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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96화 (296/408)
  • 296화. 대화성 경매 (1)

    세와(世蛙)와 아노문(牙弩雯).

    석두처럼 마선은 아니었지만, 스승인 석두를 모시는 자들 중 가장 수행이 높았던 두 명.

    그런 두 수사는 특수한 임무를 위해 스승과 함께 흑석대륙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호란대륙을 가로지르는 와중, 스승인 석두에게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고, 급하게 새 임무를 위해 대화성에 방문해야 했다.

    스승에게 듣기로 새로운 임무란 건 수행이 낮은 인족 하나를 잡아가는 것.

    그 이유를 설명 듣진 못했지만 매우 간단한 임무임에도, 스승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보통 스승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땐 궁주인 천신라가 직접 관여된 일일 때가 많았기에 두 사람은 그때부터 침묵으로 스승을 따르기만 했다.

    하지만 세상사 별의별 일이 다 있다고 했던가?

    수행이 낮다던 인족은 진선급 강자였고, 스승과 이상한 공간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나마 스승이 검은 장막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외부 인사들을 경계하며 대기하라 명령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껏 경계를 올리며 전방에 대기 중인 중괴라 불리는 마선과 대화성의 성주, 그리고 그 뒤에 나열해 있는 수많은 수사들을 견제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검은 장막이 출렁거리며 미칠듯한 속도로 확장하는 동안, 아무런 대비 없이 그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말았다.

    스승인 석두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에, 애초에 그쪽으론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스승님?!”

    갑작스레 사신정의 공간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강력한 압박감에 인상을 쓰다 곧바로 영역을 발동했다.

    당황했다고는 하나, 그들도 대천경 수사.

    의지가 움직인 순간 주변의 기운을 상쇄해버렸다.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흐릿한 내부를 기감으로 살피려는 순간.

    “갈라져라!”

    어디선가 외마디가 들려오더니. 붉은 광선이 주변을 갈랐다.

    스걱-

    툭 떼구르르-

    두 사람의 시야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주변에서 금빛 실이 거미줄처럼 모여들더니 바닥을 구르는 얼굴과 경직된 채 서 있는 몸, 그리고 그 안의 원영까지 구속하기 시작했다.

    누에가 고치를 만들 듯 금빛 타래가 두 사람을 칭칭 휘감았다.

    ***

    검은 장막에 감싸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일정 공간.

    수백여 미터를 감싸고 있던 검은 장막은 폭발하듯 부피를 키우더니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대천경 수사 두 명을 집어삼켰다.

    “저, 저기, 장막이 확장됩니다!”

    그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던 택요가 모두에게 들으란 듯 목소릴 높였다.

    하지만 중괴를 비롯한 전원이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저 변화하는 상황을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야?”

    여태껏 초조한 마음을 품은 채 사태를 관망하던 중괴는 대천경 수사 두 명이 사신정의 공간 안에 들어가자 안절부절못했다.

    진선 한 명도 버거울 거라 여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도움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거기에 두 명의 수사가 더해지자 초조함이 극에 달한 것이다.

    “안 되겠다. 끼어들어야겠어.”

    결국 중괴는 준혁의 요청이 없었지만, 전투에 합류하기 위해 기세를 끌어올렸다.

    사신정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우선 강제로라도 내부를 파악한 후 비집고 들어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영력을 움직이기도 전.

    파앙-

    “저, 저기 보십시오!”

    검은 장막 한쪽이 찢겨나가며 붉은빛이 살짝 흩날렸다.

    그것이 전투로 인한 현상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초집중하는 사이, 중괴는 또 한 번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건 분명 그때 그…. 천신라의 힘과 비슷한 그것 아닌가.’

    남들은 그저 압력과 영력으로 인해 공간이 비틀렸다고 여긴 듯했지만, 중괴는 예전에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잠시 후, 중괴가 의문을 정리하기도 전, 검은 장막이 수축하더니 급기야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준혁만이 홀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유유히 땅으로 내려섰다.

    ***

    모두의 시선엔 경악과 존경, 그리고 경계가 담겨 준혁을 향하고 있었다.

    그중 대화성주 라후지가 가장 심했는데, 지금 그의 눈동자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서, 선사. 석두…. 그자는 어찌 된 겁니까?”

    “급해 보이길래 돌려보냈습니다.”

    “돌려보내다니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 저 위로 말입니다.”

    준혁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그제야 그것이 귀천을 뜻함을 깨달은 좌중은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나머지 두 놈도 말이냐?”

    그때 침묵을 깨고 중괴가 질문을 던지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왔으니 함께 가는 게 도리지요.”

    준혁의 너스레에 중괴마저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주변 분위기가 자기 생각과 달리 너무 무거워지는 듯 보이자, 준혁은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마주치고는 주위를 환기시켰다.

    “라 선사. 그럼 불청객도 돌아갔는데 아까 하던 얘길 마저 하시지요.”

    “예? 무슨?”

    “왜 넋 놓고 계십니까? 아까 교환회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있지 않았습니까?”

    “아!”

    준혁이 주제를 언급하자, 그제야 대화성주는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여인 한 명을 가까이 불렀다.

    “유야. 네가 아까 언급한 것을 여기 최 선사께 말씀드리거라.”

    잠시 후, 무리 지어 있던 수사 중 화신기 수행을 가진 여인이 준혁 앞에 다가와 극상의 예를 갖추며 말을 이었다.

    “최 선사께 아뢰옵니다. 저희 대화성에선 100년에 한 번씩 선사분들을 위한 교환회가 열리옵니다. 교환회라는 것이 다양하고 보기 드문 보물들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들 다음 교환회에 가지고 나올 물건이나 필요한 것들을 넌지시 알려주시기도 하는데, 마침 제가 들은 것이 있사옵니다.”

    말은 길었지만 결국 누군가 다음 교환회에 팔 물건을 미리 등록했다는 뜻.

    “들은 것을 알려주시지요.”

    “마, 마쓰, 말씀 편히 해주시어요. 송구하옵니다.”

    “그러지. 들은 바를 알려주게.”

    준혁이 피식 웃고는 하대하자, 그제야 여인이 숨 막히는 표정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저번 교환회에 방문하셨던 무명 수사가 선사께서 찾는 수준의 영수대를 언급하셨었습니다.”

    “무명? 그자는 대천경 수사가 아닌가? 수행에 상관없이 참여 가능한 것인가?”

    무명은 준혁이 전왕문주를 상대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적지주의 인연 중 한 명으로 주운대륙의 대천경 수사였다.

    선사들을 위한 교환회라고 하기에 준혁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질문했지만, 상대방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러자 라후지가 대신 대답했다.

    “선사분들만 초대한다면 그 규모가 너무 작아지지 않겠습니까? 해서 삼경에 이른 자들도 자격만 된다면 모두 참석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그들 수준에서도 제법 선사께 필요할 만한 것들을 구해오기도 하니 한번 참석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겝니다. 몇몇 마음에 드는 이들이 있으면 친분을 쌓기도 좋고요.”

    “아!”

    교환회라는 이름을 빌려, 삼경에 오른 수사는 삼선에 이른 선사와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물건으로 다른 보물을 얻는 모임.

    선사들도 드넓은 선계의 대륙들을 전부 다 들쑤시고 다닐 순 없었으니, 도움을 받을 삼경 수사를 알고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다.

    ‘일종의 거래를 목적으로 한 인맥 형성 사교 모임이었군.’

    다른 교환회는 모르겠지만, 라후지의 어투에서 단번에 이곳 교환회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다.

    준혁은 수긍했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래서 그게 언제입니까?”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오 년 후일 겝니다. 자세한 얘긴 들어가서 나누시지요.”

    ***

    라후지의 거듭된 요청에 준혁은 결국 대화성에 머물기로 했다.

    여서령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수들의 불안정한 상태를 바로잡기도 해야 했고, 더불어 준혁 본인도 상승한 수행을 완벽히 다지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준혁의 명을 묵묵히 따르는 청호, 용천, 천무와는 달리, 산들바람은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해 보였기에 보살핌이 필요해 보였다.

    평소처럼 떼쓰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으나, 어둠 속에 갇혀 지냈던 것에 대한 미묘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흑마지에서 대량의 암흑마기를 만들었던 일이 발단이 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영수들과 짧은 폐관 수련에 돌입하려던 계획은 중괴로 인해 미뤄지고 말았다.

    준혁이 머무는 호화로운 구층 목탑에 찾아온 중괴는 영역으로 주변을 완전히 봉쇄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찌 된 것이냐?”

    “무엇이 말입니까?”

    “네놈이 분명 대천경에 올랐다 하지 않았느냐. 어찌 분신을 넷이나 다루냐 이 말이다.”

    준혁은 적당한 핑계를 준비해 두었기에 별것 아니란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저도 정확한 연유는 모르나, 아마 분광소 때문인 듯합니다.”

    “분광소? 그게 무슨 상관이지?”

    “분광소의 분신 능력이 수행이 오르며 영역분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떤 원리인지는 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흐음….”

    ‘넷이 아니라 여덟이라 말하면 기절이라도 하겠군.’

    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음 짓자, 중괴가 못마땅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왜 웃느냐?”

    “아닙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라 선사를 비롯한 수사들의 태도가 이상하던데,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대화성주도 문제였지만, 그 휘하 저급 수사들은 마치 준혁을 사신 보듯 했다.

    특히 앞에 나서 교환회에 대한 얘길 꺼내던 여인은 숫제 말 한 번 실수하면 준혁에게 죽임을 당하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준혁이 사신정 안에서 석두를 상대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자, 중괴가 오히려 미친놈 보듯 준혁을 향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 내가 진짜…. 후우. 네놈이 한 일을 네놈만 모르다니.”

    “무슨?”

    중괴가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네놈은 진선이 어떤 존재라 생각하느냐?”

    “그거야….”

    “진선은 이 드넓은 선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강자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동급수사와 싸울 일도 많지 않고, 싸운다 하여도 서로의 목숨을 노릴 일도 별로 없다.”

    “그럼 제가 그자를 처리해서?”

    중괴는 준혁의 반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많지 않은 것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선 많은 분쟁과 죽음이 함께하는 것도 사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 하지만 생각해 보거라. 동급수사가 맞붙었을 때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

    “아!!”

    “내가 석두 그놈과 승부를 겨뤘다면 최소한 칠 주야는 넘겼을 것이고, 라후지는 그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결판이 났을 것이다.”

    진선에 이를 정도가 되면 의지와 정신력이 공법과 수행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러니 상대의 수행을 압도할 만한 반대 힘을 가지지 않는 이상 승부를 내는 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영력도 싸우며 실시간으로 회복하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준혁이 석두를 상대한 시간은 겨우 밥 한 그릇 할 시간도 되질 않았다.

    거기다 대천경 수사 두 명까지.

    “지금 라후지 그자는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누가 보아도 자신보다 약한 네놈에게 적당히 어려운 일을 도와달라 요청할 생각이었을 텐데, 잘못하면 썰려 나갈 수도 있으니깐 크흐흐.”

    진선에 막 올랐다고 여긴 준혁이 강자 중 한 명인 석두를 순삭해 버렸으니, 잠자리가 뒤숭숭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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