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대천경(大天境) (1)
시작은 작은 진동이었다.
쿠웅-
땅에서 시작된 진동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대지에 맞닿아 있는 대기를 진동시켰다.
쿠웅-
대기는 진동이 일자 극심한 변화에 웅크리듯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더니 그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워나갔다.
쿠웅-
마침내 대지와 대기 모든 게 일반 수사들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파동을 거듭하자, 하늘의 한 점을 향해 영기가 미친 듯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머물 자리가 부족함에도 서로 밀치며 밀려들던 영기는 결국 스스로를 압축하더니 점점 밀도를 높여갔고.
급기야 일정 수위를 넘어서자 외부로 윤곽을 보이며 오색구름을 내뱉어 위용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색구름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콰콰쾅!
번쩍-
대기가 요동치며 시꺼먼 먹구름 같은 영기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며 엄청난 속도로 규모를 키워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가장 처음 영기의 변화를 느낀 건 대화성 성주였지만, 말을 내뱉은 건 동주성 성주였다.
“저길 보십시오.”
그때 누군가 검은 장막으로 가려져 있던 장소를 가리키자, 모두의 관심이 그곳으로 쏠렸다.
어느새 검은 장막은 사라지고 은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영기가 정확히 그 자리의 상공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설마 저자가 지금 수행을 올리려는 겁니까?”
“미친 자가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 아니 그것보다 지금까지 화기를 막다가 갑자기 이 무슨!”
수사들은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에 상관없이 수행을 올리기 전엔 몸과 마음을 지극히 평온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수년이 걸릴 때도 있고, 수십 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수행 상승에 실패할 수 있었고, 어떤 이는 모여드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화를 입기도 했다.
하물며 지금까지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애쓰던 자가 갑자기 수행 상승이라니?
모두 다 눈에서 불신을 지우지 못했다.
“허 설마 저런 방법을….”
오직 중괴만이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중력을 움직여 기를 압축하는 자신의 권능.
치료 행위를 위해 주변의 영기를 끌어모았던 것처럼 준혁이 영기구름을 불러 모은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다만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애송아, 무슨 방법으로 영기구름을 강제로 불러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리석은 판단이다. 감히 하늘의 기를 온전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건 삼선에 오른 자들도 불가능한 것이다.”
영기구름의 영기는 이유 불문하고 시전자만이 흡수할 수 있는 기운이었다.
중괴의 예상대로라면 준혁은 하늘의 기운을 자신의 몸에 담은 후, 그것을 몸에 쌓지 않고 정제과정만 거친 후 소화여에게 주입하려 하는 게 분명할 터.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극도로 세심한 기의 운용과 막대한 의지력. 거기다 그 과정을 견딜 흠결 없는 완벽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네놈이 신선이라도 된다 여기느냐. 후우….”
중괴가 한숨으로 준혁과 소화여를 걱정하는 사이.
쿠오오-
어느새 영기구름은 몸집을 한없이 키우며 수사들이 자리한 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흐음. 도대체 누굽니까? 누가 이 정도 규모의 천기를 불러온단 말입니까?”
“처음 나타날 때 느껴지기론 대천경에 가까웠다고 여겼는데, 지금 규모를 보면 또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뭔 일인지.”
번쩍- 콰아앙!
그때, 끝이 보이지 않고 밀려들던 영기구름 중심에서 성인 수십 명이 둘러싸야 겨우 손이 닿을 정도로 두꺼운 뇌전이 마치 빛의 기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
뇌전은 흔하게 지그재그로 요동치는 것과 다르게 진짜 기둥처럼 올곧게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모두가 넋을 놓는 사이.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세상에나…. 겁(劫)이 시작되다니…. 설마 새로운 진선의 탄생이란 말입니까?”
중괴 역시 말문이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애송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
원영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선도에 발을 내밀었다고 여기듯이, 수도자가 아닌 선인이 되었다고 보는 증거는 겁(劫)이었다.
대천경에 이르러 하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하늘은 그자가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것을 겁이라 불렸다.
일반적으로 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누군가는 지나온 삶에서 만난 이들이 심마로 찾아오기도 했고, 어떤 이는 물리적인 충격으로 오기도 했다.
우주에 던져진 거 마냥 허무에 가득 찰 때도 있었고, 심한 경우 자신을 자각하기 전엔 돌이나 쇠처럼 생명력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기도 했다.
영생할 자격이 있는지, 자격을 갖추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하는 게 겁이었다.
단, 모든 수사는 다양한 겁을 거치기 전에 공통된 겁을 맞이했는데, 그것이 지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빛의 기둥처럼 보이는 뇌전이었다.
외부의 수사들이 겁의 출현에 놀라는 사이.
준혁 역시 동요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압박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존재를 지워버릴 것만 같지 않은가?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겁인가?’
하지만 겁은 대천경 수사가 진선에 오를 때 나타나는 현상.
준혁은 위선경에서 대천경으로 오르는 과정이었기에 겁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아니,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준혁이 고려하지 못한 것 한 가지.
그건 바로 오행 신기였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준혁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하늘도 속아 진선경에나 이르러야 나타날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었다.
상황이 어찌 된 건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준혁은 압도적인 압박감에서 살아야 했기에 재빨리 반응했다.
근처엔 소화여가 좌정한 채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녀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치료를 하기도 전에 소멸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준혁이 의지를 일으키자 그의 곁으로 사신 분신이 나타났다.
‘가라!’
사신 분신은 각자 사신결을 극으로 운용하더니 각각 속성의 색깔을 가진 빛덩이로 변하며 상공으로 치솟아 올라갔다.
가장 앞서 날아가던 백호 분신을 시작으로 나머지 사신들이 뇌전의 앞을 막았다.
쾅!
하지만 너무나 압도적인 힘이었기 때문일까?
사신 분신들은 뇌전이 떨어지는 속도를 살짝 늦췄을 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분분히 산화해 버렸다.
‘다행히 효과가 있구나.’
다만 미미한 반응이었지만, 어떤 식으로 감당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던 준혁은 좋은 신호라 여겼다.
재차 사신 분신을 소환해 날려 보낸 준혁은 가볍게 수결을 맺어 마족 전영을 만들어냈다.
잠시 후, 전영은 이마에 달려있던 보라색 뿔을 뽑아 들어 하늘로 집어 던졌고, 하늘로 날아가던 뿔이 퍼엉- 파동을 퍼트리며 흩어지자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흩어지던 기운을 코로 세차게 흡수하는가 싶더니, 몸을 수십 배 키웠다.
콰당-
직후, 또 한 번 사신 분신들을 분쇄한 후 떨어져 내리던 뇌전을 양팔을 벌리며 가슴으로 받아냈다.
투과광-
하지만 마족 전영 역시 사신 분신과 결말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극명한 변화가 있었는데, 뇌전의 두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었다.
‘된다!’
준혁은 몇 번의 부딪침으로 뇌전을 막아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잠시 후, 아스라이 바스러지는 분신과 전영을 재차 소환해 뇌전의 크기를 줄여나가던 준혁은 코앞까지 다가온 뇌전의 힘을 가늠하다가 양손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소멸하라!”
그러자 소멸이라는 언령에 반응해 떨어지던 뇌전이 급기야 멈춰서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준혁의 정수리에서 핏빛 눈동자를 가진 원영이 모습을 드러냈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 다섯 가지 빛무리를 몸에 두른 채 상공으로 쏘아져 나갔다.
슈아앙-
화아악-
시험의 끝을 알리듯 약해져 가던 뇌전은 결국 원영과 부딪침을 끝으로 노란 잔상과 조각을 남기며 폭발해 터져버렸다.
그때에 맞춰 준혁이 마지막인 듯 목소리에 의지를 담아 명령했다.
“오라!!”
명령이 떨어진 직후, 뇌전이 사라진 하늘은 폭풍처럼 흐르기 시작했고, 소용돌이를 만들더니 폭포수처럼 준혁의 머리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안정적으로 영기를 정제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겁처럼 보이던 뇌전을 막아내자, 그 후로는 위선경에 오를 때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때, 또 한 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일을 마친 원영이 오행신기를 두른 채 머리 위에 내려선 순간, 준혁의 머리 위로 뾰족한 탑을 형상하는듯한 왕관이 나타나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왕의 정수?!!’
왕관에서 뻗어 나온 빛무리가 주변을 뒤덮자 준혁은 바로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용천무가 남긴 100명분의 비늘과 발톱을 연화해 최종적으로 얻어낸 왕의 정수.
하지만 그 쓰임을 알지 못해 그동안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힘.
“아아!”
잠시 후,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 막대한 영기와 더불어 왕관의 정보가 쏟아지자 준혁은 환희에 찬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
‘이게 왕의 권한이구나.’
준혁은 왕관이 전해주는 힘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왕의 정수는 왕으로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 같은 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선경에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는 권한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이 오행신기와 삼지행의 작용으로 대천경에 도전하고 있는 준혁에게서 발현되고 만 것이었다.
왕의 권한은 특정 인물이나 특정 지역같이 특수하게 지정된 상황에 대해 절대적인 명령을 내리는 힘이었다.
정확히는 특수한 조건을 가진 ‘절대적 언령’ 같은 것.
그것이 오행신기로 인해 미리 발현되면서 삼지행과 반응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능을 이끌어 내고 말았다.
‘영근에 대한 지배력인가?’
삼대지력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영근에 대해 우월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삼지행이 왕의 정수와 만나자 그 힘이 극대화되고만 것이었다.
그로 인해 준혁과 비교해 수행이 비슷하거나 떨어진다면, 영근이라는 조건만 갖춘 상대라면 완벽한 언령의 구속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수행이 준혁보다 높은 자라 할지라도 영근을 가진 이라면,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으니, 그야말로 종족 한정 절대적인 권한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무기가 되겠구나.’
준혁은 새삼 용천무가 남긴 물건들이 하나같이 평범한 것이 없다는 것에 놀라야 했다.
한편으론 그런 대단한 종족이 훗날을 대비하고 끝을 준비한 걸 보면 선계에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선은 이 일에 집중하자.’
잠시 후 준혁은 상념을 지워버리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왕의 정수의 진짜 능력은 후일 시험해 보면 그뿐, 지금은 왕의 정수로 인해 영근을 가진 자에 대한 지배력 상승만으로도 만족했다.
태양지력이나 성광지력도 결국 영근의 일종. 소화여를 안전하게 치료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게 된 것이었다.
잠시 후 좌정한 채 보호되고 있던 소화여가 스르륵 이동해 오더니, 준혁 바로 앞에 정면을 바라본 채 멈춰 섰다.
정신을 굳게 유지하고 있던 그녀는 뇌전이 떨어진 순간부터 압력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던 준혁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자극했다.
“으…. 제가 잠시 기절한 건가요?”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그녀의 단전에 손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었기에 매우 민망한 자세.
소화여의 얼굴에 붉은 기가 도는 듯 보이자, 준혁은 피식 웃다가 신색을 바로 했다.
직후, 몸 안에 미칠듯한 속도로 쌓이기 시작한 영력을 손에 가득 모으며 입을 열었다.
“준비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