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33화 (333/408)

333화. 우지(牛智) (3)

준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하자, 우지가 먼저 움직였다.

“대답하기 싫다면 입을 열게 해 주지.”

우지는 끝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준혁에게서 느껴지는 마선기의 양만으로 그를 판단하고 얕잡아 보는 듯했다.

실제로 준혁에게서 느낄 수 있는 마선기의 총량은 식검을 처음 얻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가소로워 보이기도 했다.

촤라라락-

우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반짝이는 수천 개의 금빛 실이 공간을 압도하듯 파도처럼 준혁을 덮쳤다.

‘위력이 달라졌다.’

황금빛 실에 담긴 무게가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름을 느낀 준혁.

그는 조금 전처럼 귀원패를 믿다간 낭패를 당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날개를 발동하며 실을 피했다.

그리고는 영역분신을 소환해 우지를 공격하게 만들고, 온몸을 삼지행으로 가득 차게 한 후, 곧바로 삼지행을 성광지력으로 치환했다.

직후, 우지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성광지력을 소나기처럼 쏟아부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저도 실력행사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찰나와도 같던 시간 동안 우지는 이미 네 명의 분신으로 사방을 지키고 있었다. 우지는 그후 황금빛 실을 뭉쳐 거대한 잎사귀처럼 만들어 몸을 보호했다.

동시에 남은 실들을 수십 겹으로 꼬아 황금빛 창을 빚어낸 뒤 날려 보낼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다만 그의 입가엔 조금 전의 비웃음은 사라진 상태였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마선이 성광지력을 사용하다니! 어찌! 잠깐 멈추게!”

준혁에게서 쏟아지는 성광지력에 두려움을 느낀 듯, 그는 급하게 양손을 뻗어 주변 대기를 벽처럼 막아섰다.

콰직-팍팍-

소나기처럼 쏟아진 성광지력은 우지가 만든 벽을 녹여버리며 파고들었고, 곧이어 생성된 수 겹의 황금빛 막을 대부분 꿰뚫다가 증발해 사라졌다.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상성 상 우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그림.

“됐습니다. 이미 저를 의심한 선사께서 무슨 짓을 할지 뻔히 보이는군요.”

준혁은 제대로 된 격돌로 황금빛 실이 가진 진짜 힘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우지와 대화를 나누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황금빛 실은 혼백을 분리하는 우지의 능력의 원천이었고, 첫 만남에 주저 없이 자신의 혼백을 분리해버리려 했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진심으로 상대해주마! 그깟 별의 힘을 가졌다고 나로부터 우위에 서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오산이다!”

파아앙-

그러자 우지가 엄청난 영기파동을 퍼트리며 허공을 움켜잡는 시늉을 했고,

콰지직-

대기 중의 영기가 살아있는 것처럼 준혁의 팔과 다리를 움켜잡아 움직일 수 없게 고정해 버렸다.

하지만 우지가 다음 수를 실행하기 위해 황금빛 실로 만들어진 창을 쏘아 보내려는 찰나.

슈욱- 지이잉-

어느새 허공중에 목각 인형 하나가 나타나더니 거대한 거울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빛이 쏘아져 우지를 빛 안에 가둬버렸다.

“인지괴!!”

우지가 인지경의 본체 모습에 놀라는 사이, 상대에게 디버프가 걸리자 준혁은 여섯 번째 영역분신을 만들어 낸 후, 그 안에 성광지력을 가득 담아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한 손에 거무튀튀한 식검을 소환한 뒤, 영력을 움직여 반 토막 난 검 위로 붉은 광선을 만들었다.

직후, 분신의 뒤를 따라 날아가며 일곱 번째 분신으로 적지주를 소환했다.

촤르르륵-

그 순간, 창을 날려 보내려던 우지의 주위로 붉은 거미줄이 생겨나 주변을 완벽하게 막아버렸고.

동시에 여덟 번째 분신으로 토율서가 소환되며 우지의 발아래 땅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일어나 그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피잉-

“몇 명과 다중 계약을 맺은 것이냐!!”

우지는 경악하면서도 재빠르게 손을 놀려 준혁에게 황금빛 창들을 날려 보냈다.

잠시 후, 우지가 빚어낸 창 수십 개가 성광지력을 품은 분신과 맞부딪쳤고,

콰광 쾅!

분신 뒤를 그림자처럼 쫓던 준혁은 폭음과 동시에 먼지처럼 흩어지더니 어느새 우지의 전방에 나타나 붉은 광검으로 변한 식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적지주! 이익!”

우지는 여덟 명으로 늘어난 준혁의 분신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인지괴가 만든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영력을 폭발시키며 자리를 탈출하려 했다.

콰앙!

하지만 그의 폭발력은 적지주의 그물 위로 나타난 귀원패의 육각 타일로 인해 아무런 위력을 발산하지 못했고, 그는 결국 준혁을 정면에서 맞이해야 했다.

“정체가 무엇이야! 천신라도 이렇게 많은 능력을 한꺼번에 보유하지 못했거늘!!”

준혁을 천신라의 수하라 여겼던 우지는 말도 안 되는 숫자의 마선들의 능력을 사용하는 그를 보며 경악을 넘어 공포에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수행을 도박으로 딴 것이 아닌 듯, 경악으로 심신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코앞까지 다가온 준혁을 막기 위해 양손을 교차하듯 휘젓다가 합장했다,

화악-

그 순간 그의 몸 전체에서 황금빛 실이 뻗어 나오더니 순식간에 뭉치며 거대한 눈알로 변했고,

눈알은 나타나기가 무섭게 눈을 번쩍 뜨며 어마무시한 기운을 뿜어내 주변을 가로막던 인지괴의 감옥과 적지주의 그물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콰과과광!

마치 원영이 폭발하는듯한 엄청난 능력에 코앞까지 다가간 준혁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것이 규선에 다다른 능력인가?’

준혁이 만든 분신들의 수가 상대를 압도할 만큼 많다고는 하나, 개별적인 힘은 대천경 수사를 벗어날 수 없는 법.

잠시 후, 적지주와 인지괴를 이어서 사신 분신과 토율서, 거기다 귀원패까지 영기 폭풍에 휘말리며 전부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폭풍의 힘은 그들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준혁마저도 녹여버릴 듯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성광지력이 없었다면 식아의 힘을 빌려도 이길 수 없었겠어.’

그 순간, 석두의 석화 능력에 성광지력을 혼합해 몸을 보호한 준혁은 코앞에 자리한 채 황금빛 폭풍으로 변한 우지를 향해 손가락을 사선으로 그었다.

“갈라져라.”

그러자 손끝에서 뻗어나간 붉은 광선이 황금빛 폭풍을 갈라버리며 그 안에 당황한 채 흔들리는 눈으로 준혁을 주시하는 우지를 무방비로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그가 무방비가 된 찰나의 순간.

스윽-

붉은 광검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푸욱-

어느새 검은 식칼로 돌아온, 준혁의 손에 들린 식검이 우지의 심장을 정확히 관통해 있었다.

“이 무슨 개 같…. 크윽.”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찌른 준혁을 바라보던 우지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자신의 심장에 위치한 식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 식검의 손잡이와 준혁의 손을 움켜잡았다.

‘설마? 식아의 힘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식검의 능력에 반항하듯 흡수되지 않고 버티는 우지를 보며 준혁이 놀라는 사이 우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다…. 진정 천신라의 주구가 아니었구나…. 이게…. 그…. 시…. 식….”

그리고 말을 채 끝맺음하지 못하고.

슈르륵-

다른 마선들과 마찬가지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식검에 흡수되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우지를 흡수한 직후.

준혁은 여덟 분신과 천혈의 힘, 거기다 삼지행까지 동시에 운용한 후유증으로 잠시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 하며 보진단을 한 움큼 꺼내 삼키고는 좌정한 채 요양했다. 한참 후에야 긴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쉽지 않구나.”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됐지만, 그 잠깐 사이에 오간 힘의 크기는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전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준혁이 승리하긴 했지만, 빠르게 휘몰아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시간을 두고 천천히 움직였다면 상황은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그런 경우였다.

‘이 정도의 수행으로도 천신라가 두려워 도망쳤으니, 그의 경지는 감히 짐작이 가질 않는구나.’

준혁은 우지와 중괴의 수행을 떠올리며 어림짐작으로 천신라의 경지를 가늠해 보려다가 절로 고개를 젓고 말았다.

잠시 후, 몸 상태를 점검한 준혁은 흡수한 우지를 소환하며 그의 능력을 세세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우지.”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빛나며 동시에 그의 앞으로 황금 송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송아지는 우지와 마찬가지로 앞머리털이 길게 자라있어, 두 눈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이런 능력이었구나! 혼백을 분리한다는 게.”

혼백 분리 능력을 사용해볼 상대가 없어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우지의 능력은 몸에서 영혼을 떼어낼 수 있는 권능이었다.

다만 조건 없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몇 가지 전제가 우선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대단한 능력임은 분명했다.

“아! 혹시?”

그때 준혁의 뇌리로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고, 그는 곧바로 화정이 놓여 있던 제단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한 손을 뻗어 화정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쩌면 이것도 가능하겠어.”

부르르-

그러자 거대한 화기 덩어리였던 화정이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화정을 이루고 있는 수정체와 화기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화기는 투명한 물주머니에 담긴 액체처럼 둥둥 떠올라 수정체를 벗어나더니 준혁에게 점점 다가왔고,

흐으읍-

준혁이 숨을 힘껏 들이켜자, 담배 연기처럼 그의 몸 안으로 힘차게 빨려 들어가 버렸다.

“역시! 가능하구나”

우지가 왜 이곳에 머물고 있을까 생각하다 그의 능력이 생명체에만 국한되지 않을 거라 가정했고, 그것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었다.

잠시 후, 몸 안으로 들어온 화기는 그 존재감을 표출하듯 준혁을 불살라 버릴 듯이 격동하다가, 태양지력과 동화되며 단(丹)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출렁-

짧은 순간 어마어마한 충만감에 희열을 느낀 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좋구나!”

영기구름이 품고 있는 수준의 기운은 아니었지만, 그에 필적할 만한 엄청난 기운.

당장은 태양지력과 동화되어 몸 안에 스며들었을 뿐이지만, 후일 제대로 정제하고 나면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엄청난 기운이었다.

하지만 웃고 있는 그가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후일 기대감을 안고 금지를 방문한 명왕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모습을?

***

우지에 이어 화정의 기운까지 몽땅 흡수한 준혁은 명왕지보를 이용해 금지를 벗어났다.

금지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모습을 감춘 후, 빠르게 움직여 소화여와 조호랑을 탐색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발견했고, 그 즉시 분광소를 소환 해제하며 그 자리로 바꿔치기했다.

“어?”

그러자 삼지행에 예민하게 반응한 소화여가 즉각 그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 준혁의 손을 놓았다.

소화여의 행동에 조호랑은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지만, 오히려 더 밀착하며 준혁의 팔을 꼬옥 안았다.

그 모습에 소화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다가 샐쭉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돌아오신 건가요?”

준혁은 조호랑을 팔에서 떨어지게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딱히요? 대인께선 가신 일은 잘되셨나요?”

소화여의 반문에 준혁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움직여 보인 후, 미소로 화답했다.

그 모습에 두 여인은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밝게 웃어주었다.

준혁은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피식 웃다가 명왕의 거처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돌아가 봅시다.”

이제 봉황족의 영토를 벗어나 다시 아마르곤을 만나러 가야 할 시간.

준혁은 그의 자아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두 여인과 함께 숲을 가로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