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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27화 (327/408)
  • 327화. 조우 (3)

    진마족의 수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자타는 미묘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였다.

    분명 마족인데도 마족 특유의 어둡고 진득한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고, 오히려 그 어떤 수사보다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만이 전해졌다.

    ‘진마기인가.’

    그것이 극에 이른 진마기 때문임을 알아본 준혁은 자신의 암흑마기가 상대에게 상성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소문으론 삼대 마족의 수장들은 규선이라 했었거늘 길보다 흉이 많겠구나.’

    더군다나 지금 준혁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연유가 하나 더 있었다.

    당장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 그건 바로, 자타에게서 느껴지는 아마르곤의 향기 때문.

    “자타 선사, 초면에 이런 말부터 여쭈는 게 실례인 줄 아나, 혹 아마르곤이란 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준혁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타 앞에서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자, 주변 인물들뿐 아니라 자타 본인도 의외란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타는 준혁의 질문에 흑마지 쪽으로 시선을 살짝 옮기다 대답했다.

    “아, 그를 찾으러 오신 겁니까? 물론입니다.”

    자타의 긍정에 준혁이 예를 갖추며 몸을 숙였다.

    “저에 대해 알고 계신듯하니 제 소개보단 이곳에 방문한 연유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옳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진마족을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오래전 잃어버린 친우를 찾으러 온 것이니, 그의 행방에 대해서만 알려주신다면 사과하고 물러나겠습니다. 더불어 원하신다면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성의를 보이겠습니다.”

    성의라는 단어에 자타의 올라간 입꼬리가 한껏 더 치솟았다.

    “성의라. 재밌군요. 혹여나 본인이 원한다면 이곳에서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까?”

    “......”

    “이럴 땐 성의가 아니라, 목숨을 부탁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파앙-

    그 순간, 자타를 중심으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하며 준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영역의 진정한 힘.

    마치 주위 모든 공간이 준혁을 배척하기라도 하는 듯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으드득-

    ‘영역을 이루는 의지의 밀도가 다르구나.’

    하지만 준혁은 곧장 석두의 권능이었던 석화의 힘을 자신에게 걸어 온몸을 바위처럼 만들어버렸다.

    동시에 피부 위로는 암흑마기로 이뤄진 육각 타일을 만들어 압력을 막아섰다.

    그 모습에 자타는 의외란 듯 즐거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기뻐했다.

    “오호라. 내 의지에 의지가 아닌 술법으로 맞선다?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제가 우습게 보이셨나 봅니다.”

    “아, 아닙니다! 선사께 대항할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드리려고 그런 겁니다.”

    수행 차이가 난다고 해도 보통 영역 속에서 버티려면 같은 영역으로 기운을 상쇄시키는 게 일반적인 방법.

    하지만 준혁은 수행이 부족했기에 자타처럼 상시적으로 완벽한 영역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건 진선에 올라야만 가능한 일. 준혁이 비슷하게 흉내 내고 있다고는 하나 엄연히 진짜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해서 당장 물리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영역을 발동하면 상대의 장난에 조금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을진 몰라도, 만약 그랬다간 자신이 진선이 아닌 대천경 수사라는 걸 들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세 싸움에서 밀릴지언정 수행이 드러나는 건 피해야 했다.

    “오호 그렇습니까?”

    자타는 준혁의 피부 위로 흐르는 암흑마기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친우의 행방이라? 알려 드리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수용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음흉한 얼굴로 눈초리를 가늘게 뜬 자타가 말을 이었다.

    “수사가 가진 그 진마기. 그걸 전부 저에게 넘겨주시지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친우의 행방뿐 아니라, 동료분들과 함께 안전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어느덧 테오가를 비롯한 마족들은 수장의 행보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멀찍이 멀어져 사태를 관망했다.

    자타는 그런 수하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대답을 기다리며 한껏 여유롭고 거만한 표정으로 준혁을 응시했다.

    하지만 이미 암흑마기가 오행신기와 하나 된 준혁에겐 불가능한 요구.

    “불가합니다. 제가 원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니 다른 제안을 주시면….”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저기 전함과 제가 가진 정보를 맞바꾸는 것은?”

    처음부터 전함을 빼앗고자 운을 띄운 듯, 자연스럽게 목표가 바뀌었다.

    준혁은 상대의 눈에 어린 욕망에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함을 향해 손을 저었다.

    “당연히 가능하지요.”

    그러자 그 안에 대기 중이던 일행들이 강제로 밖으로 밀려 나왔고, 전함이 수축하더니 준혁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준혁은 일행들에게 눈짓으로 멀리 떨어지라 신호를 보내고는 조각배 모형으로 변한 전함을 한 손에 쥔 채 자타를 향해 말했다.

    “목숨 같은 친우에 비한다면 이깟 법기 따위, 비교할 수나 있겠습니까? 허나 이걸 드린다고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렇게 하시지요.”

    파앙-

    그리고는 영기파동을 퍼트림과 동시에 주변으로 자타의 의지가 작용하지 못하게 기운을 밀어냈다.

    약속을 지킨다면 자신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이었다.

    스윽-

    그사이 준혁의 손바닥을 통해 분광소와 적마도가 원영에게 있을 때처럼 조막만 하게 변하더니 전함이 변한 법기 속을 파고들었다.

    잠시 후, 준혁은 법기를 허공중에 날려 보냈고, 조각배 법기는 정확히 준혁과 자타 사이에 멈추더니 미약한 영기파동을 끊임없이 퍼트리기 시작했다.

    자타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흑마지에 진마정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된 후, 우릴 비롯한 삼대 마족 전체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단 건 알고 있습니까?”

    질문으로 시작한 자타의 말은 그 후 그들의 행보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누구보다 순수한 마기를 지녔지만, 전투력만 따지자면 요마족에 밀렸던 진마족.

    그들은 결국 흑마지를 요마족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을 한층 더 강하게 해줄 진마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마족들보다 진마정을 원했기에 끊임없이 흑마지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던 중 요마족 내부에 문제가 생기자 그걸 기회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처리한 게 이런 식으로 영향을 주다니.’

    준혁이 대화성 전투를 떠올리는 사이, 얘기는 계속됐다.

    흑마지를 차지한 진마족은 요마족의 내부가 진정되면 상황이 다시 바뀔 거라 생각했기에, 수장인 자타가 직접 나서 흑마지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마족들과 달리 가장 순수한 마기로 무장한 그는 누구보다 흑마지 깊은 곳으로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게 아마르곤 수사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진마정에서 중화의 힘을 뺀, 그 어떤 마기보다 순수한 암흑마기만을 대량 흡수한 아마르곤은 흑마지 깊은 곳에서 더 많은 마기를 빨아들였고, 그걸 발견한 자타는 그 순수함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어디 있습니까?”

    자타의 행보에 대한 기나긴 얘기가 끝나자 준혁은 왠지 답이 예상가는 물음을 던졌고,

    “이곳에 있습니다.”

    자타는 예상하지 않았냐는 눈빛으로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

    적막만이 가득한 흑마지 상공.

    자타는 약속을 이행하고 나서 용천무의 전함을 빨아들이듯 가져가더니, 손 위에 올리고 감탄을 남발하며 감상했다.

    준혁은 그런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뗐다.

    “선사, 어떤 것으로든 보상하겠습니다. 그를 내어줄 수 없으십니까?”

    준혁의 요청에 자타가 전함을 품에 넣고 나서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 알았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만, 불가능합니다. 이미 그는 제 안에서 체화되어 저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원영도 남지 않았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중화의 힘도 남지 않은 진마기는 애초에 제 힘의 원류와 마찬가지. 지금까지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자타의 반문에 준혁은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상대의 수행과 기운 간의 상성을 생각하면 분명 일리 있는 변명이었지만, 준혁은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그에게서 아마르곤의 향기를 느꼈었다.

    그리고 그런 향기가 남았다는 것은 영혼으로 이어진 종속의 인이 아직 건재하다는 뜻.

    그 말인즉 혼백과 자아가 소실하지 않았단 뜻이었고, 그것은 아마르곤의 원영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어쩌면 명혼단이 그를 보호해주고 있는 건지도.’

    아마르곤에게 암흑마기를 넘겨줄 때, 준혁은 그의 생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수단을 마련했었고, 어쩌면 그것들이 규선에게 잡아먹힌 그를 보호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준혁이 종속의 인을 자극하며 자타 모르게 아마르곤의 상태를 느껴보기 위해 애쓰던 순간.

    콰르르-

    주변의 기운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거워지면서 이번엔 준혁 일행 전체를 억압했다.

    “허억!”

    그러자 소화여가 몸을 휘청거렸고, 조호랑은 영역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준혁은 그나마 기운에 대항할 수 있었는데, 이를 악물며 버티고 선 것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다행히 영수대 안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구나.’

    준혁은 영역의 의지가 미치는 범위를 파악하며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이걸 어쩝니까? 약속을 지키려고 했으나 그대가 건네준 전함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

    “천영보급 전함을 이렇게 쉽게 넘기는 걸 보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더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수행을 쌓으며 욕심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어깨를 으쓱 올리는 자타의 행동에 준혁은 짐짓 화난 표정에서 점차 무표정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작은 한숨과 함께 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화악-

    그러자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나타나더니 맹렬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의 피부 위로 푸른 비늘이 돋아나며 마치 반 용족처럼 보이게 그를 감쌌다.

    “한 종족의 수장이란 자가 도적과 다를 게 없으니, 어찌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요마족과 전마족의 원류라 자처하면서도 그들에게 밀린 이유가 그것이겠지.”

    ‘어르신이 전함을 발동했을 때와 지금 나는 다르다, 하지만 거기에 적마의 힘까지 동원한다면.’

    드러난 상대의 욕심에 침착한 척 대응하고 있긴 하지만, 준혁의 머릿속은 각종 상황을 계산하기 위해 쉴새 없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중괴가 용천무의 날개와 전함을 이용해 공간 탈출을 감행한 후, 얼마나 버거워했는지 옆에서 지켜봤기에 자신은 더 힘들 거란 걸 예측할 수 있는 상황.

    그랬기에 용천무가 남긴 모든 힘을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거기다 화신체 비술을 이용해 몸 안에 비축해둔 진선급 원영들의 힘까지.

    “나를 도발하려 하는 겁니까? 우습군요.”

    준혁의 태세가 변했기 때문인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거슬렸기 때문인지, 자타는 준혁의 행동에 입꼬리를 올리며 한 손을 뻗었다.

    “수도계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미리 말하자면 반항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여덟 개의 새까만 덩어리들이 나타나더니 준혁을 관통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스아악-

    여덟 덩어리는 하나하나가 진선급 이상의 영력을 품고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준혁을 으깨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준혁에게 자타의 공격은 너무나 예상하기 쉬운 방식.

    파앗-

    새까만 덩어리들에게 몸이 관통당하기 직전, 준혁은 공간을 파고들 듯 사라지더니 멀찍이 떨어진 일행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비웃음을 가득 담아 입을 열었다.

    “분광소.”

    파앗-

    그 순간 준혁과 똑같은 모습의 분신이 한 손엔 붉은 장검을, 다른 손엔 조각배 법기를 들고 곁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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