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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01화 (301/408)
  • 301화. 요마족 (3)

    요라제는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기습적으로 팔이 뻗어 나와 자신을 얼릴 때만 해도, 가소로운 수준의 공격에 하품이 나왔었다.

    직후, 등 뒤로 진짜 공격이 이어졌을 땐 살짝 놀라긴 했지만, 몸이 얼어갈 때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즉각 대응을 이어갔다.

    습격과 약탈이 주 생활상이었던 종족 특성상, 이런 수준의 전투 방식은 너무 뻔하디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진득한 기운이 피어 나와 신체를 파고드는 순간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영역을 펼친 순간부터 느껴지던 상대와의 격차 때문에 여유롭게 상황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이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이, 이건.”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일반적인 마기가 아니었다.

    상대의 마기는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모든 걸 녹여버릴 듯이 자신의 마기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한편으론 겨울의 냉혹한 폭풍처럼 자신을 뒤흔들었다.

    너무 놀란 요라제는 자신을 파고든 기운이 더는 늘어나지 못하게 전신의 힘을 격발했다.

    콰앙!!

    그러자 폭발을 피해 상대가 물러났고, 그제야 내부를 기운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다.

    “네놈은 무엇이냐? 어찌 이리 순수한 마기를 사용할 수 있단 말이냐?”

    어느새 심장 한쪽에 자리 잡은 상대의 기운은 이질적이면서도 한없이 깊고 어두워 절로 몸서리치게 했다.

    분명 같은 마기인데도, 범접할 수도 그렇다고 녹여낼 수도 없는 것이 마치….

    “마치…. 진마기 같은….”

    암흑마기, 진마기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순수한 마기의 결정체.

    진마기를 얻기 위해 종족 차원의 전쟁을 치렀고, 진마기가 존재한다는 흑마지라는 지역을 사수했음에도 얻지 못한, 바로 그 힘.

    그때, 요라제의 뇌리로 스치듯 지나쳤던 요트람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대화의 주제는 요트람이 관리하던 흑마지에서 전마족 하나가 나타나 그의 수하 중 하나인 비욘사라라는 소천경 수사를 물리치고 도망쳤다는 얘기.

    믿을 수 없게도, 그 전마족은 100여 년 넘게 흑마지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했다.

    그래서 그자가 진마정을 획득한 게 아니냐는 말들이 오갔었다.

    하지만 요라제는 그 얘길 그냥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흑마지 안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 버틸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고, 그것이 소천경급 수사라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

    “전마족…. 진마기…. 설마 저자가!”

    문득 떠오른 상념에 요라제는 세차게 고갤 흔들었다.

    “하긴 말이 안 되지. 그때 그 전마족은 겨우 소천경 수사였으니까.”

    상대방이 그때 그 전마족이라면 겨우 수백 년 사이에 소천경에서 진선경에 이르렀다는 말인데, 그건 소천경 수사가 흑마지 안에서 100여 년 머물렀다는 말보다 더 황당한 소리였다.

    한편, 준혁은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물러난 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행의 차이? 상성의 차이?

    월광지력이 마선기를 압도하는 우월 상성이었다면, 암흑마기는 일반적인 마기의 상위호환이었다.

    즉, 질적인 수준이 달랐기에 모든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암흑마기 일부를 상대방의 체내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진정할 힘을 보여줄 차례가 온 것이다.

    무언가 애쓰듯 고심하는 상대를 보며 준혁은 즉시 수결을 짚었다.

    “굳이 천혈을 사용할 필요도 없겠군.”

    잠시 후,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며 또 한 번 공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 순간,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마기를 응축하던 요라제가 피를 울컥 쏟아냈다.

    암흑마기의 격발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

    내부에서 터진 암흑마기로 인해 요라제는 자신의 능력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가 없었다.

    마치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마기를 운용하려고만 하면 방해를 받았다.

    그렇게 제대로 된 수행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공방이 지속되었고, 결국 수세에 몰리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푸욱-

    냉기를 품은 나무줄기에 포박당한 요라제는 결국 준혁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

    요라제의 심장을 파고든 준혁의 손끝에서 금빛 실이 퍼져나가자, 그는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치겠다는 듯 몸을 심하게 비틀었다.

    하지만 원영이라도 탈출시켜 보려는 그의 시도는 안타깝게 바로 막혀버렸다.

    이미 그의 몸 안에 있던 암흑마기가 준혁의 의지에 따라 도망로를 차단했고, 이어서 혈단법의 금빛실이 최후의 희망마저 원천 봉쇄해버렸다.

    촤르륵-

    잠시 후, 원영을 둘러쌌던 금빛 실이 외부로 삐져나오며 그의 몸통을 감쌌다.

    그리고는 금빛 실을 통해 준혁의 암흑마기가 흘러 들어가자, 요라제는 한 마리의 검은 누에고치가 돼버렸다.

    “서둘러야겠군.”

    준혁은 검은 누에고치가 돼버린 요라제의 기운을 흡수하려던 걸 보류하고, 그를 공간팔찌 안에 저장했다.

    전투 중 준혁이 유리하게 상황을 이어가자, 요라제가 보란 듯이 내뱉었던 한마디.

    -기고만장하지 말아라! 이제 곧 두 놈을 처리하고 모두 나를 도우러 올 테니!

    -그림자를 동원한 이상 네놈들에게 승산은 없다!

    그림자.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준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익히려다 포기한 요마족의 비술.

    “화신체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부디 아직 사용하기 전이기를.”

    콰앙-

    대기가 터져나가며 준혁이 빛살처럼 변해 하늘을 갈랐다.

    ***

    “얘기는 많이 들었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중력괴.”

    “흥. 나도 귀가 아프게 들었지. 약탈을 일삼는 요마족, 그중에서도 심천군주를 제외하고 가장 악랄하다는 요마궁의 궁주.”

    “하하, 칭찬이 과합니다. 군주와 저를 비교하다니요? 그분께선 천외천이십니다. 굳이 비교하려면 천휴림의 림주나 선마궁의 궁주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이없군. 림주나 천신라는 진정 하늘 밖이지. 심천군주는 고작 너희 약탈꾼들의 수장에 불과하지 않으냐? 어딜 비벼보려고.”

    “하하, 그렇습니까? 이것 참. 그렇게 입을 놀릴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대화성을 중심으로 준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던 중괴.

    그는 요마궁 궁주 요트람을 상대로 고전 중이었다.

    처음에 맞붙었을 때만 해도 한번 해볼 만하다고 여겼지만, 요트람이 꺼낸 물건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그가 꺼낸 물건은 피뢰침처럼 생긴 막대기였는데, 허공에 둥둥 뜬 채 영기파동을 퍼트리는 그 물건으로 인해 중괴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저게 무엇이기에 내 수행을 억압한단 말이냐? 젠장할!’

    피뢰침은 중괴가 의지를 일으키려 할 때마다 정신을 흩트려 놓았다. 그로 인해 영역 자체가 흔들리니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비등한 동급수사를 상대하는 입장에선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때, 유리하게 상황을 끌어가던 요트람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좋았을걸. 중력괴 당신과 더 승부를 겨뤄보고 싶지만, 이만 결과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물론입니다. 당신을 처리하기 위해 이것까지 빌려왔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그들에게 실례지요.”

    요트람이 손가락을 까딱 움직이자, 피뢰침이 팽그르르 돌다가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지금까진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된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으니. 이제부턴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순간, 피뢰침의 끝부분에서 불빛이 번뜩거렸다.

    “설마, 네놈 본명기가 아니었단 말이냐?”

    “물론입니다. 그대를 상대하기 위해 야 선사에게 빌려온 것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것의 이름은 파뢰(破雷)입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그게!”

    파뢰라는 말에 중괴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파뢰는 요마족 심천군주의 본명기로 마선기를 중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물건이었다.

    마선들에겐 익히 알려진 내용이었고, 중괴 역시 직접 본 건 처음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었다.

    “빌어먹을. 어쩐지 싸우기 싫다 했더니.”

    잠시 후, 요트람의 전신에서 피뢰침의 전극이 발산되자, 중괴가 양손을 모으며 전력을 끌어모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상대가 다른 쪽에 합류할 것이고, 그 결과는 아끼는 애송이의 죽음으로 이어질 게 뻔한 일. 그렇게 할 순 없었다.

    “어디 한번 이걸 받아낼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와라! 이 비열한 약탈꾼아! 진정한 중력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중괴는 양손에 모인 힘을 땅속으로 쏘아 보내며 외쳤다.

    “붕괴하라!!”

    콰르릉!

    그 순간 주변 지반이 완전히 무너지며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대화성 상공.

    푸른 보호막으로 뒤덮인 대화성이 발아래 멀리 보이고, 비슷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선박 세 대가 시야에 보이는 곳.

    쉬익-

    요마족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야소수와 대화성 성주 라후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이동하며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슈앙-

    쾅!

    굉음이 터지면 다음으로 폭발음이 이어졌고, 폭발음이 터지면 곧바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대부분 인족 수사가 술법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것과 달리, 라후지는 강체술을 바탕으로 한 접근전으로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마치 요마족을 대표하는 마족처럼.

    콰아앙!!

    이어지던 접전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잠시간 중단되었다.

    “인족 나부랭이와 이렇게 화끈한 전투를 펼칠 줄은 몰랐군.”

    “마족치고는 수준이 떨어지는군. 그러니 이렇게 기습이나 펼치는 것이겠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네놈들이 먼저 벌인 일이라고.”

    “나도 말했을 텐데? 모르는 일이라고?”

    두 수사는 상대를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지 않으려고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으로 서로 속을 긁었다.

    “그래, 더 입을 놀려봐야 아무 의미 없지.”

    “그러면서 계속 입을 놀리는군. 멍청한 놈.”

    “멍청한 놈이라? 어디 네놈 뒤의 그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해 보지?”

    “!!!”

    멀리 떨어진 상태로 대화를 이어가던 순간.

    라후지는 갑작스레 등 뒤로 밀려오는 거력에 재빨리 몸을 회전하며 대기를 굳게 만들었다.

    “막아라!”

    그 순간, 의지에 동조해 대기가 철벽처럼 변하며 그를 둘러쌌다.

    하지만 너무 은밀한 접근이었기에, 움직이기 시작했을 땐 이미 공격이 근접해 있던 상황. 완벽한 방어는 불가능했다.

    콰작-

    찰나의 순간에 굳게 만든 대기를 관통한 기운이 라후지의 복부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렸다.

    “으윽.”

    라후지는 공격에 적중당한 순간 먼지처럼 흩어지더니,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나 시꺼메진 안색을 드러냈다.

    “이, 비겁한! 어찌 정당한 승부에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부끄럽지도 않으냐!”

    일 대 일 대결에 비겁하게 다른 이를 끌어들였다는 라후지의 외침.

    하지만, 야소수는 떳떳한 얼굴로 손을 들어 새로 나타난 이를 가리켰다.

    “제대로 보고나 말하시지 그래?”

    그제야, 라후지는 자신을 기습한 인물을 확인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설마 화신체? 화신체를 동급으로 만들었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쉬운 길만 걸으려고 하는 인족 따위가 어찌 우리의 위대한 여정을 상상이나 하겠느냐? 그럼 승부를 봐볼까? 요라제 그자가 걱정되니 여긴 빨리 마무리해야겠어.”

    유일하게 수행을 엿볼 수 없었던 사내. 야소수는 그자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안한 직감이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진짜 요마족의 힘을 보여주마!”

    말은 마친 야소수가 전신을 의지로 감싸고 허공을 박찼다.

    그러자 그의 움직임을 따라 화신체가 따라 쇄도했다.

    “이건, 안 된다. 안 돼.”

    밀려드는 기운에 라후지는 절망에 빠져 순간 탈력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동수를 이루던 상대가 두 명이 됐으니 더 이상은 의미 없는 싸움이라 여긴 것이다.

    자신을 도와야 할 영역분신들은 전부 상대방의 영역분신을 상대하고 있었으니, 새롭게 추가된 인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쯤.

    “라 선사!!”

    슈아앙-

    한쪽 방향에서 누군가가 미칠듯한 속도로 쏘아져 날아왔다.

    “최 선사?”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그자가 하늘에서 손을 휘젓자, 쇄도하던 화신체 앞에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사내가 나타나 자폭 공격을 하듯 막아섰다.

    그 모습에 라후지는 정신을 차리고 야소수의 본체를 향해 전력을 담아 손을 내밀었다.

    쾅!!

    직후, 야소수와 라후지가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를 퍼트렸고, 동시에 화신체가 날아오던 방향에서도 비슷한 폭발이 일어났다.

    충돌의 여파로 라후지는 한참을 밀려나다가 누군가의 부축으로 멈추어 설 수 있었다.

    “최 선사? 맞습니까? 어떻게!”

    도움을 준 사내는,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마족의 모습. 그것도 전투 민족이라 불리는 전마족의 모습이었다.

    “집중하십시오. 왜 해보지도 않고 손을 놓으시려 한 겁니까?”

    “그건. 죄송하, 헌데 정말 최 선사가 맞습니까?”

    마족처럼 보이는 외형의 사내를 보고 라후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위아래로 훑었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마족들을 상대함에 유리하기에 이런 모습을 한 것입니다. 공법일 뿐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화신체는 제가 막아설 테니, 선사께선 저자를 상대하십시오. 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선박 한 채에서 우람한 체격의 마족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전장에 퍼져나갔다.

    “야소수님!! 그자입니다! 흑마지에서 진마정을 가지고 나온 것으로 의심되던 그자! 바로 그입니다!”

    준혁의 외형이 변하자 그 모습을 한눈에 알아보는 이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외침에 라후지와 야소수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진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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