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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86화 (286/408)
  • 286화. 구원 (2)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사내 때문에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누, 누구십니까?”

    준혁은 두 사람이 놀라지 않게 은연중에 삼지행을 움직였다.

    치유 능력이 있는 성광지력으로 변한 삼지행은 두 사람을 안정시켰다.

    “대화성에 처음 방문해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었는데, 관심이 갈만한 얘길 하시길래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게 무슨…. 혹 불타는 대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마침 제가 화기 공법을 익히고 있는데…. 화기가 넘쳐나는 땅이라니, 그 얼마나 매력적인 말입니까? 혹 그곳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준혁에게 악의가 느껴지지 않자, 두 사람 중 대화를 주도하던 이가 말문을 열었다.

    “크흠, 뭐 대단한 정보라고. 헌데 미리 말하자면 화기를 가까이한다고 그곳에 가질 않기를 바랍니다.”

    “어째서인지 알려…?”

    “우리 같이 원영도 이루지 못한 자들은 근처에 가기만 해도 타버린다 들었소이다.”

    ‘찾았다!’

    사내의 말에 준혁의 직감이 말해주었다. 그곳에 소화여가 있음을.

    준혁이 확신하는 사이 축기기 수사는 불타는 대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곳이 언제 생겨났느냐 하면 말이오….”

    대략 30여 년 전에 생겨난 그곳은 처음엔 아주 작은 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심지의 열기가 강해지더니, 급기야 저급 수사들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타들어 가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저급 수사들이 그럴 정도니, 범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죽어 나가는 이들이 속출했다.

    결국 그곳과 가까이 자리하고 있던 가문과 종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화기의 근원지를 지키는 진선급 강자가 있었다.

    ‘어르신이 그녀를 지키고 있구나!’

    결국 진선급 강자의 방해로 화기의 근원을 제거하지 못한 무리는 인근에 터를 잡은 이들을 이주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화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졌고, 급기야 주변의 있던 영석 광산들까지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대화성과 임주성 그리고 불타는 대지를 중심으로 반대편에 있던 동주성(東株城)의 성주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수많은 수사가 참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지금 그곳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성의 성주를 포함한 수사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 말입니까?”

    “예끼. 말을 끝까지 들으시게.”

    수사들의 방문을 받은 진선급 강자는 근처에 자리한 영석 광산 두 곳만 넘겨준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그렇게 흐지부지 조용히 넘어갔다.

    ‘어르신이 광산의 영기를 강제로 모아 그녀를 치료하려 한 건가?’

    하지만 곪고 곪은 화기는 폭발을 일으켰고, 결국 또 한 번 주변 세력들이 움직이게 되었다.

    문제는 이번엔 진선급 강자가 방해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한발 물러났지만,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불타는 대지 중심지의 화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태청문에서 나온 위선경 수사마저 혀를 내두르고 포기해버렸다.

    해결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고, 결국 이번엔 각 성의 성주들이 나서게 된 것이었다.

    “이제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아시겠소?”

    “그래서 그곳이 어디입니까?”

    “대륙 동쪽 끝에 있는 동주성과 여기 대화성 사이에…. 에이 이 사람아 우리 같은 이들은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화를 입을 수 있다고 말해도 그러…. 네? 어라?”

    설명을 이어가던 사내는 눈앞에서 경청하던 자가 안 보이자 두 눈을 연신 끔뻑거렸다.

    분명 앞에 사람이 있었는데, 없었다.

    “이보게 이 사람 어디 갔는가?”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증발해 버렸다.

    “바, 방금 사라졌네!”

    “사라져? 어떻게?”

    “그게 말로 설명하기가, 갑자기 흐릿해지며 모습을 감춰버렸네.”

    “히익! 설마 선배님이셨던 건가?”

    ***

    한편, 설명을 듣던 준혁은 불타는 대지가 소화여가 있는 곳이 확실하다는 확신이 들자, 적마도를 소환해 상공으로 이동했다.

    바로 몸을 날리려다가, 자신의 작은 날갯짓에도 축기기 수사들이 죽어 나갈 수 있기에 공간이동을 한 것이었다.

    쾅!

    잠시 후 비행 법기를 배제한 채 오직 영력을 쥐어짜서 전력으로 하늘을 갈랐다.

    콰과쾅!!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음속의 증거라는 충격파가 겹쳐서 터져나갔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조금만 기다리시오.”

    날아가는 준혁의 입술 사이로 작은 바람이 흘러나왔다.

    ***

    호란대륙 동북쪽에 자리한 동주성.

    그곳에서 선인의 속도로 한 달가량을 서쪽으로 이동하면 두 개의 산맥 사이 널따란 평원이 나타났다.

    다른 곳과 비교해 유독 물이 많던 평원은 이상하게도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로 남아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 이율 궁금해했고, 오랜 조사 결과 불모지를 중심에 두고 평원의 양쪽 끝에 어마어마한 영석 광맥이 자리하고 있단 걸 발견해냈다.

    그랬다. 영석 광맥은 주위의 영기를 풍족하게 만들기도 하나, 가끔은 근접한 지역의 영기를 전부 빨아들여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영석 광맥이 발견되자 주변 종문들과 가문들이 너도나도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고, 결국 몇몇 세력이 일정 비율로 이익을 공유하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영석 광맥에서 그 어떤 수익도 나질 않았다.

    꽤나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했던 두 광맥은 이미 완전하게 말라버렸고, 그와 더불어 극악한 화기로 인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두 광맥 중 한 곳인 서쪽 광맥의 상공.

    흰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노인이 한쪽에서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는 다른 노인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중괴!! 도대체 언제까지 두고 볼 생각인가?! 그대의 요청대로 영석 광맥까지 넘겨주었다! 헌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냐 이 말이다!”

    노인의 목소리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다.

    “참나. 그러니깐 가서 죽이라니까? 저기 중심지의 꼬맹이 하나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왜 자꾸 나에게 그래?”

    “이익! 그대가 데려온 자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이젠 나도 포기했다니까 그러네? 아는 아이라 치료해보려고 노력할 만큼 해봤으니까 이젠 죽인다 해도 말리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알아서 해.”

    중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어쩌라고?’

    “으득!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우리에게 피핼 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대가 처리해야 되지 않냐 이 말이다!!”

    중괴는 준혁이 사라진 뒤 소화여와 태식을 데리고 비경 앞에 진을 쳤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결국 다시 괴조를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괴조는 적마도를 비롯한 준혁이 가진 마선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할 수 없이 중괴는 소화여와 태식에게 준혁이 비경 밖으로 나오면 연락하라며 연락 방법만 남겨두고 볼일을 보기 위해 자릴 떠났다.

    그렇게 백여 년이 넘어 태식에게 연락이 왔다.

    하지만 기다리던 준혁의 소식이 아닌, 소화여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

    치료를 받지 못한 소화여의 태양지력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중괴는 하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왔고, 그땐 그녀의 상태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태양지력이 그녀의 영역을 뚫고 외부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태식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몸을 피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중괴는 결단을 내려야 했고, 그렇게 해서 화기를 견디기 가장 적합한 땅을 찾아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그 후엔 준혁의 예상대로 영석 광산을 강제로 강탈해 그곳의 영력을 이용해 소화여의 상태를 호전시켰다.

    거기다 대지에 풍부한 물의 기운을 권능으로 응축해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겨우 미봉책에 불과했고, 금세 그녀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였다.

    결국 지금은 생명이 다해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그녀가 죽는 순간, 영역으로 보호하던 힘이 해방되며 주위는 초토화가 돼버릴 수도 있다는 것.

    중괴는 어차피 상관없었기에 될 대로 돼라는 입장이었지만, 주위 종문들은 그 문제로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쓰벌! 나라고 보고만 있고 싶은 줄 알어!”

    결국 계속되는 쫑알거림에 중괴가 사납게 받아쳤다.

    “인연이 있는 아이가 불에 타는 고통으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는 게 편한 줄 아냐 이 말이다!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네놈들을 포함한 전부와 마찬가지로 나로서도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다 이 말이다!”

    중괴의 짜증에 순간적으로 주위에 침묵이 찾아왔다.

    중괴에게 소릴 바락바락 지르던 노인도, 그 노인을 따르던 수하들도,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다른 성의 성주를 포함한 전원이.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떠십니까? 어르신.”

    처음부터 짜증을 내던 대화성의 성주를 제외하곤 나머지 성주는 전부 대천경 수사.

    동주성 성주가 말을 꺼냈다.

    “말해 보거라.”

    “지금 다들 걱정하는 게 저 여아가 막대한 태양지력을 내뿜고 산화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이라도 묘립성의 성주를 데려오는 겁니다. 그자라면 딸아이의 상태를 잠시나마 호전시킬 수 있을 터. 그때라면 우리가 힘을 합쳐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나름 냉정했지만, 잔인하기 그지없는 발언.

    동주성 성주의 말에 중괴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쓰벌!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아비에게 딸을 죽일 수 있는 준비를 도와달라 말하는 게 정상인이 할 수 있는 소리냐!”

    파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괴가 손을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거인의 발이 동주성 성주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맹렬히 떨어져 내렸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성주는 피해야 함을 느끼고도 꿈쩍도 못 했다.

    “중괴! 멈추시오!”

    하지만 발이 그자의 머리를 짓눌러 버리기도 전.

    쓰가아악-

    거인의 발만큼이나 거대한 검이 나타나더니 발을 꿰뚫어 버렸다.

    푸슥-

    “으윽, 빌어먹을.”

    힘의 충격에 중괴는 인상을 쓰더니 잠시 비틀거렸다.

    “중괴. 그대가 지금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힘을 낭비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소. 그러니 그대를 핍박할 생각은 없지. 하지만 동주성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대도 받아들여야 하오.”

    “그걸 말이라고.”

    “만약 시간을 끌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어쩔 것이오?”

    흰 수염 노인의 말에 중괴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성주가 안절부절못하는 건, 태양지력의 폭발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진선급 강자가 손도 대지 못한 열기를 품고 있는데, 그것이 폭발을 일으키며 뜻밖의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그건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

    다들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하아. 알겠다. 빌어먹을 이게 다 그 멍청한 놈 때문이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한단 말이오.”

    “그런 게 있어. 알지도 못하면서.”

    중괴는 한참을 투덜거리더니 동주성 성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놈이 소식을 전해라. 나는 소우자를 볼 면목이 없으니.”

    “...알겠스….”

    슈아아앙-

    그때 서쪽 하늘에서 굉음과 함께 거대한 압력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중괴를 포함한 전원이 순간적으로 그곳을 향해 고갤 돌렸다.

    “방문할 자가 남았습니까? 이 정도면 성주급인데….”

    가끔은 진선급 강자도 있었지만, 대다수 성주는 대천경 수사.

    “설마 이 기운은?”

    그때, 다가오는 기운 속에서 익숙함을 느낀 중괴의 얼굴에 잠깐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반가움은 실망으로 변했다.

    “멍청한 녀석아. 이미 늦었다.”

    그리고 중괴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듯, 그의 귓가로 전음이 전해졌다.

    -어르신! 상황이 급박한 듯하니 인사는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누구도 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절대로!

    잠시 후, 하늘을 가르던 기운은 속도를 늦추지 않더니 그대로 화기의 근원지로 떨어져 내렸다.

    “어어! 저거 멈추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서, 설마! 충돌하려는 건가? 저 미친 자가!”

    콰아아앙!!!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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