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태식 수사 (1)
뎅~ 뎅~
종소리가 거듭될수록 조말랑은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중첩되는 걸 느꼈다.
하지만 시야마저 차단돼, 자신이 보호되는 것인지 갇힌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을 정도였다.
"형님께선 무사하실까?"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소천경 수사와 함께 나타났던 두 명의 수사.
총 세 명의 소천경 수사를 맞이하며 준혁은 여유를 잃지 않았고, 보호 법기로 자신을 감싸기까지 했다.
하지만 동급 수사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건 연기기, 축기기처럼 하위 수사들에게나 가능한 일.
소천경 수사 세 명을 상대로 준혁이 무사할지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위선경 수사와 소천경 수사를 동시에 상대하며 나를 데리고 도망치시긴 했지만…."
직접 상대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조말랑은 깊어지는 근심에 보호막을 강제로 해제해서라도 준혁을 도와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계속해서 중첩되던 보호막이 한 꺼풀 걷히기 시작했다.
그걸 시작으로 연달아 몇 겹의 보호막이 사라졌고, 조말랑은 드디어 밖의 상황을 어렴풋이 느끼고 볼 수 있었다.
"세 명?"
그런 조말랑의 시야에 잡힌 건 세 명의 수사.
최준혁 수사로 의심되는 자와 그와 상대하고 있는 소천경 수사 한 명.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 아무런 행동도 하고 있지 않은 또 다른 수사였다.
"나머지 한 명은?"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마지막 한 명은 보이질 않았다.
"설마? 벌써 처리하신 건가? 아니면?"
그때, 강렬한 기파가 퍼지면서 보이지 않던 한 명이 나타났다.
보호막에 갇혀있던 조말랑에겐 상대가 허공을 뚫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형님을 기습하려고 숨어있었구나! 이 비겁한 놈들!"
그리고 나타난 이는 대치하던 두 명에게 합류하더니 순식간에 한 명을 제거해 버렸다.
그 순간 조말랑의 두 눈이 급격히 확장됐다.
"형님!!!"
비겁한 전왕문 수사들은 결국 합심하여 준혁을 공격했고, 상황을 정리해버린 듯했다.
죽는 게 두렵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형님이라 불렀던 이. 그런 이가 합공에 처참히 당하는 모습에 조말랑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소천경 수사 세 명에게 작은 흠집조차 선사하지 못할 테지만, 어차피 죽게 될 거 발악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가득했다.
퍼석-
그 순간, 조말랑의 내면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그의 피부 위로 혈선이 가득 생겨났다.
동시에 지금껏 조부가 억눌러왔던 혈맥의 힘이 깨어나며 사나운 늑대의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스르륵-
잠시 후, 준혁이 죽었기 때문인지, 흐릿하게 앞을 가로막던 보호막이 완전히 사라지자 조말랑은 분노로 점칠 된 감정을 터트렸다.
"한 놈이라도 죽인다!!"
파앙-
근육이 살아있는 것처럼 숨을 쉬고, 어금니에 피 맛이 돌았다. 동시에 조말랑은 빠르게 주변을 살펴 목표물을 정했다.
죽을힘을 다한다면 한 놈 정도는, 한 방 정도는 먹일 수 있을 터!
"어?"
하지만 조말랑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려던 발을 주춤거려야 했다.
"어? 혀, 형님?"
네 명의 인기척 중 한 명이 제거됐으니 당연히 전왕문의 소천경 수사 셋만 남아있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의 앞에 그림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형님이 둘?"
남아있는 세 명 중 두 명은 준혁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 그러니까 미동도 없이 떠 있던 수사는 금빛 실에 칭칭 감긴 모습이었다.
그때 두 명의 준혁 중 한 명이 피식 웃더니 손을 저어, 조말랑 머리 위에 떠 있던 극락종을 회수했다.
"영력이 끊기니 바로 해제돼버리는군, 역시 체화시키지 못하면 비효율적이야."
***
준혁은 도망간 전왕문 수사를 처리하고 온 사이 박빙으로 대치하고 있던 반배와 분광소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도망가려고 여러 번 시도하던 반배는 번번이 분광소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억울하다는 표정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금빛 실로 반배의 원영을 구속한 준혁은 천혈로 마무리하지 못하기에 할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원영을 봉인시켰다.
그때, 영력 주입이 끊긴 극락종이 기능을 멈추며 조말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놈이라도 죽인다!!"
핏발이 선 채 온몸으로 혈맥의 힘을 줄줄 흘리는 조말랑의 모습에 준혁은 이채를 띠다가 법기를 회수했다.
‘처음 봤을 땐 혈맥의 힘이 너무 옅어 조호랑의 직계일 거라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정확히는 그동안 강제로 억눌러져 있던 힘이 지금에서야 폭발한 것이었지만, 준혁은 조말랑의 심리 상태를 알지 못하니 힘을 숨겼다고만 여겼다.
의외의 모습에 조말랑의 상태를 확인한 준혁은 그가 가진 혈맥이 예사롭지 않음에 피식 웃었다.
‘정말 앞뒤가 안 맞는 놈이구나.’
수행과 어울리지 않는 철없는 행동, 조부의 위명과 반대로 처참한 실력. 조호랑보다 진한 혈맥을 가지고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재능.
준혁은 당황한 채 어버버거리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해준 후, 금빛 실에 감긴 채 절반은 얼고, 절반은 오염된 수사마저 처리했다.
"형님!! 대단하십니다! 동급 수사를 셋이나! 그것도 소천경 수사를!!"
준혁이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조말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촐싹거렸다.
자신의 조부나 누이에게 말해줘도 절대 믿지 않을 거라며 입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준혁은 그 모습에 별말 없이 웃다가 느닷없이 손을 홱 저었다.
"어딜 감히."
그러자 허공에 흐릿한 인형이 나타나다가 준혁의 손짓에 바둥거리며 끌려왔다.
"으윽! 놔라!!"
반배를 처리할 때쯤부터 숨어서 다가왔지만, 준혁의 초감각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당신은?"
하지만 기습을 하기 위해 숨어있던 자를 확인한 준혁은 처음으로 감정의 동요를 드러냈다.
전왕문이 자신을 잡으려고 할 건 알고 있었지만, 수행도 부족한 자가 복수심에 들끓는 얼굴로 나타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태식 수사의 사제…. 아닌가?"
준혁의 손짓에 허공에서 무형의 기운에 목이 잡힌 것처럼 발버둥 치는 사내.
그자는 준혁이 전왕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본 적이 있는 태식 수사의 사제였다.
"이 악적!! 왜! 왜! 사람들을 그리 무참히 죽였느냐! 네놈 때문에 사형이! 사형이!!"
***
흥분해 귀를 어지럽힐 정도로 막말을 뱉어내던 사내를 진정시킨 준혁은 그에게 전후 사정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태식 수사가 죽을 위험에 처했다?"
"처한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 지금도 원영이 타들어 가는 형벌에 혼백이 녹아들고 있단 말이다!"
사내의 설명이 끝나자 준혁은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전왕문에서 자신을 잡기 위해 수를 쓸 거라는 건 당연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란 게 너무 치졸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비록 신선경에 이르진 못했지만, 범인들에게 신선 소리를 듣는 위선경 수사가 생각해낸 방법이라기엔 너무 저급하고 우스웠다.
‘하늘을 가르고, 땅을 움직이면 무엇 하는가. 이처럼 치졸하고 얄팍한데…. 허어.’
"그럼 지금 성채 뒤편에 마련된 곳으로 가면 되는가?"
12명의 화신기 수사를 죽이고 전왕문 고위수사까지 죽인 범인. 그런 범인과 내통한 자. 태식은 성채 뒤편에 꼬치처럼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준혁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던 사내는 한동안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당신…. 다른 수사들을 기습하기 위해 수행까지 숨기고 있었다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사실과 다르지만, 수행에 관한 건 들은 게 맞을 터네."
이미 자신을 악질 범죄자로 생각하고 있던 상대를 설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준혁은 일부분만 인정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소천경 수사가 맞겠습니다. 한 가지만 대답해주십시오. 당신은 사형을 구할 겁니까?"
사내는 고위수사를 앞에 두고도 눈빛만으로 상대를 죽일 듯 살기를 연신 내뿜었다.
진심으로 자신의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사형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준혁의 뇌리로 설악산 연구소에서 목이 잘린 채 시쳇더미 사이에 놓여있던 오태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분노가 다시금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 왔다.
"물론이네. 이유야 어쨌든 그가 나로 인해 그리됐으니, 응당 그를 구해야지."
"그럼, 이곳이 아닌, 주운대륙의 본문으로 가십시오."
이어진 사내의 말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흑석지부 모처에서 태식이 고문받고 있다는 건 면교만이 만들어놓은 함정.
진짜 태식은 본문에서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본문이라면 문주를 비롯한 고위수사들이 상주하고 있겠지?"
"왜? 갑자기 겁이 나십니까? 외면하려 하십니까?!"
물론 겁이 나거나 피하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해 알아야 계획을 짤 수 있지 않겠는가?
준혁은 또다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상대를 진정시킨 후, 전왕문 본문에 상주 중인 수사들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캐물었다.
‘대천경 수사인 문주와 면교만과 같은 위선경 수사가 총 셋. 거기다 소천경 수사까지…. 흠.’
정보 확인이 끝나자, 태식 수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 판단되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 지나간다면 평생 심마로 남을 건 분명한 일.
"알겠네. 태식 수사는 나에게 맡기고. 헌데 자네는 괜찮겠나?"
뜬금없는 준혁의 말에 태식의 사제는 경계하는 태도로 되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설마? 저를?"
"쯧, 진정 좀 하게. 내가 그대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을 테니. 내가 묻고자 하는 건 나에게 이렇게 일러줘도 그대의 신상에 문제가 없냐 이 말일세."
"걱정 마십시오. 스승에게 버림받은 사형을 목도했거늘, 이곳에 남아있겠습니까? 당신이 사형을 구해준다고만 하면, 저는 이대로 도망갈 것입니다. 어차피 태식 사형을 제외하곤 정이 깊은 이는 하나도 없었으니."
원래 목표는 준혁의 멱을 따고 태식과 교환하는 거였다는 말을 꿀꺽 삼킨 사내였다.
단호하게 말을 끝내는 사내의 모습에 준혁은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는 그를 돌려보내고, 조말랑을 불렀다.
"이제 혼자 돌아갈 수 있겠지? 봐서 알겠지만, 나에게 급할 일이 생겨, 먼저 움직여야겠네."
하지만 조말랑은 혼자 돌아가라는 말에 두 팔을 대(大)자로 펼치며 고갤 저었다.
"안 됩니다! 대천경 수사가 머무는 곳에 혼자 가신다니요?! 죽으러 가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조말랑의 표정에 준혁은 마음 한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이들 남매는…. 참….’
친밀함을 형성하는데 심영근과 천혈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에 하계에 두고 온 동생과 부하들이 절로 떠올랐다.
준혁이 감상에 젖은 사이, 조말랑이 미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꼭 가셔야겠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부족으로 돌아가 도움을 받아오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방책이긴 하지, 팔황 중 일인이 온다면야.’
굳이 조말랑의 조부인 태백랑이 오지 않아도, 그를 따르는 족인들만 등장해도 전왕문은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흑석대륙을 지나 대황대륙을 가로지르는 게 하루 이틀에 가능한 것이 아님에 준혁은 고갤 저었다.
"그러면 너무 늦네. 내가 나타날 때까지 생명은 붙어있겠지만…. 이미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상태가 될 터. 시간이 없어."
"하지만…."
"자네 걱정은 알겠네. 허나 걱정할 것 없네. 내가 무식하게 대천경 수사와 부딪칠 사람인가?"
"그럼 어떻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의 조말랑.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준혁은 자신의 손목을 툭툭 건들며 대답했다.
"다 방법이 있네. 내 인맥이 제법 든든하다 이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