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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68화 (268/408)
  • 268화. 뜻밖의 이득 (3)

    "정말 모르는가 보군."

    중괴가 진실을 판별하겠다는 듯 지긋이 눈을 쳐다보자, 준혁이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어르신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적마가 모은 보물이라니. 그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자 조금 전보다 더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중괴가 대답했다.

    "흐, 정확히 어딘지는 나도 모르지, 허나 적마 그놈이 모습을 감추기 전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다. 한때는 그곳의 지배자와 적마가 동일 인물이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아마도 틀림없겠지."

    설명을 이어가던 중괴는 준혁이 조급해하지 않고 ‘말해주면 듣겠다.’라는 듯이 대기하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과연 네놈이 그곳을 안다고 해도 갈 수 있을까?"

    "먼 곳입니까?"

    "아니, 네놈의 인연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다 보면 자연스레 닿는 곳이지."

    ‘자연스럽게 닿는 곳?’

    아까부터 계속 실실 웃고 있는 중괴의 눈빛에서 장난기를 읽은 준혁은 왠지 그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설마…. 아까 말했던?"

    "오호! 눈치 하난 빠르구나! 그래, 혈수림이다. 갈 수 있겠느냐?"

    혈수림이라면 인간을 가축화해 식량으로 사용한다는 곳.

    준혁은 자신의 예상이 맞자, 침음을 흘려야만 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곳에 간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곳에 적마가 모은 보물이 있다니.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내 예상이지. 하지만 찾아본다 해서 손해 볼 건 없지 않겠느냐?"

    고민을 안겨주는 게 목표였다는 듯, 중괴는 혈수림이란 말에 준혁의 인상이 구겨지자 만족한 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중괴가 떠나고도 한참 동안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준혁은 사흘이 지나고서야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

    그동안 번갈아 가며 계속되던 두 사람의 관심이 조금 멀어진 듯 보이자. 준혁은 전왕문주에게 받은 물건 중 불꽃 문양이 새겨진 적색의 목함을 꺼내 들었다.

    ‘설마 이것 때문일지는 상상도 못 했지.’

    목함의 양쪽엔 마름모 형태의 홈이 파여있었는데, 준혁은 그것을 손으로 매만지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동안 면교만이 자신을 잡기 위해 했던 노력이 복수심과 분노 때문이라 판단했었다.

    유적발굴을 망치고 아끼던 사형제를 죽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으니까.

    하지만 목함을 손에 넣자 그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면교만의 집착은 분노나 복수심이 아닌 보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 목걸이 때문에 날 쫓은 거였다니.’

    신배에게서 얻은 목걸이 형태의 보호법기.

    목걸이를 목함의 홈에 가져가자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홈이 메워졌다. 그리고는 미묘한 진동을 일으키더니 목함의 모양이 틈새 하나 없는 벽돌 같은 형태로 변했다.

    그 후론 아무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목함을 보며 준혁은 다시 목걸이와 목함을 분리했다.

    ‘아마 세 유적의 보물을 모으거나, 진짜 유적의 장소로 찾아가야지만 어떤 역할인지 알 수 있겠지.’

    분명한 건 불꽃 문양 목함이 면교만이 찾던 진짜 유적과 깊게 관련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면교만의 공간 팔찌에서 세 유적의 위치가 그려진 옥간과 그것에 관련된 설화 등이 적힌 옥간이 발견되었다.

    ‘하나는 그때 그 유적이고 나머진….’

    세 유적 중 하나는 이미 준혁이 방문한 곳이었고, 나머지 둘은 사막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세 곳은 마치 삼각형 구도를 이룬 듯 자리하고 있었는데, 숨겨진 유적이 어느 곳에 자리한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크지만, 보통 이런 경우 삼각형의 중심에 숨겨진 곳이 있기 마련이니까.

    설화나 고서의 내용을 빠짐없이 읽어본 준혁은 그것들이 면교만이 나중에 수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유적에 관련된 보물을 발견하고 그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한 것이겠지.’

    실제로 우연히 발견한 신비경에서 목함과 목걸이를 찾아낸 신배가 그것을 면교만에게 알리고, 면교만은 연구를 목적으로 목함을 가져가 그것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한 것이었다.

    유적의 진짜 보물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만 나름 촉이 좋았던 신배는 면교만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자 목걸이를 사수했고, 면교만은 할 수 없이 유적에 대한 정보를 일정 부분만 공유해 신배 반배 형제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다만 신배와 반배는 죽는 순간까지 면교만이 진짜로 얻으려 했던 최종 유적에 대한 정보를 몰랐으니, 면교만이 얼마나 치밀하게 사형제들을 속였는지 고개가 저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신배가 진짜 보물 지도라고 생각했던 명왕지처의 지도를 면교만에게 알리지 않은 걸 보면, 결국 비슷한 성향의 사형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그런 치밀한 면교만도, 보물 지도를 숨긴 신배도 결국은 제 욕심에 귀천하고 말았지만.

    준혁이 유적에 관련된 고서의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는 사이, 비행법기는 어느덧 주운대륙의 중심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

    "최 선배님. 저곳이 묘립성입니다."

    묘립성이란 말에 준혁은 내부의 천혈과 원영에게 관심을 거두며 멀리 시선을 옮겼다.

    지평선 끝자락에 수십 미터쯤 되어 보이는 성벽이 보이자, 사방으로 기감을 보내 주변을 파악했다.

    ‘과연, 전송진이 설치된 성은 규모가 다르구나!’

    묘립성은 작은 성이 아니라 작은 국가라 부를 만한 크기였다.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 성벽과 그 안에 바글거리는 사람들까지.

    기감에 잡히는 수사만 해도 지금껏 선계에 올라와 마주친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았고, 범인들도 발에 챌 만큼 그득했다.

    ‘저곳은 비행 금지인가 보군.’

    처음엔 비행법기를 이용해 대륙을 횡단하려 했던 준혁은 중괴의 말에 계획을 바꿔 묘립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굳이 고생하려 하냐며 핀잔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준혁에겐 이유가 있었다.

    평소엔 무영기로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감출 수 있었기에 상관없지만, 전송진을 이용하는 순간엔 그럴 수가 없었고, 만에 하나 그때 마선경이나 괴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귀찮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왜 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이상한 건 흑석지부와 전왕문 본문에서 전투를 치를 때 마선경의 눈이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의심 가는 구석은 곁에 있는 중괴였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기에 그저 예상으로 끝냈을 뿐이었다.

    "묘립성의 성주가 누군지 아느냐?"

    그때 가까워지는 묘립성을 보며 중괴가 입을 열었다.

    "대천경 수사인 소우자라 알고 있습니다."

    준혁의 대답에 중괴가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적지주 그 친구의 인연 목록을 파악했나 보구만. 약은 놈."

    "...... 약았다니요? 그분께서 전해주신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빠르게 파악한 것뿐입니다."

    "크흠, 그렇다고 해두지."

    준혁이 더는 대꾸하지 않자, 중괴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전송진을 이용해 잠깐 거쳐 가는 것뿐이니 그를 만날 일은 없겠지만, 혹여나 그놈을 보거든 조심하거라. 보은 명단에 적혀 있다 해도 성정이 지나치게 차가운 놈이니 어떻게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적지주께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도 말입니까?"

    [보은] 명단에 적힌 사람들은 적지주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기에 당연히 자신을 홀대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준혁의 예상이 틀렸다는 듯 중괴가 말을 계속했다.

    "다들 명성이 있는데, 자신의 도리를 저버릴 리는 없지. 다만 그 일이 마무리된 뒤에 돌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

    "그게 무슨…. 그건 은혜를 갚는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는 말이다. 네놈이 생각하는 은혜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으니까."

    중괴의 말인즉, 보은 명단과 보관 중이던 법기를 내밀면 당장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도움이 끝난 뒤엔 상대가 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준혁의 상식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중괴의 말에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중괴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은혜를 갚고 뒤를 봐주겠다고 약속한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허, 그럼 어르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주를 찾아왔다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몰랐겠구나.’

    태식의 말에 생각에 잠긴 준혁은 지나온 일을 떠올려보며 일면 납득이 가기도 했다.

    처음엔 그런 배은망덕한 자를 [보은] 명단에 남겨두었을까 생각했지만, 초연단과 같은 보물이 오가는 걸 보았다면 과연 강도로 돌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경향이 있구나.’

    준혁은 작은 깨달음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한편 자신이 더 크게 보아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때, 중괴가 그런 마음을 파악했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네놈도 뭔가 느낀 듯하니 긴말하진 않겠지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보은을 받는 것도 결국 능력이 돼야 한단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물론 소우자 그놈이 은원은 확실해 막돼먹은 놈은 아니나, 세상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결국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상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

    어느새 성벽에 뚫린 성문 앞에 내려선 세 사람은 기다란 줄을 마주하게 되었다.

    중괴의 신분이면 성주가 직접 맨발로 뛰어나올 정도였지만, 그런 귀찮은 일이 싫은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 줄의 끝으로 이동했다.

    그의 행동에 당연히 준혁과 태식도 아무 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왜? 저기 뚫린 큰 문으로 들어갔으면 하느냐?"

    중괴가 가리킨 곳, 그곳엔 줄이 늘어선 3미터 남짓 성문 옆으로 굳게 닫힌 10여 미터 정도의 문이 놓여있었다.

    과연 사람의 힘으로 열 수 있을까 싶은 문은 성주의 초대 손님이나 중요한 인물의 방문에만 열린다는 금문이었다.

    그곳엔 몇 사람이 아무런 제지도 없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전부 삼경에 오른 자들이었다.

    "저는 딱히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준혁의 단호한 대답에 중괴는 피식 웃고는 뒷짐을 졌다.

    하지만 조용히 전송진만을 이용하고 싶다는 중괴의 바람과 달리, 갑작스레 성문 입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 호흡할 시간이 지나지 않아, 줄을 서고 있던 자들이 누군가의 제지로 양옆으로 쫘악 갈라졌다.

    그 모습에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있던 중괴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 순간 차가운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고상하게 생긴 사내가 준혁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

    사내가 나타남과 동시에 수하로 보이는 자들이 우르르 나타나 주변을 둘러쌌는데, 딱 보아도 대부분이 화신기 수행을 하고 있었고 몇 명만이 연형기 중 후기로 보였다.

    사내는 하늘색 도포를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옛 역사책에서만 보던 선비의 모습이 저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쯧, 어떻게 알았느냐?"

    그때 차갑게 생긴 사내를 향해 중괴가 혀를 차자, 사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양손을 어깨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중력괴 어르신. 미리 기별을 주셨다면 좋았을 것을 어째서 조용히 지나가시려고 하신 겁니까?"

    사내는 한없이 공손했는데, 두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치 감정이 없는 듯했다.

    "오늘은 정말 그냥 지나가려고 그런 것이다. 네놈 딸년 따위에 시간 낭비할 수 없으니까 상관 말거라."

    "그래도 오셨는데, 한번 보고 가셔야지요. 화여 그 아이도 어르신을 뵙고 싶을 것입니다."

    중괴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구기는 사이, 성주로 의심되는 차가운 사내는 준혁과 태식을 살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데, 웬일로 혼자 움직이시는 겁니까? 항상 같이하시던 적지주는 어쩌시고?"

    "그 친구는 죽었어. 드디어 귀천했지."

    "예에? 그게 무슨."

    처음으로 감정을 내보이듯 사내의 얼굴에 놀라움이 비쳤다.

    그때, 말을 이어가려던 중괴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혀를 찼다.

    "쯧, 나타났네."

    언제 나타났는지, 차가운 성주와는 정반대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여인이 번개처럼 다가와 중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르신을 뵈어요. 소녀 소화여 인사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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