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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12화 (312/408)

312화. 교환회 (2)

준혁은 혼자서 발동하려는 파뢰를 유심히 살피다가 암흑마기를 천천히 주입했다.

‘식검에 반응한 건 줄 알았더니,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구나.’

마선에 특화된 법기라, 당연히 식검 때문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어떤 무구들은 체화과정을 거치고 나면 주인을 각인하곤 했는데, 파뢰가 그런 물건이었던 것.

허락되지 않은 자가 손에 넣으니, 스스로 방어기제가 발동해 주변의 생명체를 공격하려고 한 것이었다.

‘주인을 인식하는 법기라, 재밌군.’

마기를 주입하자 파뢰는 더 큰 진동을 울리며 안개 같은 영기파동을 퍼트렸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공격성은 없었다.

프아앗-

“영보급이 아니라 천영보구나!”

안개 같은 영기파동이 몸에 닿자 준혁은 파뢰의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영보급이라던 중괴의 말과 달리 파뢰는 천영보급 법기.

용천무의 날개나 전함을 체화시키며 누구보다 천영보급 법기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던 준혁이 몰라볼 수가 없었다.

“마기를 이렇게 독특하게 변화시키다니?”

암흑마기를 받아들인 파뢰는 마치 의지를 지닌 것처럼 기운을 소화시켜 이상한 힘을 발산했는데, 성광지력과 매우 흡사했다.

“이 힘이 마선을 약화시키는 것이었군.”

하지만 성광지력과 비슷할 뿐, 그 근본은 분명 마기였다. 그래서 더 이질감이 느껴지면서 힘의 근원을 방어하는 게 힘들었다.

아마도 마선들이 파뢰로 인해 약화되는 이유가 그것일 것 같았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애초에 방어가 불가능한 저주와 비슷한 종류였다.

“심천군주의 본명기. 괜히 유명한 것이 아니었구나.”

한동안 파뢰를 살펴보며 이것저것 실험하던 준혁은 암흑마기가 아닌 성광지력을 주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삼지행을 움직였다.

“혹시?”

그리고는 파도처럼 움직이는 삼지행을 성광지력으로 치환하며 파뢰에 주입했다.

화악-

그 순간, 꼬챙이 모양의 파뢰가 부르르 떨더니 주변이 성광지력으로 이루어진 하얀 안개로 가득 찼다.

아까와 달리 이질감이 느껴지는 방어 불능의 힘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식으로 반응했다.

파지잉-

직후, 꼬챙이의 끝에서 하얀 광선이 천장으로 쏘아지더니 일정 부분에서 꽃이 피듯 주변으로 화악 하고 퍼져나갔다.

퍼져나간 광선의 기운은 주변을 덮더니 하얀 보호구를 만들었고, 잠시 후엔 천장에서 별빛이 흐르는 것처럼 주변에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준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것이다!”

별빛이 내려앉자, 하계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풍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신비경! 이것이 봉인지를 만들어낸 물건이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식검이 계속해서 위험신호를 보내며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되돌아가기 싫다는 듯이.

혹시 심천군주가 식검을 비롯한 마선들을 봉인한 이가 아닌가 의심했던 준혁은 성광지력을 받아들인 파뢰의 기능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심천군주가 그들을 봉인한 이였다니….”

잠시 후, 성광지력을 거두자 파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꼬챙이의 모습으로 진동을 멈추며 잠잠해졌다.

“마기를 주입하면 마선들을 약화시키는 방어 불능의 파동을 만들어내고, 성광지력을 사용하면 신비경에서 보았던 그 봉인식이 발동되다니.”

용천무의 날개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천영보. 아니, 마선 한정으론 그 어떤 것도 비견될 수 없는 초강력 위력을 지닌 법기.

‘이제 마선들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귀원패의 경고로 인해 마선경과 괴조에게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래전 귀원패의 경고도 지금의 준혁에겐 의미 없는 조언이 되고 만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심천군주는 왜 구지대륙에 마선들을 봉인했던 거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지만, 고민한다고 풀 수도 없는 의문이었다.

***

파뢰의 활용 방법에 대해 숙고를 거듭한 준혁은 그것을 집어삼켜 원영이 체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직 체화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위력적이었기에, 만약 체화가 끝나고 나면 어떤 위력을 보일지 기대를 가득 품고서.

다만 각인된 전 주인의 의지를 지우려면 꽤 애를 먹어야 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마족 삼인방에게서 나온 옥간 중 강체술과 공법에 관련된 것을 전부 한곳에 모아 천천히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호, 내가 몰랐던 것이구나.”

그 과정에서 준혁은 오래전 남운상단의 학고응에게서 얻은 화신체의 정보가 굉장히 부실한 것임을 깨달았다.

특히 요트람에게서 나온 화신체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화신체를 완벽하게 구동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지, 요마족이 아닌 다른 종족의 비술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기술되어 있어 배우는 바가 컸다.

“화신체가 이런 의미였구나.”

그리고 화신체에 대해 가장 중요한 정보 한가지.

준혁은 화신체라는 뛰어난 비술을 어째서 몇몇 고위수사만 사용하는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트람이 기술해놓은 정보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재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인 줄 알았더니….”

마족은 진선경에 이르게 되면 다른 종족에 비해 수련 효과가 급감하면서 단약이나 모든 방법이 비효율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수행을 상승시키기가 매우 힘든 상황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종족보다 화신체에 관한 연구가 남달랐는데, 요마족 화신체의 최종목적은 분신의 개념이 아니라 제물의 개념이었다.

수행이 멈춘 자신을 대신해 화신체를 성장시킨 다음, 화신체가 일정 이상의 수행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수행의 벽을 깨부수고 한 차례 도약하려는 비술이었던 것이었다.

마족을 제외한 타 종족이나 세력이 화신체에 목매지 않는 이유는, 마족과 달리 직접 수행을 쌓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분신이 아니라 수행 상승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술이었다니.”

준혁은 자신이 화신체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관심이 가기도 했다.

비술을 자세히 살피다 보니, 분신의 개념이 아닌 영력 충전기의 용도로 사용할 방법이 떠오른 것.

기운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100퍼센트 효율을 보일 수 없던 준혁으로선, 화신체를 이용해 효율을 좀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요마족의 화신체를 똑같이 따라 할 게 아니라면 비술을 익히는 부작용도 피해 갈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건 준혁에겐 이미 화신체의 재료인 마정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에만 몰두할 시간을 가져봐야겠어.”

마족의 공법을 연구하며 화신체에 대해 파악하던 준혁은 이왕 공간대 정리를 시작한 김에 라후지와 석두, 그리고 그를 따라온 대천경 수사들의 공간팔찌 안까지 전부 확인했다.

잠시 후,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영석들과 보물들, 각종 법기와 자기병들을 보며 우선적으로 옥간만을 골라 하나씩 머릿속에 담기 시작했다.

***

화려한 장식과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듯 세워진 웅장한 건물.

준혁은 소우자의 거듭된 요청으로 거처를 옮겨, 호화스러운 장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대전에 준혁이 여러 사람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주군, 라후지의 창고 목록입니다.”

며칠 전에 라후지의 공간대에서 나온 물건 중 신분을 증명하는 푸른 옥패를 받아 간 소우자가 다시 방문해 옥간을 내밀었다.

그가 가져온 옥간엔 푸른 옥패로 개방한 창고의 물품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는데, 법기와 영석의 양만 해도 가히 일반 수사는 평생을 가도 모을 수 없는 양이었다.

준혁은 옥간 속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다가 초연단 7알과 초극영석만 가져오라 명하고는 옥간을 영수들에게 넘겨주었다.

“아저씨! 나 이거하고, 이거하고, 이거, 이거!”

준혁이 옥간을 건네자, 산들바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품목 속 물건들을 무차별적으로 지목하며 욕심을 냈다.

그에 질세라 청호도 여러 물품을 찜했는데, 용천과 천무는 조용하게 준혁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가져봐야 소용없다. 네 수행에 도움이 될 것들만 선택해. 괜히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사용해 봐야 필요한지 아닌지 알 수 있찌! 다 써볼 거야!”

“......”

준혁은 순간 산들바람이 생각보다 똑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말을 잃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주군. 산들 수사가 말만 저럴 뿐, 저를 귀찮게 하진 않습니다.”

소우자의 눈엔 산들바람을 포함한 준혁의 영수들은 주인의 가족 같은 느낌이라, 뭘 해도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소화여가 산들바람을 여동생처럼 귀여워해 소우자의 눈에도 한없이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할 땐, 혼을 내도 되네. 언제 철이 들는지. 아! 화여 소저도 필요한 게 있다면 서슴지 마시고 무엇이든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저는 이 힘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걸요. 당분간은 신외지물을 체화시킬 여력이 없답니다.”

“나는 왜 빼놓느냐?!”

소화여가 부끄럽다는 듯 한 손에 성광지력을 뭉치며 고개를 흔드는 사이, 중괴가 불만을 토해냈다.

“어르신께선 이미 법기의 도움을 받을 경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영보급이 아니라면 무용지물일 텐데 굳이….”

“쳇. 영보들은 지놈이 다 가져가 놓고.”

준혁의 말에 중괴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훽하고 돌렸다.

사실, 파뢰를 제외하고도 준혁은 요라제의 공간팔찌에서 영보급 법기를 획득했다.

‘칼날의 피리’라는 물건이었는데, 의지로 움직이는 무형 칼날을 만들어내는 영보였다.

요라제와의 승부가 순식간에 끝난 감이 있었기에 그가 사용하지 못한 것이지, 만약 칼날의 피리를 사용했다면 꽤 귀찮았을지도 모를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력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게 엄청난 이점이지.’

칼날의 피리는 분광소처럼 수십, 수백 개의 무형 칼날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의지력을 소모할 뿐 영력은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 말인즉 영역분신으로 영력 부족에 허덕이는 준혁에겐 어쩌면 용천무의 날개나 파뢰보다 도움이 되는 물건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이양할 생각이 없었고, 이 때문에 중괴가 심술을 부리는 중인 것이었다.

“제가 파뢰를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이! 누굴 놀리느냐! 만지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그런 걸 나보고 쓰라고?!”

“후훗.”

“웃지 마라!”

중괴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지 준혁이 입가를 씰룩거렸다.

잠시 후, 소우자와 영수들이 라후지의 창고로 떠나자, 준혁은 옥간 하나를 꺼내 손안에서 굴리며 중괴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이것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주신 대라멸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다 보니 이상하더군요.”

준혁의 의문에 중괴가 예상한 말이라는 듯 씨익 웃음 지었다.

“아무리 살펴도 정확한 장소를 특정할 수 없지?”

“그렇습니다. 수많은 정보들이 가리키는 장소가 전부 제각각입니다. 그걸 조합하면 전혀 말이 맞지 않고 말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라후지 그놈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나서야 알았지. 아마 그놈도 정확한 장소는 모른 채 그 정보만을 얻은 걸 테다.”

“흠.”

“저도 봐볼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이 침묵으로 고민을 대변하자, 지켜보고 있던 소화여가 끼어들었다.

준혁은 소화여 역시 동료라 여기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대라멸진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었다.

잠시 후, 옥간 속 내용을 음미하듯 두 눈을 감고 차분히 좌정하고 있던 소화여가, 손뼉을 소리 나게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짝-

“아! 이런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무명 말이냐?”

소화여의 말이 흘러나오자 준혁은 물음을, 중괴는 반문을 했다. 중괴의 반문에 소화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요. 무명이라는 수사가 이런 걸 해석하는데 뛰어나다는 걸요.”

“어르신께서도 알고 있으신가 봅니다?”

준혁 역시 무명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주운대륙의 기거하고 있는 적지주의 인연 중 한 명이자, 준혁이 전왕문을 상대하기 전에 도움을 요청할까 고민했던 인물.

대천경 수사로 이름 높은 자.

“물론이다. 하지만, 흐음…. 그놈은 영 찝찝해서 네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찝찝? 무엇이 말입니까?”

“휴우.”

한숨을 깊게 내쉰 중괴가 무명에 관해 설명했다.

“그놈에게 부탁을 하려면 선기(仙棋)라는 걸로 승부에서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부탁에도 응하지 않지.”

“그게 다입니까?”

준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중괴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놈 이름이 왜 무명인 줄 아느냐? 선기에서 이기면 부탁을 들어주지만, 지는 순간부터 자신의 진명(眞名)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무명(無名)으로 살아야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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