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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35화 (335/408)
  • 335화. 다시 만나 (2)

    조호랑의 안내에 따라 쉬지 않고 대륙을 가로지른 일행.

    그들은 흑마지에 도착하기 직전, 준혁의 계획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동했다.

    조호랑과 소화여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태백랑은 모습을 감춘 후 자타를 기습하기로 말이다.

    상대를 속일 수 있는데 굳이 정면에서 상대할 필요가 있겠냐는 준혁의 의견을 태백랑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밌겠군, 그래, 굳이 힘을 낭비할 필요 없지. 그놈이 방심만 한다면야, 단번에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잠시 후, 두 여인과 태백랑이 모습을 감추자 준혁은 혼자서 흑마지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타를 불러내기 위해 그곳을 지키던 진마족을 족치기 시작했다.

    결국 흑마지 상공에 목족의 공간 이동진이 나타났고, 준혁과 자타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

    “그래, 어디 보여 보거라. 단 죽을 각오를 하고선. 아니지, 어차피 죽을 테니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자타의 비웃음에 준혁은 미소로 화답했다.

    “알겠습니다. 헌데 그 전에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확인?”

    “이곳에 저 혼자 왔겠습니까?”

    준혁의 웃음이 심기를 거슬렸는지 자타는 인상을 구기다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허공으로 튕기듯 솟구쳤다.

    준혁이 반문하는 순간 등 뒤에서 괴랄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그가 몸을 피하기도 전, 어느새 나타난 새하얀 늑대 두 마리가 어깨와 옆구리를 물어뜯으며 묵직한 감각을 선사했다.

    콰드득-

    “으윽!”

    자타는 그것이 누구 소행인지 깨닫고 양손을 좌우로 뻗으며 소리쳤다.

    “태백랑!!”

    자타가 양손을 뻗자, 그의 양 손바닥 근처에서부터 새까만 먹구름이 토하듯 쏟아져 나왔고, 먹구름은 살아있는 것처럼 새하얀 늑대를 덮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하지만 자타의 먹구름이 두 마리 늑대를 물리치기도 전, 어디에선가 또 다른 늑대 두 마리가 나타났고, 그것들은 먹구름을 쏟아낸 자타의 양팔을 물어뜯었다.

    까드득-

    “이게 얼마 만이지? 잘 지냈나?”

    그리고 연달아 두 마리의 늑대가 또 나타나 자타의 양발을 물었고, 직후 또 다른 늑대 두 마리가 비어있는 어깨와 옆구리를 물어뜯었다.

    총 여덟 마리 늑대에게 한순간에 당하자, 규선인 자타도 버틸 수 없는지 시꺼먼 피를 한 바가지나 흘리며 안색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우웩.”

    당연하게도, 위력적으로 보이던 먹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후였다.

    자타는 심각한 피해를 당한 것인지, 고고하게 흐르던 진마기마저 피워내지 못하고, 의문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태백랑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인지 물었다!”

    다만 당한 피해에 비해 안정된 모습이었다. 마치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분노에 찬 자타의 음성에 태백랑이 머릴 긁적이며 대답했다.

    “보고도 몰라? 저 친구를 도우러 온 것 아닌가?”

    “...왜? 그러니까 왜 말이다!”

    “아, 그것까지 말하긴 그렇고, 어이, 최 선사. 이제 자네가 나설 차롄데?”

    한편, 자타가 순식간에 제압당하는 모습에 태백랑을 상대하는 자가 자타가 아닌 자신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던 준혁은 상대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꼈다.

    ‘저자….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급 수사에게 단숨에 당했으면서도 전혀 겁먹지 않고 당당한 자타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의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

    태백랑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원했고, 준혁은 방어 태세를 갖추고는 둘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기습에 간단하게 성공하긴 했지만, 기감을 극대화한 준혁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잠시 후, 늑대들에게 물린 채로 신음을 내뱉던 자타는 다가온 준혁을 경계하며 살기를 쏘아 보냈다.

    준혁은 자타의 살기를 가볍게 해소해 버린 후, 태백랑과 시선을 마주쳤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럽게 자타 앞으로 이동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친우를 구해야겠다고.”

    그리고는 한 손을 뻗어 태백랑의 힘에 구속당한 채 끙끙거리고 있는 자타의 심장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내가 죽어도 안 된다. 이미 나와 동화를 마친 지 오래다! 실낱같은 자아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 커억.”

    자타의 외침을 뒤로한 채, 그의 심장에 손을 댄 준혁은 손바닥을 통해 우지의 권능을 움직였다.

    ‘느껴진다!’

    그러자 화정에서 화기를 분리했을 때처럼, 뭉실뭉실한 기운이 자타로부터 분리되더니 준혁의 손을 통해 모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뭉실뭉실한 기운 사이로 흐릿한 원영의 기운이 느껴지자 준혁은 당기듯이 그것을 뽑아냈고, 자타의 고통에 찬 비명이 주위를 뒤덮었다.

    자타의 입장에선 자신의 원영과 동화되어가던 것들이 뜯겨나가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잠시 후, 살짝만 움켜쥐어도 터져버릴 것같이 약해져 버린,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는 아마르곤의 원영이 자타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다.

    “아마르곤 수사….”

    아마르곤의 상태를 확인한 준혁은 재빠르게 성광지력을 이용해 그를 감싸고는 천천히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도했다.

    그러자 희미해진 원영이 부르르 떨더니, 정신을 차린 듯 준혁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직후, 준혁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또 한 번 부르르 떨었다.

    -최 수사…. 정말 저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

    준혁은 아마르곤의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아마르곤이 겪은 모든 고통과 부침이 준혁을 살리려던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당연한 감정이기도 했다.

    다만 어렴풋이 느껴지기로, 자신의 성광지력이 아마르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지려 하고 있었다.

    “제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꼭 돌아오겠다고.”

    -바보같이…. 이 위험한 곳으로 돌아오다니…. 최 수사도 정말 못 말릴 사람입니다.

    아마르곤은 곧 죽을 사람처럼 간신히 전음을 보내고는 감기에 걸린 아이처럼 또 한 번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리고는 전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입을 뻐금거리다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그 순간, 그의 원영이 더욱 옅어지면서 당장이라도 소멸할 것처럼 위태롭게 들썩거렸다.

    현재 아마르곤의 상태는 수행도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혼백이 가진 혼력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

    이대로 두었다간 필히 그가 삼도천을 건너고 말 거라고 예상한 준혁은 재빠르게 금빛 실을 뿜어내 원영을 칭칭 감아버렸다.

    그때, 호흡을 되찾은 자타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크큭,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스스로 회복할 육체도 없는 지금 그자는 결국 소멸할 것이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우지의 능력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네놈은 실수했다. 차라리 내 안에서 나와 완벽하게 하나 되었다면 그의 기억이라도 남아 있었을 것을. 크큭.”

    준혁은 자타의 말에 시선을 돌렸고, 곧이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태백랑을 볼 수 있었다.

    “이자의 말이 맞다. 아무리 천지개벽할 능력을 지닌 이라 할지라도 원영만 남은 상태에선 스스로 회복할 수 없을 터. 보아하니 가진 영력도 없는 것 같던데…. 살아날 희망이 보이진 않는구나. 우리가 너무 늦은 것이겠지….”

    원영이 충만한 기운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것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혹 초연신단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허나 그것 역시 구하기가 불가능할 테지.”

    “초연신단…. 초연단으론 안 되겠지요?”

    “당연한 것을 묻느냐? 초연단이 아무리 뛰어난 약효를 지녔다고 해도, 애초에 초연신단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물건이다. 하물며 초연신단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 원영만 남은 수사를 완벽히 치료해 낼 순 없다. 다만 육체를 복원해 안정을 되찾게 해줄 뿐이지.”

    태백랑의 눈에 깃든 안타까움에 준혁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으며 아마르곤을 구할 방법을 모색했다.

    ‘분명 길이 있다. 생각하지 못할 뿐…. 아 혹시 명왕이 준 것이라면?’

    그러다 봉황족을 떠날 때 받았던 선물을 떠올렸지만, 그것 역시 몸을 복원하는 단약이었기에 머릿속에서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가 준 물건은 화기의 근원과도 같은 것. 목족인 아마르곤에겐 오히려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도 있었다.

    생각을 이어가던 준혁은 태백랑의 말을 되뇌다 ‘육체’라는 단서에 집중했고 급히 그에게 물었다.

    “그럼 육체만 있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준혁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태백랑은 고갤 주억거렸고, 여전히 늑대에 물린 채 제압당한 자타는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 가능성은 있지, 의지가 육체를 지배한단 말을 들어보았겠지? 반대로 강인한 육체 역시 의지를 지배한다.”

    뒷말을 망설이는 태백랑의 말속에 부정적 의견이 깃들어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원영에게 적합한, 그리고 완성된 육체 안에 안착시킨다면 더는 상태가 나빠지진 않을 거란 말이다. 쉽진 않겠지만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헌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어디서 그런 육체를 구할 것이고. 또 어떻게 육체 안에 원영을 안착시킬 것이냐? 둘 다 불가능한 것이다.”

    “크크큭.”

    자타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준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때 준혁의 뇌리로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태백랑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준혁에겐 그가 말한 조건에 부합하는 육체가 있었다.

    ‘천균 수사의 뿌리!’

    천균의 부탁으로 하계에서부터 오랜 시간 관리해온 지목족의 뿌리.

    그중 천균의 뿌리는 특별한 인연이라 생각해 한시도 빠지지 않고 가슴에 품은 채 배양하고 있었기에 아마르곤의 원영이 깃들기에 적합한 신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같은 목족의 육체였고, 아무런 자아도 깃든 적 없는, 아직 수사로서 각성하지 못한 뿌리였기에 원영이 안착하는 데 방해받을 일도 없었다.

    거기다 아마르곤과 준혁은 종속의 인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예전처럼 그를 삼켜 안전하게 안착시킬 수도 있었다.

    생각을 마친 준혁은 곧장 품에서 뿌리를 꺼내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금빛실로 둘러싸인 아마르곤의 원영을 삼키고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태백랑을 향해 말했다.

    “어르신 덕에 희망을 찾았습니다. 하여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부탁? 그게 무엇이냐?”

    “제가 일을 마칠 때까지 주변을 살펴주십시오.”

    돌려 말하긴 했으나,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시간 동안 자신을 보호해주라는 것.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뒤 아마르곤을 치료하는 행위를 하면 최상이지만, 시간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기에 태백랑에게 부탁의 말을 꺼낸 것이다.

    잠시 후, 얼떨떨한 표정의 태백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혁은 전함을 꺼내 그 위로 올라탄 후, 보호막을 가동했다.

    태백랑을 믿긴 했지만 최소한의 보호는 필요했기 때문.

    그리고는 좌정하며 체내에 들어온 천균의 뿌리와 아마르곤의 융합 작업을 시작했다.

    온 정신을 집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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