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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94화 (294/408)
  • 294화. 압살(壓殺) (3)

    -무슨 생각인 것이냐? 선마궁에서 찾아온 걸 보면 적마 때문일 듯한데, 아마 좋은 꼴을 보긴 힘들 것이다.

    예전 적마가 선마궁과 법문의 보물을 털었다는 걸 전해 들었기에 준혁은 중괴의 걱정에 피식 웃고 말았다.

    준혁의 생각에 적마도 중요했지만, 마선경이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게 그게 다는 아닐 거라 여겼다.

    -제가 그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크게 걱정할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건 네놈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선마궁 꼴통들은 천신라의 명이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는 놈들. 만약 네놈을 데려오라는 명이라도 받은 거라면 무슨 수를 쓰든 잡아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한 게 왜 없느냐? 남들 눈엔 네놈과 적마가 다르지 않다.

    준혁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중괴는 여전히 준혁도 마선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어느 마선이 거인족의 근원을 품고 있겠는가?

    걱정 가득한 중괴의 목소리에 준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어르신이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라? 흐음…. 그럼 내가 도와주면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바를 도와주겠느냐?

    거인족의 비경을 찾아가며 소비해버린 소원권. 중괴가 그때를 상기시키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선마궁의 천신라에게 당한 적이 있다는 게 거짓은 아닌지, 목소리에는 살짝 꺼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준혁은 바로 답하지 않고 시간을 두다가 여유롭게 말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굳이 뒷말을 들려주진 않았다.

    ***

    성주의 뒤를 따라 연회장을 나와 성문 밖으로 향하는데, 바로 뒤에 따라오던 중괴의 전음이 전해졌다.

    -석두에 대해선 나도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그놈이 몸을 바위처럼 만들면 어떤 술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조언 감사합니다.

    -끄응. 네놈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으니 더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놈이 진선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네놈처럼 가짜가 아니라 진짜니까.

    중괴는 전투가 일어나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잠시 후, 성문을 지나치자 2미터가량 되는 거구의 사내와 그 옆을 보조하고 있는 두 명의 수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거구의 사내는 보기만 해도 듬직하게 생겼는데, 석두라는 이름과 반짝이는 대머리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다른 두 명은 대천경 수사였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목적이 처음부터 자신을 향해있던 건 아니라고 준혁은 판단했다.

    왜냐하면 준혁을 데려가기 위해 온 것이라 하기엔 너무 과한 전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선들을 마주하게 되자, 성주가 석두에게 묵례하고는 한발 물러서 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에 준혁은 성큼 앞으로 걸으며 입을 열었다.

    “저를 찾아오셨다 들었습니다.”

    준혁의 당당한 태도가 의외였는지, 석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중력괴와 함께하고 있었군. 반갑다. 난 석두라고 한다.”

    “제 이름은 최준혁입니다.”

    통성명이 오가자 석두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준혁을 주시했다.

    “꽁무니를 감추고 숨어있던 것과 다르게 꽤 당당하군. 내가 왜 왔는지 아는가?”

    “잘 모르겠군요. 선마궁과 접점이 없는데 무슨 연유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접점이 없다라…. 입술에 침이라도 발라야 하지 않겠나?”

    상대는 준혁의 태도에 한쪽 입가를 끌어올렸다.

    마치 ‘애송이가 귀엽게 노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천귀는 어디 있나? 마선경은 분명 그대가 그자와 함께 있을 거라 했는데, 전혀 느껴지질 않는군.

    ‘역시 적마 때문이 아니었구나.’

    준혁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적마가 선마궁에서 훔친 것이라 해봐야 그들의 재산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

    하지만 공천귀는 선마궁의 주인인 천신라가 소유한 것뿐만 아니라 선마궁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보물들을 전부 관리하던 관리자.

    그동안 사라졌던 공천귀가 돌아왔으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다만, 준혁은 마선경이 진짜 공천귀를 느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만통방 사건 이후 공천귀는 존재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약해져 모습을 감춰버린 상태였다.

    그를 흡수한 준혁 본인이 그렇게 느껴질 정도인데, 권능의 일부로 연결되어있는 마선경이 공천귀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마선들과 다르게 분신으로 소환되지도 않을 정도인 그였으니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준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석두는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그댄 나와 함께 가야겠다. 자세한 건 가보면 알 테지. 그리고 중괴! 그댄 끼어들 생각 마라. 그분께서 저놈을 원하신다.”

    “빌어먹을! 내가 겁낼 줄 아느냐!”

    “네놈이 겁은 없지. 허나 용기도 없지 않은가.”

    으드득-

    중괴의 입에선 대답 대신 이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옆에선 대화성 성주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그의 뒤로 대화성 수사들이 모여들고 있었지만, 석두를 포함한 대천경 수사 두 명은 신경도 쓰질 않았다.

    마치 원할 땐 언제든 압도할 수 있다는 듯이.

    -괜히 반항하지 말고 따라오라. 그리고 그것이 그대에게 좋은 선택이기도 하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 어디에 좋은 게 있겠습니까?

    상대의 권유에 준혁이 코웃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조금 놀라야 했다.

    -마선경이 그댈 잡기 위해 모든 마선들을 통해 한 가지 소식을 퍼트렸다. 그게 무언지 아는가?

    -??

    -적마가 돌아왔단 소식이다. 이미 적마에게 피해를 본 수많은 종문들이 그댈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는 게 그댈 위한 것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다.

    피식-

    석두의 말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중괴의 말대로라면 적마가 방문하지 않은 곳이 오히려 손꼽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인즉 어느 대륙에 간다고 해도, 적마와 계약한 마선이라는 소문이 퍼진 순간 꽤 고되어질 거란 뜻이었다.

    ‘천휴림이나 선마궁처럼 거대세력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마선경이 소문을 퍼트린 이유가 자신을 잡기 위함이 아닌, 반항 없이 선마궁으로 데려가기 위함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식아를 품고 있는 준혁이 그런 선택을 할 순 없었다.

    식아의 점심거리들이 널린 곳이긴 하지만, 천신라를 비롯한 최강자들이 자신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으니까.

    식아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실험대 위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쉽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혼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준혁은 석두의 제안을 거부했다.

    석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덤덤하게 고갤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다들 쓴맛을 보고 나서야 고분고분해지지. 바로 저기 저 중괴처럼!”

    쾅!

    말을 끝맺음하기 직전.

    석두가 한발로 땅을 세차게 밟았다.

    그러자 미세한 진동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가더니 준혁이 자리한 곳까지 순식간에 당도했다.

    그 순간, 준혁은 자신의 몸이 돌이라도 되는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가는 걸 느꼈다.

    “이거 신호라도 주셔야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쩌저정-

    순식간에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가던 준혁의 몸에 서리가 끼더니, 얼음 동상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얼음 동상이 깨져나가며 준혁이 상공으로 치솟아 올라갔다.

    “제법이다. 냉기로 내 석화를 상쇄시키다니. 허나 이건 시작도 아니다!”

    ***

    대화 도중 갑작스러운 전투가 진행되자 대화성 성주는 수하들을 이끌고 바로 몸을 뺐다.

    그가 준혁에게 호의를 베푼 건 어디까지나 조만간 있을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선마궁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일보다 더 피해야 할 위험.

    만에 하나라도 선마궁의 행차를 막았단 얘기가 흘러나와선 안 되는 일이었다.

    “성문 밖에서 대기할 때부터 예상했거늘. 처음부터 최 선사를 잡아갈 목적이었습니다.”

    “당연하지. 저 빌어먹을 선마궁 놈들이 말로 할까 봐?”

    중괴는 석두의 말과 달리 끼어들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준혁의 호언장담 때문에 망설이는 중이었다. 걱정이 가시질 않아 준혁과 석두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애송아, 어찌하려는 것이냐.’

    그때 상공으로 치솟은 준혁을 향해 바위를 얹어 만든 괴물처럼 생긴 석두의 분신들이 치솟아 올라갔다.

    그 수가 정확히 넷.

    “저자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인가 봅니다.”

    “원래 그런 놈이야. 천신라의 충실한 꼭두각시 같은 놈이지.”

    중괴는 준혁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몰라 지금이라도 손을 뻗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다.

    다행이라면 대천경 수사 두 명이 끼어들지 않고 방관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중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저게…. 어찌.”

    석두가 만들어낸 네 명의 분신을 상대로 준혁도 네 명의 영역 분신을 만들어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호라. 최 선사께선 수행을 올린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리 능숙하게 분신을 다루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이 멍청아! 저놈은 대천경이란 말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의 중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편. 상대방이 바위 괴물 분신을 움직이자, 사신을 소환한 준혁은 곧장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다.

    그러자 손가락에 끼어있던 검은 반지가 허공으로 치솟으며 거대한 장막을 만들어 주변을 완벽하게 가려버렸다.

    네 명의 분신을 소환하는 모습은 진선으로 위장하고 있으니 보여줘도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앞으로 행할 일은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일.

    게다가 석두라는 마선이 지금도 마선경의 눈과 연결돼 있을 것이기에 그 시선을 차단하는 게 먼저였다.

    잠시 후, 일정 공간이 장막으로 완벽하게 차단되자. 석두가 처음으로 진중한 표정을 지우고 비웃음을 입에 걸었다.

    “이상한 곳에 힘을 낭비하는군. 이런다고 달라질 게 있나?”

    “달라질 건 없습니다. 다만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마치 나를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석두의 발언에 씨익 웃어 보인 준혁이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마침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어리석기는. 보여주지, 내 진정한 힘을!”

    준혁이 진선의 힘을 여실히 느끼지 못해 오만방자한 거라고 여긴 석두는 자신의 수행을 완전히 개방했다.

    파앙- 출렁-

    그러자 퍼져나간 영기파동과 기세로 준혁이 만든 사신정의 장막이 찢어질 듯 출렁거렸다.

    “한번 받아보라!”

    그리고는 석두가 허공을 강타하자, 준혁의 전면에 거대한 바위 주먹이 나타나 모든 걸 바스라 버릴 듯 쇄도했다.

    그 순간. 준혁의 전신에서 은푸른 기운이 빠르게 맴돌았다.

    은푸른 기운은 나타나기가 무섭게 뭉쳐 들더니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은은한 별빛으로 바뀌며 준혁에게 스며들었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들이 갈라지면서 오래전 준혁이 하계의 신비경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별빛 빛무리가 비추기 시작했다.

    ‘오호라. 성광지력을 극한으로 끌어들이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구나.’

    의도하지 않았던 별빛 빛무리에 준혁은 신비경에 마선들을 봉인한 인물 역시 성광지력을 극한으로 다룰 수 있는 자였음을 깨달았다.

    직후, 전신을 짓이기겠다는 듯 다가온 거대 바위 주먹을 향해 준혁이 손바닥을 들어 막아섰다.

    그 모습이 한없이 평온해 보여 전투에 임하는 자세인지 나들이를 온 것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샤르륵-

    “말도 안 돼…. 어찌.”

    준혁의 손바닥에 닿은 바위 주먹은 마치 녹아내리듯 그를 스쳐 지나갔고, 잠시 후엔 영력을 잃은 듯 흐물흐물하다 사라져 버렸다.

    “쓸 만하군요.”

    수행의 차이? 대천경과 진선경의 차이는 한 등급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진선경에 다룰 수 있는 오행신기와 진정한 영역을 깨달은 준혁에겐 그저 영기의 총량의 차이일 뿐이었다.

    질적인 차이가 있긴 없진 않았지만, 그건 상성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는 차이.

    자신을 찾아온 자가 마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준혁이 전혀 걱정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 순간 준혁의 몸이 별빛으로 반짝거리자, 그의 영역 분신들도 사신결을 이루는 주요 속성이 성광지력으로 치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피를 거듭하며 공방을 이어가던 준혁의 분신들이 석두의 바위 인형들을 압살하며 처리해 버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준혁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 진선의 힘 좀 구경해봐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준혁의 전신이 새하얀 성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작은 초신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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