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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02화 (302/408)
  • 302화. 요마족 (4)

    선박에서 튀어나온 마족으로 인해 야소수가 화신체와 물러나자,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갔다.

    치열한 전투 중에 불꽃이 이상한 곳으로 튀어버린 격이었다.

    “비브란 부궁주,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궁주께 자세히 전해 듣지 못하신 겁니까? 제가 알기로 한 차례 족원 전체에 동원령이 내려진 걸로….”

    “나도 요트람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자는 흠….”

    야소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아끼자, 우람한 체격의 마족이 어딘가로 향해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선박에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죽옷을 입은 여 마족이 빠르게 날아와 사내 옆에 내려섰다.

    “이 아이가 요트람님께 화신체를 전수 받아 흑마지를 담당하고 있던 녀석입니다. 비욘사라, 그때 당시를 자세히 설명하라.”

    “네! 부궁주님!”

    여인은 사내의 말에 멀리 떨어진 준혁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과거 흑마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제 기억 속 그자가 맞습니다. 수행으로 보자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분명 기억 속의 그와 완벽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전마족 특유의 기운을 바꿀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저자는 그 기운까지….”

    한편, 준혁은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여인을 보고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자는, 그때 그 마족이 아닌가? 잘못하면 괜한 오해를 사겠구나.’

    진마정이라면 마족들에게 천고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것. 아마 진혈을 가진 후계를 구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며 강자원칙으로 진행되던 전투를 무시하고 덤벼들 수 있는 일. 거기다 마족뿐 아니라 다른 종족, 특히 인족도 진마정을 탐내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막리의 말에 의하면 진마정 안에 포함된 중화의 힘은 삼선의 오른 수사를 한 단계 진일보시켜줄 물건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중단된 전투로 인해 회복에 전념해야 할 라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최 선사? 저게 무슨 말입니까? 진마정이라니? 설마 수사께서 그것을 지니신 겁니까?”

    준혁은 괜한 오해를 불러오게 하지 않기 위해 그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진마정은커녕 마정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물건이 있었다면 이미 수행을 올리는 데 사용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흐음.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그 물건이 단약 먹듯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괜한 것에 정신을 팔지 마시고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회복에 전념하십시오. 저들이 강자원칙을 내세울 때부터 의심스럽긴 했는데, 아마 믿을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도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니, 빨리 이곳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준혁의 나무람이 통했는지, 라후지는 상황을 납득하고 부끄럽다는 듯 사과의 말을 꺼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단약을 꺼내 삼키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대기 중의 영기가 요동치며 구멍 뚫린 그의 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전투가 중단된 지 얼마 흐르지 않은 시간.

    선박에서 내려온 두 마족이 모습을 감추자, 야소수가 준혁에게 말을 걸었다.

    “듣자 하니 흑마지에서 오셨다던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준혁은 한 선박에서 나온 두 마족이 각기 다른 선박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피식 웃으며 영력을 꾹 눌러 담아 대답했다.

    “흑마지라면 옛 구지대륙이 위치한 곳에 있다는 그곳 말입니까? 소문으로는 들어보았지만, 아쉽게 방문해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동시에, 성안에서 대기 중이던 라후지의 부하인 택요에게 전음을 보냈다.

    -택요 수사. 라 선사가 대응할 상황이 아니라 대신 전합니다. 모두 공격에 대비하세요. 저들이 기습을 가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족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준혁이 기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하자, 긴장한 택요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현재, 상단에서 데려와 저희가 보관 중입니다.

    ‘보관이라….’

    준혁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전음을 이었다.

    -만에 하나 기습을 감행한다면 우선하여 그 아이부터 구하려고 할 터. 철저히 대비하십시오. 아니면 차라리 기습이 있기 전에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족들이 진혈 아이를 구하기 위해 성내에서 무리한 일을 벌인다면 그 피해는 상당할 수 있었다.

    -예? 그, 그건…. 성주께 우선 여쭤보겠습니다.

    상대의 대답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준혁은 또 한 번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다시금 말을 꺼내기보다는 요마족들의 다음 행보를 예측하기 위해 전신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확실한 게 아니지만, 분명 이대로 강자원칙으로만 갈 리는 없다.’

    진마정이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한 순간부터, 라후지가 회복할 시간을 주면서까지 시간을 끄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다 어떤 명령을 내리든 전음으로 가능한 것을 두 마족이 직접 움직여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모습은 행동 지침 이상으로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했다.

    그때, 준혁의 대답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상대가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까? 이거 이상하군요. 비욘사라라는 아이가 오래전 화신체를 파괴당했는데,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사께선 혹시 아십니까? 화신체가 파괴당한 순간의 기억은 매우 강렬해서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것을? 상대에 대한 외형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기운과 숨결,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준혁은 더 대답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바로 주제를 전환했다.

    “아! 그렇군요. 좋은 걸 배워갑니다. 헌데 저를 상대했던 이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진마정 얘기만 하시는 걸 보면?”

    상대는 준혁의 말에 싸늘한 눈빛으로 차게 웃었다.

    “요라제 선사 말입니까? 궁금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쪽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게 결과를 말해주는데. 그리고 저도 딱히 그자를 맘에 들어 했던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이 기회에 요마곡도 정리 좀 하고 나쁜 일은 아닙…. 아!”

    히죽히죽 웃던 야소수는 말을 멈추더니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비열한 웃음을 짓다가, 갑작스레 손가락으로 대화성을 가리켰다.

    그 순간,

    파앙-

    화신체가 준혁을 향해 폭발하듯 날아왔고, 세 대의 선박에서 각각 대천경 수사 한 명씩이 영역분신을 두 명씩 소환한 채 라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선박 세 대가 거대한 울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울음이 끝나기도 전.

    쿠아아앙- 지이잉-

    거대한 폭발음과 동시에 선박에서 수 미터는 돼 보이는 광선 다발이 대화성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선 뭉텅이가 순식간에 쏘아져 가 대화성에 적중한 순간, 야소수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

    ‘역시 예상을 벗어나진 않는구나!’

    다행히 준혁의 명으로 택요가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건지,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도 대화성은 굳건히 버텨냈다.

    광선에 갈가리 찢어졌던 푸른 보호막도 순식간에 복원돼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선박에서 수많은 마족 수사가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며 대화성으로 파고들었다.

    그나마 푸른 보호막이 재빠르게 복원되면서 대부분의 마족이 튕겨 나왔기에 대세적인 혼란이 온 것이 아니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라 선사!!

    준혁은 공격이 이루어진 순간, 라후지에게 신호를 보내며 폭사되어 나갔다.

    눈앞에서 모습을 감춘 상대의 기척이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으니 귀원패로 전신을 보호하면서.

    ‘진혈부터 확보하려는 건가? 아니면 기습을?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그건 아니겠지?’

    생각을 이어갈 시간도 없이 거리를 삭제시키듯 눈앞으로 다가온 화신체.

    “숨어서 무얼 하려는 건진 모르지만!”

    충돌 직전 준혁의 전면에 진한 마기로 뒤덮인 육각 타일이 생겨나 화신체를 막아섰다.

    콰앙!!

    육각 타일에 부딪힌 화신체는 라후지와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던 야소수 본체와 달리 단 한 번의 충돌 반발력에 휘청거리며 수십 미터를 튕겨 나갔다.

    “나를 상대함에 있어 집중해야 할 겁니다!”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준혁이 소릴 질렀다.

    이미 요마족의 화신체를 만드는 비술은 준혁의 머릿속에 있는 상황.

    한동안 그것의 연구에 심취해 있었던 준혁은 화신체를 상대하면서 정공법으로 부딪쳐 나갈 생각이 없었다.

    충돌 직후, 준혁은 곧바로 영역 분신 넷을 소환해 선박에서 무수히 떨어지고 있는 저급 수사들을 향해 날려 보냈다.

    “가라! 위선경 수사들이 우선이다!”

    그리고는 등 뒤로 거대한 날개를 소환하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화신체가 충돌 중에 미세하게 흘러들어온 암흑마기를 떨쳐내려 애쓰는 사이, 준혁이 그의 발아래 나타나 위로 치솟으며 손날을 휘둘렀다.

    화신체는 갑작스러운 준혁의 등장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바로 무형의 기운을 가져와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촤악-

    보호막 위로 서리가 끼며 얼음 칼날이 스쳐 지나갔다.

    그사이 준혁은 바로 준비하고 있던 반지를 사용했다. 애초에 그는 근접한 후 상대방이 보호막을 만들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회피하며 거리를 두지 않게 하려고.

    우웅-

    잠시 후, 사신정이 손가락에서 빠져나오며 주변을 흑막으로 뒤덮자마자, 준혁은 양손을 교차하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갈라져라!!”

    그 순간, 양손에서 뻗어 나온 시뻘건 광선이 화신체의 몸통을 엑스자로 정확히 가르며 지나갔다.

    그리고 몸이 갈라진 순간,

    “베어라!”

    적마도를 든 분광소가 허공중에 나타나더니, 화신체 몸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회색 수정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버렸다.

    쩌적-

    화신체의 최고의 약점.

    그건 바로 진짜 수사처럼 즉각적인 회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몸에 균열이 일어나면 잠시나마 단(丹)이나 마찬가지인 마정 껍데기가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격 방법은 아니었다.

    오직, 공간 자체를 갈라버려 외부의 보호와 무관하게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수사만의 특권이었다.

    단점이라면 단 하나.

    “하아, 역시 영역분신과 동시에 사용하기엔 무리구나.”

    준혁은 네명의 분신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항상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

    사신정이 거둬지며 준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인근에서 대화성을 공격하던 마족들이 모두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했다.

    두 눈엔 불신이 가득했고, 양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야소수 님께서 당하시다니….”

    분명 흑막이 주변을 가리기 전까지만 해도 야소수와 준혁이 붙어있었는데, 흑막이 거둬지자 나타난 건 준혁 한 명.

    저급 수사 마족들은 죽은 게 화신체인지 본체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실력이었기에, 그들은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떨어댔다.

    게다가 준혁이 화신체를 썰어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도망쳐라!!”

    정신을 차린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마족들이 준혁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준혁은 그들을 상대할 생각도 없었기에, 사신정에서 나온 순간 기감을 유형화시켜 전력으로 주변을 살폈다.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야소수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천경 수사 셋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라후지를 확인한 준혁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택요를 찾았다.

    그러다 기감에 걸려들자 곧바로 전음을 보냈다.

    -택요 수사! 진혈 아이는?

    갑작스러운 준혁의 전음이 뜻밖이었을까?

    택요는 보호막에 전력을 다해 영력을 주입하며 한편으로는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다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어 준혁이 자리한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쪽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 말은 그것이 아니네. 아무도 그곳으로 침입하지 않았냐 하는 뜻이야.

    -아! 아닙니다. 몇몇 마족들이 보호막이 뚫린 순간 침입해 왔지만, 다행히 무탈하게 막아냈습니다. 아! 그리고 화여 수사를 비롯해 다른 수사분들도 안전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준혁이 영수들을 아낀다는 소문이 퍼진 것인지, 택요는 묻지도 않은 안부를 전해왔다.

    하지만 준혁은 택요의 말에 오히려 불안이 증가했다.

    ‘기습도 아니고, 대화성 잠입도 아니라고?’

    게다가 유형화된 기감이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순간 준혁은 조금 전 느꼈던 불안감에 중괴가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시선이 향함과 동시에,

    콰앙!!

    대기가 터져나가며 음속폭음과 함께 거대한 원형 충격파가 발생했다.

    동시에 준혁의 분신들이 힘을 잃고 먼지처럼 사라졌다.

    “어, 어딜 가시는 겁니까!!”

    대천경 수사들을 상대로 손발을 어지럽게 움직이던 라후지의 비명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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