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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61화 (261/408)
  • 261화. 사신정(死神庭) (2)

    "이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미 저 두 사람의 영역이 상쇄돼 어떤 의지도 간섭할 수 없을진대!"

    반배를 돕기 위해 조금 떨어져 대기하던 두 사람 중 흑발이 어깨까지 내려온 사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영역이 상쇄된 곳에 새로운 작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더 고위 수사가 끼어들어야만 가능한 일.

    곁에서 기습을 준비하고 있던 주근깨 사내가 자신들을 완벽히 감싸버린 검은 막을 바라보다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소문으로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무엇을요?!"

    "팔황 중 사왕. 사왕의 무덤. 그것과 흡사해 보입니다."

    주근깨 사내의 말에 흑발 사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보면서.

    "일정 공간을 다스린다는 그 보물 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어찌 그런 보물을! 저자도 겨우 소천경 수사 아닙니까?!"

    보물에도 주인이 있는 법.

    지키지 못할 과한 보물은 분쟁을 일으키고, 분쟁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

    흑발 사내는 대륙에 한두 개뿐이라는 천영보급 보물이 겨우 소천경에 불과한 상대에게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믿고 말고는 다음 문제.

    "우리도 움직입시다! 반배 수사가 밀리기 시작합니다!"

    영역이 상쇄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꼬챙이 같은 법기를 꺼내 달려들던 반배가 어느새 검은 장막의 영향으로 도통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검은 장막을 만들어 낸 사내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움직이며 당장이라도 반배를 절단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준혁 역시 이롭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양손을 지휘하듯 움직여 월광지력을 활처럼 만들어 날려 보낸 후,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공간대에서 단약을 꺼내 삼키고 있었다.

    ‘영기 소모가 장난이 아니구나.’

    사신정의 공간 조종 능력은 또 하나의 영역이라 할 만큼 대단했다.

    소천경인 반배가 사신정이 만들어 낸 압력과 디버프로 제 실력의 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천영보급이라 치켜세워줄 만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준혁도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마치 완영기 수준에서 무리하게 용천무의 날개를 사용할 때처럼, 급격히 고갈되는 영력과 체력적 부담을 받고 있었다.

    ‘역시, 속전속결로.’

    거기다 극락종을 운용하는 데도 적지 않은 영력이 소모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커질 게 분명했다.

    그때 대책을 세운 건지 빠르게 다가오는 두 명의 소천경 수사를 보며 준혁은 분광소와 식검을 공명시켰다.

    ‘그럼 나도 가볼까?’

    잠시 후, 기감을 통해 분광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준혁은 분광소와 반배가 경합을 시작하려는 사이, 사신정의 힘을 이용해 검은 장막으로 스며들었다.

    ***

    준혁이 노린 상대는 흑발이 짙은 사내였다.

    외관상 느껴지는 기세도 가장 약했지만, 무엇보다 사신정의 기운과 상성이 안 좋은지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 끙끙거리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반배를 도우려고 쇄도하던 두 사내가 검은 장막에 흡수되듯 사라져 버린 준혁의 모습에 흠칫하는 사이.

    "여깁니다!"

    어느새 주근깨 사내의 등 뒤에 나타난 준혁이 주먹을 내질렀다.

    하얀 서리가 껴있는 주먹은 순식간에 주변을 얼려버리며 냉기를 퍼트렸다.

    "이익!"

    하지만 상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사람 몸통만 한 하얀 방패를 꺼내 방어했고, 방패는 순식간에 커지더니 주변 일대를 완벽하게 차단해버렸다.

    쾅!

    월광지력을 품은 주먹이 방패를 강타하자, 대기가 울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때 준혁의 등 뒤로 보라색 뿔을 가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양손으로 방패를 움켜잡았다.

    "마, 마족!!"

    검은 그림자, 전영의 손에 잡힌 방패는 마치 독에 중독된 것처럼 검게 변하더니 처음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죽어라!"

    그사이, 흑발의 사내가 금적색의 호화찬란한 검을 꺼내더니 어느새 준혁의 머리 위로 이동해 내리쳤다.

    하지만 애초의 첫 목표는 흑발 사내.

    준혁은 상대가 의도대로 다가오자, 피식 웃더니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다.

    수행이 오른 뒤, 전영을 몸에서 떨어트릴 수 있게 된 준혁이 처음부터 상대를 속인 것이었다.

    그 순간 준혁이 사라진 자리에 대신 나타난 백호 그림자가 떨어져 내리는 금적색 칼을 양손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흑발 사내가 그 모습에 움찔하는 사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난 준혁이 월광지력으로 하얗게 변한 손을 칼날처럼 만들며 내질렀다.

    탕-

    하지만 한껏 위축되어있던 흑발 사내의 반응은 번개처럼 빨랐다.

    호화찬란한 검을 손에서 놓아버리더니 재빠르게 양손을 합장했고, 그 순간 등 뒤로 분신 같은 인형이 나타나더니 준혁의 월광지력에 대응했다.

    "오호."

    분신도 아니고 전영술도 아닌 인형술에 가까운 특수한 술법에 준혁은 호기심이 짙게 일어나며 반대 손을 내질렀다.

    그러자 월광지력을 막아내고 다음 수를 준비하던 상대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마, 말도 안 된다! 어찌 상반된 두 기운을 동시에!"

    내질러진 준혁의 반대 손. 그 위로 영혼마저 오염시켜버릴 것처럼 섬뜩한 검은 마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푸욱-

    그리고 월광지력을 막아냈던 인형은 두 기운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는지, 제대로 반응도 못 하고 암흑마기에 꿰뚫려 버렸다.

    인형을 등지고 있던 흑발 사내의 심장이 뚫려버린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암흑마기로 무장한 준혁의 주먹에 관통당한 인형은 잘 막아내고 있던 월광지력에도 밀리더니 절반은 검게 오염되고 절반은 완벽하게 얼어 버렸다.

    동시에 흑발 사내의 몸도 얼어붙으며 오염되어 갔다.

    푸슈슉-

    그 순간, 준혁의 발끝에서 금빛 실이 그물처럼 퍼지며 흑발 사내의 몸을 감싸버렸다.

    "이익!"

    하얀 방패의 방어가 무산된 후, 짚으로 엮은 밧줄을 꺼내 마족의 전영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주근깨 사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다 황급히 물러났다.

    아무리 검은 장막의 디버프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두 명의 소천경 수사가 한 명을 상대하지 못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굴에 당황이 역력했다.

    하지만 당황과는 달리 상황판단 능력은 빨랐는지, 짚으로 엮은 밧줄을 검은 전영에게 투척하더니 공간대에서 금색 줄무늬가 독특한 구슬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분광소와 겨루고 있던 반배에게 소리쳤다.

    "반배 수사! 물러나야 합니다! 이자는 우리가 상대할 자가 아니에요!!"

    그리고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장막으로 가로막힌 벽을 향해 구슬을 내던졌다.

    ‘폭탄 법기인가?’

    준혁은 구슬 법기의 용도를 알아차리고는 빠르게 전영을 쏘아 보냈다.

    폭탄이란 터지지 않으면 무용지물.

    하지만 손에서 벗어난 구슬이 실시간으로 영기를 빨아들이는 모습에 급하게 전영을 소환 해제했다.

    ‘저건 보통 물건이 아니다!’

    동시에 사신정에 쏟아붓던 영력마저 차단해 버렸다.

    영역이 의지로 만들어 낸 공간이라면, 사신정은 법기의 힘을 빌려 순수하게 준혁의 영력으로 유지되는 공간.

    만약 공간 자체가 뒤틀릴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된다면 그 후환은 모조리 준혁에게 돌아올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주입되던 영력이 사라지자, 검은 장막이 씻기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예상했다는 듯, 주근깨 사내는 비열한 얼굴로 구슬을 회수하더니 준혁에게 시선을 보냈다.

    "눈치가 제법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물러가지만, 당신은 결코 주운대륙으로 건너가지 못할 겁니다. 조만간 다시 보시지요."

    상대는 동료 수사가 준혁에게 잡혀있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검은 장막이 사라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공을 박찼다.

    그 순간 준혁은 아직 분광소와 대치 중인 반배를 슬쩍 확인하고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허공을 살폈다.

    당장 천혈을 꺼낸다면 도망치는 상대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반으로 갈라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몰래 숨어 쫓아오는 노인이 천혈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린 상대를 그냥 놓아줄 수는 없었다.

    ‘쯧, 어쩔 수 없구나.’

    결국 고민하던 준혁은 신배의 공간대에서 얻었던 반초단 한 알과 적지주가 준 단약 중 하나를 연달아 삼켰다.

    그리고는 용천무의 날개를 꺼내 착용과 동시에 발동시켰다.

    파앗-

    그 순간 준혁이 공간을 가르듯 사라졌고, 허공에서 알 수 없는 침음이 흘러나왔다.

    ***

    노인에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얻은 이름 중 가장 유명한 이름은 중괴였다.

    마선 중력괴.

    그는 중력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남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영역을 조성할 수 있었다.

    특히 중력을 조종하여 영역의 힘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었는데, 그 능력은 지금껏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고, 따라 하고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대단하다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웬만한 일엔 놀라지도 않았었다.

    그런 중괴는 최근 들어 계속해서 놀람의 연속이었다.

    마선들을 영면에 들게 한다는 식아의 소유자를 만난 후부터가 그 시작이었다.

    그놈은 겁도 없는지 진선경인 자신 앞에서 당당했다.

    기세를 내뿜어 움츠러들게 만들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이상한 힘으로 그것들을 무력화해버리자 그때부터 관심이 갔다.

    그리고 오랜 친우는 그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알지. 그리고 이제 내가 아닌 다른 곳에 관심을 두리란 것도 말이야. 안 그런가?

    물론 최준혁이라는 인족 꼬맹이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마선을 잠재울 식아라는 녀석 때문이긴 했지만, 친우의 말대로 노인은 모든 관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때부터 꼬맹이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니까.

    딱 한 가지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지워버렸던 소망의 아주 작은 희망을 인족 꼬맹이에게서 봤기 때문에 저절로 발이 향한 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성격에 안 맞게 몸을 숨긴 건, 인족 꼬맹이가 어떤 아이인지, 정말 소망을 이뤄줄 아이인지 몰래 지켜보고 판단하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중괴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인족 꼬맹이는 공명 과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분광소의 껍데기가 식아라는 아이와 공명한 순간, 온전한 분광소의 능력이 발휘된 것.

    그건 가히 충격에 가까웠다.

    당장 모습을 드러내 꼬맹이를 추궁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마선경과 괴조의 말에 의하면 식아는 마선을 잡아먹을 거라 했었지.’

    그렇다면 잡아먹는 게 무엇일까? 당연히 마선기를 흡수하고 그 안의 능력까지 가져가는 것 아닐까?

    소름이 돋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친구가 영면에 들기만 했으면, 그런 부분은 사소한 거라 넘길 만했다.

    아니! 오히려 노인이 가지고 있던 작고 작은 소망. 그 소망을 이룰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기도 했기에 한편으론 기쁨에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그때 노인은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애송이가 꺼낸 날개.

    오래전 핍박에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비운의 종족 용각족.

    현재 천휴림의 가장 유명한 법기로 알려진 ‘전함’이 사실 용각족이 만든 물건이란 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사실 중 하나.

    용각족은 법기 제작으로 가장 유명한 종족이었다.

    그런 용각족의 족장만이 가질 수 있는 천영보급 보물, 울부짖는 날개.

    그 보물을 인족 꼬맹이가 꺼낸 순간 중괴는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사신정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했지.’

    천영보급 보물은 아무나 얻는다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랬기에 인족 꼬맹이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놈은 이미 천영보급 보물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그러다 노인은 의문 한 가지가 생겨났다.

    ‘애초에 사신정과 날개를 동시에 사용했다면?’

    소천경 수사 셋쯤은 어렵지 않게 처리했을지도 몰랐다. 헌데 왜? 왜 상대가 도망치고 나서야 꺼내 들었단 말인가?

    그 순간 노인의 입가가 차게 올라갔다.

    보물의 존재를 최대한 알리지 않기 위해 뒤늦게 꺼낸 것이 분명했다.

    "이 영악한 꼬맹이 녀석 봐라. 내가 지켜보고 있단 걸 알아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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