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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37화 (337/408)
  • 337화. 인연을 담고 (1)

    들뜬 목소리와 교성은 준혁이 급하게 만든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호랑의 당돌한 행동에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은 준혁은 상황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수백 년간 쌓아왔던 힘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은 아침을 불렀고, 아침 역시 밤을 불렀다.

    ***

    조호랑을 반려로 맞은 후, 준혁은 아마르곤을 대동한 채 백랑족 영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태백랑에게 부탁해 가장 영기 밀도가 높은 곳으로 향한 준혁은 일정 공간을 영역으로 감싼 후, 지목족 혈맥의 힘을 사용했다.

    수행 속도를 올려주는 혈맥의 힘.

    “이제 완벽히 다루실 수 있으시군요?”

    주변 영기가 준혁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수련을 돕기 시작하자, 아마르곤이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하나의 기운에 불과한 영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준혁의 의지대로 움직이자, 아마르곤은 신세계를 체험하는듯한 감동에 빠졌다.

    그러다 돌연 자세를 바로 하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이 잠들어있는 동안 준혁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깨닫고 만 것이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준혁은 그런 아마르곤을 격려하며 영목에 스며들어 있는 나무의 근원을 빨아들였고, 그 힘을 한데 모아 아마르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수련은 눈 깜짝 사이에 계절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1년쯤 지난 어느 날,

    준혁에 의해 수련이 중지되고 말았다.

    “이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천천히 회복하고 있던 아마르곤이 반문하자, 준혁이 지목족의 힘을 거두었다.

    “이 속도라면 혼백을 예전처럼 되돌리는 데 수백 년은 걸릴 듯합니다.”

    “흐음…. 그런가요? 하지만 이보다 더 빠를 방법이 있겠습니까?”

    아마르곤은 자신 기준에서 나쁘지 않은 속도였기에, 준혁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준혁은 이미 개별 개체에 한해서는 지목족 혈맥의 힘보다 월등히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물론입니다. 잠시 다녀올 테니 당분간은 혼자 수련하셔야겠습니다.”

    잠시 후, 아마르곤을 떠나온 준혁은 태백랑에게 그를 부탁한 후, 조호랑과 소화여만 대동한 채 백랑족 부락을 떠났다.

    “어디로 가시려는 건가요?”

    “중괴 어르신을 모셔 와야겠습니다.”

    그렇게 백랑족을 떠나 대황대륙을 벗어난 준혁은 쉼 없이 날아 뇌명숲에 도착했다.

    ***

    뇌명숲 동쪽 끝.

    예전 전왕문 본문이 있던 자리.

    천지개벽까진 아니었지만, 백랑족이 반파시켜놓은 전왕문의 폐허는 많이 변해있었다.

    태식을 비롯한 묘립성 수사들의 노력이 적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높은 건물과 수많은 상인으로 붐비고 있었다.

    이왕지사 이곳에 온 김에 태식을 보고 갈까 고민하던 준혁은 괜히 자신의 방문으로 어수선해질까 봐, 바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묘립성으로 이동. 전송진을 이용해 대화성으로 향했다.

    한편, 준혁이 대화성으로 향하는 전송진에 오른 그 시각.

    대화성 준혁의 거처에선 깊은 한숨만이 푹푹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숨이 새어 나오는 장소엔 두 명의 사내가 마주하고 있었는데, 한 명은 중괴였고, 나머지 한 명은 소우자였다.

    두 사람은 그들답지 않게 표정들이 어두웠는데, 근심을 해결하지 못해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어르신, 주군께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까?”

    “방법? 있기야 있지. 그 사고뭉치 중 한 녀석에게 삼청조가 있으니, 그걸 통해 바로 연락할 수 있을걸세.”

    “아…. 하지만 그들은….”

    “그래. 며칠 전부터 보이질 않는 걸 보면 저번처럼 또 서쪽 경계에 괴수를 잡으러 간 것일 테지.”

    전 대륙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초태해(超太海).

    끝을 본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초태해가 요즘 두 영수의 놀이터였다.

    중괴가 질색한다는 듯 고개를 젓자, 소우자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언급한 사고뭉치는 산들바람과 청호.

    준혁이 없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재미난 일을 찾아 나선 두 영수는 어느새 대화성의 명물로 자리한 지 오래였다.

    어떤 날은 산채만 한 괴수를 잡아 오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범인(凡人) 놀이를 하며 성안을 누비기도 했다.

    두 영수를 생각하다 두통이 오는 건지, 소우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중괴가 갑작스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 어르신?”

    그 모습에 소우자가 의문을 드러내자, 중괴가 좀 전과는 판이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문을 열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놈도 양반은 못되겠구나. 이렇게 딱 맞춰 오다니.”

    잠시 후, 건물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애타게 기다리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 평안하셨습니까?”

    기분 좋은 얼굴로 인사하는 준혁.

    하지만 그와 다르게 지금 중괴의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준혁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그의 목소리가 마음과 달리 퉁명스럽게 흘러나왔다.

    “이렇게 딱 맞춰 나타난 걸 보면, 제 여자는 꼭 지켜낼 놈이로구나.”

    “예? 그게 무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중괴에게서 나오자, 준혁은 반가움도 잠시, 신색을 바로 하며 굳은 얼굴을 했다.

    중괴가 장난은 많이 쳐도 빈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기에, 말속에 가시가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보아하니 소식을 듣고 온 것 같진 않고. 혹 남운대륙 소식은 들었느냐?”

    “남운대륙이라면….”

    “주가(周家) 말이다.”

    “주가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중괴가 주가를 언급하자, 갑작스레 옛 기억이 준혁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어 상처가 되었던 그날.

    한 걸음만 더 빨랐다면 구할 수 있었을 여서령을 구하지 못했던 일.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때가.

    준혁의 눈에 형형하게 빛나자, 중괴가 간략하게 주가의 상황을 설명했다.

    “네놈이 인연이라며 찾아간 그 아이 말이다. 그 아이 때문에 사달이 났다고 하더구나.”

    “무슨?!”

    “너도 기억하겠지? 우리가 그 아이를 찾아갔을 때, 남운성주를 비롯한 주위 유력가들이 하나같이 그 아이에게 눈독 들이고 있던 걸.”

    설명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준혁은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준혁의 눈에 살기가 짙어짐을 느낀 중괴는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에 그 아이에게 배필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남운성주가 결국 무력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무력으로 겁박하려고 하는 남운성주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준혁은 중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송실 방향으로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그러자 준혁의 곁에 서 있던 조호랑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다녀오세요. 저를 만나기 전, 하계에서부터 인연이 있던 분이시잖아요. 그분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괜찮아요.”

    여서령의 기억을 정리한 후, 주서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준혁과 과거의 인연을 이어 나가길 원할 수도, 아니면 전생은 전생일 뿐이라고 선을 그을 수도 있었다.

    조호랑은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먼저 나서서 준혁이 가진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그로 인해 준혁은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깊은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오. 돌아와 얘기 나눕시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짧은 말과 눈인사로 대신하고는 급히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준혁이 모습을 감추자, 조호랑은 근처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소화여에게도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마치 가장 윗사람처럼. 여유롭게.

    “화여 수사께도 같은 제안을 드릴게요. 최 선, 아니 그이가 원한다면 수사를 받아들인다 해도 말리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발언에 소화여는 각오가 서린 얼굴로 가까이 서 있던 소우자를 바라보았다.

    두 부녀의 시선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한뜻으로 빛나고 있었다.

    ***

    전송진을 이용해 천운대륙 고문성에 도착한 준혁은 예전과 다른 선택을 했다.

    예전엔 천휴림이 손을 뻗어올 수도 있다는 중괴의 말에 전송진 대신 비행으로 대륙을 종단했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닌 상황.

    아무리 빠르게 이동해도 천운대륙을 건너려면 수년은 걸릴 테니, 전송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만에 하나 중괴의 걱정대로 천휴림이 손을 뻗어온다 해도, 그것을 돌파하고 나가는 게 훨씬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까지 마친 상태였다.

    “바로 재이동할 테니, 천운성으로 보내주게.”

    “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원래 치러야 할 값보다 몇 배나 많은 영석을 지급하자, 전송진을 관리하던 수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준비과정을 마쳤다.

    “준비 마쳤습니다!”

    “가동하게.”

    파앗-

    전송진이 재가동되자, 준혁은 반전되는 느낌과 함께 천운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상의 중심. 천운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잠시 후, 반전되던 기운이 가라앉으며 전송진이 완전히 멈추자, 진법을 벗어난 준혁은 환영 인사를 한 사내에게 곧장 다가갔다.

    사내는 준혁이 외부로 나갈 문이 아닌 자신에게 걸어오자, 살짝 주춤하다가 어깨를 당당하게 폈다.

    왠지 모르게 상대에게 주눅 들었다가, 자신이 대천운성의 전송진 담당자란 사실이 떠올라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전송진을 이용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말을 꺼냄과 동시에 영석을 가득 담은 최하급 공간대를 꺼내놓자, 공간대 안을 확인한 전송진 담당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무, 물론입죠. 잠시만 기다리시면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움직여, 대기하고 있던 수사들을 독려하더니 발 빠르게 전송진을 가동할 영석을 교체하고, 진법 이곳저곳을 손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담당자는 간사한 표정으로 양손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준혁에게 다가왔다.

    “다 되었습니다요. 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준혁은 더 나눌 말이 없었기에 지체없이 전송진 위에 올랐고, 담당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발동시키게.”

    “예이!”

    준혁에게서 신호가 떨어지자, 담당자가 전송진을 발동하기 위해 영력을 움직였다.

    부르르-

    하지만 진이 완성되기 직전,

    스악-

    전송실 허공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전음부 한 장이 날아와 담당자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 어?”

    이마에 부적이 붙자, 사내는 부들부들 떨더니, 돌연히 발동되려던 전송진을 취소해 버렸다.

    그리고는 이마에서 전음부를 떼어내 수결을 짚었고, 떨어져 나온 부적은 홀라당 타버리며 근사한 목소리로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찾아뵈려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요. 저는 천운성주 고류제라 합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고류제?’

    고류제라면 옛 구지대륙의 암흑기를 이용해 몸을 단련하는 수련법을 만들었다는 수사.

    천휴림주의 첫 번째 제자이자 규선에 오른 초강자 중 한 명이었다.

    그 순간, 전송실의 대기가 요동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고, 준혁은 대기 중의 영기가 전부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휴림주가 직접 찾아온다고 해도,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

    준혁이 자신의 이마를 한번 짚은 후 전송실 담당자를 직시하며 명령을 내렸다.

    “당장 전송진을 발동하라.”

    콰앙!

    동시에 강한 발돋움으로 고류제의 영역으로 의심되는 힘들을 밀어버리고는 그 공간을 자신의 의지로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준혁의 머리 위로 왕관이 나타났고, 명령을 들은 전송진 담당자는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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