때 몸 안에 막대한 영기를 축적할 수 있는 영기구름이 반응하질 않았다.

그랬기에 준혁은 아마르곤의 상태를 밑 빠진 독이라 표현했다.

말 그대로 아무리 많은 영기를 몸 안에 쌓는다고 해도, 수행 상승 때 불러들일 수 있는 영기구름에 비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느끼셨듯, 아마 그 독을 채우는 게 가능할지 아닐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아.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사께서 단약을 이리 건네주신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하여 수사께서 허락하신다면 이곳 일대를 지목족의 힘으로 봉인시키려고 합니다.”

봉인이란 말에 놀랄 만도 하건만, 아마르곤은 오히려 표정이 편안해졌다.

3년간 준혁이 펼친 지목족 혈맥의 힘의 도움을 받았기에, 준혁이 펼치려는 봉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혈맥의 힘을 강화하시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수행 상승에 수 배 정도 도움이 될 테지만, 작은 공간에 힘을 압축한다면 수십 배 이상의 효율이 나올지 모릅니다. 다만….”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준혁이 말을 멈추자 아마르곤이 웃음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다만…. 그 흐름이 빨라질수록, 효과만큼이나 강력한 부하가 걸릴 겁니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수사 혼자서 버텨내야 할 겁니다.”

“......혼자라.”

준혁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뗐다.

“아마. 진마정의 기운을 가진 채 흑마지 안에 고립되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울지 모릅니다.”

“......”

만약 준혁이 소화여를 치료했을 때처럼 삼지행의 힘을 밀어 넣어줄 수 있었다면 오히려 쉬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마르곤에게 필요한 건 순수한 목기. 오직 주위 영목에서 힘을 얻는 것만이 최선인 상황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한 걸 물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수사께서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부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준혁이 아마르곤을 봉인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는 항상 준혁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걸 힘들어했기 때문이었다.

봉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목숨에 지장이 있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스스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며 힘들어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십시오.”

아마르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시간을 내준 준혁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괴에게 다가갔다.

“진짜 하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어르신의 도움도 필요하니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나, 저놈이나 미친놈들이구나. 내 힘만으로도 주위 기운을 수십 수백 배 압축할 수 있거늘. 그 와중에 수행 속도를 수십 배 올리겠다고? 차라리 강제로 영기구름을 불러오는 게 더 안전하겠다. 이놈아.”

혀를 내두르는 중괴의 말에 준혁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나 아마르곤이나 아무 대책 없이 도전하는 건 아니었다.

용천무에게서 얻은 힘 중 일부를 전해 받은 아마르곤이었기에 일반적인 수사에 비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준혁의 품속에서 자란 천균의 뿌리 자체가 목족의 신체로서는 거의 최고등급이라 할 수 있었으니, 완전 도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통만 이겨낸다면, 필히 세상을 놀라게 할 성과를 보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건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규선과 동화된 경험을 가진 아마르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대황대륙, 백랑족 깊은 숲속,

먼 미래에 수많은 수사가 따라 하게 되는 목숨을 건 수련 방법이 최초로 시행되려 하고 있었다.

***

“그럼 이제 내 볼일을 보러 갈까?”

아마르곤을 봉인하는 데 성공한 준혁.

그는 중괴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기에 백랑족을 떠나 뇌명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괴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는데, 마선기록방이 공천귀를 찾아줄 거라 확신하는 것만 같았다.

‘슬슬 사실을 말해줘야 하나….’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졌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헌데 고류제가 널 붙잡으려 했다고?”

이동 중 입이 심심했는지, 마선기록방을 찾은 후의 일들을 상상하던 중괴가 예전 일을 물어왔다.

아마르곤에게 향할 때 한번 했던 얘기였기에 준혁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송진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하더군요.”

준혁의 말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지던 중괴가 입을 열었다.

“아마 그놈이 아니라 림주가 널 찾은 걸 테다.”

“그가 말입니까?”

“그래. 네놈이 요마족과 석두를 처리한 일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마 자타에 대한 정보도 입수했다면 더더욱.”

준혁이 관심을 표하자 중괴는 천휴림과 선마궁 그리고 마족과 영수족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해 늘어놓았다.

대부분은 태백랑에게서 들은 얘기였고, 몇 가지만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었다.

“천휴림 입장에선 가장 골치 아픈 게 선마궁이니. 아마 나쁜 뜻으로 붙잡으려 한 건 아닐 테다. 물론 정중하게 모시려고 한 것 같지도 않지만.”

“저를 회유하려 한 거란 말입니까?”

“회유라…. 그렇다기보단 전략적 제휴라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흠….”

중괴의 추론이 충분히 납득할 만했기에, 준혁 역시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다만 심각한 중괴와 다르게, 준혁은 선계의 세력 구도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물론 그들 중 누구라도 자신의 삶에 강제로 끼어들려 한다면 얘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때 중괴가 예전에 한번 꺼낸 적 있던 사항을 또 한 번 언급했다.

“천신라를 처리해야 한다고 했던 말 기억하느냐?”

“저 역시 관계가 있다고 피력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분명 그리될 테다. 그놈은 욕심이 많은 놈이니. 헌데 무작정 그놈을 처리하는 것만도 능사는 아닐 거란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다.”

의외의 소리에 준혁이 은근히 눈짓하자.

“천신라를 처리하면 마규보와 림주가 설쳐댈 거 아니냐? 물론 그 둘이 그놈보다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역학적인 관계도 고려해야 한단 말이다.”

“그걸 왜 제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전에 말했듯이 저….”

“흐흐, 안다 알어 이놈아. 다만 왠지 종장에 이르러선 너의 결정으로 모든 일이 결판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중괴의 시선은 준혁을 보고 있었지만, 정확히는 준혁 안의 식검을 감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대황대륙으로 향하던 어느 날, 준혁이 여러 마선들의 권능을 분신 하나에 응축시키려는 노력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천신라든 마규보든. 혹은 자신까지도. 어쩌면 삶의 종착지는 한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적지주처럼 식검에 흡수당할 생각은 없었지만, 왠지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그의 느낌은 천기를 느껴 미래를 예상한 건지, 아니면 그냥 기우일 뿐인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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