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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65화 (265/408)
  • 265화. 태식 수사 (4)

    "그럴 리 없습니다! 감히 하늘 같은 선사께 그런 짓을 하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중괴의 발언에 청년은 뒷걸음질 치며 손사래 쳤다.

    "그럼 내가 거짓이라도 말한다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지만, 말이 되질 않지 않습니까? 감히 선사께…."

    전왕문 문주는 노인의 말에 반박할 수도,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없었다.

    반박하자니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야 했고, 수긍하면 당장 눈앞의 위선경 수사 두 명까지도 잃어야 할지 몰랐다.

    하물며 노인의 심기가 제대로 언짢아진다면 전왕문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일.

    "선사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어찌 된 일인지 제가 명백히 밝혀내겠습니다. 저 두 녀석을 끌고 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낱낱이 알아내겠습니다!"

    그래서 전왕문 문주가 선택한 것은 노인의 말을 일부 인정하는 대신, 그 이유를 알아내겠다는 핑계로 위선경 수사 둘의 생명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꼼수 따위가 노인은 몰라도 준혁에겐 통하지 않았다.

    준혁은 노인의 실력행사에 움츠려있던 어깨를 쫙 펴고 마치 노인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거기에 대해선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준혁의 등장에 청년이 ‘넌 뭔데?’ 하는 표정을 했다.

    "우선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여기 계신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뇌명숲을 가로질러야 했기에 도움을 받고자 전왕문을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준혁의 입에서는 유적을 방문하고 그곳의 함정에서 탈출한 일,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그 후로 노인과 적지주를 만난 일은 생략한 채, 다시 주운대륙으로 향하게 된 이야기로 끝맺음했다.

    "그렇게 제가 위험에 처하자, 어르신께서 면교만의 행태를 참지 못하고 나서게 되신 겁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재미난 얘길 들었다는 듯 노인의 눈이 반짝거렸고, 전왕문 문주의 얼굴은 썩어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말도 안 된다. 면교만이 욕심이 많긴 해도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니! 네놈 말뿐인 것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얼굴이 울긋불긋해져 수치스러움과 분노로 점철된 전왕문 문주의 모습에 준혁은 그가 진짜 몰랐는지 아니면 연기를 하고 있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하긴 상관없지.’

    하지만 그가 알았든 몰랐든, 전왕문 소속의 고위수사인 면교만이 일을 행했던 건 사실.

    준혁은 공간대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 전왕문 문주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 안엔 저기 죽어있는 면교만의 사제인 반배의 원영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문주께선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실 수 있다고 여깁니다."

    "흐음…."

    그 순간 문주의 얼굴이 처참하게 짓이겨졌다.

    설마 원영을 처치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결국 증거가 까발려지자, 문주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선사, 정녕 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 전왕문에서 면교만을 지원한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유적에 잠들어있다는…. 여, 영보를 발굴하기 위함이었지. 절대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자, 영보가 최종 목적이 아닌 걸 알고 있구나!’

    화신기 수사들을 제물로 사용하는 데 관여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말을 하며 멈칫하는 모습에 그가 면교만의 진짜 목표를 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정을 이용해 세 개의 유적을 조사한 뒤, 천영보가 잠들어있는 진짜 유적을 불러와야 한다는 걸.

    "네 녀석이 모른다고 저놈들의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이 아이가 용서해주겠다면 모를까? 크 흠, 그러고 보니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구나? 저 두 놈을 어찌해야 좋겠느냐?"

    전왕문 문주에게 단호하게 대답한 노인은 시선을 돌려 준혁에게 또 한 번 선택권을 넘겨주었다.

    정확히는 문주가 나타나기 전에 했던 질문의 반복이었다.

    ‘면교만의 집착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 몰랐군.’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준혁은 자세를 바로 하며 중괴에게 허릴 숙였다.

    "어르신께서 제게 일의 처리를 맡기신 거라 여기고 따르겠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전왕문의 문주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필요 없는 살생은 모두에게 해가 되는 법. 하지만 어르신과 저의 목숨을 노렸다는 걸 간과한다면 세상 모두에게 웃음을 살 수도 있는 일 일 겁니다."

    준혁은 본인만 목숨이 노려진 거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피해자 목록에 중괴까지 포함시켰다.

    "그래서 모두에게 좋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해보게 그것이 무엇인가?"

    잠시 뜸을 들인 준혁은 전왕문 문주가 초조해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말을 이었다.

    "목숨값을 내시고, 데려가십시오."

    ***

    준혁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한 문주는 중괴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목숨값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 거지?"

    중괴의 태도를 보자면 앞으로는 숨어서가 아닌, 대놓고 따라다닐 가능성이 컸기에,

    위험이 될 리도 없는 수사 두 명을 죽여봐야 아무 이득도 없을 거라 생각한 준혁은 빠르게 계산을 마치며 말했다.

    "목숨을 대신할 만한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초연단이나 그에 상응하는 것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초연단?!"

    문주는 놀랐다가, 찡그렸다가를 반복하다 손을 가볍게 저어 자기병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이건 반초단이라 하는데, 혹 이걸로 대신하는 건 어떤가? 초연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람 목숨 몇쯤은 살릴 수 있을걸세."

    ‘한 문파의 문주라는 자가 치졸하기도 하구나.’

    문파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수사들의 목숨을 구하는데 흥정을 하려 하다니.

    준혁은 보란 듯이 피식 웃어 보이며 고갤 저었다.

    애초에 반초단의 제작법까지 가진 그에겐 관심거리도 아니었다.

    "위선경 수사의 목숨값이 이깟 저급한 단약이라니."

    "저, 저급이라니! 자네가 몰라서 하는."

    "어르신. 그냥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흥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던 준혁이 단호하게 물러나자, 아차 싶은 문주가 성급히 손을 내밀었다.

    "아, 아니네. 내가 잘못 생각했네. 아무렴 자네 말이 맞고말고. 위선경 수사의 목숨값이라면 최소한 초연단 정도는 되어야지."

    문주 자리에 앉아있진 않았지만, 마선문의 최정점에 오래 머물렀던 준혁은 영석 따위는 얼마든지 공급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목숨값을 영석 혹은 보물로 대체하는 건 손해 보는 장사라는 것도.

    하지만 단약, 그중에서 천휴림의 제자위를 받은 대막리조차 귀히 여겼던 초연단이라면 목숨값으로 차고 넘친다고 여겼다.

    ‘신체가 붕괴하던 걸 돌려놨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지.’

    상대가 거래에 응할 것 같자, 한발 물러섰던 준혁이 다시 앞으로 나오며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표정이 썩어가던 문주가 자기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

    "여기 초연단 두 알이네."

    하지만 준혁은 상대가 내민 자기병을 받지 않고,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어째서 두 알입니까?"

    "다, 당연한 것 아닌가?"

    "저기 쓰러져 있는 면교만은 전왕문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수사의 손에 쥐어진 반배의 원영은 다시 제게 주시렵니까?"

    "그, 그건!"

    결국 초연단 네 알을 받아낸 준혁이 자기병을 중괴에게 넘기고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나머지 값을 얘기해 볼까요?"

    "나머지라니. 그건 무슨 소린가?"

    "수사께서도 저를 죽이려 한달음에 이곳에 달려온 것 아니십니까?"

    그 순간 전왕문 문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하지 않아도 ‘뭔 개소리야!’라는 듯이.

    "이번만큼은 나도 참을 수 없군. 나는 그저 본당에 비치된 면교만 수사의 명원패가 꺼지길래 놀라 달려 나온 것뿐이네. 이곳에 누가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고 온 것인데 그런 억지가 어디 있나?"

    "정말 모르고 오신 거란 말입니까?"

    "물론이네! 아까도 말했지만, 면교만이 유적을 발굴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나는 아무것도 관여하거나 알고 있는 게 없었네! 하물며 자네에 대해서도 말일세!"

    상대의 말이 길어지자, 준혁은 중괴에게 시선을 주며 허락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중괴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명의 위선경 수사 중 하나를 가까이 끌고 오자, 공간대에서 반초단 하나를 꺼내 그자의 입에 넣어주었다.

    동시에 영력을 손안에 모아 상대가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커억…. 컥. 무, 문주님!"

    잠시 후, 반초단에 의해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사내가 문주와 노인을 번갈아 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준혁은 그런 그에게 다가가더니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거리를 두고는 문주에게 시선을 보내다가 동유라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면교만과 대화를 나눌 때 그러셨지요? 문주의 명이 있어 함께하나 자존심이 상하신다고요?"

    "......그렇소."

    "문주께서 그대에게 뭐라 명을 내렸습니까?"

    "동유!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내가 언제 명을 내려!"

    설마 준혁이 적을 치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전왕문 문주는 당황해 목소리가 흔들렸다.

    초조한지 입술을 깨물고 식은땀마저 흘렸다.

    "문주께서…. 면교만 수사가 수배한 인물을 잡아 오라 하셨소이다. 그자가 유적의 열쇠를 가지고 도주 중이니 꼭 잡아야 한다고…. 그자를 죽이는 건 상관없으나, 열쇠인 목걸이는 꼭 사수해야 한다고."

    ‘목걸이? 이건 무슨 소린가? ’

    준혁은 자신도 모르는 말에 의문이 생겼다. 순간적으로 신배가 사용하던 보호용 목걸이 법기가 떠올랐지만, 전혀 티 내지 않고 문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 보십시오. 결국 어르신과 저를 공격하려 한 자는 셋이 아닌 넷인데. 이래도 제가 딴말을 한다 여기시겠습니까?"

    그러니 세 명에 더해 문주 당신의 목숨값도 지급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에 암담해하고 있던 문주는 이어지는 준혁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문주와 기둥이 될 위선경 수사 셋이 없으면. 전왕문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니 계산하실 때 그것도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문파의 목숨값도 거래 내역에 포함되었다.

    ***

    오랜 시간 뇌명숲의 운송을 도맡으며 막대한 부를 쌓았던 전왕문.

    그런 부의 정점에 섰던 전왕문주는 보고(寶庫)가 털털 털리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초연단 네 알에 더해 초극영석 3개를 내놓았지만, 강도 같은 인족 꼬마가 전혀 만족스러워하지 않자, 면교만에게서 받은 천영보의 비밀이 담긴 화염 목함마저 뱉어내야 했다.

    그리고는 탐욕에 젖은 상대에게 위선경 수사가 수련용으로 사용하는 위례지단(威醴之丹)까지 바쳐야 했고,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아 하자 마지막까지 감추려 했던 초연단 세 알을 마저 풀고 해방될 수 있었다.

    "이제 됐는가…."

    힘없이 거래를 마친 전왕문 문주가 안타까웠는지, 노인은 혀를 차며 준혁을 곁눈질했다.

    아마도 자신과 약속을 잘 지켜준 문주가 너무 심하게 털리자,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난 것 같았다.

    하지만 준혁은 충분히 과하다고 여길 만한 물건들을 건네받았음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한 가지 더 돌려받을 게 있습니다."

    "......그만."

    "저와 내통했다는 누명으로 태식 수사가 고문을 당하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를 보내주시고 전왕문에서 영원히 놓아주십시오."

    너무한 것 아니냐고 따지려던 문주는 겨우 화신기 수사 한 명 때문에 심력을 낭비하기 싫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겠네…. 돌아가는 대로 그리 처리하도록 하지."

    "단! 지금껏 익힌 공법을 폐한다거나, 금제를 거실 거라면!"

    "알겠네, 알겠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으니 그만해주시게…."

    흡족한 거래에 준혁은 만족한 얼굴을 했고, 중괴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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