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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97화 (297/408)

297화. 대화성 경매 (2)

한동안 낄낄대며 웃던 중괴는 석두를 처리한 방법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를 의심 섞인 눈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준혁이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자, 결국엔 혼자 결론을 낸 듯 음흉한 미소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중에 진정한 선도를 이루면…. 그땐 볼만하겠어.”

중괴가 기대감 가득 찬 눈빛을 한 채 사라지자 준혁은 건물에 통째로 결계를 부여하고는 빗장을 걸어 잠갔다.

잠시 후, 본격적인 수행 안정화에 들어서기에 앞서 차분히 마음을 다스렸다.

중괴의 태도 변화 역시 준혁에겐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였다.

‘스스로 결론 내린 것 같던데, 흠. 의심이 기대로 변한다라….’

식아 때문에 마선 한정으로 압도적인 결과를 끌어낸 것이라 혼자 착각하더니, 그 후엔 질문 대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더 빨리 성장하라는 듯이.

‘나에게 뭘 기대하는지는 몰라도, 부디 도리에 어긋나지는 않기를.’

처음부터 과한 호기심과 배려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중괴를 대했던 준혁.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진심이 느껴져 조금씩 경계를 지워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소화여를 위해 수십 년간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 그 마음이 더 진해졌다.

그랬기에 중괴의 진심이 칼이 되어 돌아오질 않길 바랐다.

***

“어르신도 그렇고, 석두 역시 내 수행을 알아보지 못했다. 무엇이 변한 거지?”

중괴가 떠나고 난 뒤, 마음을 다스리던 도중.

준혁은 몇 가지 의문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중 하나가, 수행이 드러나던 것이 지금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천혈족의 후인이었던 독고제를 제외하곤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수행을 중괴는 첫 만남에 파악했었다.

게다가 석두와의 대결 중 그가 한 말을 상기해보면 마선경 역시 준혁의 수행을 단번에 파악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지금껏 그 이유가 마선기 때문이라 여겼기에 준혁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 난 뒤 중괴 역시 다른 이들처럼 준혁의 수행을 파악하지 못했고, 수행 상승 중 잠시간 연결된 마선경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무엇일까?’

거인족의 힘을 받아들인 후 그 힘이 마선기를 배척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거란 생각에 준혁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렇게 며칠간 궁리를 거듭하던 준혁은 삼지행을 이용해 만든 삼대지력을 세심하게 살펴보다가 성광지력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거였구나!”

성광지력의 고유 능력인 치유 능력이 자신이 가진 식아의 힘을 미묘하게 변하게 했고,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는 마선기의 고유함을 훼손시켰다는 것을.

성광지력은 외부의 마선기에 한에선 압도적인 상성을 자랑했는데, 내부의 마선기와는 융합을 통해 의도치 않은 변화를 끌어낸 것이었다.

“특이하군, 이것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어.”

만약 성광지력과 마선기를 완벽하게 융합시켜 새로운 힘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왠지 또 다른 비장의 수가 될 것 같음에 준혁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잠시 후, 몇 가지 상념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준혁은 다시금 영수들을 꺼냈다.

“어? 여긴 어디야?”

“주인님!”

“...수련을 시작하는 것입니까?”

넷은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며 나타났다.

본격적인 수행 안정화를 위한 수련을 시작한다는 말에 도마뱀 두 마리를 제외한 두 영수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준비하거라. 이제부터 의지를 단련하는 법과 다루는 방식에 관해 설명해 주겠다.”

준혁은 용각족 혈맥의 힘을 방출하며 수련 준비를 마쳤다. 그리곤 영수들의 사신결을 하나씩 점검해주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현무를 제외한 사신 분신을 소환해 각각 영수들을 보조하게 했다.

같은 기운과 공법을 익힌 사신들로 하여금 영수를 돕게 함과 동시에 영역 분신을 미세하게 조종하며 본인의 수행도 다지기 위함이었다.

“분신들이 운용하는 사신결을 느끼고, 공명시켜.”

“잠깐 바람 좀 쐬면 안 돼? 나 이곳이 너무 궁금해.”

“안 된다. 그만 칭얼대고 집중해. 삼경의 초입인 소천경부터는 의지를 단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 만약 의지가 바로 서지 못하면 영역이 무너지고….”

칭얼대는 산들바람을 단호하게 나무란 준혁은 의지를 곧추세우는 방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니 대기 중에 있는 영기뿐 아니라 세상에 만연한 모든 기운을 자신의 의지로….”

소천경에 다루는 영역은 수행이 오르며 자연스럽게 깨닫기도 하지만, 준혁의 영수들은 몇 단계의 수행을 건너뛰었기에 공부가 필요했다.

특히 솜이 물을 먹듯 지식을 바로바로 습득하는 용천, 천무와 달리 산들바람과 청호는 툭하면 딴청 부리기 일쑤였기에 매운 채찍질이 필요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모범생 같은 두 도마뱀과 달리, 청호와 산들바람은 좀이 쑤시는지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나마 청호는 주인의 눈치를 보며 애써 참는 기색이었지만, 산들바람은 입술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온 채로 온종일 투덜거렸다.

결국 준혁은 공부를 멈추고 대안을 제시했다.

“삼 년. 삼 년 안에 수행을 안정시킨다면 밖을 마음껏 다닐 수 있게 해주마.”

“어디든? 내 맘대로?”

“...그래.”

“수련! 수련할래!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당근을 삼킨 산들바람이 수련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청호도 동화되기 시작했고 네 마리 영수의 학구열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혁이 머문 건물은 세상에서 지워진 듯 조용해졌다.

딱 2년 동안만.

***

“야호! 가자 흰둥아!”

“네! 누님!”

수행 안정화를 시작한 지 겨우 2년.

산들바람은 목표가 생기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준혁이 인정할 만한 수준까지 수행을 안정시켰다.

본인도 그걸 깨달았는지 준혁에게 당당하게 외출을 요구했고, 뒤이어 정상으로 돌아온 청호를 데리고 밖으로 튀어 나가려 했다.

준혁은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둘을 풀어주었고, 대신 삼청조를 하나씩 품게 해 혹시 모를 위험을 준비했다.

“......이걸 가져가거라.”

영역분신을 다룰 수 있게 된 후부터 삼청조의 능력이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으로 바뀌었기에, 만일에 대비할 수 있었다.

거기다 대화성주의 직인이 찍힌 신분패와 영석도 한 꾸러미 안겨주었다.

“야! 막둥이 둘. 너흰 안 나가?”

“저흰 주인님 곁에서 조금 더 배움을 이어가겠습니다.”

“어휴 재미없어. 후회하지 마. 우린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올 테니까.”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려던 산들바람은 무슨 생각인지 용천과 천무까지 은근히 꼬셨다.

“범인들이 기력을 얻기 위해 섭취한다는 그것 말입니까?”

“그래! 당과, 꼬치, 수육, 피자, 햄버거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정말 안 가?”

“흠…. 궁금하긴 하나 아직 공부가 부족하니 다음에 함께하겠습니다.”

“흥! 재미없어. 그럼 우린 간다!”

하계와 달리 이곳엔 피자나 햄버거가 없다고 말해주려던 준혁은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음식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말을 꺼내진 않았다.

잠시 후, 우당탕 소리를 내며 두 영수가 밖으로 나가자, 전음부를 만들어낸 준혁은 그 안에 소리를 담은 후, 여러 곳에 날려 보냈다.

‘사고 칠지도 모르니, 미리 알려놔서 나쁠 건 없겠지.’

사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둘에게 삼청조를 넘겨주긴 했지만, 진짜 걱정은 둘이 자신들의 능력을 망각하고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둘은 원영기나 완영기 따위와는 수준이 다른 수행을 지녔으나 이를 고난과 역경을 겪고 얻어낸 것이 아니었기에, 쉽게 휘두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편에 가지고 있었다.

마치 물가에 아이들을 내놓은 것처럼.

***

산들바람과 청호가 하루가 멀다 하고 건물을 오고 가는 사이, 준혁은 새로운 화두에 몰두해 있었다.

산들바람과 청호의 안정화를 시험하던 도중, 두 영수가 만든 영역이 서로 반응하며 이상 증폭 현상을 일으켰다.

준혁은 그것의 이유와 원인을 분석하는 중이었다.

‘분명 주작의 화기와 백호의 바람이 만나 기운이 증폭했다.’

원래대로라면 영역이 만나 서로의 기운을 상쇄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두 영수가 만든 영역은 서로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 원인이 자신을 중심으로 종속의 인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임을 깨달은 준혁은 그 현상을 자신에게 적용하려 노력했다.

‘삼지행을 치환해 삼대지력을 사용하면서 두 기운을 융합해볼 생각을 못 해보다니.’

당연히 삼지행 자체가 삼대지력이 하나 된 힘이었기에 준혁으로서는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이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두 영수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은 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양손에 삼지행을 따로 모았다.

그리고는 한 손엔 월광지력으로, 나머지 한 손에는 태양지력으로 힘을 치환시켰다.

‘처음엔 작게.’

잠시 후, 준혁이 양손을 합장하듯 겹치자 월광지력과 태양지력이 서로를 밀어내듯 반발하다가 삼지행으로 합쳐져 버렸다.

‘흠 역시 예상대로 돼버리는구나.’

의도와 달리 두 힘의 상반된 기운은 원래의 하나 된 힘으로 돌아가 버렸다.

‘혹시?’

이것저것 고민을 거듭하던 준혁은 수백 번 교차 실험을 하다가 두 기운에 혈맥의 힘을 살짝 실어보았다.

콰아앙!!

그러자 작은 융합 작용이었음에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주, 주인님!”

그 모습에 두 도마뱀이 수련 중 화들짝 놀라자, 준혁은 폭발력이 퍼지기 전에 재흡수하며 손안에 모았다.

“걱정 말거라, 잠깐 실험 중이었으니.”

두 영수를 진정시킨 준혁은 의외로 강렬한 폭발력에 만족의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세밀하게 기운을 조절하는 게 관건이겠군, 폭발의 규모 자체는 만족스럽지만, 이건 아군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아군뿐만 아니라 준혁 본인도 폭발력이 커진다면 피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즉, 두 영수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낸 미완성의 기술은 자폭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폭 기술임에도 준혁이 만족하고 있는 이유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이었다.

“두 녀석이 돌아오면 상이라도 줘야겠어.”

그때 준혁의 혼잣말을 엿듣기라도 했다는 듯, 산들바람이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콰당!

“큰둥아!! 나 여기!!”

“......”

“나 여기 가고 싶어!”

갑자기 나타난 산들바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었는데, 한 손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옥간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말한 ‘여기’가 옥간에 적힌 장소임을 파악한 준혁은 그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대화성 경매장?”

옥간엔 15년 주기로 열리는 경매장에 관한 내용이 나열돼 있었다.

이상한 점은 비밀이 유지되어야 할 경매 물품이 순서대로 전부 적혀있단 것이었다.

“응! 나 가고 싶어! 가도 돼?”

“그전에 이건 어디서 난 거야?”

“부하 1호가 몰래 구해다 줬어!”

부하라는 말에 준혁은 이상한 불길함을 느꼈다.

“부하라니? 누구?”

“걔 있잖아, 가끔 이것저것 가져다주는 그 여수사.”

산들바람이 말한 여수사는 준혁에게 교환회에 관해 설명했던 여인이었다. 준혁의 편의를 위해 대화성 성주의 명령으로 곁에 머물던 여인.

문제는 화신기 수사인 여인이 대화성에서 주최하는 대규모 경매장에 대한 정보를 유출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쯧, 또 성주에게 빚을 진 건가?’

상황을 분석해본 준혁은 산들바람의 요구에 여인이 움직였고, 성주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중괴의 예상과 달리 성주는 준혁의 능력을 확인한 뒤로, 더욱더 정성을 다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준혁은 도리를 모르는 몰염치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받은 게 많아질수록 부담이 가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도 돼? 응?”

생각을 이어가려는 찰나, 산들바람이 목소릴 높이자 준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래, 같이 가자.”

준혁이 부담을 느낀 가장 큰 이유.

그건 예전에 스쳐 가듯 말했던 물건 중 하나가 경매물품란에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구해준다면 준혁이 부담스러워할 걸 알고, 선회하여 물건을 건네려는 게 너무 보였기 때문이었다.

‘초월 공간석을 이렇게 빨리 구하다니.’

산들바람의 머리를 쓰다듬던 준혁의 시선은 어느새 문신이 사라진 자신의 손목을 향해있었다.

‘과연…. 공천귀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

옥간 속 경매물품란.

[경매 물품 번호 15번, 초월 공간석]

그리고 그전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경매 물품 번호 12번, 최상품 캇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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