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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98화 (298/408)
  • 298화. 대화성 경매 (3)

    “최 선사님을 뵈어요.”

    밖으로 나오자 유야라고 불리던 화신기 여수사가 대기 중이었다.

    그녀는 산들바람과 청호를 제외하고 소문으로 들었던 소천경 수사 두 명을 계속해 힐끔거렸다.

    준혁의 명으로 용천, 천무는 외형을 변형시켜 겉으로 보기엔 용각족 특유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상태.

    눈동자가 미약하게 노란색인 걸 제외하곤 완벽한 인족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산들바람과 청호가 영수족 특유의 귀와 털을 가지고 있어 눈길이 갔다.

    “성주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더군. 경매장에 갈 테니 안내하게.”

    움찔-

    준혁의 말에 가시가 있음을 깨달은 유야는 식은땀을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여수사의 안내를 받으며 성내를 구경하며 걷길 한 시간가량. 다른 건물들을 압도할 만한 웅장한 건축물 앞에 도착한 준혁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와 내부 전부 공간 진법과 보호 결계가 겹쳐져 있구나. 꽤나 고심한듯해 보이는군.’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충격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듯, 철옹성처럼 진법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에 사건 사고가 많았음을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

    준혁 일행이 경매장에 도착하자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경매 관리자가 나타났고, 곧이어 가장 상석으로 안내되었다.

    진선 이상급 수사가 직접 경매장에 출몰하는 일이 극히 적었으니 당연하기도 했거니와 성주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었다.

    게다가 준혁은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진선경 수사와 소천경 수사 넷.

    이들은 움직이는 작은 종문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관리자 입장에선 종문의 문주와 주요 인물들이 경매에 참관하기 위해 방문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헤에, 꼭 내가 낙찰받을 거야. 흰둥이 넌 캇닢 먹어봤어? 그게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청호와 용천, 천무에게 경험 많은 선배처럼 쫑알쫑알 지저귀는 산들바람을 뒤로한 채, 귀빈석에 도착한 준혁은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 내부의 조명이 어둡게 변했다.

    ‘내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군.’

    3층에 마련된 귀빈석에서 내려다보면 1층과 2층을 가득 메운 저급 수사들을 볼 수 있었다.

    특수 처리가 된 것인지 수많은 수사들의 웅성거림은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경매에 관한 설명과 안내만이 방음벽을 뚫고 안으로 전해졌다.

    “와, 바로 시작하나 봐! 재밌겠다!”

    “그리 좋으냐?”

    “응! 응! 이번엔 내가 해봐도 돼?”

    가격을 제시하고 낙찰받는 걸 해보고 싶다는 산들바람의 말에 준혁은 허락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경매라는 게 심리 싸움적인 요소가 있긴 했지만, 대화성주에게 받은 영석이 풍족했기에 걱정할 건 없었다.

    처음으로 세상을 구경하는 두 도마뱀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사이, 전면에 마련된 단상 위로 빛이 쏟아지며 그곳으로 아름다운 미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부인은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였는데, 화신기 수행의 끝자락에 닿아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슬쩍 곁눈질로 준혁이 머문 귀빈실을 살피다 박수를 소리 나게 쳤다.

    짝-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몇 가지 물품의 준비 과정에 시간이 걸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되었음을 용서 바랍니다. 태와상단을 책임지고 있는 교유란,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웅성웅성-

    여인은 허리를 크게 숙이며 인사를 한 후, 뒤편에 마련된 장막 뒤로 신호를 보냈다.

    “그럼 늦은 만큼 별도의 소개 없이 경매를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번 경매의 첫 물품은….”

    한두 번 경매를 진행해본 게 아닌지, 여인은 조금 전까지의 죄송하다는 표정을 날려버린 채, 앙큼한 표정으로 시간을 끌다가 적당한 순간에 입을 열었다.

    “술법의 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진영시(眞影示)입니다!”

    “진영시! 설마 오백 년 전 실종된 유유진인의 법기 중 하나 말이오?!”

    1층 앞줄에 앉아있던 수사 하나가 놀란 듯 소리치자, 여인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진영시의 경매를 진행합니다! 시작가는 영석 1,000개입니다!”

    가격을 알리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호가를 외쳤다.

    “1,500!”

    “1,600개!”

    “1,700으로 받겠소!”

    무섭게 치솟는 가격을 보며 준혁은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진영시라, 겨우 기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법기치고는 가격이 과하구나.”

    진영시는 공법을 운용할 때 외부로 흘러나오는 영기의 흐름을 읽는 법기였다.

    작은 유리알처럼 생긴 물건으로 만약 준혁이 소천경 이하 수사였다면 침을 질질 흘릴 만한 물건인 건 맞았다.

    하지만 진선급 의지로 세상을 관철할 수 있게 된 그에게 그다지 쓸모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격에 놀라는 중이었다.

    영성석 수천 개라고 하면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하계의 영석과 비교해 본다면 수십만 개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으니 과하다면 과한 가격이었다.

    ‘전함이나 용천무의 날개를 올리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긴 하군.’

    뜬금없는 생각을 하던 준혁은 다시 경매에 집중했다.

    “삼천구백 개! 더 없으십니까? 더 이상 없으시면 진영시는 삼천구백 개에 낙찰됩니다! 하나! 둘! 셋! 수사 축하드립니다. 그럼 두 번째 경매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물품은….”

    여인은 낙찰자가 나오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자에게 물건을 넘기고는 두 번째 물건을 집어 들었다.

    ***

    “역시 평범한 것들이군.”

    “그런가요? 제 눈엔 하나같이 다 대단해 보입니다.”

    준혁이 경매 물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용천, 천무 두 영수는 물건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3,800!!”

    “4,000!!”

    “4,100개!”

    연달아 이어지는 호가도 신기한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쪽으로 고개가 홱 홱 돌아갔다.

    “지금은 겨우 내부 안정화가 끝났다지만, 영역을 완벽하게 다루고 의지를 세상에 표출할 수만 있다면, 저런 신외지물 따윈 하찮게 여겨질 것이다.”

    물론 천영보나 영보급 이상의 법기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런 물건들은 평생 가도 구경하지 못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그때, 11번째 경매 물품이 낙찰되자, 흥분 가득한 산들바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내 꺼다!”

    12번째 경매 물품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이번 물품은 영수족 수사분들께서 좋아하시는 캇닢입니다. 대황대륙에서만 자라는 진미화와 개벽화를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 최상급 물건으로서 대황대륙의 요미족에서 직접 공수한 물건입니다. 총 다섯 상자니, 경매 최종 호가의 다섯 배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시작가는 영석 500개입니다!”

    인족들은 선주를 즐기고, 영수족은 캇닢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최고 물건은 요미족이 만든 것이었으니, 보증만 된다면 그 향과 맛은 의심할 필요 없었다.

    또한 심신을 안정시켜주어 수련에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수행에 맞는 단약만큼은 아니었지만.

    “700!”

    “800개!!”

    “1,000!”

    경매 시작과 동시에 가격이 치솟았다.

    “1,300개!”

    “1,400!!”

    “1,450개!”

    지금까지 나온 다른 물건들에 비해 다소 가격이 낮아 보였지만, 최종 호가의 다섯 배를 지급해야 하니, 방심하다가는 엄청난 금액을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기다렸단 듯 산들바람이 호기롭게 외쳤다.

    “삼천 개!!”

    그리고 더 이상의 호가는 없었다.

    “나 잘했지?”

    낙찰을 알리는 소리에 산들바람이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자, 준혁도 마주 웃어주었다.

    손은 공간 팔찌를 스치고 있었다.

    ‘그래, 행복하면 됐다.’

    물건의 가치에 비해 조금 높은 호가인 듯했지만, 준혁에겐 티도 나지 않을 수준이었다.

    ***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두 물품밖에 남지 않았으니 모두 집중을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수사는 주위를 환기시키더니 손을 살짝 저었다.

    그러자 단상 끝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상자가 저절로 열리며, 그 안에서 은색 광채를 지닌 수박만 한 돌덩이가 끌려왔다.

    “와! 저렇게 큰 건 처음이군!”

    “저 정도면 최상급이란 말도 부족하겠어!”

    수사들은 단번에 물건을 알아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자! 단번에 알아보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 바로 이번 물건을 소개하겠습니다. 수사라면 공간팔찌를 사용하지 않는 이가 없겠지요? 이번 물건은 공간 팔찌를 만드는 재료 중 내부의 넓이와 무게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공간석! 그중에서도 최상급 공간석입니다!”

    여인의 손에 안착한 공간석에서 눈부신 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공간석 중에서도 최상급, 초월 공간석이라 불리는 열다섯 번째 경매 물품! 시작가는 영석 3,000개입니다!”

    잠시 후, 수사들은 앞다투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만개를 넘겨버렸다.

    “만천!”

    “만이천!!”

    “만삼천!!”

    그도 그럴 것이, 공간팔찌는 모든 수사가 애용하는 물품. 그중 최상급 공간팔찌는 극소수의 고위 수사만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최상급 공간팔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는 여럿이었지만, 재료 자체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것.

    그랬기에 어떤 경매에서든 공간석은 인기 물품 중 하나였다.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이라 불리는 초월 공간석은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정도로 보기 드문 것이었기에 모두가 욕심내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공간팔찌 하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공간석의 양은 겨우 손톱 하나 정도의 크기.

    낙찰만 받아낸다면 경매가를 뽑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다들 여기고 있었다.

    “주인님, 저 물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나요?”

    잠시 후 계속되는 호가에 준혁이 무미건조하게 가만히 있자, 청호가 말을 걸었다.

    “물론이다. 꼭 가져가야지.”

    “그런데 왜?”

    왜?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지를 묻고 있었다.

    “어설프게 가격을 올려봐야 귀찮은 날파리들이 따라붙기 때문이지.”

    준혁은 씨익 웃더니 청호의 질문에 답했다.

    조금 전 산들바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호가 의지를 단번에 무너트리기 위해 적당한 가격에 이르기까지 기다리는 중이라 설명을 곁들이자, 그제야 청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 있던 용천, 용천무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감탄을 뱉었다.

    “우와 그럼 누님은 그걸 다 계산한 거예요?”

    준혁의 말을 곰곰이 되짚던 청호가 산들바람에게 엄지척하며 말을 걸었다.

    “어? 어, 그, 그렇지. 내가 다 생각이 있었지!”

    산들바람은 생각 없이 대화를 듣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답했다.

    ‘계산하긴. 그냥 생각 없이 지른 거겠지.’

    그 모습에 준혁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공간석의 가격이 5만 개를 넘어가며 주춤해 보이자, 목소리에 영력을 실어 낮게 읊조렸다.

    “십만.”

    ***

    대화성이 점처럼 작게 보이는 상공 위.

    30미터쯤 되는 선박 세 대가 미칠듯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세 선박 중 가장 선두에 위치한 선박 갑판 위.

    보랏빛 피부가 유난히 위험한 느낌을 풍기는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곳이더냐? 감히 그 아이를 잡아간 놈들이 있는 곳이?”

    사내의 목소리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마족 사냥꾼이라 불리는 인족 세 놈이라 알고 있습니다.

    으드득-

    “마족 사냥꾼? 건방진 놈들. 단 하나도 살려주지 않겠다. 요트람에게 전하거라. 약속대로 피의 약속을 이행해 준다면 내 왼쪽 심장의 일부를 떼어준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요라제 선사껜 뭐라고 전해야 합니까?

    “그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미 약속한 바가 있으니.”

    잠시 후, 허공중에 녹아있던 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사내가 눈에 살기를 띠며 점점 가까워지는 대화성을 노려보았다.

    으드득-

    “단 하나도 살려주지 않겠다. 우리 요마족을 건드린 걸 후회하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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