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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05화 (305/408)
  • 305화. 분홍새의 권능 (2)

    준혁이 처음 삼청조를 만났을 때,

    바람꽃과 산들바람은 수박통만 한 분홍새가 그들 종족을 비경 밖으로 데려다줄 희망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막상 흡수한 삼청조의 능력은 장거리 통신 능력, 그것도 단방향 통신이었다.

    나중에 두 자매에게 듣기로 그들도 오랜 전설처럼 알고 있는 지식인 것이지, 진짜 삼청조의 능력이 그들을 비경 밖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준혁은 삼청조가 대륙, 혹은 비경을 뛰어넘어 어떤 곳에 있어도 통신이 가능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 생각했다.

    즉, 공간 분리된 세상을 뛰어넘어 통신이 가능한 것이, 그 세상과 통한다는 내용으로 잘못 전달된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대천경에 오르며 식검의 공명 능력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영역분신으로 삼청조를 부릴 수 있게 되면서 준혁은 그때 그녀들이 알고 있던 내용의 진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지금 갈 것이냐?”

    “아닙니다. 현재 제 상태도 어르신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자가 도착하기 전에만 움직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준혁의 말에 중괴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한쪽으로 물러나더니 보호막도 없이 곧바로 회복에 돌입했다.

    중괴가 회복에 돌입하자, 준혁은 사각 보호 법기를 꺼내 그를 보호하게 한 뒤, 라후지에게 받은 보진단 한 알을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삼청조에 영력을 불어넣으며 산들바람을 불렀다.

    -산들, 지금 상황은 어때?

    -어? 큰둥이? 아까 급하게 사라지더니 어디야?

    잠시 후, 산들바람이 촐랑대는 말투로 응답했다.

    -급한 일이 있었다. 혹시 근처에 화여 수사가 있을까?

    왠지 산들바람을 붙잡고서는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을 거라 여긴 준혁은 바로 소화여에게 삼청조를 넘겨달라 부탁했다.

    한참 후, 삐진 듯한 산들바람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 후, 소화여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대인?

    그리고는 준혁이 떠나온 후 변화한 상황에 관해 설명이 이어졌다.

    -그럼 지금은 소강상태란 말입니까?

    -소강상태까진 아니지만, 처음보다 공세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성주를 상대하는 수사들을 제외하곤 한발 물러나 있는 거로 보여요

    준혁이 떠나온 뒤로 성주만은 여전히 대천경 수사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했다.

    ‘라 선사가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군.’

    분명 야소수가 떠나기 전 그렇게 명령을 내려놓은 게 분명한 일.

    ‘택요도 성주를 도우러 가고 싶으나, 성을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을 테고.’

    대화성의 보호막은 선박의 폭격과 수많은 수사들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로 대단했지만, 단점이라면 그걸 운용하기 위해서 엄청난 인력이 달라붙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준혁의 질문을 제외하고도 소화여는 눈치껏 질문하지 않은 주변 정세나 성내 상황에 대해 낱낱이 고했다.

    -헌데 이상한 게 있어요.

    -이상한 것? 그게 무엇입니까?

    -분명 위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택요 수사가 인원을 대거 차출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어요. 특수한 진을 설치하는 것 같은데…. 마족들을 잡으려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소화여 역시 영수들을 돌보며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특수한 진이라…. 설마…. 흠.’

    준혁은 짐작 가는 것이 한 가지 있었지만, 애써 추측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넘기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저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삼청조를 통해 준혁의 말이 이어질수록 소화여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만 갔다.

    그리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분홍새를 관찰했다.

    ***

    ‘최대한 영력을 회복하는 게 먼저다.’

    삼청조의 통신을 끊은 준혁은 마족에게서 얻은 벽돌 모양 공간 법기를 이용해 주변을 완벽한 밀폐 장소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공간대에서 마정 하나를 꺼내 손 위에 올린 채, 마정에 포함된 순수한 마기를 흡수했다.

    동시에 진마정에 비교하면 매우 소량이었지만, 인세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중화의 힘마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족들이 보면 난리가 나겠군.’

    마정은 요마족의 화신체를 만드는 주요 재료로 그 가치가 상상을 초월했지만, 당장은 급한 불부터 끄는 게 먼저였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보진단이 든 자기병을 꺼내 연달아 단약을 꺼내 먹었다.

    아그작-

    보진단은 수행을 안정시키고 몸을 보호하는 데 탁월한 단약. 그뿐만 아니라 대천경인 준혁에겐 어마어마한 영기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물건.

    다만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강한 만큼 최대한 안정적인 상태에서 사용해야 진정한 약효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게 마정에서 기운을 뽑아냄과 동시에 몸을 회복하는 데 몰입하던 중.

    -대인! 나타났어요!

    소화여가 삼청조를 통해 말을 걸어왔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구나.’

    야소수의 이동속도가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자, 준혁은 깜짝 놀라며 회복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바로 쫓아왔을 때도, 어르신을 합공한 지 꽤 지나 보였었어.’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궁금해하며 준혁은 공간 법기를 회수한 후, 중괴를 감싸고 있는 보호 법기 위로 몇 가지 진법을 연달아 펼쳤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도록 하지요.

    ***

    대화성 중문 인근.

    “적장이 죽지 않았었다니!”

    “이렇게 되면 성주님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야소수의 등장으로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소란과 상관없다는 듯, 준혁과의 통신을 끊은 소화여는 삼청조를 품에 갈무리한 채 조용히 어두운 길만을 골라 이동했다.

    잠시 후, 푸른 보호막을 마주한 소화여는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삼청조를 날려 보내며, 마지막으로 통신을 보냈다.

    -지금이에요.

    소화여의 손을 떠난 삼청조는 아무렇지 않게 푸른 보호막을 통과하더니, 갑작스레 부들부들 몸을 떨어대다 퍼엉 하고 분홍 먼지로 변해 터져버렸다.

    그 모습에 소화여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화악-

    분홍 먼지가 하나의 통로라도 되는 듯, 먼지 중심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붉은 장검을 든 준혁이 조용히 빠져나왔다.

    “정말이었네요! 대단해요!”

    준혁이 나타나자 소화여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삼청조의 권능.

    그건 바로 세상과 세상을 잇는 이정표였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단절된 상태라 해도 하나의 좌표가 되어 계약자에게 통로를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

    다만 삼청조의 능력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준혁은 그런 삼청조의 능력에 적마의 권능을 공명시켜, 중괴가 있던 곳에서 대화성까지 단숨에 도약한 것이었고 말이다.

    ‘역시 이렇게 하니, 영력 소모가 적구나.’

    또한 준혁이 산들바람이 아닌 소화여에게 삼청조를 건네라고 한 이유는, 그녀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할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짧은 시간 보진단과 마정을 이용해 빠른 회복을 했다고는 하나, 수행과 비교해 너무 많은 영력을 소비해야 하는 준혁으로선 조금이라도 영기 소모를 줄일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다 이정표가 되어줄 삼청조에 준혁 본인이 아닌 타인이 영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하는 발상을 하게 되었고, 가장 도움이 될 소화여를 동원하게 된 것이었다.

    ‘성광지력은 역시나 완벽히 다뤄지는군.’

    게다가 보호막 너머로 삼청조를 보낸 이유도, 결계를 통과하는 데 쓰일 영기를 아끼기 위함이었고 말이다.

    잠시 후, 준혁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는 소화여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신호를 보내고는 날개를 한번 퍼덕거렸다.

    그리고는 다시금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감춰버렸다.

    ***

    대화성 상공.

    야소수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전격적인 공세를 지시했다.

    그리고는 당황하는 라후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가며 외쳤다.

    “이자는 내가 맡는다! 모두 성 공략에 우선하고 진혈을 가진 아이를 구하는 데 초점을 두어라!”

    야소수의 외침이 신호가 되어, 라후지를 공략하던 세 명의 대천경 수사가 선박으로 돌아가자, 다시금 선박에서 광선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많은 마족이 벌떼처럼 하강하며 각종 빛무리를 난사했다.

    “택요! 진은 나중이다! 방어에 집중하라!”

    라후지는 상대의 지시에 맞대응 명령을 전달했다. 그리고는 방어에 중점을 두며 야소수의 공격을 맞이했다.

    콰앙!

    속도 난타전으로 시작됐던 첫 교전과 달리, 이번엔 힘과 힘의 대결.

    야소수가 한시가 급한 사람처럼 서두르며 전력을 쏟아붓자, 라후지는 방어에 급급하며 연신 물러서기에 바빴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서두르는 야소수를 보며 라후지는 의문을 드러냈다.

    “이익!”

    그때, 공격을 퍼부으며 기선을 제압하던 야소수가 느닷없이 안색이 변하며 상공으로 미친 듯이 솟구쳐 올라갔다.

    잠시 후. 야소수가 서 있던 자리가 보이지 않던 붉은 장검으로 베어져 나가자, 그제야 라후지는 일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최 선사!”

    붉은 장검이 지나간 자리, 어느새 보랏빛 피부에 살기가 넘쳐나는 준혁이 상공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제법입니다. 이걸 피하다니?”

    “내가 두 번 당할 줄 아느냐!”

    기습을 미리 감지하고 자리를 피한 야소수는 준혁의 비아냥거림에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분노한 사람치고는 급하게 달려들지 않고, 고민에 빠진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자도 궁주라던 그자처럼 나에 대해 오핼 하고 있나?’

    천혈을 사용한 기습의 효과로 자신의 경지를 몇 단계나 높게 평가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오만방자한 마족의 상위 수사가, 가장 싫어하는 회피라는 선택을 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사실 준혁이 동급 수사들과의 전투 경험이 많지 않아 그러는 것이지, 야소수나 요트람의 오해는 충분히 이해가 갈 만했다.

    이곳과 저곳, 두 곳에서 진선급 화신체를 그냥 찢어발겨 버렸으니, 공포에 떠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라 선사. 성을 지키는 데 동참하십시오. 저자는 제가 맡을 테니.”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감격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라후지를 향해 준혁은 고개만 살짝 끄덕여준 후, 시선을 들어 야소수를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는 씨익 웃어 보이며 손을 들어 허공을 사선으로 그었다.

    “갈라져라!”

    그 순간, 야소수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하며 그 자리를 피하고자 대기를 박차 옆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준혁이 생각 없이 천혈의 힘을 남발할 인물은 아니었다.

    “이놈!!!”

    야소수는 준혁이 손짓으로 자신을 능멸한 것을 깨닫고는 시뻘게진 얼굴로 소릴 질렀다.

    그리곤 이번엔 분노를 참지 못한 듯, 하나의 검은 빛덩이가 되어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죽인다!”

    진선경인 상대가 싸움을 회피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유효 타격을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

    혹시나 하고 도발을 감행했던 준혁은 너무 쉽게 상대가 넘어오자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인지경을 소환했다.

    “좋습니다! 화끈하게 붙어 보시지요!”

    그리고는 전면에 몸통보다 두꺼운 거대한 육각 타일 하나를 만들어냈다.

    잠시 후, 가까워질수록 훼멸적인 기운이 흘러넘치는 야소수가 바로 앞까지 근접하더니 양손을 번갈아 내질렀다.

    퍼걱- 퍽-

    그러자 양 주먹이 육각 타일을 건드렸고, 그곳에서 시작된 파동이 잔잔한 호수에 돌이 떨어진 것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직후, 점차 커지던 파문이 순식간에 흉포한 괴물이라도 된 듯, 밖으로 퍼져나가야 할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준혁을 집어삼킬 듯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기세의 변화를 읽기도 했고, 숨어서 야소수와 라후지의 근접전을 지켜보았던 준혁은 당황하지 않고 의지를 움직였다.

    그 순간, 전신에서 육각 타일이 일어나며 몸을 둘러쌌고, 거의 동시에 본체의 등 뒤로 또 하나의 마족 전영이 나타나 진득한 암흑마기로 준혁의 몸을 감쌌다.

    콰아앙!!

    직후 준혁을 집어삼키던 파문이 중심으로 모여들며 눈부신 폭발을 일으켰다.

    “어떠냐! 내가 네놈을 두려워해 피한다고 여겼던 것이냐?!”

    폭발이 가라앉기 전, 어느 정도 복수를 했다고 여기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야소수.

    그런 그의 머리 위로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원통형 나무를 잇대 만든 것 같은 꼭두각시 인형이 나타나며 양손으로 원형을 그렸다.

    그러자 그 앞으로 거울이 나타나며 야소수를 향해 빛을 내렸다.

    “이, 이건?”

    갑작스러운 빛살에 놀라 회피하려던 야소수는 빛이 내리쬐는 공간을 단번에 벗어날 수 없자, 놀라며 전신의 영력을 개방했다.

    “터져라!”

    하지만 영력 폭발로 빛의 감옥을 깨부수기도 전.

    데엥~ 데엥~

    어느새 허공에 거대한 종이 나타나 좌우로 흔들리며 소리를 내었고,

    “크아아앙!!”

    이어서 야수의 굉음이 온몸을 투과하고 지나갔다.

    인지괴의 거울 감옥과 대막리의 극락종, 거기다 백호 혈맥의 힘까지.

    디버프 효과를 가진 세 기운이 중첩되자, 야소수의 얼굴은 그야말로 시꺼멓게 변해 버렸다.

    마치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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