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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13화 (313/408)
  • 313화. 교환회 (3)

    특정 지역을 수색하거나 탐사하는 데 적합한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무명.

    그는 세상사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선기(仙棋)를 두는 것이 하루의 모든 일과였다.

    손님이 찾아오면 선기 승부를 제안했고, 이기는 자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빌려주었다. 반대로 선기에서 지는 자에겐 이름을 빼앗아 버렸다.

    “이해할 수 없군요. 그게 의미가 있습니까?”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에 준혁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이름이란 건 결국 사회적 약속으로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어일 뿐, 그것을 사용할 수 없게 억제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여겨졌다.

    그리고 약속을 어기고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명이란 자가 평생을 곁에 머물며 감시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주술적으로 진명(眞名)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는 예도 있었지만, 중괴가 말한 것은 그런 한정된 경우를 칭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 너같이 그런 생각으로 대천경 수사를 부려 먹으려 접근하는 놈들이 많았지. 그러다 평생을 후회하지만 말이야.”

    “자세히 알려주시지요.”

    준혁은 이름이라는 것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조용히 중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명을 지운다는 것, 그건 그저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것관 의미가 다르다. 그놈이 익힌 특수한 능력으로 수사의 머릿속에서 본인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것이지.”

    “흐음.”

    “진명을 잃은 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와 관련된 기억들도 지워지고, 나중엔 본인이 누구인지도 자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

    “아! 그저 이름을 내기에 거는 것이 아닌, 저주계열의 술법으로 금제를 가하는 것이었군요?”

    “그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중괴의 설명에 준혁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아있었다.

    “허나, 그건 그자보다 수행이 낮은 이에게나 통할 겁니다. 어르신 같은 경우엔 금제 자체가 발동되지 않게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수행이 낮은 자가 거는 금제에도 꼼짝없이 당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무방비로 의식을 내어줄 때나 가능한 일.

    선기에서 지더라도 금제를 발동하기 전 방어기제를 만들어내면, 무명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쉽진 않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놈은 영 피하고 싶은 놈이라서.”

    “어째서 말입니까?”

    “흐음, 그게 그러니까, 그놈의 특기 중 영침(影針)이라는 비술이 있는데…. 정말 짜증 나는 기술이거든.”

    영침에 당하면 술법에 걸어둔 영력이 소모될 때까지 술법에 당한 수사의 그림자가 수시로 삐쭉 튀어나오며 본인을 공격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 가늠할 수 없기에, 술법에 당한 수사는 항상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중괴는 질색이란 듯 치를 떨었다.

    “아무튼 나는 그놈과 선기를 두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원한다면 네놈이 상대하거라. 무명 말고 다른 방법을 찾는 걸 추천한다마는.”

    영침에 찔리는 상상을 하는 건지, 중괴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또 다른 물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럼 이건 무언지 아십니까? 석두의 공간팔찌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준혁이 꺼낸 물건은 손바닥만 한 가죽이었는데, 가죽 위에 어떤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고, 뒷면엔 지도를 설명하는듯한 고문이 적혀있었다.

    중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가죽을 넘겨받더니, 가죽 뒤에 적힌 고문을 읽고는 화들짝 놀랐다.

    “마선기록방!!”

    ‘마선기록방? 면교만이 찾으려고 하려던 게 그것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중괴가 말한 마선기록방은 준혁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마선기에서 태어난 마선 중 몇몇은 자유의지가 없이 진짜 법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선기록방도 그중 하나였다.

    마선경과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마선들의 위치를 알 수 있고 연결해주는 법기, 하지만 자유의지가 없어서인지 마선경처럼 그들의 위치를 들여다보거나, 괴조처럼 소리를 잇지는 못하는 절반짜리 능력만을 갖춘 마선.

    다만, 준혁이 의문을 표한 이유는 가죽 위에 기록된 위치가 이미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사막의 유적지.

    면교만이 천영보를 얻기 위해 발굴하려 했던 그 장소였다. 세 개의 관문이 아닌, 최종 목적지로 예상되는 그 장소.

    매우 적은 정보만이 담긴 지도였지만, 이미 불타는 사막의 유적에 대해 알고 있던 준혁은 단번에 파악할 수가 있었다.

    ‘마선기록방이 대단한 물건이긴 하지만, 천영보라 불릴 리가 없다. 면교만이 잘못 알고 있던 것인가? 아니면 천영보와 함께 마선기록방도 그곳에 있는 것인가?’

    준혁은 공간팔찌 안에 고이 모셔놓은 봉인지의 열쇠를 떠올리며 자신이 아는 바를 하나둘 맞춰보았다.

    “석두 그놈이 이걸 가지러 가는 중이었어! 적마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돌았는데, 아니었나 보구나! 그놈이 그걸 이용해 다른 마선들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닌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어르신께선 직접 본 적은 없으십니까?”

    “그래. 오래전 천휴림의 림주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만, 적마가 보고를 털면서 가져갔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지. 헌데 지금 보니 그것도 진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마가 가져갔다면 그의 창고에 있어야 할 터. 중괴는 적마의 창고가 혈수림에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준혁은 혹시나 하고 중괴가 지도의 장소를 아는지 떠봤지만, 그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살짝 들뜬 듯한 중괴의 표정에서 준혁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물어봐도 중괴는 입을 꾹 닫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도를 자신에게 달라고 몇 번이고 요구하길래 결국 그에게 그것을 넘겨야만 했다.

    ‘내가 그 장소를 알고 있던 걸 알게 되면 당장 목줄이라도 끌 표정이군.’

    준혁은 장소를 발설하지 않은 자신을 칭찬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방문하려고 했던 유적지가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로 변하고 있었다.

    ‘마선기록방이라….’

    ***

    이른 시일 내에 개최될 거로 생각했던 성주 취임식은 소우자의 제안으로 미뤄졌다.

    성주 취임식을 하기 위해선 거기에 걸맞은 인사들을 초대해야 하는데, 번거롭게 하지 말고 교환회에 맞춰서 하는 게 어떠냐는 그의 제안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때가 되면 수많은 선사와 수사들이 방문할 테니 말이다.

    준혁은 그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여겨 허락해주었고, 택요를 비롯한 수사들은 다시 한번 성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중괴와 준혁이 회복에 전념하고, 영수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사이, 큰일이 벌어지지 않은 대화성은 조용히 소우자 아래로 질서정연하게 개편되어 갔다.

    더불어 대화성 곳곳에선 신임 성주와 그를 지지하는 선사에 관한 얘기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자네 그 말 들었나? 이번 성주님 취임식에 어마어마한 인사들이 방문할 거라더구만.”

    “다른 성의 성주님들 말고 또 다른 분들이 온다 이 말이야?”

    “예끼, 이렇게 소식이 느려서야. 이번에 취임하는 성주님이 어디 출신인가? 주운대륙 묘립성의 성주셨던 분 아닌가? 이제껏 두 개의 성을 공동 소유한 자가 있었냐 그 말이네. 어찌 보면 종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거지. 그러니 그에 걸맞은 분들이 오는 것일세.”

    노인의 모습을 한 사내와 아이의 모습을 한 여인. 두 사람은 오래된 친우인 듯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렇다면 대단한 일 아니야? 고위 수사들이 방문할 때마다 크게 영향을 주는데!”

    고위 수사들은 홀로 오지 않았다. 대부분 수행하는 이들을 이끌었고, 그들이 성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적으로 대화성의 수사들과 교류가 일어났다. 그 파급효과가 적지 않았다.

    “내 말이 그 말이네! 그러니 우리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교환회와 경매 준비?”

    “그렇네! 우리가 삼경 이상 수사들이 참석하는 교환회에 갈 수는 없겠지만, 또 우리만의 교환회가 열릴 것 아닌가? 거기다 크고 작은 경매가 연달아 개최될 테니….”

    “자네! 예전에 구하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그것을 구할 작정이군!”

    “맞네! 맞어! 그동안 어찌 그것을 구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는데, 아마 이번 취임식에 누군가 가지고 방문할 게 분명하네, 특히 남운대륙에서 오는 이가 있다면 분명 그럴 것이네!”

    사내의 얼굴엔 탐욕이 가득했는데, 대화하고 있던 여인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교환회가 열릴 때마다 희귀한 재료들이 대거 시장에 풀렸는데, 이번엔 고위 수사들의 방문 규모가 달랐으니 덩달아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었다.

    “근데, 그 소문은 사실일 거 같나? 라 성주님을 단숨에 제압해버린 그분이 성주님을 직접 임명했다고 하던데….”

    조금 전과 달리 사내의 목소리는 잔뜩 위축된 상태였다. 여인도 그걸 느꼈는지 덩달아 어깨를 움츠렸다.

    “나도 그렇게 전해 듣긴 했는데…. 소문으론 그분이 동급 수사 여러 명은 순식간에 처리했다던데 말이야. 그게 너무 신빙성이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아?”

    “그건 그렇네. 천지개벽해도 모자랄 일을 하룻밤, 아니 술 한잔할 시간에 이뤄냈다니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어쩌면 말이야…. 성주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꾸며낸 것은 아니겠어?”

    여인의 입에서 그럴듯한 추측이 거론되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세상엔 감히 추측할 수 없는 일들이 다반사라고는 하지만, 진선급 수사를 상대하는 걸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이미 천하에 소문이 자자했을 테니까 말이다.

    한편, 성내에 두셋만 모이면 본인 얘길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준혁은 어느덧 대부분의 상태 이상을 치료하고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마휴에게 걸맞은 강체공법을 만들어주면서 본인이 먼저 익혔기에, 한층 더 강인한 육체로 탈바꿈하는 중이기도 했다.

    이제 마족 삼대장을 비롯한 원영들을 차례대로 흡수하기만 하면, 대천경의 수행을 단단히 다지는 건 물론이고, 그동안 영력 부족으로 허덕이던 것을 뛰어넘어 또 한 번 도약이 가능할 터였다.

    다만, 서두르다 모든 걸 망칠 수도 있었기에 정신수양과 신체를 먼저 완성해야 했지만 말이다.

    거기다 중괴의 도움도 필요했기에, 지금 당장은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이 회복을 마쳐야 할 텐데.”

    진선급 원영을 안전하게 흡수하기 위해선 중괴의 보조가 필요했기에 아직 몸을 회복하지 못한 그를 기다리며 준혁은 두 뼘 정도 길이의 막대기를 꺼냈다.

    막대기는 진한 마기와 동시에 특유의 공간 파동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한눈에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물건이 그의 숨겨진 수법이었다니.”

    마족 공간대를 정리하며 나온 물건.

    야소수의 공간팔찌로 의심되는 것에서 나온 막대기는 마기로 특수한 진을 형성해 일정 공간을 도약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거의 공천귀의 공간이동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사용 한도가 정해진 물건이었다.

    게다가 삼청조의 이정표 능력과 비슷하게 특정 인물을 등록하고 그 사람에게만 이동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두 가지 단점만 아니었다면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가졌을 텐데, 준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세 번 남은 건가?”

    중괴의 말에 의하면 고위 수사들이 사용하는 뛰어난 물건 중 꽤 많은 종류가 마선들의 능력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했었는데, 이것도 그런 것 중 하나로 보였다.

    굳이 찾자면 삼청조와 공천귀를 섞은 하위호환이라고 할까?

    준혁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며 손안의 막대기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며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 선사님. 소녀 유아이옵니다.”

    원래 머물던 거처에서 지금의 장소로 옮긴 후에도 여전히 준혁을 보필하고 있던 화신기 여수사였다.

    잠시 후, 유아는 나긋나긋 다가와 몸을 숙이며 인사했다.

    “선사님을 뵈어요.”

    “무슨 일이더냐.”

    얼마 남지 않은 취임식과 교환회를 제외하곤 딱히 알아야 할 만한 사항은 없었기에 준혁이 의문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유아는 전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신지 여쭈었어요.”

    “손님?”

    준혁의 반문에 유아가 살짝 두려움이 담긴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천휴림의 제자, 대막리 수사가 선사님을 찾아왔어요. 그리고 조호랑이란 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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