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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36화 (336/408)
  • 336화. 다시 만나 (3)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린 채, 오직 아마르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하던 준혁.

    전함의 갑판 위에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그는 살짝 들뜬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같았다.

    -이제 괜찮은 것 같습니까?

    -수사께서 이리 고생하셨는데, 괜찮지 않으면 그것이 더 문제 아니겠습니까?

    어느새 뿌리와 완벽하게 동화된 아마르곤은 예전처럼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진 못했지만, 준혁과 마찬가지로 살짝 들떠있었다.

    잠시 후, 준혁이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조막만 한 뿌리가 튀어나왔고, 준혁의 무릎 위에 내려서더니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매만졌다.

    산삼 뿌리처럼 생긴 아마르곤이 가느다란 뿌리털을 이용해 몸을 더듬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준혁은 그런 아마르곤에게 강조하며 말을 꺼냈다.

    “제가 알려주신 것들 기억하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아마르곤은 준혁의 말에 대답하다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웃음을 터트렸다.

    목소리가 아기처럼 맑았기에 말투와 너무 큰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혁 역시 그 모습이 우스운지, 한참이나 웃다가 겨우 진정하고 말을 이었다.

    “아마 심기체의 불균형으로 인해 수행이 완성될 때까지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절대! 절대 함부로 영단 같은 신외지물로 수행을 올리려 하면 안 된다는 거, 명심하셔야 합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애도 아니고. 거참.”

    애 같은 목소리로 항변하는 아마르곤 때문에 준혁의 입가가 또다시 올라갔다.

    다만 준혁이 이렇게 웃는 건 아마르곤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전하게 융합과정을 거치고 난 후.

    아마르곤의 원영이 안전해졌다는 걸 깨달은 준혁은 자타에게서 훔친 뭉글거리던 기운을 조심스럽게 그에게 주입했다.

    그러자 아마르곤은 아기가 젖을 빨 듯 힘차게 기운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고, 그것은 단번에 그의 수행을 회복시켰다.

    그 과정에서 준혁이 놀라게 된 사실 하나.

    규선에 올라 있던 자타의 원영과 일부분 동화되었던 아마르곤은 이미 규선까지 이르는 길을 정확히 깨닫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수행을 급상승시키며 성장했고, 자타에게서 빼앗은 기운을 1할도 소화하지 못했는데 소천경까지 올라버렸다.

    예전 수행을 한참이나 넘어선 성장에 준혁뿐만 아니라 아마르곤 본인도 당황해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단번에 소천경까지 올라버리자 신체와 수행의 불균형이 심각할 정도로 어긋나 버렸고, 혼백도 예전처럼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스스로 붕괴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준혁은 급하게 아마르곤의 수행 상승을 막아버렸고, 그의 몸에 금제를 걸어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사신결을 버리고, 목족의 공법을 수행에 어울리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먼저입니다.”

    하계에서 아마르곤이 흡수한 현무의 기운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상황.

    더 이상 그에겐 사신결은 의미 없었다.

    “그리고 전영술도 완벽히 익히셔야 합니다. 그것이 수사의 신체를 보호하는 데 적격이니, 내부로는 목족의 공법을, 외부로는 전영술을…. 아시겠지요?”

    “예, 예. 벌써 몇 번째 강조하였는지 아십니까? 이제 진정 머릿속에 각인되었으니 그만 얘기하셔도 됩니다.”

    준혁이 자타에게서 빼앗은 몽글한 기운은 진마기에 목기(木氣)가 살짝 섞인 힘.

    어째서 진마족의 수장인 자타가 목기를 보유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준혁은 잘됐다는 생각에 진마기와 목기 두 가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고.

    그것은 천균에게서 배운 지목족의 공법과 전마족의 전투술인 전영술이었다.

    ‘하긴, 그자가 목족의 공간 이동진을 사용한 걸 보면, 애초에 비슷한 것을 익히고 있었을 테지.’

    순수하게 진마기만을 다루던 자였다면 술법을 사용하기 위해 불순한 기운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자타를 떠올리던 준혁은 쉽게 납득해 버렸다.

    잠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 준혁은 조막만 한 아마르곤을 어깨에 올렸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대화성이라는 곳으로 가는 겁니까?”

    아마르곤은 수련에 관련된 정보를 주입받는 과정에서 틈틈이 전해 들은 정보를 떠올리고는 아는 척을 했다.

    그 모습에 준혁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북쪽으로 갈 겁니다.”

    “북쪽?”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곳에 영기밀도가 남다른 영수들의 땅이 있다고.”

    “아! 그럼 그곳에서 수련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아마르곤의 예상에 준혁이 맞장구를 쳐주며 틀린 부분을 지적했다.

    “물론 그러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이유?”

    “그곳은 대부분 땅이 숲으로 이뤄져 있고, 숲을 이룬 나무들 하나하나가 하계에서 보기 드문 영목입니다.”

    “아! 혹시?”

    “예, 현재 수사의 수행과 신체의 불균형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혼백이 너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영목을 이용하는 게 먼저입니다.”

    ***

    전함을 회수하며 흑마지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준혁. 그를 맞이한 건 태백랑이 아닌 소화여와 조호랑이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요?”

    “원하시는 건 이루셨나요?”

    주변을 지키고 있던 두 여인은 준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반가운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다행히 운이 따라 주었습니다. 헌데 태백랑께선?”

    어깨에 앉아있는 뿌리를 향해 관심을 보이던 두 여인은 준혁의 질문에 앞다투어 상황을 설명하려 했고, 결국 조호랑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께선….”

    준혁이 아마르곤과 함께 전함에 숨어버린 지도 벌써 여섯 달.

    한동안 준혁 주위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던 태백랑은 조호랑에게 신호를 보내 그녀를 불러들였고, 그녀에게 준혁의 보호를 일임하고는 훌쩍 떠나버렸다.

    “아…. 그렇게 된 것이군요.”

    생각보다 오래 걸린 치료에 준혁은 쓰게 웃으며 궁금증을 꺼냈다.

    “허면 진마족의 수장은 처리하신 겁니까?”

    아마르곤을 치료하기 전에 느꼈던 이상한 느낌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던 준혁은 곧바로 질문을 던졌고, 역시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얘길 전해 들어야만 했다.

    “자타 선사 말인가요? 제가 알기론 최 선사께서 모습을 감춘 후, 자신들의 계면으로 돌아갔다고 들었어요.”

    “계면…. 말입니까?”

    “네. 그들이 거주하던 곳 말이에요.”

    ‘아….’

    지구처럼 하계 계면이 아닌. 대륙과 대륙 사이로 연결된 마족만이 사는 계면.

    지구가 ‘하’, 선계가 ‘상’이라면, 그중간쯤인 ‘중’에 위치한 어정쩡한 곳.

    중괴를 통해 간략하게 전해 들었던 얘기들이 떠오른 준혁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대충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모종의 협약이 있었나 보군.’

    다만, 처음부터 살려줄 거였다면 어째서 기습에 동의했는지가 의문이었다.

    애초에 협약이 있었다면 대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어도 됐을 테니 말이다. 준혁은 이해가 가지 않아 갸우뚱할 뿐이었다.

    ‘돌아가면 물어봐야겠군.’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을 묻어둔 준혁은 두 여인에게 아마르곤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는 비행법기를 꺼내 백랑족의 영토를 향해 움직이며 아마르곤의 수련을 돕기 시작했다.

    ***

    백랑족의 영토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태백랑이 없었기에 다른 종족의 영토를 가로지를 수 없었고, 일행은 또다시 흑석대륙을 통해 긴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긴 비행을 끝내고 부락에 도착한 준혁은 곧장 태백랑을 찾아갔고,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로부터 진마족에 대한 얘길 들을 수 있었다.

    “그놈을 왜 살려주었냐고? 애초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지.”

    “협약이라도 맺은 것입니까?”

    “협약? 흥.”

    준혁의 반문에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친 태백랑이 마족에 관한 얘길 늘어놓았다.

    “협약이란 건 동등한 입장에서나 맺는 것이지, 감히 마족 따위가 우리와 동등한 선에 설 수 있다 여긴 것이냐?”

    “그럼 무엇 때문에?”

    준혁의 궁금증에 실소를 흘린 태백랑.

    “흐, 다 쓰임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쓰임 말입니까?”

    이어진 태백랑의 설명은 ‘쓰임’이란 단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표현할 만한 것이었다.

    “요마족의 수장인 심천군주가 버티고 있기에 선마궁의 마선들이 함부로 설치지 못한다는 건 아느냐?”

    “아!”

    “표정을 보니 아는 것 같군. 그래, 그런 용도다. 마족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남의 걸 탐내는 쓰레기 같은 종족이지만, 그들의 수장만큼은 다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심천군주가 선마궁을 견제하고, 진마족은 천휴림을 억제하지.”

    심천군주와 자타. 둘 다 선마궁주나 천휴림주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각각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견제 용도로 쓰기에 적합했다.

    개별적으로 궁주나 림주를 상대한다면 상성에도 불구하고 큰 힘을 쓰진 못하겠지만, 다른 자들과 합공한다면 얘긴 달라졌으니까.

    자타가 가지고 있던 진마기가 인족에게 치명적이란 설명을 듣고 난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암흑마기를 살짝 끌어 올렸다.

    그러다 아마르곤을 곁눈질로 살피고는 다시 태백랑에게 집중했다.

    태백랑은 준혁의 시선을 따라가다 아마르곤이 품고 있는 기운의 본질을 느낀 건지,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결국 해냈나 보구나?”

    “태백랑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친구와 함께 감사드립니다.”

    “오는 길에 최 수사로부터 얘길 전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태백랑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한쪽에 얌전히 서 있던 조호랑에게 손짓하더니, 준혁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궁금증은 다 풀린 것이냐?”

    “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그럼 이제 계산을 해볼까?”

    계산이란 말에 준혁이 움찔했다. 태백랑은 가까이 다가온 조호랑을 준혁 방향으로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조호랑이 힘없이 밀려 나갔고, 깜짝 놀란 준혁이 그녀를 부축하는 사이, 태백랑이 말을 이었다.

    “약속대로 영원의 가약을 맺어야 하지 않겠느냐?”

    준혁은 더는 피할 만한 핑계가 없음에 난처함을 드러냈다. 반대로 조호랑은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며 볼을 붉혔다.

    “왜? 설마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약속을 지켜야지요. 다만….”

    “다만?”

    이 와중에 주서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잠깐 상상해본 준혁은 혼례만은 미뤄보자는 생각에 급히 말을 꺼냈다.

    “영원을 약속하는 일이니, 시와 장소를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락해 주신다면 천기를 짚어 가장 축복 가득한 날을 점지해보려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준혁은 내심 자신의 논리가 먹혀들어 갈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의 사고는 인족이라면 모를까, 영수족에겐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엥? 그게 무슨 소리냐? 시와 장소? 혹시 범인들이 치르는 혼례식을 하려는 것이냐?”

    “그, 그것이….”

    “웃기는 놈일세. 몸을 섞으면 그때부터 서로를 책임지는 것이지, 그깟 의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이어진 태백랑의 말에 준혁은 합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오늘부터 한곳에서 지내도록 하거라. 그거면 충분하니.”

    ***

    어두운 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숲속 공터.

    그곳엔 수천 년 된 나무 한 그루가 사람을 홀리는 향기를 퍼트리며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 밑동엔 조그마한 구멍이 나 있었는데, 태백랑이 준혁에게 마련해준 백랑족 거처였다.

    심마를 쫓고 수련을 돕는다는 귀한 향나무를 준혁에게 내어준 걸 보면, 그가 준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헌데…. 마음이 왜 이리 뒤숭숭한 건지 모르겠구나.”

    태백랑의 강요에 결국 조호랑을 허락한 준혁은 나무를 깎아 만든 침상에 누워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부스럭-

    그때 인기척과 함께 가냘픈 그림자가 거처 안으로 몸을 들였다.

    “크흠….”

    준혁은 인기척을 낸 이에게 들으라는 듯 헛기침했고, 헛기침에 대답하듯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툭-

    “어?”

    억지로 기감을 억누르고 있던 준혁은 소리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무엇인지는 뻔한 상황.

    대화 한마디 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상대의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일어나기가 무섭게 가냘픈 손이 준혁의 어깨를 밀쳤고, 그는 그 힘에 밀려 다시 몸을 누이고 말았다.

    그리고 매끄러운 피부가 닿는가 싶더니, 수줍은 목소리가 바람처럼 다가왔다.

    “가만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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