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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90화 (290/408)
  • 290화. 대천경(大天境) (3)

    대기에 균열이 가기 직전.

    준혁의 환영에서 의지가 일어나자, 그것을 미리 파악한 대화성주 라후지와 중괴가 동시에 주변으로 영력을 퍼트렸다.

    “막아라!!”

    “바람이여!”

    두 사람의 입에서 언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져있던 수사들도 덩달아 각종 보호장치를 가동했다.

    스가가각-

    하지만 그들의 준비가 무색하게도 대기의 비틀림은 주변에 모여있던 수사들이 아닌 하늘 높은 곳 허공을 수직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잠시 후, 대기의 균열이 사라지며 위험이 해소되자, 대화성주 곁에 서 있던 택요가 아찔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성주, 방금 그것은!”

    “우릴 목표로 했던 게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흠, 짐작 가는 바가 있긴 하나 확신하지는 못하겠구나.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니.”

    그때, 언령으로 불러낸 보호막을 해제한 중괴가 대화에 껴들 듯 멀리서 한마디 보탰다.

    “아마 우리가 아닌 심마를 베어내려 했던 거겠지. 가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놈들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지.”

    “저 말이 사실입니까?”

    중괴의 말에 택요는 성주에게 시선을 돌렸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심마라는 건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쉽게 베어낼 수가 없으나 이런 식으로 외부로 힘을 표출하며 해소할 수 있긴 할 것이다. 다만….”

    “다만 무엇입니까?”

    “다만 이런 위력이라니, 실로 위험한 자가 선도에 들어선 것 같구나.”

    택요는 자신이 하늘처럼 모시는 성주가 두려움을 내비치자, 환영이 나타난 근원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시에 조금 전 공간 균열이 허공이 아닌 자신에게 쏟아졌다면 과연 막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불가능하겠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선에 오른 것으로 생각되는 수사에 관한 관심이 부풀어갔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중괴도 마찬가지였는데, 내용은 살짝 다른 것이었다.

    ‘분명 천신라의 능력과 비슷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느냐. 애송아.’

    ***

    거인족의 환영처럼 거대한 환영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준혁이 대천경에 오르며 세상과 동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수행이 오르자 내부의 기운이 체외로 퍼져나가며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감과 의지가 외부로 표출된 현상이었다.

    다만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수행을 강제로 올리게 된 준혁은 내면을 완전하게 다스리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악(惡)한 마음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심마로 변하려는 기미를 느꼈다.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감정과 고뇌의 산물이었기에 긴 시간 정신 수양을 통해 해소해야 했던 것을 하지 못해 생긴 문제였다.

    그걸 인지한 준혁은 방법을 모색했고, 살기를 외부로 강제 배출하면서 내면에 쌓인 것들을 푸는 것을 선택했다.

    그 순간, 준혁의 의지로 환영이 살기를 무작위로 쏟아냈고, 짧은 순간 가장 파괴적인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천혈의 공능을 사용했다.

    스가가각-

    “후우…. 이 정도면 되었나?”

    어느 정도 힘을 배출한 준혁은 다시 내면에 집중하며 변화한 자신을 관조했다.

    소화여라는 문제가 있었을뿐더러 수행을 상승시키기엔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결국 대천경에 올랐지만, 만족할 틈이 없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신의 수행 상승은 평범하지 않았다.

    우선 천혈을 흡수해버렸던 원영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원영의 등 뒤에 문신처럼 새겨졌던 각종 혈맥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대신 원영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혈맥을 담은 보관함처럼 변했다.

    당연하게도 몇몇 마디를 제외하곤 텅 빈 것처럼 공허함이 느껴졌는데, 마치 그 안에 부족한 혈맥의 힘을 전부 담아주라는 듯, 원영에게서 강렬한 의지가 전달되었다.

    다음으로는 식아의 변화였다.

    식검의 형태로 존재하던 식아가 단(丹)안에 원영의 형태로 나타나더니 그동안 흡수했던 마선 법기들을 전부 물어뜯으려 시도했다.

    적지주를 만났을 때 보였던 반응과 똑같았는데, 이번에도 그때처럼 마선들을 씹어먹으려다 실패한 후 꽁한 아기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땐 마선들을 씹어먹지 못하고 포기했다면, 이번엔 씹지 못한 것들을 그대로 입속에 담아 꿀꺽 삼켜버렸다는 것이었다.

    완전 흡수를 포기하고 수사가 법기를 체화시키듯이, 식아도 마선들을 천천히 소화시키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준혁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문제.

    그건 바로 영역 분신에 관한 것이었다.

    위선경에 오르며 네 명의 분신을 사용할 때부터 혹시나 대천경에 이르면 그 두 배인 여덟 명을 부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었는데, 결론은 자신의 예상대로 들어맞아 버렸다.

    “여덟이라니…. 규선에게 올라야 부릴 수 있는 숫자를….”

    그것은 실로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또한 엄청난 무리를 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혹감과 무리는 사실 영역 분신의 존재 자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흐음. 다들 이런 식으로 나타나다니….”

    어느새 준혁의 곁엔 사신 분신을 제외한 네 명의 분신이 나타나 있었는데, 그 모습이 다채롭다 못해 신비할 지경이었다.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자는 붉은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른 붉은 눈썹의 사내였는데, 무표정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건들건들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자였다.

    “적마….”

    그 옆엔 키가 작은 성인 정도 되는 꼭두각시 인형이 서 있었고, 그 모습도 준혁에겐 익숙한 모습.

    “인지경, 아니 인지괴.”

    인지괴 옆엔 생기가 넘치게 생긴 늙은 호박만 한 크기의 분홍새 삼청조.

    그리고 그 옆엔 인세에 보기 드문 미남이 팔짱을 낀 채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분광소까지.”

    오래전 식검이 흡수했던 마선들을 영역분신의 형태로 부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분신이 생성된 순서는 준혁이 식검으로 흡수한 순서이기도 했다.

    다만 원래 순서대로 하자면 삼청조 대신 공천귀가 자리해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는 존재감 자체는 느껴졌지만,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것처럼 닿지 않았다.

    ***

    여덟 분신을 생성할 수 있게 된 준혁은 그들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파악하다가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의식의 존재 여부.

    사신 분신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였는데, 마선 분신들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준혁이 직접 조종해야만 했다.

    능력은 온전하게 펼칠 수 있었지만, 움직이는 힘이 커질수록 조종하는 데 부담이 갈 정도였다.

    그리고 여덟 분신 모두 준혁과 같은 최고 수행까지 사용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하는 순간 순식간에 영력 고갈이 올 것 같다는 판단에 시도할 수조차 없단 것이었다.

    그 후로 준혁은 분신들에 대해 파악하다가 이 같은 일이 왜 일어난 건지 조금은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게 그때 우연히 얻은 오행신기 때문이라니.”

    준혁이 무영기를 이용해 하늘을 속이고 수행을 감췄던 것과 반대로, 오행신기는 하늘을 속여 준혁의 수행을 몇 단계나 높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수행이 몇 단계 높아진 건 아니었지만, 수행과 상관없이 몇몇 자격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이것이 복일지 화일지 모르겠구나.”

    모든 파악을 끝낸 준혁은 영역 분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만약 수행이 한 번 더 올라 진선에 오르게 된 후, 영역분신을 16명 부릴 수 있다 해도 실제로 준혁이 사용할 수 있는 건 결국 그때 수행에 맞는 영력의 한계 정도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분신이 늘어나면서 의지력이 분산되기에 하나하나를 조종하는 데 심력이 과하게 고갈되는 게 느껴져 부담만 가중되었다.

    “흠…. 방안을 마련해야지. 아! 드디어 눈을 뜨셨습니다. 소저 몸은 어떤 것 같습니까?”

    대천경에 이른 자신을 샅샅이 파악하던 준혁은 가까이서 기척이 느껴지자 바로 상념을 지우고 시선을 돌렸다.

    준혁의 시선이 향한 곳엔 소화여가 수줍게 자신의 알몸을 가리고 있었다.

    소화여는 자신의 회복상태를 신경 쓰기보다 헐벗고 있는 모습에 더 놀란 듯 말을 더듬었다.

    “이, 이게 어찌 된 건가요? 제, 제가 왜?”

    “아! 의복 말입니까? 치료 과정 중에 발산된 태양지력으로 전부 타버렸습니다.”

    그전까진 소화여가 영역으로 스스로를 보호했기에 세상을 태워버릴 화기 속에서도 옷만큼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했지만, 준혁은 그걸 신경 써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랬기에 옷이 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신체접촉을 통해 그녀에게 천지 영기를 주입하는 행위를 하기 위해선 그녀의 혈과 장기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그리듯 파악해야 했기에, 눈으로 보이는 외적인 모습이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화여는 전혀 그렇지 않은지 양손으로 몸을 감싼 채 웅크리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두 볼은 발그레 하다못해 새빨갛게 변하는 중이었다.

    ‘부끄러운 것인가? 그럼 옷을 만들면 될 것을.’

    준혁은 상대방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결국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대기 중의 영기가 반투명하게 뭉치더니 이윽고 푸른 막처럼 변해 그녀를 감쌌다.

    “아!”

    잠시 후 푸른 막이 전신을 둘러싸며 푸른 장삼처럼 변하자 소화여는 그제야 붉은 얼굴을 들어 준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하더니 준혁에게 큰절을 올렸다.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 평생 있지 않겠습니다. 제 남은 생 대인을 위해 살겠으니 허락해 주시어요.”

    소화여의 갑작스러운 대례에 준혁은 피식 웃고는 손사래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닌 소저 본인을 위해 사십시오. 감히 위선경 수사를 부릴 수야 있겠습니까?”

    그랬다. 준혁의 도움으로 소화여는 몸을 완벽하게 회복한 것도 모자라 위선경에 올라 버린 것.

    거기다 그녀는 태양지력을 무한히 증식시키던 영근의 특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성광지력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태양지력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따로 수련하지 않아도 성광지력은 엄청난 속도로 쌓일 게 분명한 일.

    만약 걸맞은 공법을 익힌다면 그땐 감히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런 수사를 수하처럼 부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준혁은 보답받고자 그녀를 치료한 게 아니었기에 그녀의 감사함에 대한 마음만 받았다.

    “정 그러시면 훗날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 알겠어요.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말해보십시오.”

    “대인의 도움으로 강제로 수행이 오르다 보니 아직 몸을 완벽하게 제어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대인과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요.”

    치료가 끝났으니 둘은 굳이 같이할 필요가 없었다.

    소화여는 준혁이 다른 말을 꺼내기 전, 부탁이란 핑계로 명분을 만들었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성광지력을 효율적으로 다룰 방법을 알려드리려 했습니다. 당분간은 저와 함께하시지요.”

    준혁의 말에 소화여가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미 소화여에 대해 낱낱이 파악했다고 여겼던 준혁마저 속으로 놀랄 정도였다.

    ‘성광지력의 영향인가?’

    그때, 준혁의 내부에서 무언가 쩌저적 소리가 나더니 여러 가지 빛이 화려하게 방사되었다.

    ‘드디어 깨어나는구나!’

    준혁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곧바로 입을 벌렸고, 그와 동시에 세 개의 구슬을 연달아 뱉어냈다.

    천지 영기를 분산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영기를 아직 깨어나지 못했던 영수들에게 주입했던 일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파앗-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구슬들이 눈부신 빛으로 변했고, 빛이 사라진 후 포슬포슬한 털을 가진 영수 두 마리와 매끈한 모습의 도마뱀 두 마리로 변했다.

    와락-

    직후, 두 마리 영수가 준혁의 품속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큰둥아!!”

    “주인님!”

    그 옆엔 자신도 같은 행동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도마뱀 두 마리만이 멀뚱멀뚱 눈을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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