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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06화 (306/408)

306화. 라후지의 욕심 (1)

세 가지 디버프가 중첩되며 야소수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인지괴의 거울 감옥에 계속해서 가둬둘 수는 없는 일.

준혁은 백호 혈맥의 힘을 사용한 직후 시야를 가리는 폭발의 기운을 헤치며 앞으로 치달았다.

동시에 왼손엔 월광지력을 오른손엔 태양지력을, 그리고 심장엔 성광지력을 가득 싣고서 상대에게 부딪혀갔다.

야소수는 누가 보아도 당황하고 초췌한 안색으로 급속도로 다가오는 준혁을 향해 양팔을 교차했다.

그러자 그의 팔 앞으로 검은 막이 수십 겹 생겨나며 전면을 막아버렸다.

직후, 준혁과 야소수가 충돌했다.

쿠아앙!

폭발은 거대했고, 폭발력으로 거울 감옥이 깨지며 인지괴가 낙엽처럼 나뒹굴며 멀리 날아갔다.

극락종 역시 종소리를 멈추고 폭풍에 휩싸이듯 튕겨 나간 걸 보면, 둘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보기 드문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단순무식한 대결은 대부분의 수사가 피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초근접전은 영기 부족으로 고민하던 준혁의 노림수.

“이것도 받아보시지요!”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후폭풍으로 먼지구름이 일어나기도 전, 준혁의 외침이 터져나가더니 폭발하던 기운 속 월광지력과 태양지력이 다시 한번 중심으로 모여들며 반응했다.

불안정했지만 위력만큼은 준혁도 혀를 내둘러야 했던, 영수들로부터 실마리를 얻은 두 기운의 융합.

스으으으읍-

준혁의 외침이 터진 직후, 좀전의 폭발은 애교라도 되는 듯, 소음마저 잡아 먹혀버린 빛이 터져 나왔고.

콰아아아앙!-

빛이 외부로 번진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이 준혁과 야소수 사이에서 터져나갔다.

***

“정말 괴물이구나…. 이번 행보엔 잃은 게 너무 많….”

폭발이 사라지고 나자, 몸 곳곳이 삭제돼 버린 듯, 드문드문 뼈를 내보이는 넝마 같은 야소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영까지 충격을 받은 건지, 몸이 회복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너지고 있었다.

반대로 준혁은 찢어지고 터져나간 피부들 위로 하얀 성광지력이 들어차며 초고속 회복과 붕괴를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복수가 아니라 대화를 하려 하셨다면 많이 달랐을 겁니다.”

만약 야소수가 무력을 앞세우지 않고 진혈 아이를 내놓으라며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라후지를 비롯한 대화성 인물들이 순순히 ‘그래. 그러자’라며 수긍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준혁은 입장을 달리해 중립을 지켰을 가능성이 컸다.

지나간 일에 가정 따위는 필요 없지만, 준혁은 조금 씁쓸함이 느껴졌다.

‘하긴, 의미 없는 생각이지. 만약 나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누군가 여동생을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 잡아갔다면?

아마 준혁은 야소수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분노로 복수를 감행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분명 그랬을 터였다.

그때, 야소수가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나를 해한다면…. 군주께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다.”

요마족 심천군주는 공포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절대자 중 하나.

하지만 준혁의 입장에서 천혈의 존재를 목격한 이들을 살려줄 수는 없는 일.

촤르륵-

씁쓸한 표정을 짓던 준혁이 의지를 일으키자, 그의 발끝에서 금빛 실이 거미줄처럼 퍼지며 야소수를 감쌌다.

마지막이 도래했다는 걸 직감한 건지 야소수의 얼굴엔 절망이 드리워졌다.

“바로 떠날 것을….”

야소수는 후회했다.

복수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후계만은 구해야겠다고 내린 결정.

자신과 달리 준혁은 먼 거리를 비행으로만 이동해야 했기에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이만은 구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게다가 살선이라 불리며 나름 이름 높은 요트람이 최후 발악이라도 하며 어느 정도 발을 묶을 줄 알았다.

나중에 오랜 기간 요양하더라도 무리해서 대화성주만 빠르게 처리한다면, 가장 중요한 목적 한 가지는 이룰 수 있을 거라 여긴 게 패착이었다.

준혁이 갑자기 기습하며 나타났을 때라도 도망갔어야 하는 게 옳았지만, 전쟁 중 혼자 도망간다는 건 마족 내에선 용서받지 못할 행동.

고민 끝에 그런 행동을 하진 못한 것이었다.

잠시 후, 야소수가 금빛 실에 묶이자, 그걸 신호로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대폭발로 인해 집중하고 있던 수사들.

그중 성을 공격하고 있던 마족 무리들은 분분히 날아오르며 선박으로 복귀했고, 동시에 선박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뒤로 후진하며 바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지상에선 대화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푸른 보호막이 사라지더니 그 안에서 수많은 인족 수사들이 승리의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는 마족을 쫓기 위해 날아들었다.

‘피곤하군….’

멀어지는 마족의 선박을 바라보던 준혁은 거울로 변해버린 인지괴를 소환하고, 바닥을 구르던 극락종을 수거했다.

그리고는 들끓어 오르는 내면을 잠재우기 위해 보진단을 꺼내 먹으며 제자리에서 몸을 회복했다.

세 가지 디버프에 마지막엔 암흑마기까지 사용해 상대를 약화했기에 양극 폭발로 단번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상황.

만약 야소수가 조금만 더 강한 의지가 있었더라면, 준혁의 폭발도 덩달아 커졌어야 했을 테고, 아마 그랬다면 지금 두 다리로 서 있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 무리를 했지만, 앞으로는 자제해야겠어. 예상대로 잘못하면 나까지….’

천혈이 엄청난 영력을 잡아먹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면, 삼대지력의 융합은 너무 불안정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성광지력을 최대치로 운용했기에 신체 붕괴와 회복이 겨우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

야소수가 너무 빨리 전장에 복귀하면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감행하긴 했지만, 앞으론 자제해야 함을 느꼈다.

아니면 연구를 통해 완벽하게 다룰 수 있든지.

그렇게 준혁이 회복과 동시에 삼대지력의 융합을 실전에서 사용하며 깨달은 바를 정리하고 있는 사이.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

“최 선사! 괜찮으신 겁니까? 갑자기 사라지시길래 얼마나 놀랐었는지 아십니까?”

준혁이 삼대지력 융합의 후유증을 다스리는 사이. 주변 정리를 마친 라후지가 근처로 다가왔다.

그는 준혁의 실력행사에 두려움을 느낀 것인지,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라후지의 등장으로 회복에 전념할 수 없었던 준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몸을 돌렸다.

“어르신이 위험한 것 같아 급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린 거 같아 송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최 선사가 아니었다면 마족 놈들을 막아낼 수나 있었겠습니까?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성 내로 자릴 옮기시지요.”

“우선 어르신께 다녀와야겠습니다.”

손짓으로 성을 가리키던 라후지는 준혁이 중괴에 대한 얘길 꺼내자, 아차 하는 얼굴로 질문했다.

“중력괴 그자, 아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딱히 중괴와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라후지가 준혁의 눈치를 보았다.

준혁은 그런 그의 태도에 속으로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꽤 심한 부상을 입으셔서 당분간 회복에만 전념해야 할 듯합니다. 아! 혹시 초연단은 없으십니까? 어르신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초연단이란 말에 라후지가 움찔하더니 고갤 저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쩐답니까? 최 선사의 도움을 생각한다면 초연단이 아니라 초연신단이라도 내놓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아쉽게도….”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성주께서 주신 보진단으로 우선 어르신을 도우면 됩니다. 그럼 잠시 다녀올 테니 나중에 다시 얘길 나누시지요.”

‘가지고 있지만, 꺼리는 것인가?’

초감각을 가진 준혁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라후지가 움찔대는 모습에 진실을 포착했다.

하지만 거짓말하지 말라고 닦달할 수는 없는 일.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목숨을 바쳐 성을 수호하는 데 일조했는데도 보물을 아끼려는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잠시 후, 라후지를 남겨둔 준혁은 비행법기 위에 올라 하늘을 갈랐다.

스스로 쏘아져 나가는 법기 위에 앉아 보진단을 꺼내 삼키며 공법을 운용했고, 멀어져 가는 준혁을 라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중괴에게 돌아온 준혁은 곧장 그를 보호하고 있는 법기를 제거하고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좋지 않군.’

목숨엔 지장이 없었지만, 수년간 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중괴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놈아 걱정할 필요 없다. 이정도 부상이야 예전엔 늘 달고 살던 것이니까.”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중괴는 준혁이 나타나자 끄응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자존심 상한다는 듯 투덜거렸다.

“딱 보니 네놈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눈빛 치우거라.”

“말씀하시는 걸 보니 걱정할 정돈 아닌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준혁은 자신에게 여러모로 잘해주던 중괴가 죽지 않았단 사실에 안도했고, 중괴는 준혁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어서 기뻤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하는 건 진심이었기에 둘은 전장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그 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피식대던 중괴가 말했다.

“그놈이 가지고 있던 영보는 어찌했느냐?”

‘영보?’

준혁은 중괴의 말에 공간팔찌 안에 집어넣었던 금빛 고치 세 개를 꺼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진선급 강자들의 원영을 쉽사리 처리할 수 없을 거라 여기고 혈단법의 금빛 실로 통째로 완전 봉인만 시켜놓은 상태.

“으잉? 설마? 아직 처리하지 않은 것이냐?”

“제가 이들을 사로잡았다고 해서 제 수행을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신체는 몰라도 원영을 처리하는 건 또 다른 문제.

“흐음, 그렇단 말이지? 흐흐.”

준혁이 난처함을 표하자, 중괴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사악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예전 뇌명숲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능력에 관해 설명하며 준혁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준혁은 혈단법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중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혈단법을 진일보시킬 수도 있겠어.’

외부의 기운을 압축시켜 지정 대상에게 주입할 수 있는 중괴의 능력.

적지주와 소화여를 돕던 그 능력은 일정 부분 혈단법과 닮아있었지만, 효율로 치자면 살짝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효율을 제외하고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었고, 치환되는 기운을 시전자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었다.

기운을 정제해 오직 정혈로만 흡수해야 하는 준혁의 공법보다는 분명 상위호환.

마족 삼인방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중괴의 능력을 깊게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준혁은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요트람인지 먼지 하는 놈이 사용하던 영보는 따로 챙기지 않았느냐?”

중괴가 영보의 외형을 설명했다.

“아! 아마 그자의 공간대 안에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네놈이 마선이 아니라 여겼을 테니, 굳이 그걸 꺼내 들진 않았겠지.”

잠시 후, 준혁이 돌아갈 것을 제안하자 중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비행법기에 오르며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무심히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그놈도 마음이 편친 않겠어.”

“누구 말씀이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라후지 그놈이지. 네놈이 이제 막 진선에 올랐다고 여기고 있기에 이용할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을 텐데, 동급 수사. 그것도 마족 놈들을 셋이나 처리했으니 지금쯤이면 오금이 저리고 있을걸?”

준혁도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지 않아도 진마정에 관한 얘기가 오고 간 후, 자신을 바라보는 라후지의 눈빛이 변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준혁의 수행 능력을 위협이라고 판단한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이 가기도 했다.

소화여가 말한 진에 대한 것도 준혁을 찝찝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느덧 대화성 방향으로 비행법기가 날아가며 하늘을 가르는 사이.

준혁이 고민에 빠진 듯 보이자, 중괴가 위로하듯 말을 걸었다.

“별일 있겠느냐? 눈앞에서 압도할 힘을 목격했다면 조용히 짜지겠지. 어쩌면 알랑방귀 뀌며 잘 보이려 할 수도 있고.”

진마정에 대해 모르는 중괴에 말에 준혁은 고갤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든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인족이란 약점을 극복할 순 없을 테니까요.’

굳이 뒷말은 꺼내지 않은 준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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