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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28화 (328/408)
  • 328화. 백랑족으로 (1)

    분광소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 자리에 빛이 번지는가 싶더니 곧장 전함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자 이미 명령을 받고 기다렸다는 듯 준혁 일행들이 번개처럼 반응해 전함 위로 올라탔고, 준혁은 전함의 보호막을 발동시키며 용천무의 날개와 전함을 공명시켰다.

    동시에 적마를 역수로 쥐더니 전함의 갑판 위로 꽂아 넣으며 가진 기운을 최대로 불어넣었다.

    그때, 자신에게서 법기를 회수해간 준혁의 행동에 자타는 코웃음과 함께 양손을 지휘하듯 움켜쥐었다.

    “감히! 저를 상대로 장난을 치셨습니까?”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검은 꽃잎 수천 장이 휘날려 날아와 전함을 포위하듯 모여들었고, 이내 보호막 위로 안착하더니 푸른 보호막을 검게 물들여 버렸다.

    그 변화가 너무나 빠른 찰나와 같아, 준혁이 적마도를 역수로 쥐고 갑판에 꽂아 넣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저건 아마르곤 수사의 공법을 활용한 것인가? 설마 그의 기억을?’

    처음 공간이동진을 이용해 등장했을 때 혹시나 했던 불안한 생각이 준혁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가 살아있음을 확신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아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현재 자타는 아마르곤이 가지고 있던 암흑마기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의 일부와 동화하는 데 성공한 상태.

    다만 그것이 매우 불안정했기에, 처음부터 준혁을 억압하지 않고 대화를 유도한 것이었다.

    영역이 전해주는 준혁의 상태는 그리 신경 쓸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소문으로 요마족 삼대 선사를 단숨에 처리했다고 하니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타가 규선에 올라 진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벽을 넘어섰다고는 하나, 자신의 원영과 융합하기 시작한 아마르곤의 원영이 준혁의 등장으로 거세게 반항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내부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으니까.

    다만 자타가 가진 힘을 전부 드러내든 일부만 사용하든, 준혁은 전함이 가진 방어력을 믿고 있었기에 검은 꽃잎은 무시하고 공간탈출을 시도했다.

    “가라!”

    콰자작-

    그 순간 중괴가 전함을 날개와 공명시켰을 때와 달리,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가며 전함이 위치한 자리의 공간이 유리 깨지듯 터져나갔다.

    그리고는 늪에 처박힌 배처럼 전함의 전면이 깨어진 공간에 가로막히며 요지부동하며 멈춰 서버렸다.

    “이런!”

    그 현상이 공간을 찢고 탈출하려는 전함을 자타의 영역이 가로막음으로써 생긴 것임을 깨달은 준혁은 서둘러 영역분신을 전함 밖으로 날려 보냈다.

    동시에 공간팔찌 안에 남겨두었던 대천경 수사의 원영 하나를 꺼내 상공으로 날려 보내며 천혈의 힘으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원영이 가진 영력을 폭발시키면!’

    짧은 순간이나마 규선이 만들어낸 영역에 저항할 수 있을법한 영기 폭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이 적중하듯, 준혁이 만들어낸 네 명의 영역분신이 자타의 분신들을 잠깐 막아내며 시간을 버는 사이.

    스악- 화아악-

    반으로 갈라진 대천경 원영의 기운이 엄청난 영기 폭풍과 함께 100여 미터 가까운 전함 전체를 집어삼켰다.

    “돌파하라!”

    그 순간 준혁의 입에서 강한 의지가 실린 명령이 터져 나왔고,

    쿠웅-

    아까와 달리 전면의 공간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전함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하지만, 규선이란 존재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일까??

    공간을 찢으며 그 안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던 전함이 무언가에 밀려나듯, 흐릿하던 모습이 다시 선명하게 드러났다.

    스르륵-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힘에서 상대에게 밀린 형상.

    ‘설마 이걸로 부족하단 말인가?’

    준혁은 생각보다 상대의 영역을 탈출하는 게 힘들어지자, 급하게 체내에 비축한 화신체 비술로 만든 마정 전부를 폭발시키려 기운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얻기 위해 마지막 남은 대천경 수사의 원영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재롱은 거기까지만 보겠습니다. 함몰하… 커억!”

    그때 준혁의 영역 분신들을 간단하게 처리해버린 자타가 엄청난 규모의 먹구름을 불러오더니 전함을 향해 손짓하다가, 검은 피를 울컥 쏟아내며 몸을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그게 무엇 때문인지 생각할 겨를도 준혁이 움직였다. 주변을 둘러싼 영역의 의지가 옅어지는 것 같아지자, 꺼내 들던 원영과 화신체 비술의 폭발을 보류한 채 재차 전함과 날개를 공명시킨 것이다.

    파앗-

    직후, 전함은 좀 전과 다르게 공간을 쉽게 찢어내더니 그 틈으로 유유자적 모습을 감춰버렸다.

    “으아악! 날 방해하다니!! 혼의 명맥은 유지시켜 주려 했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게 소멸시켜 버리겠다!”

    전함이 사라진 자리.

    지금껏 여유롭고 점잖던 모습과 달리, 분노에 찬 자타의 고함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

    어둠만 가득한 옛 구지대륙의 한적한 외곽.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3미터 정도 길이의 비행법기가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비행법기의 선두엔 심각한 얼굴의 준혁이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소화여 등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타에게서 도망친 지도 나흘째.

    준혁은 공간의 틈을 벗어나자마자 전함을 회수하고는, 무영기로 감쌀 수 있을 만한 가장 작은 비행법기를 꺼내 자타에게 발각되지 않게 보호했다.

    그리고는 흑마지에서 멀어지기 위해 쉬지 않고 도망치며 불안정하게 들끓는 내부를 다스리고 있었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친구분을 구하진 못했지만…. 그로부터 살아나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에요. 전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심각한 준혁을 위로하는 조호랑.

    준혁은 자신을 위로하는 그녀에게 슬쩍 눈길을 주며 고개만 끄덕여 화답하고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했다.

    그녀의 염려와 달리 준혁은 상심에 빠진 것이 아니라, 계획을 짜기 위해 쉴 새 없이 고민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에 분명, 내 힘으로 탈출한 것이 아니다.’

    하고자 했다면 모아두었던 모든 힘을 개방해 자신의 힘만으로 탈출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아마르곤 수사. 그대가 날 도운 것입니까? 그자 안에서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태면서도?’

    “그리고 진마족 수장의 암운기 속에서 이런 이적을 만들어내다니, 최 선사께서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먹구름처럼 밀려들던 그것 말인가?’

    재차 말을 걸어오는 조호랑 때문에 준혁은 결국 생각을 멈추며 그녀 말에 대꾸했다.

    “암운기?”

    “네. 그 안에 갇힌다면 동급수사도 목숨이 위태롭다는 얘길 할아버지께 들었어요. 물론 지나가듯 흘려들어 자세한 건 모르지만, 선계에서 손꼽히는 술법 중 하나라고 들었거든요.”

    “그렇습니까?”

    솔직히 먹구름을 맞닥트리기도 전, 자타 스스로 무너졌기에 암운기라는 힘을 제대로 상대해 보지도 못한 준혁은 조호랑의 칭찬에 쓰게 웃고 말았다.

    그때 위로의 칭찬을 이어가던 조호랑이 준혁의 눈치를 보며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근데…. 이후 계획이 없으시다면 저와 함께 대황대륙으로 가지 않으실래요?”

    언젠가 한 번 찾아간다고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기에 준혁은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흔들며 거부했다.

    “그건 힘들 것 같….”

    하지만 거절을 끝맺음하기도 전, 조호랑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얼굴색이 급변하고 말았다.

    “선사께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거든요. 혼을 분리해주는 선사에 대해서…. 그게 혹시 친구분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고개를 젓던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조호랑의 양어깨를 움켜잡으며 급하게 말을 꺼냈다.

    “정말입니까?”

    “네? 네.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오래전에 할아버지께 전해 들은 기억이 있어요. 명왕이 머무는 대륙 깊은 곳, 금지라 불리는 곳에 혼을 육체에서 떼어낼 수 있는 분이 계신다고, 마선과 계약한 계약자가 완전한 동화를 끝마쳤음에도 다시 분리되는 모습을 직접 보셨다고 하셨거든요.”

    “가겠습니다.”

    “예?”

    “당장 대황대륙으로 향할 테니 길을 안내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목적지 없이 흑마지에서 멀어지는 데 초점을 두고 있던 비행법기의 선두가 흑석대륙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

    무영기 때문인지, 규선의 시야에서 안전하게 벗어난 일행은 왔던 길을 고스란히 거슬러 흑석대륙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곧장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황대륙으로 향했다.

    굳이 흑석대륙을 거치지 않고 옛 구지대륙에서도 직통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자타의 영역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흑석대륙을 지나쳐 대황대륙의 초입에 들어선 준혁은 현세에서 보기 힘든 밀림을 눈앞에 두고 발을 멈추고 말았다.

    “이곳이….”

    “네. 대황대륙에 오신 걸 환영해요.”

    대황대륙은 영수족의 터전이라 그런지, 집채만 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으로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퍼진 숲.

    그리고 그 숲을 이루고 있는 수십 미터 두께의 거대한 나무들.

    나무 하나하나가 목족의 대지에서 보았던 적유목의 크기라 왠지 모를 압도감이 느껴졌다.

    숲에서 퍼지는 영기의 밀도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인족을 포함한 다른 종족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후일 그 이유를 전해 듣기로, 대황대륙의 영수 왕들이 자신들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종족도 대륙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게 명을 내렸기 때문이라 했다.

    다만 그들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황대륙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이제 저만 따라오세요. 이곳부터는 각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되기에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해요.”

    조호랑의 지시에 따라, 준혁 일행은 비행법기를 수거한 후, 그녀의 뒤를 따라 숲 위를 가르기 시작했다.

    ***

    끝도 보이지 않는 초록 배경을 가로지르기만 아홉 달째.

    준혁은 내심 마음이 초조해지는 걸 느끼며 조호랑의 뒤통수만 응시했다.

    그녀의 부탁으로 인해 기감을 퍼트려 주위를 살피는 것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답답한 마음이 배가되는 중이었다.

    “조호랑 수사, 아직 멀었습니까?”

    준혁의 목소리에서 친구에 대한 걱정을 읽은 것인지, 조호랑은 장난기 없이 지평선 멀리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 와 가요. 저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저희 백랑족의 영토이니 갑갑해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잠시 후,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는 나무 위에 멈춰선 조호랑은 지금까지 조심해서 이동해 온 것과 달리 전신의 영력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러자 조호랑의 기세에 반응하듯 대기가 울렁거리듯 출렁거렸고,

    그것을 신호로 그녀와 비슷한 외형의 여수사들, 호피천으로 아슬아슬하게 몸매를 드러내는 여수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들이 열을 넘어갈 즈음.

    슈아앙-

    대지 저편에서 누군가가 초음속을 돌파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세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인사하세요. 저희 조부이신 백랑족의 태백랑. 투왕이라 불리시는 교천묘세요.”

    콰앙!

    조호랑이 설명을 이어가는 사이, 날아들던 사내가 나무 위로 갑자기 멈춰서자, 그의 발아래 나무가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나가며 비산했다.

    사내는 흩날리는 나뭇조각들을 배경으로 호쾌하게 웃으며 조호랑을 반겼다.

    “하하, 우리 귀염둥이가 돌아왔구나! 엥? 근데 이 인족 놈들은 뭐지? 오는 길에 잡아 온 것이냐?”

    존재감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사내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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