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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14화 (314/408)
  • 314화. 교환회 (4)

    겉모습이 화려하게 치장된 3층 건물 앞.

    그곳엔 세 명의 수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허리까지 오는 옅은 노랑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고 있었는데, 풍만한 가슴이 도드라지는 호피 천을 두르고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사내는 흰 눈썹과 깊은 눈이 묘한 조화를 이뤄 거만해 보이는 인상을 한껏 풍기고 있었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얼핏 보면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노랑머리 여인 옆에는 곰 같은 사내가 안절부절못하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준혁이 보았다면 꽤나 반길만한 인사였다.

    세 사람은 안면이 있는지 서로를 보며 서로 의외란 듯 놀라고 있었다.

    “대막리 수사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죠? 설마 소문을 들으신 건가요?”

    “그러는 조호랑 수사는 무슨 일이지? 그때 이후로 부족으로 돌아간 것 아니었나?”

    “그랬죠. 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대륙에 머물 흥미를 잃어버렸었거든요.”

    조호랑의 목소리에 비아냥이 섞인 것을 느낀 것인지, 대막리의 낯빛이 변했다.

    “그땐 어쩔 수 없지 않았나? 그대도 동의한 걸로 아는데? 만약 흑마지에서 계속 기다렸다면 그곳이 우리의 무덤이었을 텐데?”

    “알고 있어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조호랑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흠, 아무리 믿는 구석이 있더라도 조금은 더 예의를 갖춰주면 고맙겠군.”

    “예전엔 잘 받아주시더니, 유난히 날카로우시네요. 혹시?”

    대화를 이어가던 중 조호랑의 시선이 전면의 화려한 건물로 옮겨가자, 대막리도 덩달아 시선이 움직였다.

    “소문이 사실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환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김에 소문을 확인하러 왔을 뿐.”

    두 사람은 같은 소문을 듣고 방문했지만 기대감에 가득 찬 조호랑과 달리 대막리의 입가엔 조소가 머물러있었다.

    얼마 전부터 대륙 전역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

    대화성에 새롭게 나타난 신성.

    요마족의 침공에 가까운 습격을 혼자서 막아내고, 대화성 성주마저 참살해 버렸다는 선사.

    그에 대한 소문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두 사람의 관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대화성의 새로운 성주인 소우자, 그를 지지하는 선인 중 한 명이 적마의 새로운 계약자다.

    일파만파 퍼지는 소문 때문에 안 그래도 규모가 제법 큰 교환회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물론 새롭게 합류한 이들 중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는 자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중지시키겠다는 듯 건물의 정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따라 반듯하게 생긴,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이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듯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조호랑과 대막리가 놀랄 틈도 없이, 여인의 옆에 서 있던 곰 같은 사내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리고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형님!! 정말 형님이셨습니까?!”

    유아의 뒤를 따라 대막리를 만나러 나온 준혁은 바짝 붙으며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조말랑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자네도 있었군.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 부족으로 돌아간다더니.”

    “형님 덕분에 무사히 갔습죠! 헌데 이게 다 어찌 된 일입니까요? 형님께서 선도에 올랐다고, 하늘 같은 선사들을 단숨에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조말랑의 표현에 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시선을 옮겼다.

    눈앞엔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벙찐 얼굴의 대막리와 그보다 더 당황한 듯하지만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조호랑이 보였다.

    “대막리 수사, 조호랑 수사. 다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다린다고 하시더니 다들 사라지셔서…. 그땐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준혁이 너스레를 떨자, 대막리가 주춤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그때 그자가 소문의 그였단 말인가…. 최가라고 했던가? 네가, 아니. 당신이 정말 벌써 선도에 올랐단 말인가?”

    대막리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는데, 조호랑 역시 소문이 사실인지 침을 꿀꺽 삼키며 준혁의 입만을 바라보았다.

    준혁은 대막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조금 전 오고 갔던 대화 중 일부를 따라 하며 웃었다.

    “천휴림의 제자라고는 하나 조금은 더 예를 갖춰주면 고맙겠군요.”

    “그, 그, 죄송합니다. 선사.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준혁의 비아냥에 대막리는 변명하려다가 바로 사과했다. 그러자 준혁도 태도를 바꾸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하하, 제가 선도에 오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게 그렇게 중요하십니까?”

    말과 달리 준혁의 목소리에 미세한 살기를 느낀 것인지 대막리가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준혁을 일회용 진마정 탐색기로 사용하려 무리한 일을 시켰던 대막리로서는 가슴이 철렁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조호랑이 입을 열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수사가, 수사께서 정말 진선에 이르신 게 맞나요? 학고응이 연락했을 때만 해도…. 분명….”

    “남운상단의 학고응 말입니까? 그자가 제 소식을 알렸군요? 상인이란 자가 입이 그리 가벼워서야 원.”

    “아, 아니에요. 그는 그저 당신의 생존 사실만 알려준 거였어요.”

    사실은 학고응으로부터 준혁의 생존 소식과 동시에 여러 정보를 전해 받았지만, 왠지 진실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조호랑은 급히 변명했다.

    그 모습에 준혁이 피식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와 얼어있는 그녀 앞에 다가왔다.

    “하긴 상관없습니다. 이제 누가 찾아와도 개의치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지 않아도 조호랑 수사를 뵈러 가려 했습니다.”

    “저, 저를요?”

    당장은 아니지만, 흑석대륙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마치면 대황대륙을 방문할 의사가 있었다.

    준혁이 빤히 바라보자, 조호랑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검은 피부 위로 홍조가 올라온 누이를 보며 조말랑이 질겁하는 표정을 했다.

    “혼자서 수도계를 해쳐나오며 가진 다짐이 있습니다. 바로 갚아야 할 건 반드시 갚겠다는 것이지요.”

    파앙-

    말을 하던 준혁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순간 대막리가 영기파동을 퍼트리며 기세를 일으켰다.

    직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당황한 얼굴로 급하게 기운을 가라앉혔다.

    준혁은 그 모습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는 다시 조호랑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처음 만난 저를 위해 수사께선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언젠가는 꼭 갚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리고 수사, 아니 선사께서 제 철없는 동생의 목숨을 구해주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이라 여기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꼭 선사를 뵙고 싶다 하셨고요.”

    준혁과 조호랑이 동시에 바라보자, 조말랑이 바보처럼 ‘헤헤’ 웃었다.

    준혁은 그런 그를 보고 피식 웃고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저 아이를 구한 이유는 조호랑 수사의 동생이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갚은 것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수사께선 아무 이득 관계를 따지지 않고 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셨습니까? 늦었지만 감사했습니다.”

    준혁은 부끄러워하는 조호랑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게 전해졌다.

    슈앙-

    “성내에선 비행을 조심하라 그리 말했더니.”

    준혁은 그것을 보고 혀를 차더니 좌중을 한차례 훑고는 건물을 향해 손짓했다.

    “시끄러워질 거 같으니, 안으로 들어가 마저 담소를 나누시지요. 대막리 수사도 함께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준혁 주위의 대기가 미묘하게 흔들리더니 안개처럼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직후 유형화된 기운은 네 명의 영역분신으로 변하며 건물을 외부로부터 지키겠다는 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 가시지요?”

    ***

    화려한 대전.

    조호랑 남매를 포함해 준혁과 소화여, 그리고 산들을 포함한 영수들까지.

    대막리를 제외한 인물들이 선주(仙酒)를 앞에 놓고 빙 둘러 앉아있었다.

    대막리는 준혁의 초대에 거절 의사를 밝히며 천운대륙을 방문하면 꼭 천휴림에 와달라는 부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마치 매 맞는 게 두려운 아이처럼. 천휴림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신분패만을 남겨놓고.

    “대막리가 찔리는 게 있었나 봐요. 도망치듯 떠나가다니.”

    원래 교환회가 목적이었던 대막리가 대화성을 떠나가자 조호랑이 비웃듯 웃어댔다.

    “바쁜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준혁은 그가 진마정에 대한 얘길 묻기 위해 몇 번이나 대화를 주도하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 자신의 수행을 의심한 듯 자꾸 보이지 않게 기감으로 훑으려 하자, 영역분신을 소환해 보란 듯 위세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사색이 되더니, 마치 건물 안이 관짝이라도 되는 듯, 함께하길 거부하며 떠나고 만 것이었다.

    ‘림주에게 진마정에 대한 걸 알리겠지.’

    대막리가 천운대륙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충 예상이 갔지만, 준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마족과 마선들, 거기다 적마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수많은 종문들이 자신을 향해 관심을 표하는 걸 알았기에 천휴림의 관심은 환영할 일이었다.

    상어가 나타나면 피라미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테니. 귀찮은 일은 알아서 정리될 게 뻔했으니까.

    “근데, 어떻게 되신 거예요?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땐 화신기 수사였는데….”

    선주가 입맛에 맞는지 계속해서 홀짝이는 산들바람과 청호를 제외하고는 조호랑의 말에 전원의 관심이 쏠렸다.

    준혁은 딱히 기연을 얻은 걸 장황하게 풀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쓰게 웃으며 두리뭉실하게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

    “형님! 근데 이 아름다우신 분은 누구신가요? 혹시 형수님?”

    조말랑이 촐싹대며 소화여를 눈짓하자, 모두의 관심이 그녀에게 이동했다.

    자신의 누이가 실망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던 걸 눈치채지 못한 조말랑이 빨리 알려달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준혁은 누이와 함께하고 있어서인지 예전보다 가벼워진 조말랑의 모습에 피식거리며 대답했다.

    “소우자 수사의 딸인 소화여라고 하네. 함께하는 동료이니 그런 실례되는 말은 하지 말게.”

    준혁의 대답에 조호랑의 얼굴엔 화색이, 소화여는 침울하게 변했다.

    “그럼 이분은요? 화신기 수사인듯한데? 형님 제자?”

    이어진 조말랑의 질문에 준혁의 시선이 유아에게 옮겨졌다. 하지만 그가 대답하기도 전, 유아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선사를 모시는 시침 시비이옵니다.”

    그리고 유아의 입에서 대답이 나온 순간, 소화여와 조말랑의 동공이 확장됐다.

    “시, 시침이요?”

    계속해서 유아를 보아왔던 소화여가 처음 듣는다는 듯 놀라자, 준혁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라후지가 유아를 붙여주며 시침 시비의 역할도 명하긴 했다. 그녀를 포함한 방문 기념 선물을 가져온 여수사들을 전부 선물로 주었었다.

    하지만 그럴 생각도 의도도 없던 준혁으로선 유아의 말에 난감할 뿐이었다.

    그때, 선주를 홀짝이던 산들바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시침? 시침이 모야?”

    “잠자리를 살피는 일을 말하는 것이에요.”

    유아의 대답에 산들바람이 이상하다는 듯 두 눈을 깜빡거리며 준혁을 바라보았다.

    “다 컸는데 혼자서 못 자? 누가 같이 있어야 해?”

    “…….”

    “그, 그것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

    순진한 산들바람의 질문에 준혁은 말을 잃고, 유아는 말을 더듬었다.

    그때 소화여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용기 내서 입을 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평생 남자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로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을.

    “대인! 저 역시 평생 대인을 모시기로 맹세했었지요. 그럼 오늘부턴 제가 시침을 들겠어요!”

    “응? 그럼 나도 큰둥이랑 같이 잘래!”

    생각 없는 산들바람의 말에 대전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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