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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20화 (320/408)

320화. 대화성으로 (2)

주서령을 떠나온 준혁 일행은 회화성에 도착한 후, 전송진을 이용해 천운대륙 남단의 하류성으로 곧바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으로 넓고 넓은 천운대륙을 건너기 시작했다.

일이 년 걸리는 짧은 비행이 아니었기에 준혁은 마족의 강체술법을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틈틈이 소화여의 공법을 다듬어 주었다.

중괴는 준혁에게 확답을 들은 후로 완전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두문불출했고, 조호랑은 쉴 새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며 준혁을 귀찮게 했다.

언젠가부터 조말랑은 비행법기 조종 담당이 되어 말없이 영력을 운용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비행 법기 위에서 수다와 수련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내길 수년.

일행은 호란대륙으로 넘어가는 필수 관문인 고문성 인근에서 뜻하지 않은 손님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마치 포위하듯 넓게 포진한 채 기다리고 있던 인물들은 한두 세력의 모임이 아닌지 제각각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과 친분이 있는지 중괴가 아는 척을 하며 나섰지만, 곧바로 물러나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마의 계약자인 준혁을 만나러 온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는데?”

이곳일 줄 몰랐지만, 조만간 누군가의 방문을 예상했던 상황이라 준혁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나섰다.

“다들 저를 기다리신 듯한데, 무슨 일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대화성을 떠나오면서부터 혹시나 요마족과 마선들의 방문이 있을까 봐, 무영기로 감추고 있던 기운을 일정 부분 열어둔 상태였다.

마선경과 시야를 공유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적당하게.

자신이 없는 사이 대화성이 공격당하지 않게 하려는 방편으로 말이다.

준혁이 앞으로 나서자, 중괴와 대화를 주고받은 인물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허허, 드디어 만나는구만 적마. 평소처럼 도망 다니지 않는 걸 보면, 제법 담력이 늘었나 보이.”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 가장자리에 있던 백미의 노인이 손을 흩뿌리자 주변 공기 질이 변하며 일정 공간이 외부와 분리되었다.

분리된 공간은 정확히 준혁 일행을 가두었다.

그 모습에 준혁과 중괴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푸른 법복을 입고 있던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외쳤다.

“이번엔 도망갈 수 없을 거다!”

사내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안개처럼 몸을 숨기고 있던 여덟 명의 수사들이 나타나더니 벽돌처럼 생긴 법기를 치켜들며 발동시켰고, 그 순간 외부와 분리된 공간이 보이지 않은 하얀 기운으로 한 겹 덮어졌다.

“하하, 어떠냐 이 도둑놈아! 성광지력으로 만든 결계다. 어디 예전처럼 도망쳐 보거라.”

백미 노인과 푸른 법복의 사내는 미리 연습이라도 한 건지, 서로가 준비한 결계를 하나처럼 발동시켰다.

그리고는 준혁은 다 잡은 물고기처럼 바라보며 냉소했다.

“다른 분들도 어서 준비한 것들을 꺼내시지요!”

그것이 끝이 아닌지 푸른 법복의 사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종용하자, 홍의를 입은 여인과 백유라 불리던 사내도 각각의 법기를 꺼내더니 결계 위주의 진법을 발동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의 수사들도 비슷한 종류의 술법을 발동하더니 의기양양해져 준혁을 노려보았다.

‘하나같이 발을 묶는 데만 주안을 두었군.’

준혁은 그들의 행동에 피식 웃고는 기감으로 결계를 확인했다.

‘제법이야.’

어떤 결계든 무시할 수 있는 적마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준비했는지, 보이지 않는 은은한 성광지력이 꽤나 정교하게 그물처럼 행동을 제약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일곱 가지 진법이 미약하지만 전부 성광지력을 담고 있어 상대방의 준비가 꽤 탄탄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으음, 매우 기분이 나쁘구나.”

옆에선 벌써 진법의 영향을 받는지 중괴가 앓은 소리를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음성에서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마선에게 최악의 법기라는 파뢰를 준혁이 무력화시켰다는 걸 알기에, 상대방의 준비에 오히려 코웃음 치고 있었다.

“백유, 이게 무슨 의미지? 한번 해보자는 거냐? 이깟 어설픈 성광지력으로 우릴 억압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야?”

“허허, 아니네. 내가 자네와 싸울 일이 무어 있겠는가? 나는 다만 저자가 가져간 걸 되찾으면 그만일세.”

백유가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다른 수사들도 전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괜히 얼굴 붉힐 필요 있겠습니까? 우린 적마 저자가 가져간 물건만 되찾으면 됩니다!”

“그런 것치곤 준비가 과한데?”

“과하다니요?! 적마 저자의 능력을 봉쇄하자면 불가피한 조치일 뿐입니다!”

중괴는 목소릴 높이는 수사를 지긋이 바라보다 시선을 지상으로 두었다. 그러면서 입꼬리를 최대한 늘어트렸다.

“그래? 그래서 애들을 저리 바글바글 끌고들 왔나? 전부들?”

중괴의 말에 모두가 긴장한 듯 합죽이가 되었다.

일촉즉발, 누가 먼저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그때.

준혁이 손을 휘저으며 대기를 흔들었다.

후우웅-

그러자 움직이려고 준비 중이던 일곱 수사가 움찔하더니 조금씩 뒤로 물러났고, 지상 곳곳에 숨어있던 하위 수사들이 대놓고 숨을 내뱉었다.

“으헉”

“이게….”

준혁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강렬한 기세를 발산하며 무리의 중심에 서 있는 푸른 법복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그전에 다들 오해가 있어서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무슨 오해? 설마 물건을 훔쳐 간 게 아니란 말이라도 하려고?”

적의가 담긴 상대의 목소리에 준혁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적마가 당신네들의 보고를 털었든 아니든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저는 적마가 아닌 것을.”

“그게 무슨!”

“다들 마선경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입니까? 그에게 이용당하고 있단 생각은 하지 않으십니까?”

전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말을 잃자, 준혁이 손을 가볍게 흔들어 붉은 장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푸른 법복의 사내에게 날려 보내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가 저를 적마로 지목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겠지요.”

“이건!”

푸른 법복의 사내가 적마도를 손에 쥐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맞습니다. 마선들은 계약상태가 아닐 때 본신의 모습을 하거나 법기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건 아실 테지요? 제가 적마도를 손에 넣은 건 사실이지만, 여태껏 그의 목소리도, 어떤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준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 백유와 홍의를 입은 교호홍이 번개처럼 다가가더니 적마도를 확인했다.

곧이어 다른 이들도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하나둘 움직였다.

준혁은 그들이 적마도의 상태를 확인하기까지 말없이 기다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그의 계약자가 아니기에 그에 대한 어떤 것도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그런 제가 당신들의 보고에서 적마가 가져간 물건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수사분들께선 마선경에게 속으신 겁니다.”

말을 끝마친 준혁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적마도가 빨려들 듯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푸른 법복의 사내가 적마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무언가에 감전된 듯 화들짝 놀라며 놓치고 말았다.

“믿을 수 없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적마를 넘겨라! 그럼 네가 적마의 계약자가 아니란 걸 믿어줄 테니!”

적마를 회수한 준혁은 공간팔찌에 그것을 수납하며 싸늘한 눈으로 푸른 법복 사내를 내려보았다.

다른 이들도 푸른 법복 사내의 말에 동의하는 듯 무슨 대답이 나올지 준혁의 입만 바라보았다.

“어째서 말입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네 말을 증명하라면 적마를 넘기라고!”

“아니, 어째서 제가 얻은 물건을 내놓으라 마라 하느냔 말입니다. 그럼 그 대가로 당신은 무얼 내줄 것입니까? 적마의 보물 창고를 찾기만 하면 종문을 세우고도 남을 부를 얻을 수 있는데, 당신은 무슨 권리로 제게서 제 물건을 요구하냐 이 말입니다.”

“보십시오! 저자가 결국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적마의 계약자가 아니라면 더 쉽게 됐습니다! 우선 적마를 가져오고 그 후 다음을 논의하지요!”

푸른 법복 사내는 준혁의 말에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지, 바로 진심을 내비쳤다.

동시에 진법을 강화하며 공격에 나서려는 듯 영력을 움직였다.

그 모습에 중괴가 귀찮게 되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준혁이 살짝 고개를 젓더니 앞으로 몸을 숙였다.

-어르신,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금방 해결될 테니.

적마의 적법한 계약자가 아님을 밝혔으니, 적마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선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

준혁이 저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다였기에 이제부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대신 실력행사를 한 후, 적절한 타협책을 만들어내면 될 뿐이었다.

애초에 준혁이 그들을 유인한 것이 대화성의 안전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부딪쳐야 할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

중괴의 말대로 남들 눈에는 자신이 마선으로 보일 수 있으니, 마선경과 괴조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그 논리를 정면에서 박살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준혁의 몸에 하얀 성광지력이 어리기 시작하자 중괴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역시! 네가!!”

소화여의 태양지력을 성광지력으로 바꿨을 때만 해도 준혁이 발뺌했기에 의심만 했던 일.

중괴는 ‘이 사기꾼 같은 놈’이라는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예상했으면서도 막상 눈앞에서 확인하니 배신감이 든 것이다.

준혁은 그런 중괴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 후, 급하게 기세를 일으키며 대항하려는 수사들을 향해 번개처럼 움직였다.

***

파앙-

적마도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단거리 이동속도는 적마의 순간이동 권능과 필적할 정도.

준혁이 움직이자 마치 빛이 번쩍인다는 느낌만 들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옵니다!”

거기에 대항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푸른 법복의 사내가 진법을 강화했고, 연이어 여섯 명이 동시에 가진 수단을 움직였다.

찰나와도 같은 그 순간.

콰지징- 파징-

상대가 적마의 계약자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옭아맬 수 있다고 여겼던 결계가 유리창이 깨지듯 터져나갔다.

준혁이 단번에 여러 겹의 진법을 벗어나자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 말도 안 돼!!”

성광지력이 스며들어 진을 강화하는 걸 제외하고서라도, 일곱 명의 진선이 합심한 결계가 단번에 깨지자 전원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애초에 준혁이 적마도를 상대방에게 던져주었던 행동 자체가 지금을 위한 것이었다.

적마도를 받기 위해 결계의 일정 부분을 해제해야 했고, 그사이 준혁은 실낱보다 옅은 기운으로 공간에 틈을 만든 채 대기하고 있었던 것.

누구도 접하지 못한 삼지행의 힘이었기에 다들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준혁이 스스로의 수행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곱 명의 진선을 전부 상대하는 건 무리라고 여겼기에, 단숨에 상황을 압도해 전투의지를 상실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일곱 명 중 다섯이 인족이었기에, 만약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상대할 만하다고 여긴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말 많은 저놈이 상황을 주도하는 녀석일 테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아마 청심문(靑心門)의 부문주 청교장일 터. 교활하기로 유명한 녀석이니 조심하거라. 그리고 그 옆 홍의를 입은 저자는….

준혁은 일곱 명의 신상에 관해 설명해주었던 중괴의 말을 떠올리며 가운데 자리한 푸른 법복의 사내의 앞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다른 이들이 끼어들 틈도 없이 제압하기 위해 영역분신도 소환하지 않은 채, 만약을 위해 분광소만 소환한 채 움직였다.

그리고는 상대가 움찔하며 양손을 교차하며 영력을 움직이는 그때.

-정지하라.

외부를 의식해 전음으로 왕의 정수를 사용해 상대의 행동을 제약했다.

그러자 상대는 경악이 담긴 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양손을 교차한 자세 그대로 잠시간 멈추어 섰고.

턱-

어느새 푸른 법복 사내의 앞에 도착한 준혁이 한 손으로 그의 목을, 다른 한 손으론 그의 단전을 짚고 있었다.

직후, 어느새 나타난 준혁과 똑같이 생긴 분광소가 푸른 칼날이 번뜩이는 단도를 들고 청교장의 등 뒤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정확히 심장이 자리한 곳을.

“괴, 괴물!”

파바밧-

그 순간 청교장을 도와 준혁을 압박해야 할 수사들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서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준혁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집중했다.

술법 한 번 발동하지 못한 극도로 짧은 순간 만에 진선급 인사가 단숨에 제압당하자 모두 말은 안 했지만, 자리를 벗어나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었다.

“숫제 괴물이 돼버렸구먼….”

마족 원영을 흡수하며 어느 정도 발전을 했을 거라 여겼던 준혁을 보는 중괴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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