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64화 (264/408)
  • 264화. 태식 수사 (3)

    "제가 도망갈 거라 단정 지으시는군요."

    "그럼 아니란 말이냐?"

    같이 온 수사들 때문인지, 준혁의 도발에도 면교만은 차분했다. 아니 오히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같았다.

    "하하, 대라멸진에 호되게 당하시고도 그러십니까? 제 수가 겨우 그 정도일 것 같습니까?"

    이번엔 반응이 왔다.

    "감히. 후우…. 그래. 네놈 꾀가 상당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유로운 척했지만, 대라멸진이란 말에 눈썹이 한껏 치솟은 면교만은 이를 악물며 양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이 노랗게 변하며 그 사이로 뇌전이 파지직거리기 시작했고, 준혁 주위의 기압이 극도로 낮아졌다.

    "이번에도 맨몸으로 버틸 수 있겠느냐? 어디 예전처럼 천휴림의 보물을 꺼내 보거라. 하긴 꽁무니를 빼려 몸을 사리는 것이겠지?"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결계 밖을 지키던 위선경 수사가 퇴로를 막듯 움직였던 게 면교만의 명령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도망가기 위해 전함을 꺼내지 않은 걸 눈치챈 듯한 면교만의 말에 준혁은 혀를 차고는 공간대를 건들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에서 발출된 조각배 모양의 법기가 순식간에 커지더니 하늘을 완벽하게 막아버렸다.

    "전함!!"

    "진짜였다니!"

    용천무의 전함이 나타나자 결계 밖 두 명의 수사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고, 면교만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을 내리쳤다.

    "부숴주마!!"

    번쩍-

    직후, 면교만의 손짓에 하늘을 가득 채우던 노란 구름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격을 달리하는 샛노란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콰과콰광!

    준혁은 감히 맞설 생각을 배제한 채, 재빨리 전함 위로 올라가 영력을 쏟아부었다.

    파앙-

    그러자 전함 위로 푸른 원형의 보호막이 나타나 샛노란 뇌전을 막아섰다.

    "동유 수사! 가한 수사! 보셨습니까? 약속대로 저놈이 가진 전함은 두 분께 넘겨드리겠습니다!"

    콰쾅! 보호막이 뇌전에 맞서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는 사이.

    면교만의 말이 신호가 된 건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전투와는 상관없다는 듯 한발씩 빼고 있던 두 명의 수사가 자신들의 법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술법을 이행하고 나자, 눈에 보이지 않던 결계가 반투명하게 바뀌며 괴상한 전류의 흐름이 그 위로 덧씌워졌다.

    "문주께서 명하신 것도 있고 수사와 한 약속도 있으니 돕도록 하지요. 다만 겨우 저런 애송이 하나 잡자고 세 명이 움직이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수사께서 처리하시는 걸 저흰 지켜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혼자 나설까요?"

    동유라 불린 사내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문주의 명과 면교만과의 거래가 있었다 한들, 위신이 무너지는 행동은 할 수 없다는 듯.

    그 모습에 면교만이 비열하게 입가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놈이 가진 수단이 한둘이 아닙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주시면 충분합니다."

    ‘이런, 조금 더 빨리 행동할 것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난 준혁은 자신이 너무 완벽을 꾀하려 했던 걸 후회했다.

    위선경 수사 세 명에게서 도망쳐야 했기에 가장 적합한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른 판단이 돼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다.

    동유와 가한이라는 두 사내는 결계만 강화한 채 여전히 방심하는 모습이 가득했기에 늦지 않았다 판단했다.

    ‘분광소와 사신결의 환영으로 도주 방향을 짐작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공간 전이술로….’

    적마도로 결계를 나선 순간, 각각의 혈맥의 힘을 발현해 본체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환영을 만들어 낸 후, 분신과 섞어 도주시킨다면, 셋은 그걸 쫓을 가능성이 컸다.

    그사이에 진짜 본체는 목족의 공간 전이술로 도망친다는 계획이었다.

    다만 이 계획의 단점이라면 환영과 분신이 진짜처럼 보여야 했기에 힘의 일부를 낭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쉬워 말자. 다시 돌아와 회수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안전하게 도망갈 수단만 생각하자.’

    짧은 시간 깊은 고민을 마무리한 준혁은 면교만이 또 한 번 손을 내리치는 모습을 보며 양손으로 각각 다른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우선 사신결부터.’

    그때, 귓가로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송아, 꽤 곤경에 처한 것 같구나.

    콰과쾅!

    떨어지는 뇌전에 전함의 푸른 보호막이 뒤흔들리는 사이.

    준혁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홱 하고 고갤 돌렸다.

    -중괴 어르신 아니십니까?

    -......

    -어르신께서도 주운대륙으로 가시는 중이셨습니까?

    중괴는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준혁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의뭉스러운 놈. 하여간 인족 놈들은 하나같이…. 크 흠, 그건 그렇고, 네놈이 꽤 곤욕스러운 상황인 거 같은데? 내가 도움 좀 줄까?

    ‘역시 나를 따라오던 게 악의가 아니었구나!’

    선의로 인한 행동이었다면 숨진 않았을 터. 아마도 호기심 때문이라 생각됐다.

    -저를 도와주시겠단 말입니까?

    -물론 공짜는 아니지. 다음에 내 부탁 한 가지를 들어준다면 이번에 도와줄 의향이 있다.

    ‘최소 진선급 강자의 도움이라….’

    준혁은 빠르게 손익을 따졌다.

    자신이 분신과 사신결로 도망간다고 해도, 위선경 수사들을 완벽하게 따돌리는 건 어려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부턴 긴 시간 도주 생활이 시작될 수도 있는 법.

    준혁은 고문당하고 있을 태식을 떠올리다, 결심했다는 듯 세차게 고갤 끄덕였다.

    -부탁하실 일이 죄 없는 자들에게 해를 끼치게 하거나, 제 신념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라면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코웃음이 흘러나왔다.

    "흥,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하고도 뻗대는 자세가 아주 기가 막히구나. 크크, 하지만 나쁘진 않아."

    목소리와 함께 결계 안쪽 허공이 갈라지며 눈매가 서글서글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장포에 회색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노인은 언뜻 보기엔 동네 마실 나온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

    중괴의 출현으로 노란 구름에서 뇌전을 뽑아내던 면교만은 기겁하며 행동을 멈추었다.

    결계 밖을 지키던 두 명의 수사 역시 지금까지 여유로웠던 모습과 달리 한껏 경계하는 자세로 영력을 발산했다.

    "수, 수사께선 누구십니까?"

    면교만이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중괴는 개소리가 들린다는 것처럼, 귀를 후벼파다가 준혁에게 날아가 전함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몸을 수그려 전함의 바닥을 만지작거리다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역시. 진짜 초창기에 만들어진 그것이구나…."

    그 모습에 면교만이 무시당한 걸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릴 질렀다. 하지만 고함이라 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전함을 매만지던 노인은 면교만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키며 언짢은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신분? 네놈이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이, 이곳은 전왕문이 관리하는 구역입니다. 그리고 저흰 수배 중인 범인을 상대하고 있었고 말입니다. 혹 저놈과 안면이 있으신 겁니까?"

    노인이 어디선가 날아들었다면 면교만과 나머지 수사들이 이토록 경계하진 않았을 터.

    하지만 월하만진의 결계 속에서 세 명의 기감을 피해 숨어있었다는 것이 면교만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소름 돋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안면? 한번 본 적은 있지. 아 생각해보니 기분이 언짢구먼. 이거 취조당하는 기분인걸?"

    "취, 취조라니요. 갑자기 나타나셨으니 누구신지 알아보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네놈한테나 당연한 일이겠지."

    피식 웃으며 면교만의 말에 대답하던 노인이 같잖다는 듯 손을 직선으로 내리그었다.

    쿠우웅-

    그 순간.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직경 수십 미터가 넘는 무지막지한 거인의 발이 나타났다.

    거인의 발은 면교만의 노란 구름을 간단히 흩어버리고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걸 신호로 결계 밖에 대기 중이던 두 명의 수사가 혼비백산하여 허공을 박찼고, 면교만은 질린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도 못했다.

    "어딜!"

    노인은 면교만이 움직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쳐다도 보지 않고, 양손을 뻗으며 움켜잡는 시늉을 했다.

    콰직-

    그러자 하늘을 가르며 도망치던 두 명의 수사가 뼈가 아작 나는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흐느적거리며 다시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면교만의 비명이 전장에 퍼져나갔다.

    ‘세상에…. 이게 삼선의 경지란 말인가.’

    준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위선경 수사 셋이 말 그대로 장난감처럼 다뤄지고 있었다.

    잠시 후, 힘을 잃고 끌려온 두 명의 수사와 환영처럼 생긴 거인의 발에 깔린 면교만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노인이 준혁에게 턱짓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어때? 네놈이 처리할 테냐?"

    발에 깔린 채 피를 토하며 헐떡이는 면교만. 이미 내부의 균형이 완전히 파괴된 듯 두 눈에 초점이 옅어지고 있었다.

    노인은 그런 면교만을 어떻게 할지 묻고 있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비록 저를 핍박했다고는 하나…. 흠... 어르신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콰직-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이 손목을 살짝 비틀자, 면교만을 밟고 있던 거인의 발이 좌우로 살짝 움직였다.

    마치, 꿈틀대는 지렁이를 짓누르듯이.

    ‘원영도 도망치지 못하다니.’

    그 모습에 준혁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자신은 아직 화신기급 원영도 쉽사리 파괴하지 못해, 천혈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

    헌데 소천경 수사의 원영이 본체와 함께 박살 나버리는 광경을 봤으니 어떻겠는가?

    ‘나는 숨만 쉬어도 처리할 수 있겠구나.’

    과연 노인에게 도움을 받은 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애초에 노인이 자리에 없을 때 적지주를 만났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놈들도 처리해야겠지?"

    그때, 노인의 혼잣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준혁은 어느새 월하만진이라는 결계가 깨어지며 두 수사가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왔음을 알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선사. 저희는 그자와 은원이 없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은 아직 의식이 남았는지, 피를 울컥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이번에도 중괴가 선택권을 넘기려 하자, 준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슈앙-

    그때, 전왕문의 본문이 자리한 방향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음속을 넘어 대기가 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멈춰라!!"

    순식간에 다가온 자는 노란 두건으로 이마를 감싼, 눈이 부리부리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겉만 청년의 모습일 뿐, 그 안에 자리한 것은 대천경 수사였다.

    청년은 면교만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를 눈짓으로만 스쳐 확인한 후, 나머지 두 명의 위선경 수사가 살았는지 기감으로 확인을 마쳤다.

    그리고는 분노한 얼굴로 다가오다가, 중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서, 선사! 선사께서 어찌? 이곳에!"

    마치 사신이라도 마주쳤다는 듯 표정이 급변하는 청년을 중괴가 마침 잘 왔다는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이군, 문주. 내가 숲에 들어가며 뭐라 했지?"

    전왕문 문주는 중괴의 질문에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예? 예전에 말씀이십니까? 그야…. 친우와 할 일이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랬지?"

    노인의 표정이 딱딱해지는 것 같자, 청년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여 그동안 뇌명숲을 지나다닐 때도 선사께서 머무시던 숲의 중심을 피해 다녔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뇌공조 무리가 가장 적은 길이 중심을 지나는 것이라는걸. 그런데도 결단코 모든 문원들이 숲의 중심으로 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청년의 장황한 설명에 중괴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턱을 치켜세웠다.

    "그랬지. 무리한 내 부탁에도 잘 따라주었지. 그런데 왜? 왜 이번엔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이냐?"

    "예? 그게, 무슨…."

    "내 오랜 친우의 후인과 나들이 좀 나서려는데, 면교만인지 뭔지 하는 놈이 나와 이 아이를 핍박하더군."

    노인의 말이 끝난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청년은 그럴 리가 없다고 면교만이 있던 자리를 몇 번이고 확인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그는 하늘나라로 간 지 오래.

    지금부턴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전부 진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