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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99화 (299/408)
  • 299화. 요마족 (1)

    마지막 경매 물품을 앞두고 경매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 그럼 마지막 물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짝-

    경매진행자인 여인이 경쾌하게 박수 소리를 내자, 천으로 가려진 네모난 물건이 옮겨져 왔다.

    여인은 좌중의 관심을 모으더니, 기대감이 최고조에 올랐을 무렵, 천을 거둬내며 설명을 이어갔다.

    “열여섯 번째 경매품은 바로! 아직 각성을 거치지 않은 마족! 어떤 술법도 익히지 않았음에도 요마족 특유의 마기를 흘리는 최상등급 마족입니다!”

    천을 걷자 모습을 드러낸 건 작은 철창에 갇혀있는 보랏빛 피부의 꼬마 아이였다.

    아이는 겁에 질린 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마족 특유의 살기가 발산되지 않으니 그저 불쌍한 꼬마 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각성을 거치지 않았다니 그건 무슨 뜻입니까?”

    여인이 설명을 이어가려는 찰나, 앞줄에 앉은 수사 한 명이 질문을 던지자, 관람석의 몇몇은 코웃음을 쳤고, 몇몇은 관심이 간다는 듯 집중했다.

    여인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설명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흠흠,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는 전마족을 제외한 요마족과 진마족은 특별한 주술로 관계를 지정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인족 수사들이 영수를 종속시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술법으로 주인을 각인시킨단 말입니까?”

    “아니요. 조금 다릅니다. 마족들은 생물학적인 관계를 두지 않고 피의 진함에 따라…. 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 이렇게 하면 쉽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설명을 듣던 수사들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이자, 여인은 곤란한 표정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은 듯 설명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생명은 부모로부터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마족들은 생명을 낳았다고 해도 그 둘 사이엔 어떤 관계도 성립하지 않지요.”

    “그럼…. 각성이라는 것이.”

    “예! 맞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가진 피의 진함에 따라 부모가 정해지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각성이라는 것을 통해, 혈통을 인정받고 등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호, 그런 것이.”

    첫 질문을 던진 사내를 비롯해 대부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자, 여인은 만족한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좌중의 시선을 모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보시다시피 이 마족 아이는 각성을 거치지 않아 부모가 없는 상태! 게다가 기감으로 살펴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마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순수합니다. 즉 성인이 되고 수련을 시작하면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웅성웅성-

    이제야 마지막 경매품의 가치를 깨달은 수사들이 두런두런 얘길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수사는 경매인이 말하지 않은 진짜 마족 아이의 가치를 판가름하고 있었다.

    각성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마기.

    그건 마정이라 불리는 물건 속의 순수한 마기, 그것과 다르지 않은 기운. 특정 공법을 이룬 자들에겐 보물이나 다름없는 기운이었다.

    “자! 그럼 명령에 목숨도 불사할 충실한 마족을! 부모처럼 따르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마족 종속을 원하시는 분들은 입찰에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작가는 영석 오천 개입니다!”

    “5500!”

    “5800개!”

    “6200!!”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호가가 미칠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한편, 준혁은 조금 찝찝한 시선으로 단상 위 마족 아이를 살피고 있었다.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무엇인지도 판가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쯧, 해도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는 것인데…. 어찌….”

    지금 입찰에 참여하는 자들 중, 마족 아이를 종속으로 만들려는 자들은 없다고 준혁은 확신했다.

    예전 대막리가 진마정을 구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 상승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려는 목적이 9할 이상이라 판단했다.

    그랬기에 안타까움과 함께 씁쓸함이 동반됐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수도계에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기에, 굳이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큰둥아, 우리 저 아이 데려오자.”

    “왜? 불쌍해 보이느냐?”

    마족 아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산들바람의 말에 준혁이 의외란 듯 반문했다.

    하지만, 산들바람은 산들바람.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응? 귀여워서 그러는데? 저 애도 내 부하로 삼을래.”

    ‘...하긴 스스로 종속을 원했을 만큼, 사고가 인간들과 다르긴 하지.’

    산들바람다운 대답에 준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 준혁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지며 시선이 천장으로 옮겨지는가 싶더니, 한 손을 급하게 치켜들었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언령이 흘러나왔다.

    “막아서라!!”

    콰자작-

    그 순간 수십 겹의 결계로 보호되고 있던 경매장 천장이 뚫리며 검은 기둥 수십 개가 건물을 박살 내며 떨어졌다.

    콰쾅! 쾅!

    후두둑-

    “으아악!”

    “이게 무슨 일인가!”

    검은 기둥은 1층, 2층에 앉아있던 수사 수십 명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퍼덕-

    단상에서 마족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태와상단의 여인도 두 다리만 남겨둔 채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준혁 주위는 완벽하게 보호되었기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너무 강렬한 기파 때문인지 영수들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주, 주인님, 이게 갑자기 어떻게?”

    “마족이다.”

    소란으로 경매장 내부가 혼란에 휩싸일 때 준혁은 대화성 상공에 나타난 이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이 기운은 분명 흑마지에서 느꼈던….’

    스스로를 요마궁 소속이라 말하던 마족들의 기운이 상공에서부터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뎅뎅뎅뎅~

    그때 성 곳곳에서 머리를 뒤흔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비상을 알렸다.

    동시에 부서진 건물 사이로 외부의 급박함이 전해졌다.

    “마족이 침입했다!!”

    “모두 경계를 갖춰라!”

    “서, 성주께선 어디 계시느냐!”

    성주를 찾는 자들부터 시작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사 수백의 움직임까지.

    혼란에 싸인 경매장 내부와 달리, 대화성 수사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지 재빠르게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

    대화성 동쪽 상공.

    세 대의 선박이 허공에 멈춰 서 있었고, 그 주위로 수십의 수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보랏빛 피부가 번들거리는 요마족 수사들은 하나같이 비범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화신기 수사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소천경 수사들도 드문드문 보였고, 위선경과 대천경 수사들도 선박마다 한두 명씩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선두에 멈춰 선 선박 위엔 세 명의 인물이 전방에 시선을 둔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야 선사. 이건 약속과 조금 다르군요.”

    “맞습니다. 선사께서 성주를 상대하면 우린 나머지 인족들을 말살하는 데 도움만 주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선두 선박의 주인인 야소수.

    그리고 그의 옆에 자리한 요마궁의 궁주 요트람과 요마곡의 곡주 요라제.

    세 명은 맞은편에 나타난 세 명의 수사를 보며 심각해진 상태였다.

    “나라고 이럴 줄 알 알겠소? 하지만 약속은 약속. 설마 인족 따위가 무서워서 물러나자는 건 아니겠지요?”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왼쪽의 저자는 마선입니다. 오른쪽 젊은 자는 수행이 보이지도 않으니 인족인지 아닌지 확인도 되질 않고요.”

    야소수가 후계자로 점찍은 진혈을 가진 아이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요마족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 요마족의 핵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심천(深天)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인족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였다.

    결국 심천 소속이자, 사건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야소수가 선발대로 움직였고, 압도적이고 완벽한 승리를 위해 요마궁 궁주와 요마곡 곡주를 설득해 합류시킨 상태였다.

    원래 그들과 약속하길, 야소수가 동급수사인 대화성 성주를 견제하는 사이, 궁주와 곡주는 대화성을 포위하고 인족을 말살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거기다 더해 혹시나 다른 성, 혹은 종문들이 합심해 달려들까 봐 과한 전력을 이끌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달랐다.

    최강 전력이라는 진선급 수사가 한 명뿐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대화성의 전력은 훨씬 월등했다.

    정확히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전력은 분명 야소수 일행과 엇비슷해 보였다.

    한편, 방어 결계를 완성하기 위해 애쓰던 라후지가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후, 전방을 향해 소릴 질렀다.

    “이 무슨 짓이냐!!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이 버러지 같은 마족 놈들아!”

    경매장에서 죽은 이들 중 아끼던 수하들도 있었기에 라후지의 목소리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가득했다.

    습격과 약탈로 피해만 입히는 마족들을 특히나 경멸하던 그라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대방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뭐라? 버러지? 그건 너희 인족 놈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감히 내 후계를 이을 아이를, 요마족의 진혈을 타고난 아이를 잡아가? 그러고도 무사하길 바랐더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입만 열면 거짓을 일삼는 네놈들의 말을 믿을 것 같으냐!”

    -택요. 저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보거라.

    라후지는 전혀 동요 없는 모습으로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친 후, 수하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즉각 대답이 들려왔다.

    -성주시여. 아마 이번 경매 물품으로 올라온 마족 아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마족 아이?

    -평소 마족들을 잡아다 재료로 파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이번에 각성도 하지 않은 살아있는 마족 아이를 잡아 왔다고 합니다.

    -쯧, 조심 좀 할 것이지. 이 무슨 사달을. 그놈들은 따로 징계해야겠으니 도망가지 못하게 해두거라.

    상대방의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된 라후지는 그래 봐야 마족은 마족이라는 생각으로 모르쇠를 일관했다.

    오히려 진혈을 가진 각성 전의 마족 아이란 말에 눈을 빛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진혈이라….’

    ***

    상황 파악을 끝낸 라후지는 곁에 선 중괴와 준혁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중한 부탁에 중괴가 코웃음으로 화답했다.

    “지금 저치들과 싸우라고? 내가 왜? 아무 관련도 없는데 동급수사와 척을 지라니 어이가 없네그려.”

    “아무 관련이 없다니 섭섭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저토록 많은 전력을 끌고 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대화성을 지도에서 지우려고 하는 것 같은데. 혼자 빠져나간다고 하면 보내줄 것 같습니까?”

    “누가 혼자야?”

    중괴는 라후지의 반문에 슬쩍 시선을 돌려 준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준혁은 중괴의 말에 동조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대화성을 눈에 담았다.

    “저는 돕도록 하겠습니다.”

    “뭐? 왜?”

    “최 선사!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다른 반응에 다시 전면으로 시선을 돌린 준혁이 말했다.

    “여기서 어르신과 함께 빠져나가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저곳의 수사들뿐 아니라 범인들은 화를 피하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놈 사람이라도 된다더냐? 네놈이 무슨 성인(聖人)이라도 된단 말이냐?”

    “성인이라…. 그저 도리 아니겠습니까? 저들을 구제할 의무는 없지만, 눈앞에 참사가 일어날 걸 알면서도 못 본 척할 순 없는 법이지요.”

    수도계가 종족을 초월한다고는 하지만, 인족 범인으로 시간을 보냈던 준혁은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준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중괴가 짜증 섞인 얼굴로 콧바람을 내쉬었다.

    준혁은 그런 그에게 따뜻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르신도 한 손 거들어 주시지요. 아무렴 여기 계신 성주께서 이번 사태에 대해 그저 고마움으로 끝내시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성주?”

    지금껏 지위보다는 ‘라 선사’라 부르던 준혁이 성주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하자, 라후지는 그 뜻의 의미를 파악하고 세차게 고객 끄덕였다.

    “그럼요!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저들을 물리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그에 걸맞은 보답을 드리, 아! 이건 어떠십니까? 마침 제가 귀한 정보를 얻었는데 두 분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뭔데?”

    코웃음을 치던 중괴가 관심을 표하는 듯 보이자, 라후지가 중대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 속삭였다.

    “36방 대라멸진의 제작 방법과 그것의 재료가 남겨진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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