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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87화 (287/408)

287화. 구원 (3)

빛살처럼 날아가던 준혁은 은은하게 느껴지는 화기에 목적지가 근접했음을 느꼈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화기에서 느껴지는 삼대지력의 기운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삼지행을 거인족만큼 다룰 수는 없지만 이미 근원을 받아들여 대천경에 이를 정도의 성과를 얻은 상황.

‘위험하다!’

준혁은 소화여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깨달았다.

대화성에서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녀가 살아있음에 안도했었는데, 지금은 1년만 일찍 비경에서 나올 걸 하는 후회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후회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틈도 없었다.

슈아아앙-

소화여의 상태를 확인한 준혁은 바로 온몸에 삼지행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몸을 날렸다.

탁-

그리고는 화기의 중심지인 소화여 앞에 내려선 순간, 이가 깨져라 입술을 앙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어찌 사람이 이런 모습일 수 있단 말인가!’

중괴가 무슨 수를 쓴 건지, 땅에 절반쯤 박혀있던 소화여.

그녀의 모습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었다.

피부는 일부분이 녹아 뼈가 드러나 있었고, 얼굴은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곤죽처럼 변해있었다.

그나마 영역이 전신을 보호하고 있기에 사람 형태를 한 것이지, 이미 생명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어리석기는, 어찌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희생한단 말인가?’

소화여의 상태를 순식간에 파악한 준혁은 그녀의 영역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태양지력을 격발시켰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필설로 설명할 수 없는 농축된 화기가 봉인이 풀린 듯 폭발했다.

화아악-

준혁이 그녀의 영역을 강제로 날려버린 이유?

그건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저주의 씨앗처럼 심어진 근원에서 무한히 생성되는 태양지력.

그 힘을 외부로 방출해 버리면 조금은 편할 텐데, 그녀는 영역을 이용하면서까지 화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외부로 나가지 못한 화기는 점차 응축되고 농축되어 갈 테고, 결국은 수사 본인을 갉아먹는 행위였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화기 일부를 강제로 배출했다면, 조금은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났을 거란 생각에 준혁은 마음이 쓰게 아려왔다.

-화여 소저! 나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준혁은 사방을 잠식한 채 소멸시키는 태양지력의 화기를 삼지행으로 막아내며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죽은 것처럼 심장박동도 느껴지지 않던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 드디어 오셨군요….”

소화여의 목소리는 이미 산자의 것이 아니었다.

죽기 직전 준혁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는 듯,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는데, 한쪽 눈이 눌어붙어 움직이질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소저, 지금부터 그대를 치료할 것이오! 그러니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준혁의 말에 소화여가 고개를 흔들었다. 신체를 움직일 힘조차 남지 않은 듯, 겨우 보일락말락 할 정도로 작은 움직임에 불과했다.

“아니에요…. 저도, 제 상태를 알고 있답니다. 대인께서 제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도요.”

“아닙니다. 그동안 작은 깨달음이 있어 어쩌면 그대를 완치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준혁의 말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란 걸 느낀 소화여는 입가를 살포시 움직였다.

얼굴이 녹아버렸는데도, 그녀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회광반조에 드는지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변해갔다.

“무엇입니까?”

소화여는 준혁의 시선을 지긋이 바라보다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한 번만 안아주세요….”

“그게 무슨.”

“한 번도 누군가의 체온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이 저주받은 힘 때문에….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만. 한 번만 그게 어떤 건지 알고 싶어요.”

“아.”

“대인께서 무리를 해야 한단 건 알지만…. 죽기 전에 한 번만 저를 안아주실 수 있나요?”

와락-

준혁은 대답하지 않고 바로 그녀를 살포시 안았다.

마음 같아서는 몸이 으스러져라. 꽉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정말 바스러져 버릴 것이었기에 자신의 심장박동이 전해질 정도로만 품에 안았다.

‘겨우 이런 것이 소원이라니.’

그녀가 누군가에게 안긴다고 그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리 없었다. 겨우 마음의 충족감을 위한 것일 터.

그 순간, 여동생과 여서령을 떠올렸다.

그녀들의 모습이 아닌, 품에 안겨 죽어가던 여서령과 삶을 체념한 듯 웃어 보이던 나연의 모습이.

“소저, 그거 아십니까? 저는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대의 아비인 소우자에게 약속했습니다. 당신을 살아있게 하겠다고.”

적을 속이기 위해선 태연하게 거짓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그 외엔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찌 보면 선계로 비승한 것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준혁의 말에 소화여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이 있어서…. 희망도 가질 수 있었어요.”

‘이미 자신이 죽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어느덧 그녀가 잠이 오는 사람처럼 느릿하게 말을 잇자, 준혁은 더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회광반조 뒤에 오는 생명력 저하.

그게 말하는 건 한 가지였으니까.

그 즉시 준혁은 그녀를 안고 있던 자세 그대로 양손에 삼지행을 모았다.

그리고는 대기가 흔들릴 정도로 모인 삼지행을 성광지력으로 치환하며 소화여의 심장과 단(丹)이 자리한 위치로 스며들게 했다.

들썩-

“아!”

그러자 안겨있던 소화여가 몸을 크게 움찔하다가 환희에 찬 소리를 질렀다.

직후, 준혁은 그녀를 몸에서 떼어내 허공에 띄우며 생각해 두었던 수결을 연달아 맺었다.

그리고는 합장으로 수결을 마무리한 뒤 한 손을 뻗었다.

“사신의 바람이여! 내가 노닐 곳을 마련하라!”

화아악-

직후,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반지가 검은 장막으로 변하며 주변 공간을 막아서자 연달아 영역을 발동했다.

“영역 선포!”

파앙-

그러자 퍼져나가는 화기에 대항해 종잇장처럼 흔들리던 장막이 은푸른 기운으로 덮이며 준혁이 머무는 일정 공간을 완벽하게 외부와 격리시켰다.

***

“허어! 저자는 누구길래 저 극악한 화기를 막아서는 겝니까?”

누군가 의문을 드러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중괴뿐 아니라 진선경에 이른 대화성 성주조차 어쩌지 못한 화기가, 폭발로 주변을 뒤덮는가 싶더니 검은 장막에 가려지며 사라져 버렸다.

폭발에 놀라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도망가던 수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멈춰서 화기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중괴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는데, 준혁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애송아, 그걸로는 택도 없다.”

중괴 역시 소화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태양지력을 방출하라고 몇 번이고 권유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걸 알고 있는 중괴는 준혁이 소화여에게 다가간 후 폭발이 일어난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폭발 후 영역만으로 감당이 안 되자 사신정의 힘까지 빌려 외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애쓴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 봐야 그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순 없다. 이미 생명력이 다했어.”

다른 이들은 준혁이 엄청난 신위를 보이는 거라 여기고 있지만, 실상은 월광지력이라는 반대 속성의 힘 때문에 버티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준혁 역시 포기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중괴가 알고 있던 준혁은 비경에 들어가기 전 150여 년 전의 소천경 초기 수사.

준혁이 50여 년의 수련으로 위선경에 오르고, 그 후엔 100여 년간 유적과 비경의 힘을 모조리 흡수해 위선경 후기 끝자락에 도달해있다는 걸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소천경을 넘어선 수사에겐 150년은 유의미한 기간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한편, 중괴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준혁은 사신정의 공간을 다루는 기능과 영역의 힘을 이용해 주변을 완벽한 봉인구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봉인구 전체를 삼지행으로 뒤덮으며 소화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지력을 자신에게 인도했다.

이제 삼대지력은 어떤 방식으로 접하든 흡수할 수 있었기에 준혁에겐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먼저 그녀의 몸속 화기를 전부 빼내고, 체내에 자리한 근원을 성광지력으로 치환한다.’

준혁은 그녀를 치료할 자신이 있었다.

예전엔 그저 태양지력이 무한히 만들어지는 힘이라고 느끼던 것이, 이제는 인족의 영근처럼 그 근본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상태.

삼지행을 이용하면 근본 자체를 뜯어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미 닳고 닳아서 희미해져 가는 소화여의 생명력.

‘너무 늦지 않았기를….’

생명력만큼은 준혁도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일한 수단이라 여겨지는 게 초연단이었는데, 초연신단이라면 모를까 그가 가진 초연단 한 알로는 절대 그녀의 상태를 되돌릴 수 없을 거라 여겨졌다.

“아아아….”

그때, 성광지력의 황홀감에 빠져있던 소화여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물론 눈물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 버렸지만.

“대인…. 저는 틀렸으니 포기하셔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초연단도 있으니, 정신을 유지하십시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제 노력도 의미 없단 걸 기억하시고.”

준혁은 그녀의 목소리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자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말까지 내뱉었다.

하지만 소화여의 반응은 오히려 더욱더 덤덤해졌다.

“그래서 드리는 말이어요. 어르신께서 가지고 계신 초연단을 전부 사용하셔서…. 겨우 지금까지 버틴 것입니다. 대인께선 괜한 낭비 마세요.”

‘아!!’

준혁은 소화여의 말에 중괴가 초연단을 아끼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중괴가 초연단을 전부 사용했다는 건, 그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설마?’

그러다 문득 그가 초연단을 아낀 이유가 초연신단을 만들기 위함이었고, 어쩌면 그 이유가 눈앞에 있는 여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았다.

‘어쩐지, 소우자를 만나길 꺼리더니, 이 여인을 치료하지 못한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구나.’

피식-

안절부절못하던 중괴가 떠올라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로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화여를 살리기 위해 애썼을 그를 떠올리니, 자신이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과거와 겹쳐 보였다.

“걱정 마시오. 나는 자신 있으니.”

“정말…. 진심이신가요?”

결국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준혁의 모습에 소화여는 처음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하오. 그러니 그댄 의지를 돋구어야 합니다. 결국 모든 건 의지에 달렸단 걸 명심하십시오.”

***

검은 장막이 화기의 근원지를 감싼 지도 꼬박 아홉 날을 채운 시각.

준혁은 화기가 아닌 별빛이 흐르는 것처럼 반짝이는 피부를 한 여인을 마주하고 있었다.

소화여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태양지력이 뿌리까지 뽑혔는지, 너무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준혁은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역시 부족한가.’

현재 소화여 몸속의 태양지력을 생산하던 영근은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었다. 완전히 제거되진 않았지만, 준혁이 심어놓은 삼지행과 반응해 자연스럽게 성광지력으로 치환되는 중이었다.

이대로 시간만 지난다면 그녀는 성광지력의 치유 능력 덕분에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찌그러진 떡처럼 뭉개진 얼굴도 원래대로 돌아올 테고, 몸도 완벽히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만,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생명력의 원천이 이미 바닥나 있는 상태.

준혁이 아무리 성광지력을 쏟아부어도 그건 변하질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초연신단을 사용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막대한 영기를 한꺼번에 주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이 막대한 영기지 그 밀도와 양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준혁의 고민은 깊어졌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과연 옳은 판단인가?’

유일하게, 감히 상상하기 힘든 영기를 가져올 방법이 있긴 했지만, 그건 위험을 초래하기에 미뤄두었던 방법이었다.

한참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준혁은 눈앞의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더 이상 열기가 느껴지지 않자 신기한 듯 몸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전과 달리 진심으로 준혁이 자신을 치료해줄 거라 확신에 찬 듯, 더는 절망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여동생 나연이가 오빠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해보자. 반서가 무서워서 시도해보지도 않는다면, 훗날 오늘을 후회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소화여의 모습에서 여동생을 투영해 보았는데, 마지막에 위험을 핑계로 외면한다면, 훗날 동생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소저, 마지막 치료가 남았는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도전해보았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영기구름의 기운을 이용하는 일이기에, 준혁뿐만 아니라 소화여도 반서를 맞을 수 있는 일.

“대인이 아니었다면 어차피 산목숨이 아닌 것을 무슨 그런 질문을 하시나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십시오. 충격이 클 테니.”

마음을 다지고 허락이 떨어지자, 준혁은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정돈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날.

준혁이 사신정을 회수하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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